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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기상. 까다로운 입국절차를 다시 밟다. 911이후 더 까다로운 미국의 입국 절차. '매사는 튼튼이라' 자국의 안보를 위해 한다는데 누가 말리나. 그게 귀찮고 싫으면 안 가면 되는데. 그래도 모두 투덜댄다.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약 5시간 거리이다. 미국의 스튜디어스는 미인 여자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동양인도 있고, 피부가 검은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중늙은이도 일한다. 우리는 모두 젊고 이쁜 여자들만 뽑는데 말이다.
우리를 맞이하는 가이드는 한국 남자 이준, 일 주간 우리를 태워 줄 56인승 버스 운전 기사는 건장한 백인 노총각이다. 체중 180이 넘는 그는 보기엔 비만에다 미련해 보이지만 성실하고 친절하다. 내리 때마다 손을 잡아주는 것은 친절인지 취미인지 알송달송하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도 가장 잘 살고 힘있는 주. 세계 제 5위에 해당하는 국민 소득을 가진 주로서, 인구는 우리 나라보다 적은데 면적은 4.8배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 유동인구를 포함하면 100만이 넘는 도시이나
우리 눈에는 그리 웅장힌 도시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고층 아프트가 밀집되어 있지 않고 숲속에 있는 주택들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리라.
항구 주변의 산에 숲이 우거져 있지 않아 볼품이 없다.(1년에 겨울 세철만 비가 오는 기후와 토질 때뮨인 것 같다.).
제일 먼저 39번 선창가에서 샌프란시스코의 만을 따라 베이 크루즈.(20$ 옵션). 만을 한 바퀴 돌면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선장의 안내방송을 들으니 답답하고 간간이 뿌리는 비와 바람이 추위를 느끼게 한다. 1936년에 만든 베이브리찌와 37년에 만든 금문교를 지나 미국 최악질 죄수를 가두었던(1935-1963) 감옥섬을 돌아 부두로 돌아오니 팔자 좋은 물개들 수십마리가 나무 평상에 누워 있다. 미국인들은 해구신도 모르는지 아무도 그들을 해치지 않는 모양이다.
그 다음 찾은 곳은 place fine art. 1915년에 파나마 박람회가 열린 곳이다. 지금은 과학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당시 만든 정원은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앞쪽에 있는 호수에 비친 고대 유럽풍의 벽은 얼마나 멋이 있는지. 이 곳은 신혼부부들의 사진 촬영장으로 유명하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면사포를 쓴 이쁜 신부와 검은 예복을 입은 신랑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이름 모르는 신랑 신부여!.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Gdlden Gate Bridge).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반도를 있는 1280m의 이 다리는 지금부터 67년전에 독일인 J.B 스트라우스에 의해 만들어진 다리로 선박 통행이 가능하고,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세계 2위의 견고한 다리이다. (1위는 뉴욕에).
이 다리를 놓을 때 빌린 은행 돈은 지금부터 9년전에 모두 갚고 지금 받는 통행세로, 매년 10%씩 철근을 교체하고 페인트를 칠하여 10년 후엔 완전한 새 다리로 만든다고 하며, 남은 돈으로는 가난한 서민들의 교통비에 충당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번 미국인들의 합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밤엔 비가 오는대도 보물섬으로 가서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을 구경하다. 넉넉한 캘리포니아주에도 하와니주와 같이 밤에 화려한 네온사인을 켜지 못하도록 한다니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밤이 늦은 시간에 100리나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 양목사님 내외가 호텔로 찾아오셨다. 몇년만에 만나 회포를 풀다. 퇴임 후에 꼭 오라던 그의 초청을 마다하고 이렇게 불쑥 나 혼자서 찾은 데에 대한 원망을 듣고는 다음에 내외가 다시 온다는 언약을 한다.
서로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는 목사님의 기도를 끝으로 친구 내외분을 돌려 보내고 방으로 들어오니 마음이 한없이 허허롭다.
