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악회의 영어 이름은 현재 New York Korean & American Alpine Club입니다. 본래는 NY Korean Alpine Club으로 하려 했으나, 외부에서 이미 뉴욕주에 같은 이름으로 등록해 버려 부득이하게 & American을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시간이 흐르면서 “Alpine Club”이라는 명칭이 무엇을 의미하고, 우리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알아보니 “Alp”라는 말은 라틴어 **albus(하얀색)**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사시사철 눈 덮인 알프스도 그 어원으로 알프스가 되었으며, “alpine”은 자연스럽게 눈과 얼음이 있는 고산지대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1857년 런던에서 설립된 The Alpine Club은 마터호른을 비롯한 알프스의 미답봉들을 초등하며 근대 알피니즘의 출발점이 되었고, 이후 영국은 수많은 원정대를 조직해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습니다. 당시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였기에, 더 높은 산을 최초로 정복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고, 결국 남의 땅에 있는 산조차 에베레스트라는 자기네 사람 이름으로 불러 버렸습니다. 우리 설악산의 대청봉이 ‘나까무라봉’이라 불린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일제와 서구로부터 산악문화를 받아들인 것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산악회’라는 말 자체가 일본에서 건너온 용어였고, 그 영향으로 초기 대학 산악부와 Corean Alpine Club 역시 고산등반을 산악활동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이킹, 백패킹, 암벽등반은 모두 고산등반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여겨졌습니다. 저 역시 대학 시절 산악부에 들어갔을 때,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고산등반을 위해 암벽과 빙벽 훈련은 필수였고, 동계 설악산에서 20여일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다음 학년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뉴욕한미산악회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 받고, 태평양을 건너오신 선배님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고, 자연스럽게 영문 이름 또한 Alpine Club이 되었습니다.
물론 고산등반의 기쁨을 결코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높은 산을 목표로 삼아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 동료들과 우정을 쌓으며 함께 캠프를 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여정 속에서 고산등반이 지닌 가치와 매력을 존중하고 추구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활동은 훨씬 더 폭넓습니다. 하이킹, 트레킹, 백패킹, 암벽등반, 가족 산행, 환경보호 활동(예: 김봉현 형님의 활동), 그리고 실제 고산등반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Alpine Club”이다 보니, 자칫 고산등반이 우리 활동의 중심이자 궁극적 목표인 것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토니에게 “Alpine Club” 하면 어떤 이미지냐고 물어보니, 역시 알프스나 히말라야 고산등반 단체가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외부의 시선이 절대적 기준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도 특정 활동이 우선시되고, 그에 참여하지 않는 회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습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어떤 음악 동호회가 포크송, 트로트, 발라드,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즐기고 연주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모임의 이름을 “○○재즈클럽”이라고 한다면, 실제 활동은 폭넓고 장르 간 우열도 없는데, 마치 재즈만이 그 단체의 중심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이름 하나가 모임의 정체성과 활동의 균형을 왜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가까이서 잘 아는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이킹클럽이나 여행클럽의 회원이라면 충분히 어울릴 수 있지만, 제가 상상하는 “무시무시한 Alpine Club”의 회원이라고 하면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막상 함께 캠핑을 가면 누구보다 회원들과 잘 어울리고, 음식을 준비하며 분위기를 살리는 중요한 회원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Alpine Club”이라는 이름이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Alpine Club보다는 Mountain Club이라는 이름이 더 포괄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 생각합니다. Mountain은 특정 등반 스타일이나 난이도를 전제하지 않고, 산을 중심으로 한 모든 활동을 담아냅니다. 하이킹을 즐기는 회원, 암벽등반을 하는 회원, 백패킹이나 트레킹을 추구하는 회원, 고산등반을 원하는 회원, 환경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서열이나 구분 없이,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산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대표 단체들인 Sierra Club, Colorado Mountain Club, 그리고 Apalachian Mountain Club 등은 이름에 alpine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만약 Sierra Alpine Club이었다면 고산등반 전문 단체로 보였을 것입니다. 대신 넓은 개념을 택해 하이킹·탐방·환경보호까지 아우르는 열린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산악회의 이름을 꼭 Mountain Club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선배님들이 지으신 이름은 존중하며 그대로 이어가되, 우리가 그 이름을 폭넓게 이해하고 다양한 활동과 의견을 담아낸다면 충분합니다. 아마도 제가 그동안 좁게 생각해 왔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된 듯합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첫댓글 아 그렇군요. 또하나 알아갑니다.
벌써 4년 5년차 회원인 저는 고산을 추구하거나 암벽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말 시간내어 자연에서 운동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더 활기찬 매일이 되었던것같습니다.산과 자연을 사랑하는사람들이모여 다른 취향을 존중하고 발전시키면서 바쁜 생활속 잠시쉬며 몸과마음을 건강하게 함께하는 우리가되었으면 좋겠습니다.여지껏처럼^^
나까무라봉이 안된게 천만 다행입니다!^^^
읽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