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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고사 출제의도 및 예시답안
<대학측이 밝힌 출제 의도>
고등학교 국어 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견해를 펼칠 수 있는 논제인 "고통과 역경에 처한 인간의 사고와 행동" 을 주제로 하였다. 인간은 때때로 극복하기 어려운 고통과 역경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A 카뮈의 소설 <페스트> 에는 페스트로 인한 재난의 상황에서 고통받는 오랑시 주민들의 사고와 행동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의사 리유 등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서로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그러나 각각 다른 입장과 역할 때문에 누구의 태도가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여기에는 우리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포괄적으로 반영되게 마련이다.
이번에 출제한 논술 문제는 제시문을 통해 이러한 입장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서술한 다음 그 중에서 어느 입장이 자기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설득력 있게 논술할 것을 일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입장들이 서로 양립할 뿐만 아니라 보완될 수도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수험생들 각자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스스로 점검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아상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환경 오염, 자원 고갈, 핵무기의 위협 등으로 인해 점점 확산되는 지구촌 생태 위기 문제를 염두에 둘 때, 인류의 운명을 포괄적으로 진단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이 논제를 끌어내기 위한 제시문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작가 A. 카뮈의 <페스트>에서 가려 뽑았다. 세계 고전으로서 손색이 전혀 없는 <페스트>는 예민한 존재 탐색기의 고등학생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소설이다. 또 고등학생 수준에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논술고사 실시 취지의 하나인 고전 읽기를 통한 인문적 교양 형성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예년과 같이 대표적 명작을 선택하고 그 명작의 중심 화제를 논제화하였다.
고전에서 제시문을 골랐지만 이 작품을 사전에 읽지 않은 수험생일지라도 제시문만 정확히 읽으면 논술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했다. 이는 논술시험의 의의가 고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읽기 능력과 거기에 바탕을 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과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표현 능력을 검증하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특히 제시문을 정확히 읽고 분석하지 않으면, 출제자가 요구하는 깊이 있는 사고를 전개하기 어렵도록 문제를 구성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한편, 채점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논지가 요구하는 내용이면서 합당한 주장인가, 사고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2. 논거가 타당하고 참신한가, 또한 제시문에서 적절히 찾아 썼는가.
3.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의 연결이 논리적인가.
4. 서론, 본론, 결론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5. 정확하고 풍부한 단어, 자연스럽고 적절한 길이의 문장을 구사하고 있는가.
<예시 답안>
새 천년을 맞아 희망적인 미래 기획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전망의 이면에서 제기되는 부정적인 예측도 없지 않다. 환경오염이나 핵무기의 위협 등 위기 증폭 요인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희망찬 미래가 돌연 존재 파멸의 상황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주목된다. 그런 면에서 제시된 '페스트' 사태는 비록 20세기 중반에 제기된 것이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의식을 제공한다.
제시문 (A) 는 페스트 재난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여준다. 이어진 세 제시문에는 이에 대처하는 세 인물의 사고와 행동 양태가 나타난다. (가) 에서 취재차 잠시 들렀던 기자 랑베르는 개인의 가치와 행복을 중시하는 인물로, 이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처하기보다 빨리 탈출하기를 바란다. 이방인인 랑베르와 달리 오랑시의 주민인 신부 파늘루(나)나 의사 리유(다)는 고통스러운 현실 안에서 각각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한다. 그 과정에서 두 인물의 의식과 태도는 대조된다. 파늘루 신부는 구체적인 고통의 현상보다 그 근본적 원인이나 의미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보기에 페스트 사태는 인간에게 내린 처벌의 수단이자 '생명의 원천' 인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한 장치다. 따라서 그는 하느님의 '말씀' 을 준엄하게 전하며 회개와 반성을 촉구한다. 초월주의자의 모습이다. 이에 반해 의사 리유는 구체적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 그는 일련의 죽음의 현상에서 신의 질서가 부조리함을 체험한 인물이다. 신을 믿지 않는 리유는 죽음의 현실에 반항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선택하고 실천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상적이고 초월적인 가치나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고통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다.
위의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입장과 의식으로 고통스러운 위기상황에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느 한 입장에서 다른 입장들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신부나 의사는 각각 그 역할이 다르다. 또 취재를 위해 잠시 들른 외지인 기자와 내부인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 여기서 좀더 전면적인 시선으로 종합적 인식의 지평을 열 수 있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세 인물의 특성은 한 존재 안의 서로 다른 자아의 측면들일 수 있다. 랑베르처럼 본성에 입각해 나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발산하고 싶은 자아도 있고, 리유처럼 남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현실적 자아가 있는가 하면, 파늘루처럼 이상적 가치에 헌신하기 위한 자아도 있다. 이런 다양한 가치들은 각자의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상충될 수도,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아주 어렵고 드문 경우이긴 하겠지만 그것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우리는 '전인적 인격'에 가까이 갈 수 있다.