제5일 ( 2월 21일) ㅡ 요세미티국립공원, 캘리포니아 농원지대
아침6시 기상. 오늘부터는 매일 짐을 싸야하는 집시생활이 시작된다.
이 주의 우기는 겨울인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간이고, 그 나머지 아홉달은 건기에 속해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에 비가 잦고 그리 춥지 않으므로 산과 들에 풀들이 새파랗게 자라고 있다. 그 대신 여름엔 풀들이 거의 말라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한다.
어제 밤에 비가 조금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산뜻한 기운이 돈다. 이 나라엔 까치가 흉조이고 까마귀가 길조란다. 새도 나라에 따라 대접이 다르나 보다.
샌프란시스코는 도로에 옛날 궤도 전차가 지금도 운행되고 있다. 우리 나라엔 새것이 나오면 헌것은 모두 버리는데.... 전철은 지하 3층까지 각각 운행되고 있으며, 시내버스는 새볏 3시까지 운행한다고.
시경계를 벗어나 한참 달리니 녹색의 초원이 시작된다. 초원에는 소들이 방목된 상태로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우리 안에 갇혀 사육되고 잇는 우리 한우 생각이 난다. 저런 환경에서 자란 소의 고기 중에 1등급 고기는 미국군인에게 공급하고, 2등급은 일반 국민이 먹고, 3등급은 수출 4등급은 공업용으로 쓴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군인들이 대접을 받는다고 하는데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우리 군인들은 어떤 고기를 먹고 있을까.
초원의 언덕엔 수없이 많은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석유가 많이 나는 나라에서도 저렇게 풍력 발전소가 많은데 우리는 언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초원이 지나니 끝없이 펼쳐지는 과수원 농장이다. 복숭아꽃, 자두꽃, 오렌지꽃이 피고 있다. 그 옆에는 오렌지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고, 포도는 아직도 잠을 자고 있다.
기후가 따뜻하니 같은 과일도 꽃이 피는데 한쪽에선 따기도 하는가 보다. 도로 양쪽과 가운데에 유도화가 피어 있다. 유도화의 독성이 두더지의 도로 파괴를 막고 여름엔 하루살이가 차창에 붙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남부 지방에도 가능할 것 같다.
어떤 포도밭에는 석유 시추기가 설치되어 석유를 퍼 올리고 있다. 하나님이 석유를 사막에만 묻어 놓은 줄 알았더니 이렇게 기름진 포도밭에도 석유를 퍼낼수 있게 하다니 얼마나 곱배기 축복인가!
야외식당에서 된장국에 도시락을 먹으니 그것도 제 맛이다. 여기 미국 한복판에도 한국식 도시락을 먹다니...
점심 후에 한참 달리니 산악지대가 시작된다. 좁은 산 사이에 도로가 나 있고 그 사이에 계곡물이 흐른다. 여기가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진입로이다.
처음에는 시원찮은 공원 같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큰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물도 맑게 흐른다. 이 내를 멜시비강이라 한다.(그리 크지 않은 계곡물이 흐르는 내인데 왜 강이라 부르는지).
이 공원은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미국의 금강산이라 할만큼 아름다운 공원이다. 소나무류와 전나무류의 나무들이 울창하다. 가는 길 옆에는 작은 폭포들이 두개나 있다.
세포래아나무라고 하는 이 전나무는 3000년이나 사는 최장수 나무라고 한다. 이 공원에서는 일체의 상행위를 못하게 하므로 노점상이나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허가를 받은 숙소는 더러 있다. 지저분한 우리 국립공원과 바닷가는 언제나 정화되려나...
이 산에는 사슴과 붉은곰이 살고 있으며, 고사리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올라가는 도중에 멋진 바위와 울창한 숲이 우리를 반긴다. 그 절정은 세계 최대의 바위인 엘캐피탄 폭포와 요세미티 폭포(Profile of a water fall) 이다. 웅장한 엘캐피탄 바위는 높이가 1000m이고, 그 옆에는 면사포폭포가 매혹적인 물줄기를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있다.
