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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발 걷고 한번 절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란 것이 있다.
약 7개월간 2천1백 km를 지극 정성으로 오체투지로 절하며 티벳 조캉사원 앞에 도착하면
다시 부처님께 10만배를 한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간절하게 만드는 것일까?
불경,성경,사서삼경 그 외 수많은 주옥같은 경전들과 인생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화두(話頭)
그 속에는 모두가 사람에 관한 것이기게 도(道)의 끝은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생명이 살고,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재만 남고,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만 남는다.
어떤이는 우스게 소리로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쓰레기만 남는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대구 옥포까지 가야 하니 낙동강 자전거길에서 발걸음은 무겁고 많이 지칠듯하다.
대교 아래서 잠시 잠을 청하니 덜컹덜컹 머릿속으로 차가 지나 다니고
겨우 잠들었나 싶을 때 다시 일어나 앉으니 두 다리는 무겁고 가벼운 신발보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보따리 정리한다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분기되어 내려온 산줄기가 또다시 김천시 수도산에서 다시 2차 분기되어 온 큰 바위 얼굴 금오산이
지척이고 그러한 산은 물을 낳게 했으니 멀리 강원도 태백시 비단봉에서 발원해 태백-봉화-안동-상주를 거처 구미까지 흘러온 낙동강이 금오산과 함께 한다.
낙동강길 따라 노랗게 질린 금계는 최고 절정을 자랑하며 피어있다
왜관의 작오산이 보이고
낙동강가에는 금계가 끝없이 피어있어 보기좋다
애국동산
6,25 전쟁 낙동강 방어 전투인 동부 산악지대와 경남 마산시 진동면까지를 연결하는 워커 라인의 최고 적략적 요충지였던 왜관
아직 이른 아침인데 덥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무거운 봇짐을 등에 지고 어디론가 가시는데
어디로 가시는가?
같은 방향이라면 보따리를 들어 드리고 싶지만 같은 방향이 아니기에... 그리고 고향의 어머니 생각이 나서
한참 뒤돌아 보니, 마침 마을버스가 오는데 할머니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셨고 저와의 간격도 점점 멀어진다.
호기심에 할머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봤지만 저기 모퉁이 지나 보이지 않으셨고 이후에는 어디로 가셨는지...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왜관 도착
이른 아침이라 식사할 곳도 없고
국토종주 자전거 길 옆에서 사 온 우유와 아이스크림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가야 할 자전거 길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금계꽃이 한 줄로 열병하는 피었고 벚나무가 드문드문 자라서 아름답고 시원하며
걷는 내내 즐거울 것 같지만 이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더운 길인지 모른다.
예전 4대 강 하면서 느티나무와 벚나무를 촘촘하게 줄지어 심었지만 낙동강 바람을 이기지 못한 녀석들은 대부분 고사하고
그중에 강한 녀석들만 저렇게 드문드문 살아남았다.
지나온 자전거 길
가끔 지나는 자전거 타신 분들이 연신 화이팅을 외쳐 주거나
어떤 분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냐?"며 물으신다.
저짜서 와서 저짜로 간다며 말씀드린다.
그나저나 너무 더워서 숨 넘어가겠다
드디어 대구 땅에 입성하고
성주대교 인근 원두막에 잠시 누워 있으니
자전거 타는 분들도 잠시 쉬어 가는데
몰골이 이러니 "어디서 왔냐"며 한 마디씩 툭툭 던진다.
저짜서 와서 저짜로 갑니다 하면
자기네들은 "국토종주 3- 4일간 640km를 진행한다"며 이야기한다.
대단하다며 엄지 척해 드리고 다시 누워서 잠시 쪽잠을 청하는데
5분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원두막에 앉아서 시끄럽게 하니 결국 일어나 내 갈길로
멀리 대구 앞산 자락과 비슬산이 보이고
내일은 비슬산 천왕을 넘어야 하는데
저곳이라면 시원한 바람을 잡을 수 있을듯하다.
바로 앞은 강정보(606km 지점)
평일이라 자전거 타는 분들은 얼마 없고
강정보 아래 식당가로 가서 마침 날씨도 덥고하니 어제 아가씨가 준 만원으로 켄 맥주 하나와 시원한 잔치국수 하나 시킨다.
오늘 처음 먹는 밥
마음씨 좋은 식당 여주인께서 이렇게 담아 주셨고 배부른 한 끼 식사를 통해서 건강한 발걸음이 삼일만 더 견디면 될 것 같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배속으로 흘러 보낸다.
