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8편 1~50절
[서론] 사슬에 묶인 죄인, 그리고 해방의 소식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지만, 동시에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치명적인 결박을 경험합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J.J. Rousseau)는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의 첫 문장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던졌습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주체적 존재라 믿지만, 실제로는 실존적 한계와 죄, 그리고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슬에 매여 있음을 일깨우는 철학적 통찰입니다.
문학 역사상 이 인간의 실존적 절망과 초월적 구원의 신비를 가장 완벽하게 시각화한 작품이 바로 빅토르 위고의 명작《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입니다.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수감되며,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죄수 번호 24601'이라는 실존적 사슬(사망의 줄)에 매여 살았습니다. 그는 세상과 인간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고,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는 절망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울의 집요한 추적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받은 후 드린 찬가입니다. 다윗 역시 장발장처럼 광야의 동굴과 사망의 그늘 밑에서 존재의 한계를 절감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이 시편이 담고 있는 철학적 사유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를 조명하며,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삶에 적용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사망의 줄에 묶인 실존적 한계를 직면하고 부르짖으라
본문 4절 "사망의 줄(헤벨)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다윗은 자신이 처했던 고난을 '헤벨(חֶבֶל)', 즉 짐승을 얽어매는 '사망의 줄'이자 극심한 산통의 고통으로 묘사합니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넘어서거나 피할 수 없는 수렁을 '한계상황(Grenzsituationen)'이라 불렀습니다. 죽음, 고통, 죄책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다윗이 겪은 '헤벨'은 바로 이 실존적 한계상황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구원(Self-salvation)을 이룰 수 없다는 절망적 인식에 도달할 때 비로소 초월자를 향해 눈을 돌리게 됩니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낙인찍힌 죄수 번호 아래 묶여 있었듯, 인간은 죄와 사망이라는 '헤벨'에 매여 있습니다. 신약적 관점에서 이 '헤벨'은 인간의 힘으로는 해방될 수 없는 죄의 권세와 영적 죽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계상황 앞에서 자포자기하지 않고,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며 위를 향해 부르짖었습니다(6절).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을 죄어오는 '헤벨(사망의 줄)'은 무엇입니까? 재정의 압박, 질병의 공포, 끊지 못하는 습관적 죄, 혹은 깊은 우울입니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애쓰는 자만을 내려놓으십시오. 인간의 한계상황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절망의 사슬을 직면하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부르짖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에 인격적으로 응답히라.
본문 50절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헤세드)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전반부에서 다윗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부르짖음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고 임재하시어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의 원인은 다윗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셨기 때문(19절)"입니다. 시편은 이 조건 없는 언약적 사랑을 '헤세드(חֶסֶד)'라고 고백합니다.
프랑스의 현상학자 장-뤽 마리옹(Jean-Luc Marion)은 구원과 은혜를 인간의 조건이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자발적 증여(Givenness)'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인식과 공로의 지평을 완전히 넘어선 타자(Absolute Other)의 일방적인 사랑이 인간 존재를 비로소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통찰입니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쳤음에도 밀리에르 주교는 "내가 이 은촛대도 주었다"며 그를 감싸 안았습니다. 조건 없는 이 '증여'와 사랑이 장발장의 증오를 부수어 버렸습니다. 신약에서 바울은 시편 18편 49절을 인용하며(롬 15:9), 이 '헤세드'가 온 열방과 이방인에게 확장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인간의 자격을 묻지 않는 완벽한 '헤세드'입니다. 1절에서 다윗이 고백한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의 '사랑'은 히브리어 '라함(רָחַם)'입니다. 이는 자궁(Rehem)에서 비롯된 단어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본능적이고 깊은 전인격적 헌신의 사랑을 뜻합니다.
주교의 '헤세드'를 경험한 장발장이 정체를 숨긴 채 평생 이웃을 섬기는 성자 같은 삶으로 응답했듯, 십자가의 헤세드를 입은 성도는 세상 속에서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라함)하나이다"라는 고백이 관념적 지식을 넘어, 내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인격적 결단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완전함으로 세상에서 승리하라
본문 30, 32절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타밈)... 나의 길을 완전하게(타밈) 하시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다윗은 동굴 속에 숨어있는 피동적 피해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놋 활을 꺾는 힘을 주셔서 원수를 추격하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쓰인 '타밈(תָּמִים)'은 도덕적 무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전하고 결점 없는 단일한 마음'과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의미합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는 그의 저서에서 "정결함이란 단 하나의 마음을 품는 것(Purity of Heart is to Will One Thing)"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절대자만을 향해 단순하고 순전하게 서는 상태, 그것이 곧 시편이 말하는 '타밈'의 철학적 본질입니다.
《레 미제라블》의 결말에서 장발장은 자신을 평생 추적하던 자베르 경감을 죽일 기회가 왔음에도 그를 살려줍니다. 세상의 복수와 증오라는 법을 넘어,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에서 나오는 '완전한 은혜(타밈)'를 실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 권세를 이기심으로 온전한 승리(타밈)를 완성하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패배자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타락한 가치관과 폭력(하마스)에 맞서, 오직 주님만을 향한 순전한 마음(타밈)을 무기 삼아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영적 승리를 거두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결론] 영원한 반석 위에서 드리는 찬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ㆍ우리는 한때 죄와 한계상황이라는 사망의 줄(헤벨, חֶבֶל)에 매여 있었던 영적 장발장들이었습니다.
ㆍ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헤세드, חֶסֶד)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그 은혜를 입은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라함, רָחַם)을 고백해야 합니다.
ㆍ그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순전한 마음(타밈, תָּמִים)으로 세상의 죄악을 이기고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다윗의 고백이 여러분의 삶에 당당한 선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2절)
죽음의 사슬을 끊으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날마다 반석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과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