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딩 시절 6 - 음악시간과 미술시간
우리 어려서 말이다.
제대로 된 악기는 동네 어른들 칠석날, 보름날 두드리던
징, 꽹가리, 장구 등 사물놀이 악기가 고작이었잖아.
이런 악기는 [도레미파솔라시]를 기본으로 하는 교과서 음악을 연주할 수 없어.
하여, 우리 나이들은 풍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피아노를 처음 본 건 송악중학교에 입학해서이니 얼마나 촌놈인가?
건반을 치니 풍금과 달리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풍금은 쨉도 안되는 굉장한 소리라서 나는 주눅이 들고 말았다.
하여간, 초등 2학년 가을 쯤으로 기억하는데,
봉화산 밑자락 삼월리가 댁이셨던 이혜용선생님이 음악시간에 피아노를 치셨는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뭇꾼과 선녀]에 나오는 선녀인 듯 신비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높고 낮은 음계를 나타내는 소리를 처음 들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음악시간 마다 쉬는 시간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풍금은
여기저기 흠집 투성이였지만, 페달을 꾹꾹 밟으면서, 희고 검은 건반을 누르면
마술을 부리듯 신기하게도 [오빠생각] [반달] [고향의 봄] 멜로디가 술술 흘러 나왔다.
나는 음악시간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사실은 우리 3년 선배인 최고영이다.
풍금소리가 들려오면, 머리는 뒤로 약간 넘기고, 삐따닥하게 눈을 지그시 감고
[무궁화~ 무궁화~ 우리 나라~ 꽃~] 쉰 목소리로 불러대던 모습이 선하다.
요즘 학생들은 음악시간에 클래식 감상도 하지만, 그 시절에는 레코드가 없으니
오르지 부르는 것으로 한 시간을 다 보냈고, 우리들은 노래갈증이 덜 풀렸는지
음악시간이 들었던 날에는 많은 친구들이 피리를 만들어 삑~삐~ 불어댔다.
봄에는 버들피리, 여름에는 보리피리를 불어대며, 음악시간에 못 다한 노래를 대신했다.
피리를 불면 어른들은 듣기 싫으니까 핑게로 뱀나온다고 불지 말라 하셨다.
그러면 우리들의 미술시간은 어떠했는가?
보리밥 한 그릇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던 시절인데,
미술도구를 제대로 챙기는 친구들이 사실 몇 명이나 되었니?
저학년 때는 크레용과 도화지는 엄두도 못 냈고
대부분이 몽당연필로 침을 발라 가면서 뎃생만 했을 뿐이다.
내 기억으로는 김종길, 문인수, 고선화, 안성자 등이
12색이나 (제일 좋고 비싼) 24색 크레용을 가지고 왔던 것 같다.
그 크레용이 아마 왕자표였지? 꼬마신랑 김정훈이 검정색 옷 입고 모델로 나오는...
하얀 도화지 한 장이 없어서 공책 뒷장이나, 회푸대 종이에 그렸던 시절이다.
사실 나도 약간은 넉넉했는지 6학년 때는 24색 크레용을 산 적이 있다.
하여간, 선생님께서 “각자 자기 집을 그리세요?”하면,
모두가 다 초가집(문인수는 기와집이었고)을 큼직하게 그렸다.
또 공통으로 그린 것이 초가집 옆에 멀대같이 큰 미루나무를 그렸는데,
성구미에 살던 두거리 유준영이란 친구는 미루나무에 말매미를 그렸고,
회장님 손영구는 미루나무 중간에 검정색을 찐하게 칠했는데,
내가 뭐냐고 물으니까, 귀신을 그렸다고 했다.
아마도 가곡리 [상여집]이 손영구네 집 가까이 있어서 헛것을 자주 본 모양이다.
하여간 미술시간이 들었던 날은
담벼락이나 길 위에는 낙서나 그림이 유난히 많았다.
그거 있잖니? 곱돌! 하얗게 써지는 돌맹이 말이다.
그걸로 땅에그리고 쓰고 벽에 낙서도 했지
요즈음은 화장품 재료로 쓴다는 얘기가 있던데...
첫댓글 기억력이 참 좋으시군.그러니 선상님 하시겄지? 새해 복 마니 바드시게^^
칭구도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은 꼭 성취하시길 비나이다.
오래된 추억을 끄집어 내어 주니 고맙네
앞으로도 시리즈 계속 할거지?
노력중입니다. 회장님! 인간들이 많이 모이면 장이 저절로 잘 서는데... 지금 5%부족하다.
아 ! 옛날이여 ~~~ 어린시절이 그립네 . 친구들아 ~~~~,
며칠만에 들리셨구려, 자주 보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