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인 거룩한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4장 2절 – 5절 2022년 11월 27일 주일 오전 말씀지
신약 14권의 서신서는 사도바울의 개인 편지가 아니라 성령 시대를 살아가는 영광의 성도들에게 필요한 양식으로 기록케 하신 서신들입니다. 그래서 양식으로 나누게 하신 자를 통해서 받아야 하건만 1.받지도 않고 2.받아도 되새기지 않고 3.조금 받고 설치는 자들이 많고 4.받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들이 적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없어서 1.속에서 올라오는 원죄에 늘 지고 2.세상에 온갖 유혹에 항상 빠지고 3.더 나아가서는 온갖 거짓 미혹에 빠져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복음의 아비 사도바울도 가장 염려한 것은 자기를 통하여 살림 받은 자들이 양식을 놓치고 다른 교훈에 빠지면 어쩌나? 였습니다. 세워주신 교회들마다 거짓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자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모든 서신들이 거짓에 빠지지 않고 견고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려 주신 진리의 양식입니다. 롬1:11-
복음서를 받고 성령의 역사가 있다 하여도 주신 서신서를 양식으로 받지 못하면 오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인 거룩한 삶은 없는 것입니다.
2절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 예수로 이루신 영원한 구원이 믿어지게 하셨고 영광에 합당한 그 열매맺는 생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 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주시는 한말씀 한말씀을 내게 주시는 양식으로 받아 먹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거룩한 삶은 내 힘과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가죽옷) 예수(십자가)가 믿어지게 하신 자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항상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면서 야곱은 자기 있는 힘을 다해서 열심했는데 결국 환도 뼈가 부러졌습니다. 창33:25-
그런데도 복음이 잘못됨으로 야곱처럼 기도하라고 외치는 바리새인과 신비주의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유대 군병들이 칼을 들고 왔을 때 가장 열심많은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었습니다. (요18:13) 누가를 통해서는 그때에 예수님은 잘했다 하지 않으셨고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눅22:51) 되어지는 그 어떤 일에도 혈기를 부리지 말고 참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미 누가를 통해서 환난을 앞두고‘검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고 하셨는데 그 검은 무기가 아닙니다. 눅22:36-
검(劍)은 날카로우니 좌우에 날이 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남을 찌르지 말고 내 속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라는 것입니다. (히4:12) 피는 생명으로 심장이나 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직도 되어지는 모든 환경을 통해서 감사가 나오지 않고 속상해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면 우리의 갈 길이 아직 한참 멀은 것입니다.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성경을 읽고 나보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명령으로 주신 것인가? 신천지처럼 성경을 공부하여 수료증이나 받으면 다 된 것인가? 먼저 강단에 서게 하신 자가 한말씀 한말씀을 양식으로 나눈 것인가?를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마24:45) 세움을 받은 자를 사도바울같이 복음의 아비로 여긴다면 양식이 되고 일만 스승으로 여기면 명령이 됩니다. 목사의 입에서 양식이 나오는가? 명령이 나오는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명령하면 무조건 권위에 따라야 하는 복종이 나오고 양식으로 받으면 사랑이 깨달아지매 순종이 나오게 됩니다. 복종에는 기쁨이 없고 순종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고전7:12-
3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하나님의 뜻은 왜? 우리를 창세전에 아들로 택하시고 주 예수로 구원하시고 그 영에다가 육신을 입혀서 이 땅에 보내셨는가? 인데 마태를 통해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라고 세 번이나 마7:31, 12:50, 마26:39,40 에 나타내주시면서도 그 뜻이 무엇인가를 밝히 나타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기 생각을 아버지 뜻이라고 여기는 자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뜻은 영생이라고 밝히 나타내주셨습니다. 요6:40-
영생(永生)은? 창세기 3장에 가죽옷을 입히시니 생명나무의 실과를 그손으로 따먹고 영생할까봐 에덴에서 쫓아내셨다고 하셨는데 창3:22-
1.복음이 믿어져 내 속에 아들의 영을 살리시는 영생(靈生) (3:16,5:24) 2.생명의 떡을 먹이시고 내 영을 자라나게 하시는 영생(營生) (요6:48,) 3.갈라디아서로 성령으로 열매를 맺게 하신 대로 거두어 하늘 곡간에 쌓게 하신 대로 상을 누리게 하시는 영생을 (갈6:8) 디모데 전서에는 생명 역사에 쓰임 받은 대로 영광을 취하게 하시는 영생(榮生)으로 나타내주셨습니다. 똑같은 글자이나 다릅니다. 딤전6:12-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사도바울을 통해서 오늘 양식으로 하나님의 뜻은 거룩이라 나타내주셨고 또한 살전5:18에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로는 환난 핍박 중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타내주셨습니다. 벧전3:17-
거룩함은 구별된 생활, 성화생활 곧 열매를 맺는 생활 영광에 합당한 아들들의 생활인데 그 거룩함은 오직 진리의 성령의 역사로만 흠이 없도록 하십니다. 요17:17,19-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는 것은 1.날마다 성령으로 삼위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 은혜를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2.환경을 통하여 깨닫게 하셔서 3.육과 세상에 치우치지 않고 4.신령한 기쁨과 감사로만 생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믿어져 한 톨의 열매라도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거룩한 삶을 사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 바로 영원한 목적지 영광성입니다. 계21:27-
곧 음란을 버리고 음란(淫亂)은 우리 속에 있는 원죄의 하나로 남녀들이 청년 때에 정욕대로 함부로 행하는 것이요 결혼한 자들이 부부 외의 사람과 성적으로 난잡한 생활을 말합니다. 음란은? 원죄의 역사 중에 하나로 그 속에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15:19) 이성을 볼 때에 속에서 올라오는 음란을 버려야 하는데 내 각오와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7계명에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시대가 갈수록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음란이 심해지기만 합니다. 특히 청년 때에 이 죄에 빠지기 쉬운데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시119:9-