이제 삼일 남았나...
해 질 녘에 대구시 달성군 옥포읍에서 일정을 마치며 잠시 인근 대구 집에 다녀오기로 한다.
집 근처 담벼락 아래 주차를 해두었더니 차를 앞으로 조금만 빼 달라고 전화가 와서 부득이하게 다녀와야 하고
베란다에 화초가 다 죽었을 것 같아 물을 주고와야 할 것 같다
지하철 타고 집으로 와서 주차를 다시 하고 베란다 문을 열어보니 비싼 녀석 하나가 바짝 말라죽어 버렸다.
가격이 싼 녀석들은 생명력이 질긴데 어찌 비싼 녀석만 이러는지... 성질 급한 녀석은 어딜 가도 표시가 난다.
이른 새벽에 택시로 옥포로 와서 다시 이어간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송해 공원 둘레길로
호박 터널이 있는데 누가 이 녀석을 데려가나 봅니다.
옥연지와 송해 공원
멀리 비슬산이 보이는데 저곳을 넘어야 청도군 풍각면으로 간다
송해 기념관
우리나라 3대 계단(戒壇)인 용연사 금강계단
계단은 계를 받기 위해서 흙과 돌로 쌓은 단을 말하며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수여하는 장소이며
정식 입문을 하기 위해서는 꼭 계를 받아야 하는 의식을 치르는 곳이다
용연사 적멸보궁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기던 통도사의 부처 님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인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의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자장께서 만들어 놓은 황룡사 9층 석탑,울산의 태화사는 1238년 고려때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져
조선 중기까지 진신사리는 월정사와 통도사 두 곳뿐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통도사 사리가 왜구들의 눈을 피해 피난을 가면서
비슬산 용연사, 금강산 건봉사, 묘향산 보현사 용주봉 5층석탑에 부처님 진신사리 일부를 보관했다
그리고 고려말 때 공민왕이 피란도중 통도사의 부처님 진신사리 일부를 가져다가 호서 제일 가람인 속리산 법주사 능인전
앞 사리탑에 모셔다 두었는데, 법주사는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미륵불을 모시는 곳이라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덜 알려져 있는 곳
5대 적멸보궁
경남 양산 영축산 통도사,
강원도 정선 태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 중대암
설악산 봉정암이 있으며
8대 적멸보궁
대구 비슬산 용연사
경북 선산 냉산 도리사
강원도 고성군 건봉산 건봉사가 있다
강원도 건봉사에서 적멸보궁을 찾아 108배를 하면서 여러 날이 걸러 도착한 비슬산 아래 용연사
적멸보궁은 기도발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많은 고승 대덕들께서 수행을 위해서 찾으셨던 곳이기도 하다.
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통로로써 유명한 고승대덕들의 숨결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며
무엇보다 그분들 역시 탁발하며 걸식(乞食) 수행하던 분들이라 사람의 정(情)을 누구보다 잘 느꼈으리라 생각이 든다
용연사 자시 부도탑
적멸보궁에 들러 108배를 마치고
머나먼 길에 수고가 많다며 스님께서 먹을 것 좀 챙겨 주시며
"그대여!
길 위에서 무엇을 찾았는가?"라는 화두를 주셨다.
짧지 않았던 길이지만 결국은 사람인지라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해드린다 "예"
물을 찾아다니면서 100번째 갈무리할 무렵에 겨우 물을 이해하게 되었고
백두대간을 통해서 결국 사람이라는 걸 알았고 이번 걸음 역시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훗날 다시 한번 더 스님을 찾기로 하고 일어선다.
**스님 감사했습니다.
용연사 적멸 보궁 내력
용연사 극락전
이곳도 용과는 깊은 전설이 있는 사찰이며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주요 활동 무대여서 호국불교를 이야기할 때 용연사를
빼놓지 않고 꼭 넣는다.
극락전에 들러 3배 하고 나와 비슬산으로 오른다.
석가모니불을 외우며 비슬산으로 오르다가
중턱에 자리 잡은 샘터에서 산객 한 분을 만나서 인증 담고
대구 앞산에서 비슬산까지 큰 오르막 없는 편안한 능선길이며
고지가 높아 골바람이 아주 시원하니 편안한 걸음으로 천왕에 선다.
