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ㆍ시위 중 청각기관에 고통을 줄 정도의 과도한 소음을 내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죄 가운데 '폭행'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J(51,여)씨 등 서울 용산5동 철거민대책위원회 주민 3명은 용산구청이 철거민 이주대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5년 9월 9일 오후 1시경 용산구청 정문 앞 노상에서 시위를 하던 중 시위용 방송차량을 타고 구청 안으로 진입했다.
그런 다음 구청 주차장 출입구에 방송차량을 주차해 놓고 구청장과 관련 공무원들에게 확성기로 욕설을 담은 시위방송을 하는 등 5시간 동안 구청의 차량 출입을 막았다.
검찰은 이들의 확성기 시위방송을 폭력으로써 구청의 차량출입을 관리하는 공무원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하고, 모욕했다며 기소했고, 1심인 서울서부지법 형사5단독 김정중 판사는 2006년 12월 J씨 등의 행위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자 J씨 등은 "시위방송이 어떻게 폭행이 될 수 있느냐"며 항소했고, 항소심인 서울서부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박재필 부장판사)는 2007년 4월 "피고인들이 확성기로 시위방송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 폭행과 협박은 인정할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피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과도한 소음은 폭행이 될 수 있다"며 교통정리를 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J씨 등에게 업무방해죄만 인정한 원심 판결을 깨고, 폭행 혐의도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공무집행방해죄는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폭행이라 함은 공무원에 대해 직접적인 유형력의 행사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유형력을 행사하는 행위도 포함한다"고 말했다.
이어 "음향으로 상대방의 청각기관을 직접적으로 자극해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도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민주사회에서 공무원의 직무수행에 대한 시민들의 건전한 비판과 감시는 가능한 한 널리 허용돼야 한다는 점에서 공무원의 직무수행에 대한 비판이나 시정 등을 요구하는 집회시위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상당한 소음이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를 공무집행방해죄에서의 음향으로 인한 폭행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이 의사전달수단으로서 합리적 범위를 넘어서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의도로 음향을 이용했다면 이를 폭행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구체적인 상황에서 공무집행방해죄에서의 음향으로 인한 폭행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음량의 크기나 음의 높이, 음향의 지속시간, 종류, 음향발생 행위자의 의도, 음향발생원과 직무를 집행 중인 공무원과의 거리, 음향발생 당시의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4조 1항은 집회 시위 도중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 기준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인 80데시벨(db)로 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