요세미티폭포는 그 높이가 무려 760m인데 상하 두개의 폭포로 구분되어 있다. 그 중간에 물이 쉬어가는 바위 속의 소가 있는 모양이다. 요란한 폭포 소리에 모두들 와아! 하고 탄성을 울린다. 이 폭포를 보면서 우리 나라의 여러 폭포를 생각하면 아이들 장난감 같기도 하다.
폭포 아래 숲에 있는 소나무와 전나무의 키가 30~40m나 되는 것 같다. 다 같은 나무인데 우리 나라 나무는 키가 작은 우리를 닮고 이 곳의 나무는 키 큰 미국인을 닮은 것인가.
물론 토질과 기후와 씨앗이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왜소한 우리 나라 나무가 아쉽게 생각된다.
내려 올 때는 쌍둥이 바위와 차이너스터널을 지나는 일방통행 길이다. 이 공원은 "들어갈 때 비웃고 나갈 때 활짝 웃는다".는 말이 있단다. 조금 전에 쓴 내 마음을 족집개로 알아낸 말 같다.
내려오는 산에는 올라갈 때의 산보다 눈이 더 많이 쌓여 있다. 진눈깨비가 내린다. 눈이 많이 올 때면 멀리서 온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려야만 하는데 우리는 하와이에서부터 비와 눈을 피해 다닌다. 정말 다행이다.
내려오는 산이 산불로 크게 훼손되어 있다. 며칠 동안 진압을 못했던 모양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도 산불을 내는 얌체가 있고, 그 좋은 장비를 가지고도 번져가는 산불을 끄지 못하는 것 같다.
어두운 오후 6시경에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프레즈노의 래드소우호텔에서 여장을 풀다.
제 6일 ( 2월 22일) ㅡ 캘리포니아 포도밭 농장지대.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 사막지대. 라스베가스 야경 및 쥬빌리쇼.
비가 오다 그친 들판에 핀 유채꽃이 유난히 샛노랗게 보인다. 복숭아과수원에는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고, 자두꽃이 핀 과수원도 보인다. 한국에는 아직도 복사꽃을 볼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여긴 겨울의 끝자락에 벌써 피고 있다.
포도밭에는 아직도 꽃이 필 때가 아닌지 포도줄기가 나무색 그대로 보인다. 포도밭가에 석유시추기가 보이는데 그 시추기를 발명한 사람이 한국인 홍박사라 시추기 이름도 Hong's Plpe라고 한다.
칼리포니아 정부에서 권장하는 주요 농산물은, 오렌지, 포도 , 쌀 ,아몬드, 마초(건초)이다. 오렌지와 아몬드, 건초는 우리와 크게 상관이 없으나 가장 문제 되는 것이 쌀이다. 이 곳에서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쌀을 생산하여 수출하기 위해 종자 개량을 해 놓았다고 한다.
만약에 살 개방을 하면 우리 시장에는 4/1밖에 안되는 싼 값으로 팔리는 캘리포니아쌀이 판을 칠 것 아닌지 걱정이 된다. 지금 농민들이 붉은 띠를 두르고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수출하면서 농산물 수입을 어떻게 반대할 수가 있는가? 결국은 개방을 해야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쌀 정책을 수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아몬드과수원을 지나 한참을 가니 푸른 초원의 구릉지대가 나온다. 산에는 수없이 많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어제도 많이 보이더니 오늘은 그 보다도 더 많은 것 같다. 석유와 석탄이 풍부한 미국에서도 환경 오염 걱정이 없는 풍력발전을 하고 있으니 울도 빨리 이 기술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울릉도나 제주도를 비롯한 섬 지방이나 바닷가에 많은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고개를 넘어서니 사막지대이다. 거기서부터 라스베가스까지 장장 몇 시간을 달리는 광활한 땅이 모두 사막지대인 것이다. 그런데, 이 곳의 사막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래만 있는 그런 사막이 아니다.