다른 의식과 태도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정한 종합의 지평이 바람직하다. 이때 타자들과의 상호작용은 물론 내부 자아들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해진다. 나와 남, 주체와 대상, 개인과 집단, 인성과 신성간의 진정한 대화적 인식을 통해 개인적으로 전인적 인격을 도모할 수 있음은 물론 남이나 사회에 헌신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깊고 넓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인생관이다. 깊고 넓게 사고 할 때 전면적 현실인식이 가능해지고 고통과 역경에 대처하는 진정한 행동방식을 알게 된다. 새 천년의 희망찬 구상의 이면에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부정적 징후들로부터 실제로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면적 성찰과 실천을 위한 고통의 인식 여정에 지혜롭게 동참할 필요가 있다.
2000학년도 논술고사 답안에 대한 강평('알바트로스'19호 - 서강대학교)
[답안 1]
우리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우리의 행동에는 물리적이나 사회적인 제약이 뒤따르며 우리는 이러한 제약을 극복해가며 살아간다. 때때로 역경과 고통의 상황에 접하기도 하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는 좀 더 높은 가치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사회나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는 폐쇄된 도시 안에서 페스트 사태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다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일상 생활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기자인 랑베르는 자신은 페스트가 퍼지고 있는 오랑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도시를 빠져 나오고 싶어한다. 이러한 태도는 어느 사회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자신이 처한 문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 상황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며 오히려 문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 문제 상황 아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 소시민적인 태도는 한국 사회에서 독재 정권이나 군부 정권이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이유 중 하나이다. 개인의 안락을 위해 문제 상황을 회피하는 일은 결국 개인이 다시 피해를 입는 결과를 몰고 온다.
그러나 파늘루 신부와 의사인 리유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파늘루 신부의 경우 패스트 사태를 인간의 도덕심이 타락한 결과로 보고 신앙과 믿음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내면적인 반성과 자아성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문제의 핵심을 인간의 마음에서 찾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문제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볼 것을 촉구한다. 우리 사회의 의식 개혁 운동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니부어가 지적했듯이 개인의 윤리성이나 인격이 바로 잡혀 있더라 해도 그 집단의 행동은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다. 또 제도의 개혁 없이 개인의 성찰만 요구한다면 그것은 자기 위안일 뿐 문제 자체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비현실적인 몽상이 될 수 있으며 대중의 눈을 가릴 위험도 있다.
파늘루 신부에 비해 의사인 리유는 매우 행동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당장 앞에 있는 환자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만이 페스트 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빠른 효과를 나타내게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무시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 대신 현재 해결해야 할 문제만 보게 되고 너무 현실적이고 좁은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성급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현대 사회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공동체 안에서 어느 한 문제만 보고 행동한다면 그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요소들을 무시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그 해결에 있어 넓은 사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중한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문제 상황을 극복할 수 없으며 우리의 삶은 정체될 것이다.
[답안 2]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류는 역사 과정 속에서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어 왔다. 그것은 폭정이나 전쟁에 의한 것이기도, 혹은 질병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것에 대한 대응방식이다. 대응방식이 어떠한가는 극복의 추진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고 나아가 역사상에서 현상유지냐 진보냐라는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까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기자, 신부, 의사는 이러한 역경 현실에 대해 다르게 대응하는 네 가지 군상을 각각 대표한다. 기자는 개인의 행복을 공익보다 우선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닌 자이다. 반면, 신부는 기자처럼 개인적 이득을 꾀하지는 않으나, 그 대응수단을 종교로 삼고 있다. 신이라는 절대 원리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여긴다. 이들에 비하여 의사 리유는 공익을 우선시하고, 기도와 같은 소극적 방식 대신, 직접 일선에 뛰어드는 적극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사회는 개인에게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주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책임 의식을 강요한다. 이런 점에서 기자의 행동은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 전체의 목적 추구가 시급할 때, 그 질서에 포함되기를 거부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위기에 개인의 행복을 위해 회피의 길을 택하는 예외적 인간이 많아질 경우, 사회 수준에서 역경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사익 추구에 바빴던 친일파들의 행각이 그 예라 하겠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할 때 그 대응 자세도 관건이 된다. 종교에 의존하는 신부의 태도는 이성적으로 볼 때, 적극적이지 못하며 그저 세월에 맡겨버리는 자세로 치부될 수 있다.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종교에 맹신하는 것은 사태의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 큰 병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의 도움을 거부하고 종교적 방식에만 의존하려다가 최악의 사태에까지 당도했던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의사 리유는 다분히 공리적이고도 능동적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처음에는 막연히 선택했으나, 점점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페스트를 과학적 이성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치료하는 이유가 사명감이 아닌, 환자가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적 행위라는 것은 문제다. 내면적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또한 의사의 노력이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도 문제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시민에게 호소하고 시민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적 성격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질의 중요성은 과거 실학자들의 현실적 대안들이 적용되지 못하고 '발상'에만 그쳤다는 점에서 더욱 부각된다.
