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에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매우 중요한 내용들과 난해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본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 본문 이해 *** 1.(요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유대인의 유월절이라고 한 것은 요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가 되는 유대인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유월절을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유월절로 만들어 버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출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 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2)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더니 출34:23절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은 누구나 1년에 3번, 유월절,칠칠절(오순절),초막절(수장절)에 하나님께 나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출34: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그런데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세계로 퍼지면서, 1년에 한 번, 혹은 평생에 한 번 예루살렘을 순례하도록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사건은 마태복음21장과 누가복음 19장에도 나오는데, 그것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고,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2회에 걸친 사건이라고도 하고 단회적인 사건을 각자 순서를 달리 기록한 것이라고도 하나 많은 건전한 신학자들은 2회에 걸친, 즉 다른 사건이라고 이해한다.
2.(요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성전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예루살렘 성전은 우리가 아는데로, 지성소, 성소, 안뜰(제사장의 뜰, 남자의 뜰, 여인의 뜰), 바깥뜰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1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가고, 성소는 제사장들이 들어가고, 안뜰에는 유대인만 들어가고, 바깥뜰은 이방인의 뜰인데, 안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이방인이 들어오면 죽인다"라는 푯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은 성전 바깥뜰에서 이렇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세계 각지에서 몰려 오기 때문에 긴 여행에 짐승을 끌고 예루살렘까지 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 장사가 생겨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성전의 바깥뜰까지 진출한데 있는 것입니다. 즉 장사꾼들은 돈을 위해 다른 장사꾼과 경쟁적으로, 성전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바깥뜰은 약 14에이커 되는 넓이였는데, 안뜰과는 가슴 높이 정도의 벽으로 구분되었고, 이 바깥뜰 주위에는 대리석 주랑이 늘어서 있고, 많은 장식이 되어 있으며, 네 줄의 기둥으로 지탱되는데, 삼목으로 지붕을 하여 이 장사꾼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받아야 하는 돈보다 더 많이 받아 바가지를 씌웠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조용히 교제하며, 예배하고자하는 순례자들에게 끈덕지게 졸라댔고(난장처럼), 그들의 말다툼과 외치는 소리로 인해 예배의 본의미는 뒤로 가고 장사만 남게 된 것이다. (EX. 교회의 고양이 사건. 어떤 교회에서 쥐가 많아서 고양이를 한 마리 교회에서 기르게 되었는데, 예배시간에도 뛰어 다녀서 예배 시간 전에 고양이를 잡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동안 그 일이 계속되자 교인들은 예배를 위해서 준비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데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고양이가 자립자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곽선희 목사님은 그의 요한복음 강해에서 기록하기를 "제사장들이 제사를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티없고 깨끗한 동물이어야 했는데, 이를 검사할 책임이 제사장에게 있어서 아무리 깨끗한 것이라도 제사장이 불합격 판정을 하면 다시 바꾸어 와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장사꾼들이 성전 가까이로 모이게 되었고, 성전 마당까지 들어오는데는 제사장의 허락이 있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즉 제사장은 권력이 늘어나고, 중간이익을 챙기고, 심지어 사람을 시켜서 장사를 하고, 이 장사들로부터 사지 않은 제물은 불합격시키는 일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잘못된 줄 알지만 선 듯 나서서 이를 시정할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2)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돈 바꾸는 자들이 왜 있었는가 하면, 당시에 통용되는 화폐는 로마의 드라크마였는데, 여기에는 로마 황제가 새겨져 있어서 성전에서는 이를 우상 숭배라고하여 성전세를 받는데, 드라크마는 받지 않았고 따라서 세겔로 바꾸어야 했는데, 4드라크마는 1세겔이었고, 성전세는 1인당 반세겔이었습니다. (출30: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이 환전을 하는데 있어서 정상적인 수수료는 2-4%였는데, 당시의 많은 환전상이 여기서도 폭리를 취하였을 뿐 아니라, 성전 바깥뜰에서 시끄러운 상거래로 성전의 예배를 방해하였던 것입니다. 3.(요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예수님이 채찍을 만드신 것은 어느 누구도 성전에 들어 갈 때 막대기도 들고 들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성전 안에서 만드신 것인데, 이를 가지고 쫒으셨다는 것이다 2)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 양과 소를 다 쫒으시고 돈 바꾸는 자의 상을 업으셨는데, 이것이 과연 어느 정도의 일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을 마구 잡이로 쫒아내신 행위 즉 혁명적이고, 폭력적이었는가? 아니면 통상의 내보내심인가?
4.(요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요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주님은 분명히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여기서 가져 가라 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비둘기를 주님이 만일에 소나 양처럼, 동전을 바꾸는 자들의 상처럼 취급했다면, 비둘기들이 다 날아갔을 것입니다. 주님은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는 말씀으로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양이나 소는 다시 잡아들이면 되고 동전은 다시 주으면 되지만 날아가 버린 비둘기는 잡을 수 없음을 아시고 이를 잘 구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채찍으로 그들을 쫒아내고 책망하시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셨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종종 의분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손해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주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요2:16)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A.내아버지의 집으로 주님은 여기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려서 처음 성전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를 찾아 성성으로 다시 온 마리아와 요셉에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눅2: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B.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예수님은 성전을 (사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을 인용하여서 내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5.(요2:17)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것을 기억하더라
1)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위의 말씀은 시편의 말씀 (시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를 기억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배경은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너무나 사모하여 다른 사람의 시기를 살 정도였으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하는 그 일이 그에게 후에 바리세인, 제사장들에게 미움이 되고 결국은 그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우리의 생각할 것들 ***
1.성전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종종 우리는 마르다가 분주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분주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경배한다는 의미보다도 양을 잡아 드린다는 표면적인 행사에 더 치우쳐 성전의 본뜻을 잊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 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눅10: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10: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성전에 예배하는 것, 말씀 듣는 것, 찬양하는 데에 열중하시기 바랍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우선입니까? 아니면 다른 일로 분주하십니까? 성전은,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예수님의 거룩한 분노 오늘날 진보적인 신학은 두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인본주의를 앞세우고 성경을 거부하는 자들과 이를 더욱 극대화시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혁명가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다는 명목으로 유럽에서 헌금을 모아 아프리카의 무장 게릴라에게 무기와 돈을 제공하는 W.C.C입니다. 이 W.C.C.가 한국에서는 N.C.C.이고 소위 해방신학, 또는 한신대에서 행하는 민중신학입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예수님이 혁명가이었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로
1)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열심당(셀롯인)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에 좋은 말로는 독립운동을 하는 자들이었고, 나쁜 말로는 폭력을 사용하는 폭도였는데, 주님이 그들을 데리고 있었다는 것입니 다.
2)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칼을 가지고 다닌 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눅22: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예수님은 헤롯을 가리켜 "여우"라고 했는데 이는 매우 정치적인 발언이었고, 도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눅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13: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4)에수님 자신이 성전을 청결케 할 때에 폭력적이었고, 혁명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눅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라고 하셔서 스스로 열심당이 아님을 증거하셨고
(마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셔서 스스로 무력을 반대하셨습니다.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오히려 비폭력적이었고 무저항적이었습니다.
3.그러면 그의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 1)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생각할 때에 주님은 사랑의 주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신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시50: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시89: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암5:24)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죄를 죄되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되심의 증거였습니다. 성경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전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눅6: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주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이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 결 론 *** 1.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2.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청결은 거룩한 분노요, 공의였다.
3.우리의 성전과 나의 신앙은 무엇이 중심인가 생각해 보며, 성전의 본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