전라남도 화순군을 가면 전설을 만나고 민중들의 소박한 꿈과 소설가와 시인의 걸음을 멈추게 한 운치 있는 멋진 길을 만날 수 있다.
화순군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무대이자 김삿갓이 방랑을 멈추게 한 곳으로 유명하다. 김삿갓의 방랑은 적벽에서 멈추었다.
화순적벽에는 조선시대 방랑시인이었던 김삿갓에 대한 사연이 있다. 천하를 돌며 희노애락과 세상만사를 시로써 풀어내던 김삿갓은 노년에 화순 동복에까지 발길이 닿게 된다. 평생을 방랑하며 살았던 김삿갓이지만 적벽의 웅장한 매력에 크게 심취한 김삿갓은 이후 방랑을 멈추고 13년 동안 적벽에서 머물며 57세의 나이로 화순 동복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적벽이라는 이름은 조선 전기 호남 3걸이라 불리며 뛰어난 문장력을 발휘했던 신재 최산두에 의해서다. 그는 기묘사화로 인해 화순 동복으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동복에 도착한 최산두는 동복 일대의 뛰어난 풍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못지않은 절경이구나’ 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화순군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의 약 7km에 걸친 화순 적벽의 유래이다.
비록 동복댐 건설로 인해 김삿갓의 방랑벽을 멈추게 하고 최산두의 감탄을 자아내던 적벽 본래의 모습이 상당부분 수몰되었다고는 하지만 적벽의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10대 절경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적벽 중 가장 빼어난 노루목적벽은 아직까지도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최근 화순군과 광주시는 많은 사람들이 적벽의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감상하도록 하는 방안을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칭 적벽이라고 칭하지만 화순적벽은 4개 군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복천 상류 부근의 노루목적벽, 물염정이 있는 물염적벽, 보산리에 형성 된 보산적벽, 창랑리에 위치한 창랑적벽이 그것이다.
이중 노루목 적벽은 가장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최산두가 감탄을 한 곳 또한 바로 노루목 적벽이다. 사실 노루목적벽은 조선 10경에 들 정도로 그 경치가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1970년대 동복천일대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민간인의 접근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다만 동복댐건설로 발생한 수몰 실향민들에게만 간혹 문을 열어줄 뿐이다. 최근 들어 주암호와 탐진강의 건설로 식수원이 풍부해진만큼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노루목적벽보다는 못하다고 하지만 물염적벽과 보산적벽, 창랑적벽 또한 절경으로 꼽힌다. 물염적벽은 조선 중기 구례와 풍기 군수를 지낸 송정순이 세운 정자 물염정이 있어 적벽의 웅장한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는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동복천 너머로 길게 이어진 창랑적벽은 노루목적벽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줄 정도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특히 눈 내리는 날 절벽주위로 흰 눈이 달라붙고 기암노송에도 눈이 내리면 그 모습만큼은 노루목적벽보다 한수 위라고 소문이 나있다.
‘운주사 천불천탑’은 소설 장길산의 마무리 무대가 되는 곳이다. 소설에서 관군과 싸우던 노비들은 운주사로 가서 와불과 천불천탑을 만드는 노역을 감행한다.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에 미래불인 비로자나불(미륵불)을 주불로 하여 여러 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황석영이 운주사를 장길산의 끝에 배치한 것은 이러한 천불천탑의 개성과 단순함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노비들의 봉기는 결국 천불천탑에서의 노동으로 끝이 나지만 이들이 만든 것은 미래불인 미륵불이다. 미래의 희망은 결국 이들 노비들의 손에서 완성된 것이다. 이를 통해 장길산은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