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9대 왕 숙종은 3차례의 환국정치(경신환국: 남인->서인집권, 기사환국: 서인->남인집권, 갑술옥사: 남인->서인 中 소론집권)를 단행하였고, 본부인 3명(인견, 인현, 인원 왕후)외에 탐미주의자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와의 로멘스를 역사에 남기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영국 판 숙종임금은 누구였을까요? 아마도 지금도 영국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는 헨리 8세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나라의 숙종임금과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공통점은 1. 아름답고 젊은 여인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는 것 2. 현재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그 여인에게 충실했다는 것 역사가 매력적이라면 바로 왕의 로멘스를 은밀히 엿볼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오늘은 헨리 8세와 그의 6명의 부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헨리 8세하면 우선 떠올리게 되는 건 역시나 헨리 8세와 궁녀 엔 볼레인의 드라마틱한 러브 스토리겠지요.
17세기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8세’이후 사극으로, 소설로, 때로는 음악으로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을 매혹시키는 소재가
되었답니다. 또 블랙 사파이어 같이 반짝이는 매혹적인 눈을 가진 궁녀 앤 볼레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국교까지 바꾼 왕,
그리고 둘째부인 앤 볼레인과 다섯째부인 캐서린 하워즈를 사형에 처한 왕.......
마치 그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착각마저 듭니다.
그림은 헨리 8세와 6명의 왕비 (시계방향으로) 클레브스의 앤, 캐더린 하워드, 앤 볼레인, 아라곤의 캐더린, 캐더린 파, 제인시모어
“맙소사! 하나님! 이건 너무 지독하군! 아냐! 저 여인이 그 초상화의 주인공이라니........
나는 싫다! 저 여자는 안 돼! 천만에! 그건 안 돼!”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헤르만 그레이시커 원작 중에서, 49세의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25세의(쯧쯧쯧........왕들이란!!!-ㅅ-;;)
네 번째 부인 독일 클레브스 공국의 앤 공주를 보고 그 추한 외모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대목-
여기서 잠깐!!! 분명 여성 독자들은 이렇게 질문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젊고 아름답고 예쁜 여성만 찾는 헨리 8세! 당신은 그럼 잘 생겼었나요?”
여기서 잠시 헨리 8세의 초상을 보고 지나가죠. 어때요? 확실히 요즘의 미남 혹은 훈남과는 거리가 멉니다.
만능 스포츠맨이었기에 아마도 잦은 사냥과 운동으로 다년간 만들어졌을법한 불룩한 근육질의 두 다리는
제법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의 탄탄한 하체를 연상시키지만........상반신과 얼굴은 다소 비대해 보이는군요.
뭐........16세기 스타일은 남성미를 물씬 강조하는(어깨에 심을 넣거나 퍼프를 만들어 넣음)역삼각형 라인 때문에
상반신이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육덕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그는 사냥, 활쏘기, 승마.......
만능 스포츠 맨이었고, 무도회장에서 가장 빼어나게 춤을 추는 남자였으며, 정치면에서도 그의 아버지 헨리 7세가 닦아놓은
절대군주제를 완성한 군주였습니다. (사실 이점도 우리나라의 숙종임금과 유사한 점인데.......
숙종이 잦은 환국으로 정권을 교체시켜 사대부들의 힘을 억눌렀다면, 헨리 8세는 둘째 부인 앤 볼레인과 결혼하기 위해
국교를 가톨릭->성공회로 바꾸어 가톨릭교회와 수도원의 모든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고 왕권을 신장시켰으니까요.) 자~~이만하면 되었고, 이제는 탐미주의자 헨리 8세의 6명의 아내들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1번째 부인 에스파니아의 아라곤의 캐더린 미모: ★★☆☆☆
헨리 8세의 형이 일찍 죽는 바람에 그는 안전하게 1509년 왕위에 오르게 되지요.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그 당시 영국은 유럽의 강대국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럽 최강국 에스파니아의 덕을 계속 입기 위해서는
헨리 8세가 그의 형의 부인이었던 아라곤의 캐더린과(에스파니아 페르난도왕의 딸)결혼해야 한다고 대신들이 종용하더라는 거죠. “짐이 이래뵈도 영국의 국왕인데.......더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은데.........
하필 늙어빠진 형수와 결혼해야 하는 건 모냐! 항상 병약하여 누워있고 그 파리한 몰골이 잿빛 외투에 푹 쌓여 있을 때는
정말이지.......그리스 신화의 지옥의 신 하데스와 다름없더구나.......” 아무튼 그는 일단 형수였던 아라곤의 캐더린과 탐탁지 않은 결혼합니다.
2번째 부인 까만 눈과 흑단같이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진 여인 앤 볼레인 ->참수형 미모: ★★★★★
우리나라의 장옥정(장희빈)이 있다면 영국에는 앤 볼레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헨리 8세의 첫 부인 아라곤의 캐더린의 시녀였습니다. 영화 ‘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이나 미드 ‘튜더스’를 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앤 볼레인은 완전히 캐더린을 밀치고
자신이 왕비가 될 때까지 헨리 8세의 열정적인 구애를 냉랭히 거절합니다. 역사에 가정이 있다면.......