비슬산 참꽃 군락지와 조화봉이 보이고
다음 길로 가려니 천왕봉 정상 바로 옆 6각정자에 부산에서 오셨다는 아주머니 한분이
"참외 깎아 놓은 것 드시고 가라"라고 하시는데 달달한 참외 향에 이끌려 그냥 갈 수 없어
참외 한쪽 다 먹고 천천히 일어선다.
6,25 전쟁 낙동강 방어선 따라 사방팔방 발길 안 닿는 곳이 없었던 산들이 펼쳐지고
멀리 황강이 보이지 않지만 합천의 산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멀리 가지와 사자봉 자락이 길게 이어진다. 보이지 말아야 할 대상이 눈앞에 보인다는 건 벌써 다 왔다는 것
내일은 저곳에 설듯하다.
비슬산 천왕에서 청도군 각북면으로 내려와 어느 식당에 들러 부추전에 막걸리 한잔하고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어 본다
그런데 부추전이 영 아니올시다!
밀가루 값이 비싼가?
밀가루는 어디 가고 부추만 서로 껴안고 붙어 있을 뿐이다.
그늘 없는 도로가로 이어 오다가 벚나무 그늘이 하늘을 빼곡하게 가리는 곳을 지나며
날씨는 32도
도로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그늘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멀리 가야 할 화악산과 밤재가 보이는데
비슬산에서 볼 때와 많이 가까워져 있어 오후에는 저곳을 지날 것 같다.
해발 550m의 밤재로 올라와 (654km 지점)
풍각에서 이곳까지 오르막길이라 완전 파김치가 되었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한재 미나리 밭
이런 비닐하우스가 대략 1천 개는 될듯
비닐하우스
비슬산에서 흘러온 청도천은 메말라 가고
50년 만의 가뭄이라 하는데 빨리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청도군 유천면에 들어오니 해는 넘어가고 8시 무렵이다.
인근 식당에 부탁해 겨우 밥 한술 뜨고 여관에 들어가 그냥 퍼져 잠을 청한다.
오늘은 배네골까지 가야 하니 새벽 02시 무렵 나와
멀리 금성과 달 우측에 목성과 해왕성이 짝을 이룬다.
그동안 따라다니던 달은 지쳤는지 어느새 반쪽이 되어 있다
해가 뜨려나 밀양강을 지나며
밀양시 상동면 신동리 마을에서 영알 실크 길인 오치령 고개로 오른다.
오치령 고개로 오르는 임도길
실크 길에 만나는 소나무와 임도길
오치(烏阤)고개는 까마귀가 많은 고개라는 뜻으로 시체가 모인산이다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때 효심의 난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밀양 오치마을에서 7천명의 농민군이 군졸들에 의해 사망하자 시체를 뜯어 먹으려고 수많은 까마귀가 모여 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밀양시 산내면 오치마을과 멀리 가야 할 정각산
가야 할 정각산
높아 보여도 산은 금방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도로길은 너무 지겹다
밀양시 산내면 임고 마을에서
이른 아침이지만 지나가는 길손에게 꼭 필요한 밥을 파는 곳이 보여 문 열고 들어가니
여주인께서 아침에는 속풀이 하는 시락국밥이 최고라며 "드셔 보라"며 권하신다.
가격과 맛이 참 좋고 훗날 이 길을 지난다면 꼭 다시 한번 와 보고 싶다
가자! 정각산으로
산내면 발례리에서 임도길 따라 끝까지 올라오면 정각산 아래 백운암이라 작은 암자가 있지만
스님은 오래전에 어디론가 떠나시고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성불 하셨는지, 어디론가 수행길을 떠나셨는지
스님은 떠나고 입구에 자리를 잡았던 단지와 커다란 대야가 하늘을 올려다 보기 싫다며 땅바닥으로 향했다.
경사진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능선에 닿게 되는데 산은 어제나 말없이 내편이 되어준다.
조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누군가 올려놓은 1m 크기의 정상석이 반긴다.
다시 돌아 나와 단장면 아물리 마을로 방향으로
울산 산이 운영자님과 보라 총무님이 찾아오셨고
오늘은 두 끼 식사를 해봅니다.
두 분 감사했습니다.
표충사에 들러 이곳까지 사고 없이 데려다 주신 친절하고 쿨하신 부처님께 3배 하고 나와(696km 지점)
산이 운영자님이 가지고 오신 꽁꽁 수박으로
냉동실에 꽁꽁 얼려서 가지고 오셨는데 얼마나 차가운지
한 조각 먹고 치아가 다 뽑아질 지경이라 일어섭니다.
