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1.28일 오늘은 금년들어 가장추운 날씨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계획대로 1000시에 경복궁 1번 출구에서 만나 사직단으로 향했다.
사직단은 인접한 주변에 도서관이며, 관리건물등 주변 환경이 너무도 어수선하고
황량하면서 엄숙함이 사라진것 같은 인상이다.
하루빨리 본래의 취지에 맞는 위상으로 복구 되었으면 - -
홍살문
동쪽(왼쪽)에 사단(社壇)이, 서쪽에 직단(稷壇)이 보인다.
율곡 이이선생 동상.
이동상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에서 1969에 건립하였는데,
어떤 이유로 이곳 사직단 옆에 건립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신 사임당 동상
1970년에 건립되었다.
사직단 뒤쪽 언덕위 도로변에 위치한 단군 성전이다.
단군성전은 이곳 말고도 태백산하에도있고, 남해 금산에도 있고 기타 다른곳에도 있다.
대략 관리상태는 잘 되지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황학정
황학정은 1898년 광무2년에 고종이 경희궁 안 북쪽에 지었다.
1894년 갑오경장이후 쇠퇴하던 민족 전통무예 국궁을 부흥 시키기 위해서 였다.
1922년 경희궁이 헐릴때 뜻있는 인사들이 힘으로아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그래서 지금은 국궁의 1번지라고 한다.
사단법인 황학정이 관리하며 국궁을 전수한다.
인왕산 호랑이가 등산로 갈림길에 돌아왔다.
한양도성 성곽길
인왕산 선(禪)바위
머리 부근에 많은 못은 누가 언제 왜 박아놓았는지?
선 바위 바로 아래에 국사당이 있는데 - - -
원래 남산에 있던것을 이곳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남산 국사당은 태조4년1395년에 목멱산을 목멱대왕으로 봉하고,
잠두봉 정상(현 8각정자리)에 목멱산신당을 짓도록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국사당으로 호칭하고 무학대사 나옹대사 지공대사등의 화상을 걸어놓았었다.
1925년 일제가 그 아래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압력을 넣어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그당시 신문에 무학현 부근으로 옮겼다고 되었으니 무악재도 무학재에서 바뀐듯하다.
인왕산 좀작살
인왕산 문인사송(文人斜松)?
340고지 인왕산 에서 내려다본 서을 시가지, 청와대와 경복궁이 보인다.
2013.11.28. 12:00. 드디어 인왕산 정상에 등극
다음은 옛날 윤동주 청년이 산책하던 그길을 따라서 내려와 윤동주문학관을 답사 하였다.
윤동주 문학관은 종로구청에서 운영하던 물탱크를 개조하여 2012년8월에 개관하였다.
1917년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윤부자집으로 유명했던집)
1925년 명동 소학교 입학
1929년 송몽규 등과 문예지 《새 명동》 발간
1932년 용정(龍井)의 은진 중학교 입학
1935년 평양 숭실 중학교로 전학
1936년 숭실 중학 폐교 후 용정 광명 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
1938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9년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
1942년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 입학, 가을에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영문과로 전학
1943년 송몽규(宋夢奎)와 함께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1945년 2월 16일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유고 시집, 1948)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불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