황토가 섞인 땅에 돌도 있고 바위산도 있고 산에는 물이 조금씩 흐르는 계곡도 있고, 작은 내와 큰 강이 있으며, 물이 고이는 늪지대도 있다. 어떤 곳에는 이름 모를 잡초만 자라고, 어떤 곳에는 잡초와 유까와 선인장이 자라는 곳도 있으며, 도 어떤 산지대에는 키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사막 가운데를 달리는 고속도로에는 짐을 실은 화물자동차가 줄을 이어 달리고, 한 기관차에 100량 이상 달고 달리는 대륙간 화물열차도 자주 눈에 뜨인다.
미국이 대단한 나라인 것을 여기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 비행기들이 많이 보이는데, 공항이 아니고 중고비행기 매매장이란다. 자가용 비행기와 여객기 수가 많은 미국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활한 사막을 달리고 있는데 멀리 무리 보인다. 모두들 강이나 내가 곧 우리 눈 앞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는 데 그것은 점점 더 멀어지더니 없어져 버린다. 신기루라고 하는 걸 체험한 것이다. 라스베가스에 올 때까지 여러번 신기루를 만났다.
사막지대에 가끔 작은 마을이 보인다. 저소득층의 노인들이 습도가 낮은 이 곳에 사는 것이 허리나 다리가 아픈 질병 치료에 좋아서 이 곳을 찾아 온다고 한다. 그들도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살아가는데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 정부에서 장례를 치른다고 한다.
점심 식사 후에는 유령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칼라코 은광촌'으로 갔다. 이 곳은 18881년에서 1907년까지 은을 캐던 광산인데, 채산성이 낮아 폐광이 된 것을 1951년 Walter K nott씨가 복구하여 기증한 것이다.
이곳에는 은을 채광하던 당시의 광산과 집들과 시설물과 가게들이 모두 보존되어 있고, 운반차와 레일도 타 볼수가 있다. 일종의 민속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오후 4시 10분 라스베가스에 도착하여, 카지노장을 돌아보다. 밖으로 나와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기념촬영.
네온사인이 화려한 모습을 들어내는 라스베가스 한 복판 상가에 '코리언'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에 '쥬빌리 쇼'와 라스베가스 야경을 옵션으로 보다.
쥬벨리쇼 공연장의 조명을 우리 나라의 LG 전자에서 거액의 경비 일체를 무상으로 설치하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 미국, 아니 세계적인 유명 공연장에 우리 나라의 기업이 자체 기술로 그런 시설을 해 낸 것도 놀랍고, 공연 마지막 막을 내릴 때에 잠깐 'LG' 상표와 생산되는 전자제품 그림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그렇게 큰 자본을 투자하는 배짱과 경영 수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상업적인 성공이 있기를 ! 9988 LG!
제 7일 (2월 23일) ㅡ 그래드캐년 국립공원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차에 오른다. 오늘도 역시 가방을 챙겨 버스에 싣고 하루살이 관광 길에 나선다. 이번 관광 중 가장 백미가 되는 그랜드캐년으로 가는 6시간이나 걸리는 긴 여정은 주로 사막을 통과하는 일일 것 같다.
어제 밤 우리가 머문 화려한 환락과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도 사막 가운데 세워진 도시이다. 어느 마피아 부두목이 그의 애인인 여배우 프라밍고를 위해 건축한 호텔에 도박장을 개설한 것이 이 도시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가이드에게 들었다.
지금은 이 도시가 매우 큰 도시로 발전하여 사막 속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숲도 많고 쾌적한 도시로 보인다.
한참 만에 시내를 벗어나니 역시 어제와 같은 광활한 사막지대의 연속이다. 어젯밤에 비가 많이 왔는지 여기저기 물이 고인 곳도 보이고 멀리 보이는 산에서는 폭포수 같이 흘러내리는 물도 보인다. 지금도 간간이 비가 내린다.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간간이 산이 기까와 질 때도 있으나 좌우에 산이 보이지 않는 그런 광활한 사막지대를 이틀 동안 다니다 보니 오밀조밀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나라의 자연이 그립다.