보라 총무님은 배내골로 가시고 저와 산이 운영자님 둘이서 고사리 분교 방향으로 오릅니다.
표충사에서 예전 고사리 분교로 오르던 임도길 따라 오르며
지대가 높아질수록 바람은 좋고 계곡으로는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재약산 자락의 거친 암릉이 멋스럽고
접니다.
몸무게 5kg 도망갔더군요
간월산과 간월재 그리고 신불 자락이 보이고
아직 시간이 남아 있지만 배내골에서 일정을 마치기로 한다.
저녁 무렵에 영축산에 도착한다 해도 하산 시간도 있고 통도사 저녁 예불 시간이 지나
산문이 닫히면 마지막 108배를 못할 것 같다.
일정을 하루 늦추기로 한다.
해질 무렵에 도착한 배내골 어느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오리 한 마리 잡아 뜨거운 불판에 누인다.
식사 후에 두 분은 집으로 가시고 저는 일찍 잠자리에 든다.
두 분 감사했습니다.
민박집 위 펜션에 우리 집 아이 또래의 대학생들이 놀러 와 무지 시끄러워
일찍 일어나 단조 산성이 있는 영축산으로 오른다.
단조 산성(丹鳥山城)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던 성이다.
당시 이성을 지키던 의병들이 왜군의 기습을 받아 수많은 인명이 전사를 하였고
그들이 흘린 피가 못을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영축으로 오르는 길에
바람은 불고 머리는 귀신처럼 산발하고
물집으로 엉망이던 입술은 이제 거의 다 나은듯 보이고
영축이 보이고
신불도 보이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산객이 없는 산길이다.
정상에도 산객이 없어 누가 인증을 담아 주면 좋으련만 했는데
독수리 날개인 사실등 능선이 이어지고
1분 정도 기다리니 어느 산객 한분이 올라오셨다.
인증 담고 10시에 통도사 아침 사시예불 시간을 맞춰 하산을 서두른다.
비로암으로 내려와
산신님께 합장하며 강원도에서 이곳까지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비로전에 들러 3배 하고 나온다.
극락암에도 들러 3배 하고
반월의 다리를 지나
독수리가 날개를 편듯하다는 영축산 줄기들이 장엄하게 펼쳐지는데
세상의 모든 악으로부터 진신사리가 있는 통도를 보호하려는 듯하다
넓은 들판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있고 통도사 스님들께서 콤바인으로 보리 수확을 하고 계신다.
길가에서 일꾼들을 지켜보고 계시던 스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예전에 지나던 통도사로 가는 길은 막혀있어 안양암까지 한참 돌아간다.
안양암에서 통도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니 ...어라!~ 문이 닫혀있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스스르 열린다.
사람이 오면 자동으로 열리는건가?아니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가 문을 열어 준건가?
카메라가 있을 만한곳을 찾아 두리번 거렸지만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3대 종찰의 하나인 통도사는 스님을 배출하는 불보 사찰로서 진신사리의 금강(석조) 계단에서 수계를 받는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나라 3대 금강(석조) 계단은 통도사 금강계단, 용연사 금강 계단, 금산사 방등계단이 있다.
지심귀명례를 대표하는 삼보 사찰의 하나인 통도사는 1,700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국 불교의 성지며 불교의 시작이며
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법보 사찰의 해인사가 있고
상징물은 없으나 고요하고 맑은 스님들만 일국의 국사로 배출하셨던 승보사찰 송광사가 있다.
다음 성지순례 2번째는 이것으로 정리되었다.
송광사-조계산-구례 사성암, 섬진강-화엄사-쌍계사-청학동-대원사-왕산-구현 왕릉-산청-합천 해인사-가야산-고령-현풍-비슬산-
통도사 대략 400km가 될듯하니 지심귀명례를 생각하며 걸으면 될 것 같다
통도사 금강 계단과 진신사리탑
자장께서 646년 이곳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을 쫓아내려 했지만
죽어도 못 나가겠다는 아홉 용에게 흰 종이에 화(火) 자를 써서 도망가게 했는데
여덟 마리는 어디로 떠나고 그중에 눈먼 용 한 마리가" 어디 갈 때가 없으니 이곳에 살게 해 주면 절을 잘 지키게 해 주겠다"고
해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바로 옆에 작은 구룡지라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살게 해주었다고 한다.
