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선생님을 울립니까?
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지난 한 주는 역대급 홍수와 산사태가 나라 전체를 뒤집어 놓으면서 이에 버금가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국회에서 국정논의에 집중해야 할 국회의원이 200여 차례의 코인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윤리위원회에서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다. 그동안 재판을 받아오던 대통령의 장모가 징역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는 전대미문의 사건도 생겼다. 북한 김정은은 거의 매일이다시피 장단거리 미사일을 폭죽놀이 하듯 쏘아 올리며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30대 남성은 신림동을 휘젓고 다니며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죽이고 다치게 만들었다. 국제우편을 통하여 독극물로 의심되는 편지봉투를 우송한 테러사건도 벌어졌다고 난리속이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런 일들이 도대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보다 더 해괴한 사건도 터졌다.
가장 군기가 삼엄하고 용맹스런 군대라면 해병대를 지칭한다. 오죽하면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까지 붙었을까. 믿음직스런 해병대가 산사태 피해자를 수색한다고 물속에 뛰어든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물길에 맨 몸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구조를 위해서 물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준비해야 할 것은 방수조끼다. 잔잔한 호수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보트업자들도 조끼를 입히고도 단추를 채우지 않는다고 혼쭐을 낸다. 하물며 군인들이 동원된 구조 활동을 하면서 군복만 입고 물에 몰아넣은 것은 허술한 지휘체계가 한 사람의 생명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채수근상병은 그렇게 세상을 떴다. 그의 영결식은 국민의 애도 속에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었지만 부모형제와 동료들의 가슴은 언제까지라도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겹치면서 이번에는 가장 신성해야 할 초등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터졌다. 옛날부터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배우고 가르쳐 왔다. 존경하는 선생님을 최대의 경의로 모셔야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 가장 무서운 사람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면 교실이 조용해졌다.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가도 교시(校時)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쥐죽은 듯 엄숙한 자세를 취했다. 만일 이를 어기고 떠들다가 들키면 어김없이 회초리를 맞는다. 요즘 같으면 학생인권조례라는 것이 있어 어떤 선생님도 학생을 편달(鞭撻)하지 못한다. 물론 학생들에게 회초리를 들이대는 것이 자칫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과도할 때도 있겠지만 선생님의 권위는 북돋아줘야만 제대로 된 교육이 시행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학교에서 종아리를 맞고 집에 오면 시퍼런 자국이 부모님의 눈에 띤다. “너 오늘 선생님한테 혼났구나. 선생님 말씀을 어기면 더 혼나야지.” 자식이 매 맞은 것을 당연시 여겼다.
그런데 서이초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여선생은 1학년 담임선생으로서 학부모의 항의에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전국의 교사들이 들고 일어나 교사의 생존권을 부르짖었겠는가. 이런 일들이 벌써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교육은 집에서 간섭할수록 뒤쳐진다.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최우선이다. 또 양천구의 6학년 교실에서는 여선생님의 머리채를 잡아 넘어뜨리고 주먹과 발길로 수 십 차례 구타하여 병원에 실려 가는 패륜사건이 터졌다.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하니 이러고도 교육이 제대로 되기를 바란다면 인간세상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6학년 남학생이라면 여선생 하나쯤 눈에 뵈는 게 없을 수 있다. 요즘 ‘촉법’을 핑계로 절도와 폭력을 휘두르는 어린이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이들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징치가 필요하다. 부모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무 죄도 없는 선생님을 누가, 왜 울리는지 전 국민이 깨닫고 교육권과 생존권이 보장되도록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