결국 역사 속에서 역경을 극복하는 문제는 사익과 공익, 소극적 방관과 적극적 응전, 그리고 종교와 이성이라는 대조 변수들간에서 평형점을 찾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요소로의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종교와 같은 것도 맹신의 상황에서 문제이지, 오히려 그것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심리적 기제가 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개인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종교와 같은 공동의 기치 아래서 능동적인 대처를 한다면 역경 극복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은 여기서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강 평]
서강대학교 2000학년도 입시 논술고사 문제는 카뮈의 <페스트>에서 뽑은 내용을 제시하고 고통과 역경의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대처하는 방식을 각각 서술하고 어떤 태도가 바람직한가 하는 것을 자신의 가치관에 비추어 논술하라는 것이었다. 논술 주제는 대체로 평이하고 제시문 속의 인물들이 보인 태도도 분명하기 때문에 논술문을 작성하기가 비교적 쉬웠으리라 짐작한다.
논술문을 작성할 때 학생들은 두 가지 점을 무엇보다 유의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주제가 평이하고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이 선명하게 구별되기 때문에 매우 상투적인 논술문이 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상황과 인물에 대한 다면적인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문제를 제시할 때 '자기 자신의 가치관에 비추어' 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있는 사실을 단순히 그리는 데 그치지 말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평가해 보라는 요구이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과 태도가 바람직한가 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위에 제시된 답안은 출제 의도를 비교적 잘 이해하고 논술한 답안이다. [답안 1]은 제시문 속의 세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먼저 간략하게 서술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지닌 장단점을 논의한 다음 역경에 처한 사람이 가져야 기본적인 가치관으로 사회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역경의 양면성에 대한 고려, 미래 방향에 대한 전망들을 들고 있다. [답안 2]도 [답안 1]과 마찬가지로 제시문 가운데 나타나는 세 인물의 태도를 서술한 다음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끝으로 역경을 극복하는 데는 사익과 공익, 소극적 방관과 적극적 응전, 종교와 이성의 문제가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들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으로 글을 끝맺고 있다. 두 답안 모두 출제자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논술문을 쓸 때 흔히 범하는 오류가 이 답안에도 나타난다. 먼저 적절하지 못한 실례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답안 2]를 보면 기자 랑베르의 생각과 행동을 친일파와 관련시키고 예수회 신부 파늘루를 실학자들과 관련시켰다. 이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해서 제시하는 실례는 상황과 문맥, 논지 전개에 적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구체적인 실례를 들지 않고 논리 자체를 탄탄하게 전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지나친 강조나 과장을 하는 것도 학생들의 답안에서 흔히 보는 오류 가운데 하나이다. [답안 1]의 경우 의사 리유는 현재의 삶에서 투쟁하려고 했기 때문에 역경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진리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곧장 이어서 "현재의 삶에서 투쟁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진취적이지 못하고 사회는 삭막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지나친 강조라고 볼 수 있다. 지나친 강조나 과장은 오히려 설득력을 잃는다. 그러므로 논리적 비약이 없도록 앞에서 한 논의로부터 논리적으로 뒤따라 오는 귀결을 서술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글이 될 것이다.
끝으로 두 가지 더 지적해 두자. 첫째, 위 두 답안을 어느 정도 잘 된 답안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제시문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제시문을 완전히 무시하고 문제에 주어진 주제(이 경우에는 '고통과 역경을 대처하는 방식')만을 가지고 논술한 경우가 있다. 이것은 출제 의도를 벗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출제 방침 가운데 고전을 강조하는 까닭은 충실한 글 읽기를 바탕으로 글 쓰기를 하자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제목을 가지고 잘 쓴 글이라도 제시문에 대한 언급과 논의가 없을 경우 점수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둘째, 위에 제시된 답안은 글의 짜임새 면에서 성공한 글이다. [답안 1]은 역경에 처한 세 인물의 상황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상황과 관련해서 본론을 구체적으로 전개하고 있고, [답안 2]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한 토인비의 말을 빌어 서론을 전개하여 마지막 결론으로 유도하고 있다. 좋은 논술문은 역시 서론, 본론, 결론, 또는 기, 승, 전, 결이 짜임새 있게 구성된 글이다. 그 외, 평가 기준으로 제시된 항목들, 예컨대 논지가 요구하는 내용에 합당한가, 사고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논거가 타당하고 참신한가,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의 연결이 논리적인가, 정확하고 풍부한 단어, 자연스럽고 적절한 길이의 문장을 구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을 유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철학과 교수 강영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