황룡이 나타나서 만들었다는 경주 황룡사,황룡연 위에 만들어 놓은 울산 태화사,구룡이 놀던곳에 만든 양산 통도사
아직 본적이 없는 용들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듯 하니 3곳에서 놀던 용들은 어디서 자장율사를 다시 만났을지...
만났다면 분명 천상의 아름다운 연못에서 자장과 용들의 거침없는 대화가 있을것 같다
산이 운영자님과 깽이님,전국구님 도깨비님, 세이님이 먼 걸음으로 찾와주셨습니다.(720km 지점)
사시예불 시간을 딱 맞춰 도착한 통도사 금강계단 앞
길고 길었던 적멸보궁 길은 부처님께 108배를 마치며
깨달음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결국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백두대간길 그 끝에도 결국 사람이었고
적멸 보궁 길에도 숱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으니
물의 순환처럼 도의 끝에는 결국 사람이니 인연의 끈을 함부로 놓지 말고
사소한 인연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 같다.
물의 흐름처럼
맑게 흘렀지만 흐르는 도중에 흙탕물, 기름때, 축사 분뇨, 가정의 오, 폐수를 모두 안고 흐르지만
숱한 생명을 살게 하고 어느 것 하나 바라지 않은 채 바다로 흘러들어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른다
물의 순환처럼 인연은 소중하다.
언제 어느 때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고성에서 개인 택시업을 하시는 할머니께서 밥을 사 주셨고
월정사 앞 어느 식당에서는 막걸리 한 병 사 주셨고
예천에서는 자연인께서 고등어에 쌀밥을 해주시겠다며 같이 밤을 보냈었고
의성에서 산사랑님 내외분께서 친절을 보내주셨고
도리사에서는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존경한다며 커피를 사주고 싶다며 만원을 건네주셨고
중간중간에 멀리서 동강님, 콜리님, 깽이님, 종환님, 미소 대장님, 보라님, 산이님, 전국구님, 밤 도깨비님, 세이님이 찾아 주셨고
소고기 사 먹으라며 후원해주셨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아무런 사고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께 감사 인사드리며 다음 성지 순례길 2번째도 준비해봅니다.
깽이님은 사랑스러운 골짝 총무님을 위해서 108배를 해 주셨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 산문을 들어간지 14일 만에 720km의 길었던 산문 밖으로 나온다.
흰 옷에는 부처님을 모셨고 그 길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도움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사인을 받아왔다.
산문을 나오며 많이 배운 적멸보궁 길
어느 누가 이 길을 걸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걸어 본다면 저보다 많은 걸 배울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 성지 순례길 천천히 걸음 해 보시면 좋을 듯하고
다음 판도 밑자리 깔았으니 성지순례길 2번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보 종찰 송광사-해인사 -통도사 400km
한여름에 고행길 떠나 보기로 한다.
이번 14일간 성지 순레 길에 도움 주신 분들께 감사인사 드리며
남은 후원금은 잘 보관했다가 좋은 일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첫댓글 720km 그길위에서 베풀어주신분들 마음속으로
자비로우신 부처님이 들어와 불법하나 알려주고 가신거같습니다
서하에 육체 잘보존하시옵고
걸어가시는 걸음에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산문에 들어가며 고행의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너무나 많은 생각들로 그 발걸음은어찌보면 가벼웠다 할 것 입니다.
지심귀명례와 반야사상을 생각하며 걸었던 그길도 산문을 나오니 다시 본연의 짐승의 영역이라 도로아미타불이 됩니다.
저도 어쩔수 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글 감사합니다.
모든 걸음의 그 끝에 결국 사람이 있었더라는 그 말씀 깊이 새기며
눈물 어리게 만드는 후기
감사히 읽어봅니다.
간절히 바라면 뭐든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구요.
소중한 길 열어주신 방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딱 한번 108배 하고 이틀동안 아팠는데, 방장님은 그냥 걷기도 힘드셨을텐데 8곳 적멸보궁 마다
108배 하시며 통도사까지 오셨다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방장님 기돗발은 잘 이뤄지시는 듯 하니
거기에 저도 쫌 보탰고^^
어느 한없이 좋은 날
아름다운 그 미소를 다시 만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루 평균 50km를 걷고 백팔배하는건 그리 녹녹하지 않더군요
신은 있는가? 없는가?