만일 장옥정처럼 앤 볼레인이 첫 자녀로 딸(그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이 아닌 아들을 잉태했다면.......
그렇다면 숙종이 경종을 낳은 장옥정을 갑술옥사(폐서인 한 인현왕후가 왕비가 되고 정권은 다시금 남인->서인으로 바뀜)전까지
성실히 사랑했던 것처럼 그녀 앤 볼레인도 헨리 8세의 총애를 더 길게 받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제인 시모어(후에 헨리 8세의 세 번째 부인이 됨)가 궁중 연회장에서 아무리 그 가냘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도
헨리 8세의 시선은 자신의 첫 자녀인 왕자의 베넷웃음에 머무르지 않았을까.......이렇게 가정해봅니다. 아무튼 그녀가 딸을 잉태하던 날 헨리 8세는 이렇게 말해요. “앤! 당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하오! 또 다시 딸을 낳으면 영국의 백성들이 나를 비웃고,
캐더린을 쫓아낸 잘못을 따질 거란 말이요! 반드시 아들이어야 하오! 만일 당신이 또 딸을 낳는다면
백성들의 불만을 막을 방도는 오직 하나! 그대를 사형시킬 수밖에” 그러나 운명이란 참 잔인하죠?! 그녀가 두 번째로 아이를 낳았을 때, 아들이었건만 죽어서 태어난 까닭에
용도 폐기된 그녀는 말도 안되는 간통 혐의를 뒤집어쓰고는 1536년 5월 형장의 이슬,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버립니다.
3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 미모: ★★★★☆
아마도 왕비의 시녀들은 당대 가장 빼어난 미인들의 집합소 이었던 것 같아요. 제인 시모어도 앤 볼레인의 시녀였습니다.
어쩌면 앤 볼레인보다도 더 아름다웠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녀에겐 전제군주와 맞짱 뜰 정도의 대범한 매력은
없었던 듯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너무 나약하고........
이미 불혹의 나이가 넘은 헨리 8세에게 처음으로 아들을(에드워드 6세) 안겨준 이 여인은 출산 후유증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게 되지요.
4번째 부인 독일 클레브스 공국의 공주 앤 공주 미모: ★★★☆☆
왕비의 시녀들 중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내를 찾으려 하다 실패한 이 탐미주의자는 이제는 궁녀들에게 싫증이 났던지........
독일 클레브스 공국의 공주 앤을 네 번째 부인으로 맞이합니다. 앤 볼레인과 결혼하기 위한 단순한 사심으로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꾸어 교황에게 파문당한 헨리 8세는 자신의 조국 영국이 가톨릭 국가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위험에 쳐하자
개신교 루터파 왕족인 앤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게 되는 거지요. 영국의 안전을 위한 개신교 국가와의 동맹 즉 개전형적인 정략결혼! 입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동맹국 공주가 예뻐야 할텐데........그 당시 유명한 궁중화가 한스 홀바인을 독일 클레브스로
보내서 앤 공주의 초상화를 그려오게 하지요. 못생긴 공주지만 떡하니 공주 앞에서 실물 그대로 못생기게 그리다가는 능지처참
당할 거 같고.......좋은게 좋은거 아냐?!까짓거! 한스 홀바인은 최대한 아름답게 과장되게 그렸다는군요.......
그 당시 사진이 없잖아요?! 바다 넘어 대륙의 공주 보러 집 비워두고 가기도 그렇고.......더구나 프랑스랑 신성로마제국이 어떻게든 영국을 잡아먹으려 안달 나있는데.......“짐은 그대의 초상화를 믿는다!” 결과는 앞서 설명 드린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독일 공주라 현모양처 형이었지만 문학에도 예술에도 그닥 조애가 깊지 안았나봐요. 그리고 일체의 애교를 찾아보기 힘들었단 점!! 어쩌다 헨리 8세가 “그래도 내 처인데.”하고 보름달 밤에 궁궐의 정원을 걷자고 해도 이 무뚝뚝한 게르만 공주는 묵묵히 걷기만 할 뿐.......애교가 전혀 없었다는군요. 아직도 혈기 왕성한 헨리 8세는 이 매력없는
여인에게 금방 싫증내고 그녀를 공공연히 “플랑드르의 암말”이라며 비웃고 다니다가 6개월 만에 이혼서류를 그녀 코 앞에
내비칩니다. -이혼해 주시오. 이혼하면 특별해택 평생 연금+전망 좋은 대 저택, 영지(편의시설 완비, 수도권과 교통편용이, 도보로
10분안에 다운타운 가능)+왕실 주요 행사 연회에 초대권 동봉- 실용적인 독일 여성답게 앤 공주는 앞서 그의 전처 중 이혼 안 한다!못 한다!고집부리다 목 잘린 앤 볼레인언니를 떠올리며
목숨이나 보전 해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즉시 오케이 합니다. 흡족한 헨리 8세는 그녀가 평생 조용히 소소하게 행복하게
살게 해주었다는군요.