지나가는 시막지대에는 풀이나 나무도 없는 들판과 작은 덤불나무가 자라는 곳과 바위산과 조금 더 큰 나무가 자라는 산 들이 반복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사막 가운데 6차선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와 양편에는 충분한 공간을 미리 확보해 놓고 있다. 100년을 내다보는 미국인의 비젼이 여기에도 보인다.
사막지대에도 가끔 괜찮은 마을이 보인다. 주위가 모두 사막인데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가이드에게 물으면 햄버그 먹고 산다고).
가끔 양과 말과 소를 방목하는 곳도 보인다. 충분한 목초도 없어 보이는데.
오랜 시간 달리는 도로 주변에 야생 동물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날짐승도 거의 보이지 않아 식물만 살고 동물은 없는 사막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로르 달리는 자동차는 거의 화물을 실은 대형차이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철도에는 100량이 훨씬 넘어보이는 화물 기차들이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콜로라도 강을 건너니 아리조나주이다. 물없는 사막이라는 뜻을 가진 이 아라조나주는 인도언들이 미지막으로 항쟁한 지역이라고 한다. 최후의 항쟁에서 패배한 인디언들, 지금은 일정한 지역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인디언들의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나아가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가고 있으므로 순수한 인디언 종족은 갈 수록 주어들 것이라고 한다.
오후 1시가 지나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미국은 하도 넓은 지역이라 기상의 변화가 잦다. 매일 비가 내리고 눈도 오는 지역을 지난다. 눈이 많이 내리면 그랜드캐년 관광도 하기가 어렵게 된다.
시간을 재촉하여 도착하니 눈이 그친다. 오후 2시경에 도착했으니 무려 6시간 반 동안 사막지대를 달려온 셈이다.
그랜드캐년은 미국의 보물 1호이자, 사람이 죽기 전에 꼭 가 봐야할 50곳 중에 1번인 곳이다.
협곡이 바라보이는 전망대(Mother Pt)에 섰을 때 모두가 한 소리로 와아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면적 4930km2 . 1919년에 국립공원지정. 콜로라도강이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잘러 침식을 하여 만 들어진 유년곡(幼年谷)으로 협곡의 광대함과 웅장함, 다양한 모양과 색조는 세계제 1이다.
지층은 붉은색을 바탕으로 보라색, 녹색, 분홍색, 회색, 암갈색으로 다채롭게 변하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주위에는 5개 종족의 인디언 보호구가 있다."(백과사전).
파아란 하늘과 뭉게구름, 갖가지 신기한 모양의 융기부분과 깎아지른듯한 벽 사이의 협곡과 표현하기 어려운 표면의 색깔 . 그저 입을 벌리고 감탄할 뿐이다. 과연 세계 제 1의 경관이다.
하나님께서 미국민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인 이 그랜드캐년을 죽기 전에 보게 된 행운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같이 보지 못하는 내자를 위해 대형 액자 하나를 샀다.
장엄하고 신기한 협곡과 그 위를 흐르는 구름과 파아란 하늘과 푸른 소나무 곁에서 협곡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 우리가 서로 어우러져 자연스러워 보인다.
뉴우요크에서 온 젊은 여인이 말을 걸어 와 짧은 영어로 대화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좀 더 영어를 능숙하게 했으면 재미있는 추억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전시관을 둘러본 다음, Max 영화관에서 그랜드캐년 영화(옵션)를 본 다음 4시간 동안 어두워진 사막길을 달려 라플린 플라밍고 호텔로 돌아오다.
제 8 일 ( 2월 24일) ㅡ 모하비사막 풍차지대.로스안젤레스 (할리우드 거리. 유니버샬 스튜디오).코리아타운.