그 무언의 대답이 결국은 부처님 역시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구요
글 감사드리고 해안길 언능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산길, 물길 그리고 고행의 길 그 걸음 감히 상상도 못하겠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인들 역시 물을 통해서 많은걸 배우고 깨닫았습니다.
겸손과 용기 그리고 지혜 그외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이런것 보다 아래로 흐르며 숱한 생명을 살리고 어느 것 하나 바라지 않는 가장 단순한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다시 물을 찾아 가려는데 비라도 조금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해봅니다.
지난주에 아이들과 함께해서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도 꼭 오세요
고마운 분들이 많아 지나온길이 행복한 걸음 이었을듯......많은 분들께 큰 기쁨을준길 감사 드림니다
글을 걸으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정을 느낍니다.
그 길에서 제가 가야할길이 뭔지 다시한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부장님 감사드리고 이번주에는 뭐하시는지 궁금 또 궁금합니다.
비내리는 날
연잎에 고여가는 작은 빗방울이 모이고 모아 견디지 못하는 연잎은 모아둔 모든것을 버리기을
반복하듯이 인간도 비워야만 무언가을 다시 담을수 있도록 살아가야겠어요
수고와 고생하셨습니다
인간의 영역과 짐승의 영역이 분명 다른데
산문을 나오면 어찌 짐승이 되어 가는지^^
ㅎㅎㅎ 제가 그렇습니다
@배병만 솔직한 인간이고자~~
ㅎㅎ
부처의 마음으로 걷는 순례길이기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힘든 고행도 참아내며
걸었을것 같습니다 언제가 그 길을 걸을수
있다면 방장님이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
느껴보고 싶어지네요 고생많으셨구요
다음 발걸음 삼보 사찰도 무탈한 걸음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산에 들면 인간이 그렇게 고결할 수 있나 생각해 보지만
도심에 내려와 운전대만 잡으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짐승 모드가 되니 모든게 도로 아미타불이네요
그렇다고 걸어 다닐 수 없는 노릇이고
오늘도 백두대간 인근에서 마음 수양하고 왔는데 몇일이나 갈지
지부장님 고마웠습니다.
낙동강변을 노란색으로 물들인 금계꽃보다 사람이 아름답죠 모든길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는 말 백프로 동감합니다
720km 순례길 수고많이하셨습니다.
사람이 정답이죠
누구를 위해서 먼걸음 걸으며 기도를 해보기는 처음입니다.
수 없이 석가세존을 찾으며 걸었던 그 길은 이제 뒤로하고
또 다른 길에서 부처같은 사람을 만날 준비를 해봅니다.
두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 고마운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꾸벅!~
--- 중략 ---
"그대여!
길 위에서 무엇을 찾았는가?"
라는 화두를 주셨다.
짧지 않았던 길이지만 결국은 사람인지라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해드린다
"예"
물을 찾아다니면서 100번째 갈무리할 무렵에 겨우 물을 이해하게 되었고
백두대간을 통해서 결국 사람이라는 걸 알았고 이번 걸음 역시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중략---
사람...
사람이란 그 단어와 뜻은
인연을 끈을 놓지 않고
인연을 소중히 하라
라는 그 것 일까요?
무언가 오묘한 진리가
있을것 같지만..
결국은 단순함 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 단순함 조차 이해하는데
그 많은 걸음과 세월을 견뎌내어야만 하는지요..
그 깊은 심오함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걸음과 인고를 견뎌내어야 깨달을수 있는 것 인지요.
궁금하고 알고 싶어지는
마음으로 실례지만 여쭈어 봅니다..
살아 가면서 사랑 빼면 남는게 없습니다.
산문을 들면 그렇게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게 사람이고
고행이 깊어질수록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나 산문을 나오면 다시 그러한 것들을 잊어 버립니다.
그러다가 다시 산문에 들면 물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무한 반복하며 살아가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사람이 최고인데 복잡한 도심에서 운전하는것과 같은게 인생인것 같네요
@배병만 가르침 감사 합니다.
결국 복잡한 세상사
복잡한 인간사
벗어 나서 잠시
벗어나 나를 놓아두고
무언가를 찿아 떠나도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이
복잡한 세상이고
복잡한 인간세상 이며
그 관계를 잘 이어 나가고
지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 하였습니다.
벗어나려 해도
다시 돌아올수 밖에 없고
벗어나려 함이
무지함 일수 있겠습니다..
주변에서 그런말을
하시더라구요.
너는 산을 왜 가니?
