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을 타고 오는 한기가 감기를 예감케 하는지라
한달살기의 특권으로 나른하고 게으른 오전을 보냈다.
따스한 햇빛 쏟아지는 토방의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모바일 검색을 하고 차를 마신다.
5월이면 넘실대는 귤꽃의 향기로
달콤하게 온몸을 샤워하면서 제주를 한껏 흡입한다.
골목을 지나던 현지주민들이
돌담너머로 흠칫흠칫 눈살을 주면서 지나간다.
모름지기 제주 한달살기를 마음먹었을 때
오늘 같은 시간을 가장 원했는지도 모른다.
점심까지 가볍게 먹고 난 후
며칠전 방문해주었던 지인의 집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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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귀농귀촌인.
한달살기가 아니라 아예 제주살이를 선택한 사람들.
이국적 정취와 번다한 육지로부터 벗어난 듯한 일탈감.
제주를 선택한 사람들의 공통적 심상일 듯 하다.
제주에서의 귀농귀촌살이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무슨 일을 하며 얼마나 행복할까?
제주에서의 삶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선배 제주 귀농귀촌인들은 관심의 대상이다.
와인 한 병 사들고
서울에서 내려와 살고 있는 비슷한 연배의 부부를 찾아갔다.
그는 꽤 잘 알려진 공연 전문 잡지의 편집장을 지냈던 전문 사진작가였고
엇그제 나를 찾아온 공연기획전문가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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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래된 마을 깊은 골목 속에 자리잡은 소박한 집과 작은 뜨락.
돈 있는 사람들이 바닷가 언덕 위에 세운
잘 지은 저택의 위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함이었다.
부부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500여평의 귤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기농 무농약으로 감귤을 생산하여 가을이면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했다.
올 가을이면 나도 그가 나누어주는 감귤을 직접 맛볼 수 있을 듯 하다.
가격에 상관없이 그가 주는 인품을 나누는 것이니 즐거운 일일 것이다.
아랫채엔 취미생활을 이어갈 다양한 도구들이 가득하다.
오디오세트, 각종 공구들, 뜨게용구들 등등등
직접 집을 관리해야 하고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다양한 도구들을 갖춰야 하는 것이 귀농귀촌의 일상적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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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일요일이면 세화방파제 프리마켓에 참여하여
남편이 만든 커피도구나 아내의 뜨게질 작품을 판매한단다.
소박하면서 제주사람처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제주 귀농귀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