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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순흥 안씨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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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리 순흥 안씨 집성촌>
[정의]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고 안연(安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순흥 안씨는 시조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형보승별장(興威衡保勝別將)을 지낸 안자미이다. 순흥 안씨는 판서공파(判書公派)·부제학공파(副提學公派=양공공파)·한림공파(翰林公派)·서파공파(西坡公派)·첨추공파(檢樞公派)·공판공파(恭判公派)로 나뉘어지고 있다. 김천 지역의 순흥 안씨는 판서공파에서 갈린 서파공파가 김천시 개령면 대광리와 어모면 응명리, 부제학공파가 개령면 광천리, 첨추공파가 어모면 구례리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원조로 추앙받는 안향(安珦)이 순흥 안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입향 경위]
김천 지역에 입향한 순흥 안씨는 부제학공파 14세(世) 안연(安璉)으로 안연은 명망 있는 학자이다.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삼전도에서 치욕을 당하자 비통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양에서 아버지인 안덕충(安德忠)과 가족을 인솔하여 개령면 광천리 광한마을로 낙향했다. 또한 서파공파 21세 안상여(安象汝)는 숙종 때 순흥에서 개령면 대광리와 어모면 응명리로 이거했다. 첨추공파에서는 15세 안철남(安哲男)이 숙종 때 어모면 구례리로 입향했다.
[현황]
후손인 안승옥에 의하면 2010년 2월 말 현재 김천 지역의 순흥 안씨 집성촌은 어모면 구례리와 개령면 광천리 광한마을이며, 어모면 구례리에는 20가구, 개령면 광천리에는 40가구, 개령면 대광리 대보마을과 독정마을에 19가구, 구성면 하강리에 3가구, 농소면 입석리에 3가구가 살고 있다. 순흥 안씨가 김천에 입향한 이후 23세 안훈택(安勳宅)의子 안광보(安光普)가 감찰(通訓監察)을 지냈다.
[관련 유적]
김천 지역의 순흥 안씨와 관련된 유적은 어모면 구례리 상현마을에 있는 안정익(安廷益)이 건립한 이현서당(二峴書堂)과 문중 재실인 심호재(心湖齋) 등이다.
양공공파(良恭公派)安祖同

松山 安甲墩 선생님 별세(13회 선배 카페에서 퍼왔음) |
소식이 늦었습니다. .. .. 언제나 다정하고 인자하신 모습이시던 松山 安甲墩 선생님께서 2002년 7월 30일 부산에서 幽明을 달리하셨다.
안 선생님은 지난해 부터 건강이 좋지않아 그동안 부경대학 부교수인 부산의 둘째 아들 집에서 생활해 오시다 한동안 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면서 투병을 해오셨다.
유가족으로는 사모님과 2남2녀가 있다.
개령면 광천동에서 태어나신 선생님은 수재들이 모였던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4학년1학기까지 수료하시고 전쟁통에 학업을 중단하셨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은 김천중학교 생물선생님 겸 카운셀러이셨는데 교사로 19년8개월을 봉직하시고 영천여고, 상주고 등에서 교장으로 모두 27년8개월을 봉사하시고 97년 8월에 은퇴하셨다.
은퇴후에는 고향일에 헌신하시어서 광천동 안씨 재실인 心湖齋를 중수하시었고 모교인 개령국민학교와 고향마을 발전을 위해 우리같은 젊은이들이 죄송스럽도록 무던히도 노력하셨다.
`개령국민학교 연혁'과 `나의 뿌리는 순흥 안씨 일파 양공공파 광암공 후손이다'라는 책을 써 젊은이들을 일깨우려고도 하셨다.
선생님은 김천고보가 가까운 추풍령 공원묘지에 영면하시게 되었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 |


안덕충(安德忠)
안연(安璉)

서파공파(西坡公派)安理

안상여(安象汝)

첨추공파(僉樞公派)安從義

안철남(安哲男)

안훈택(安勳宅)
안광보(安光普)


안정익(安廷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