가는 것은 좋은데
절대로 도피용으로 산을
가면 안되다!!
그 말이 즉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이니 도망갈곳을 산으로 보지 말고 산은 산으로 인간사는 인가사로 분리해서 살아야 한다..
라는 말씀으로 이해 하였습니다!!
조금 정리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가르침 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이젠 산에 대한 가치관과 목적에 대해 조금은 분명해 진것 같아 개운 합니다 !!
가르침 주시는 산행과 걸음 항상 무탈히 이어 가시길 마음담아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노기 남도의 정갈한 밥상처럼 맛깔나는 글 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늘 반복되는 일상 사람의 영역과 짐승의 영역이 다르듯 서로 사랑하며 살아요 ^^
이길은 자신을 내려놓고
비움을 터득해야 할듯합니다
지리산 법계사도 적멸보궁으로 알고있는데요 ...
5대8대에 들어가지 않는가봅니다...
기나긴 길의 여정에서 각기 다른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살아가는 삶이 다르듯..
모든것을 내려놓으신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5대와 8대는 삼국시대 부터 내려온것들이고
그외 전국의 수많은 진신사리는 대부분 미얀마, 스리랑카,인도, 중국에서 스님들께서 가지고 온 것들도 있고 기증 받아서 가지고 온것들이 대부분 입니다.
참고 하시고 글 감사합니다.
먼길 참으로 많이 다니셨지요.
이번에 적멸 보궁 720km진행하시면서
클럽의 먼저가신님 아픈님들을 위해 108배하시면서
많은기원을 하시면서 힘든 고행의 길을 마무리하시고
아쉬움도 남았으리라 봅니다.
장거리도 좋지만 쉬어가면서 새로운 길을 이어가시고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그동안 클럽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라 모두가 소중하죠
잠시지만 시간이 나기에 한번 걸음하며 그분들을 다시금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저녁밥과 잠자리 봐주셔서 무한 감사드립니다.
불자로써 정말 고생하셨다는 말씀 멀리서나마 전합니다. 예전에 금정산에서 잠시 스치며 뵌 적이 있습니다. 말씀처럼 인연은 소중하고 깊은 것 같아요. 고행의 길 가운데 얻는 것이 분명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긴 여정 후 몸 잘 추스리시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지난날 제가 낙동 2번째 진행할때 금정에서 잠시 뵈었지요
참 오래된 인연입니다.
불자로써 적멸 성지 순례길 한번 떠나보시면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산길 오고 가다가 다시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인간의 살아있는 인정을 체험하는 길이 었던것 같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내 디딜때마다 고통과 즐거움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고많이 하셨구요, 푹 쉬셨다가 다음길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해본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훗날 다시한번 더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마음을 써서 걸음할것 같습니다.
지맥길 조심해서 진행 하시구요 아말 다말 하십시요
댓글이 고결한 걸음에 흠이 될까 두려워 망설여지네요
깨닫는 과정에 있는 수행자를 뵙는것 같아 숭고해지면서,
또
부처님같은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소망을 갖게하는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그 걸음에 감사드립니다.
공감합니다
걸음으로만도 벅찹니다
배고프고 목 마르고 그러다 이른 새벽에 하늘을 보며 걷는다면
누구나 수행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걸음하는 길에 많은 분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았으니
그 옛날 탁발하며 전국을 걸음하시던 스님들의 발걸음도 생각해보게 되었구요
사람사는 세상 요즘은 산문 밖으로 나오면 성질부터 나니
어쩔수 없는 인간이죠 ^^
그저ㅎ맴이 애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적멸보궁 순례길 마무리 하셨네요
장거리 720km 완주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엇을 비우고 , 무엇을 체우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셀카 하나는 참으로 자연스럽게 잘 찍게 된 듯하네요...ㅎㅎ
배낭의 무게 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뭔가를 짊어지고 떠나
다 비우고 내려오셨나 했더니...또 준비된 짐들이 잔뜩하군요... ㅡㅡ;;
여정의 글들을 읽으며 답글 달기도 부담스럽네요...흠..
빠른 회복하셨길 서원합니다
고행길에 답을 얻어서 다행 입니다
또다른 길도 안전하게 건강하게 걷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방장님 ㅎ
저는 읽기도 숨가쁘네요 ㅎ
근데 방장님께서
적멸보궁720Km 얼마나
힘든 시간이였을까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ㅎ
책을 내십시요 ㅎ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