말씀을 통하여 먼저 우리에게 왜? 원죄를 주셨는지를 깨닫게 되면 이 음란을 버리게 됩니다. 원죄의 역사는 1.성령의 역사 안에서만 살게 하시려 두셨고 2.이기며 사는 자에게 상과 영광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원죄는 쑥 뿌리처럼 얼마나 강한지 음란한 생각은 잘 버려지지 않습니다. 성군 다윗도 50대에 평안할 때 간음했고 지혜의 대왕 솔로몬도 존귀하고 부해지니 많은 여자들 품속에 빠져 잚은 날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것이 많음으로 이 자리에 빠져 살면서도 죄인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믿는다고 하면서도 복음이 잘못되니 예배당 건물만 성전이라 하며 우리의 몸이 거룩한 성전인 줄 모르고 음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자가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고전3:16-
누구라도 성령 안에서 늘 깨어있지 못하니 그 사랑과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속에서 올라오는 음란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고하셨지만 복음이 믿어져 진리로 자라나야 이뤄지는 거룩한 생활인 것입니다. 벧전2:11-
4절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지금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음란한 세상입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원죄의 역사를 이기며 각각 거룩함으로 구별되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내 몸이 성전인 것을 알고 늘 깨어있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내 열심가지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6:19) 구약에 욥은 얼마나 거룩한지 처녀에게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욥31:1-
그런데 사단을 들어 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의(義)를 꺽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신부로 정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고후11:2) 그러나 나의 강한 의지로 천주교에 신부와 수녀들처럼 수도원에 들어가라는 것이 아니요. 불교의 스님들처럼 산속에 들어가 세상을 보지않고 도를 닦으며 타락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속에서 올라오는 음란을 이기고 아예 생각부터 택하신 자들은 나의 형제들이라고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 받을 존귀한 자로 여기면 음란한 생각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엡5:18-
심지어는 아예 부부생활을 부정하게 여겨 혼인을 금하는 거짓된 자들도 생겨나 미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딤전4:3-
존귀한 것은 아들로 택하여 주셨기에 나도 존귀하고 (시49:12,20) 나만 존귀한 것이 아니라 남도 존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 입힌 아들들이요 주 예수님의 참사랑이 입힌 자들이니 존귀하며 앞으로 상과 영광을 받을 지존자의 아들들이기에 너무나 존귀한 택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시82:6-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결혼은 남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자기 아내만 취하는 것이 거룩한 생활입니다. (창2;24) 베드로 사도로는 남편들이 받은 말씀의 지식을 가지고 아내를 대하라 하셨습니다. 벧전3:7-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부를 어떻게 나타내주셨느냐?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왜 지으셨나요? 생육 번성케 하심이요 (창1:28) 사랑의 대상으로 주신 것입니다. 창2:21-
아담의 갈비뼈는 다리뼈나 팔뼈와는 달리 주먹으로만 쳐도 잘 부러질 정도로 약합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미혹도 잘 받고 연약한 그릇으로 깨어지기를 잘 합니다. (딤전2:14) 갈비뼈가 잘 부러지는 것은 남편의 폭언과 폭행으로 아내는 몸과 마음이 상처를 받고 삶이 힘들고 지쳐서 주저앉고 결국엔 병들어 부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이 그런 상태를 알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아내를 대하고 있고 반대로 여자들이 강하게 나가는 현실인데 여자들은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히 나와서 엎드려야 합니다. 시128:3 에서는 주를 경외하는 가정의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다고 하셨고 잠5:18 에서는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하라 고 하셨고 전9:9 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즐겁게 영광길을 같이 가고 영광성에 같이 들어가는 즐거움이 있어야 참 부부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가정이 본이 됩니다. 가정마다 이 부부관계가 잘못되어 있으니 자녀들에게 본이 되지 못해서 나를 통해서 살아날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결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같은 생각, 같은 목적을 갖고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곧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같으냐?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자라났지만 그 영광을 향한 같은 목적을 가진 자를 만나지 못하여 거룩한 삶을 혼자 살아가는 자들도 있는 것입니다. 고전7:38-
5절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하나님을 모르면 세상과 육신의 부모밖에 모르게 됩니다. 그리고 부부가 되면 육체만 위하여 살게 됩니다. 이제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을 앞세워 살게 되는데 세상적인 이 모든 것이 채워지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정욕이요 그 정욕이 갈수록 강해져 육신을 망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 때에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고 육에 빠져 사는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창6:2-
색욕을 좇지 말고 세상적이요 육적으로 나가는 남자들은 여자를 음탕한 눈으로 보고 여자 역시 남자들을 음탕한 눈으로 보게 되는데 결국 음란한 생활에 빠져 살게 되는데 그것이 이성에 대한 성적 욕망 색욕(色慾)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 것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복음으로 살림 받았다면 날마다 깨어서 육적인 것에 빠져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부들이 음란하게 다른 사람과 연애함으로 자녀들은 빗나가고 스스로 가정을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