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타령
김은영
‘아주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고’ 잘난 아들은 장모의 아들이고‘ 못난 아들만이 부모 차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들 아들은 마음을 비우라는 말도 한다. 어릴 때는 재롱을 피우고 살갑지만, 장가를 가고 제 짝을 찾게 되면 그 자식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이롭고 집안 편안한 일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 시누이의 생일이었다. 새벽에 우리 아들이 축하 문자를 보냈는데 실상 본인의 아들인 조카 녀석은 전화도 없고 생일 날짜마저도 모르고 있었다고 난리다. 그 집 아들도 문제지만 우리 아들놈도 웃긴다. 정작 내 생일에는 오후에야 몇 마디 문자로 때운 놈이.
장남인 남편을 만난 덕에 나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해 있던 때라 첫째 딸을 낳고 보니 주변에서 더 걱정하였다. 시아버님의 주선으로 둘째는 아들 가지게 되는 날을 뽑아준다는 집에 가서 날을 받아 가졌으나 딸이었다. 낳는 날 병원에서 딸이라는 말에 “왜 딸이고?”라는 말이 양가 어머니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아들이라 믿었지만 믿음은 기대에 어긋나고 말았다.
족보를 중하게 여겨 집안의 막내임에도 직접 족보를 정리하는 일을 하시던 시아버님의 바람을 나 또한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편을 써보게 되었고 어느 철학관에서 지정하는 길일에 아기를 가졌다. 막상 임신은 하게 됐지만 ‘혹시 아들이 아니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으로 당시에는 금지했던 태아 성별 검사를 하게 되었다. 물론 공식적인 방법으로 안 되어 산부인과 의사인 시누이 친구 남편에게 부탁해 임신 12주, 13주, 14주 초음파 검사를 해야 했다. 14주째에
“걱정 안 하셔도 되겠네요. 산전 검사하고 가세요.”
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믿을 수 없어 낳는 날까지 노심초사하였다.
아들이 태어나니 시아버님께서 무척 든든해 하셨고 어릴 땐 워낙 살갑게 굴기도 했고 말보다 은근히 엄마를 신경 쓰는 막내가 나 또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독립하게 된 뒤로 조금 서운할 때가 많다. 언젠가부터 연락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더니 요즘은 명절에나 얼굴을 보이고 서너 달에 한 번 전화를 할동말동 한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바빠 그렇다고 이해해 보려 하지만 이따금 그립고 서운하기도 하다.
이번 설에 온 아들 녀석이 조그만 도자기로 된 버터나이프를 선물이라며 내놓는다. 지난해 여자 친구를 만나느라 돈을 좀 쓴 걸 아는 터라 ‘겨우?’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그래도 엄마가 빵 만드는 일을 즐겨하니 신경을 써서 골라 온 거라 고맙다는 생각을 하기로 한다.
세월이 갈수록 아들은 어렵다. 딸과는 같은 성이라 그런지 소통이 쉬운데 아들은 그렇지 않다. 말수가 워낙 적은 아이라 더 그렇다. 장가를 가서 자기 가족이 생기면 더 하겠지. 마음을 비우려 해도 언제나 제자리이다. 이번 설에 터미널에 배웅하며 나는 신신당부한다.
“한 달에 한 번 연락하기, 분기별 한 번 얼굴 보이기!”
아들은 피식 웃기만 한다. 지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아들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그것이 짝사랑일지라도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