5번째 부인 캐더린 하워드 ->참수형 미모: ★★★★☆
아마도 요부의 정석은 캐더린 하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4명의 아내를 물리고 다시금 돌싱남이 되어 여전히 외롭던 헨리 8세는
외국 공주에게 품었던 엉뚱한 환상을 비로소 버리고... 행복은 먼데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 하고 다시금 궁 안의 여인들을 관찰합니다. 그러던 중 헨리 8세의 눈에 들어온 여인이 있었으니.......그의 네 번째 부인 앤을 모셨던 19세의 캐더린 하워드에게 꽂히게 됩니다. 그녀의 교활한 숙부는 이를 눈치채고 그녀더러 왕의 구애에 응하도록 종용합니다. “네가 왕의 총애를 입어야 우리 가문이
자자손손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단 말이다!” 결국 그녀는 숙부의 매서운 협박을 이기지 못해 20세의 어린 나이에 50세의 헨리 8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나의 어린 아내~ 가시 없는 나의 장미여~ 보석같이 아름다운 그대” 왕은 30살 가까이 어린 아내의 젊음에 푹 빠져 지냅니다. 이제야 내가 홀아비 신세 떨쳐버리고 정착하나보다~~하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아요. 결혼 하고 1년도 안되어 크래머 대주교가 젊은 왕비의 간통을 고발하고....
( 증거 또한 충분했습니다.) 처음엔 믿지 않다가 대신들이 하루가 멀다고 젊은 왕비의 간통 증거를 제시하니까
왕은 자신의 아내를 의심하게 되고 이에 대한 조사를 윤허합니다. 아내의 숱한 간통관련 증거들........ “난~ 그대에게 충실했건만!!!그대를 참수형에 처한다!” 노여운 기색이 역력한 왕의 교지 앞에서 그녀는 앞서 앤 볼레인 언니가
목 잘린 그린타워에서 처형됩니다.
6번째 부인 캐더린 파아 미모: ★★★☆☆
이미 두 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그녀는 헨리 8세의 최후의 부인이 됩니다. 그리고 헨리 8세가 죽고 나서도 훨 오래 살았지요
(그가 죽고 나서도 3번이나 더 결혼을 함.) 그녀와 헨리 8세 사이에선 자녀가 없었던 듯싶고........헨리 8세가 1548년에 죽었으니까.......그녀와 결혼하던 1543년경엔 이미 그의 나이 52세였을테니 이미 노쇠하여 왜! 아들을 낳지 못하느냐! 하고
꾸짖을 힘도 없었겠지요.(16세기 기준으로는 50세를 넘기 어려우니까요) 게다가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로부터
아들 에드워드 6세도 있고........비록 허약해서 걱정되긴 하지만.......헨리 8세가 죽고 나서 그 뒤로도 세 번 결혼했다고 했지요?
그녀와 재혼한 자들 중에는 헨리 8세의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의 남동생이던 토마스 시모어도 있었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메리라는 딸을 낳게 되지요. 그러나 출산 후 후유증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요.
헨리 8세는 생전에 그의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가 묻힌 윈저 성의 성 조지 교회에 자신의 묘지를 미리 준비해두어요.
오직 제인 시모어만이 그에게 그가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아주어 그런지 헨리 8세는 그녀 옆에 영원히 눕고 싶었나봐요
산후 조리를 잘 관리 못해서 일찍 죽어서 그렇지.......그녀가 오래 건강히 살았더라면 헨리 8세에게 가장 이상적인 부인이
되었을 거 같기도 하고.......아무튼 이로서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의 6명의 부인들 중 유일하게 헨리 8세와 함께 묻히는
아내가 되었답니다. 하지만 영국 왕권확립의 완성자는 비운의 여인 헨리 8세의 2째부인 앤 볼레인의 딸 엘리자베스 1세죠!! (그녀에 앞서 헨리 8세의 첫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여왕-혹은 블러드 메리-이 잠시 군림하긴 했지만)
문득 야사로 전해지는, 앤 볼레인이 참수형 전에 헨리에게 했다던 말이 생각나네요. 이혼하여 여왕자리서 내려오면
사형을 면하게 하겠다는 헨리 8세에게 이렇게 앙칼지게 쏘아부쳤다 하네요~~ "우리 딸은 기필코 여왕이 될거예요. 튜더왕가 중 아니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이 될거예요!!당신과는 비교도 안되는!!
그래서 난 여왕으로 당당히 죽을 겁니다!!내 아이를 여왕으로 앉히기 위해!!"
오늘밤은 벨리니와 더불어 19세기 이태리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오페라 안나 볼레나를 들어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