새벽 3시10분 기상. 5시 10분에 호텔을 나와 버스를 타고 캄캄한 사막길을 달리다. 보름달 같이 둥근 달 (어제가 한국의 정월대보름)을 보고 호텔에 들어갔는데 새벽에 나오니 그 보름달이 우리를 반긴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밖이 훤해 온다.
6시 18분 사막에 해가 뜬다. 바스토우에서 아침 식사. 버스는 아리조나주를 지나 네바다주를 거쳐 캘리포니아 로스안젤레스로 향한다.
어제 본 사막이나 오늘 대하는 사막이나 그 풍경은 거의 같다. 낮은 주택이 점점 많아지더니 드디어 LA시내로 들어 간다. LA는 인구 1300만의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로, 우리교민이 120만 이나 모여 살고 있는 도시이다.
시내에 푸른 잔디밭 언덕에 공동묘지가 있다. 역시 봉분이 없이 작은 비석 앞에 조화들이 놓여 잇는 그런 모습이다. 좁은 국토를 더 좁혀가는 우리의 묘지도 하루 빨리 바꾸어져야 하는데, 우리 세대들도 옛 관습을 버리기를 망서린다.
할리우드 거리에 내려 면세점에 들렸다가 우리 교민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식사. 거리에서 기념촬영하는데 이상하게 분장한 이쁜 아가씨가 이상한 포즈로 같이 사진을 찍고는 팁을 달랜다.
가는데 마다 팁이다.
오후에 Universal Studio로 이동. 오픈 버스를 타고 영화 촬영을 위해 설치된 각종 시설과 소품들을 보고, 실제 상황을 연출하는 모습을 체험하다. 미국 영화 중 많은 작품을 촬영하는 이 곳에는 시대에 따른 각종 건물과 거리를 만들어 놓고, 부서진 비행기, 자동차, 마차 등 탈것과 지금 구하기 어려운 옛 유물 모형들도 수없이 많다.
어지럽고 혼란한 맥스영화와 같은 것을 보여주는 세 곳을 관람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Water World에서 아이들 만화같은 해적들의 활동 실연을 본 다음 , 우리 교민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코리어타운으로 이동하여 기념품 쇼핑을 하다. 올림픽 상가에 있는 '비원' 한식뷔페식당에서 미주여행 최후의 만찬을 나누다.
제 8일 ( 2월 25일 ) ㅡ 태평양을 건너서 귀국.
아침 6시 기상. 마지막 묵은 크라운 호텔은 공항 바로 옆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9시 15분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로 가다. LA에서 바로 귀국하면 좋을텐데 다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서 가니 불편하다. 오후 1시 출발한 비행기는 바로 태평양을 건너지 않고 캐나다 해안을 따라 북상한 다음 베링해를 넘어 시베리아로 간다. 날짜변경선을 넘으니 자동으로 2월 26일이 된다.
캄자카반도 위를 나를 때에 고도가 낮아져 육지가 보인다.온통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캄자카 반도. 그래도 눈이 옅어 푸르게 보이는 곳이 울창한 삼림지대 같다.
꽤 오래 전 일이지만 우리 나라 여객기가 이 부근에서 소련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비행기와 승객들이 산화한 일이 기억 나, 새삼스레 소름이 끼치고 분노가 인다. 무고한 민간들을 왜 공격했을까? 미스테리이다. 그래서 그 소련이 망했을까.
설마 여기서 여행기가 끝난것 아니시겠죠?
가보지 않고도 같이 느낄 수 있는 글귀에 기대를 겁니다.
첫댓글 선생님 정말 감사드려요.....많은걸 알게 해주셔서.꼭 제가 선생님과 같이 여행한 기분인듯 하네여~~~잘 읽고 갑니다,(꾸벅)
선생님 감사 합니다.자세히 너무 잘 읽고 갑니다 훗날 혹 여행가면 아마 선생님 여행기를 꼭 떠올리게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