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 년 10 월, 그분이 나에게 상담하러 왔다.
내가 그 부인의 얼굴을 보니, 병의 증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화장 탓으로, 내가 심안으로 자세히 보니까,
내장이 구조도처럼 확실히 나와 있어,
자궁의 부위가 공 모양으로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고,
게다가 유착되고 있는 입체도가 보였다.
내가 그것을 말하자 부인은,
< 실은 한 달에 10일 가까이는 항상 고통받고 있어요.
20년 가까이나 참아 왔어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치료를 하면 좋을까요.>
라고 질문하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동경의 00 병원의 00 의사와 상담하여,
올해 12월 2일에 입원하세요.
그 결과 당신은 내년 2월 중으로는
지금까지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내가 예언한 대로 되었고,
그 부인은 완전히 회복되어, 현재는 대단히 건강하며,
마음의 위대함을 깨닫기 위해
인생의 바른 생활 실천에 기쁨을 느끼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또 이런 예도 있었다.
1970년 5월,
나에게 한 사람의 청년이 새파란 얼굴을 하고 방문하였다.
하지만 그 청년은, 내 앞에 앉은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 나는 위장입니다.
이 분은 폭음 폭식으로,
시간에 관계없이 식량을 보내 오므로 난처합니다.
우리는 밖에서 일정한 운동을 하거나 쉬면서
컨디션을 조정하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미안합니다만, 당신이 배에 8할이라는 것을 이 분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그 청년의 " 위장의 의식"이 내 귓가에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위장이 이 청년 대신에 얘기한다고 하는 것은 드문 일로,
그것을 들은 나는, 청년에게
< 당신은 위장이 안 좋은 듯 하군요.>
라고 얘기를 건네자
< 잘 아시는군요. 말씀대로입니다.
나는 오랜 기간 위장이 나빠,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있었습니다만,
뭔가 우리 집에 액운이라도 있어 이와 같이 몸이 안 좋은 것인가요>
라고 청년은, 마치 내가 역술가인 것처럼 질문해 왔다.
나는 이 청년의 심정을 생각하여 불쌍하게 여겼다.
이 청년은,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액운 탓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 자신이 이러한 병에 걸린 것인지,
전혀 반성 따위는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 당신은 위가 안 좋은데도,
언제나 무언가 먹고 있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것 같은데,
배는 80%만 채우라는 말을 알고 있나요>
라고 한 번 더 질문했다, 그러자 청년은
" 나는 말랐습니다만, 많이 먹어요.
먹지 않으면 위가 아파요. 어떻게 안 될까요.>
마침내 나의 이야기에 놀라 나를 봤다.
처음은 반 장난삼아 찾아왔으므로,
맞는 것도 팔괘, 맞지 않는 것도 팔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청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내가 그 수호령에게 묻자,
< 점쟁이도 의사도 아닌데, 타인의 몸속까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친구가 말한 대로, 불가사의하군.>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를 바보로 생각하고 있었던 이 청년도,
마침내 솔직하게 자신의 몸의 상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육체의 지배자인 의식마저도
< 나는 위가 안 좋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의식의 의지의 약함이
위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청년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 당신은, 아침에 야채즙 한 홉과 벌꿀, 빵의 가벼운 식사를 하고,
점심, 저녁 식사는, 죽과 된장국 한 그릇 정도로,
그다음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1개월 지속하면 좋아집니다.
그 후 의사에게 안심을 위해 진찰받으세요."
하지만 일주일 정도는 지금까지의 등속도 운동적인 현상이,
고통으로 되어 나타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덧붙여 전해 두었다.
그 후, 이 청년은, 나의 가르침을 지켰기 때문에,
자신을 이길 수가 있었다.
군것질도 없어지고, 일주일 가까이는 괴로웠던 것 같으나,
현재는 완전히 회복하여,
체중이 늘어 양복을 모두 입을 수 없게 되었다고 걱정을 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自身)의 마음의 유혹을 이기는 것은,
그 생활 행위에 대한 자신(自信)으로도 되어 가는 것이므로,
자제심도 강하게 되고, 이성(理性)도 작용하도록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는, 우리의 그룹 안에 대단히 많고,
일일이 예를 들 시간이 없다.
이처럼 육체의 제기관도 의식을 갖고 있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안 것도 일례에 불과하다.
장도 피곤하였을 때에는, 위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피곤으로 녹초가 되어
< 이제 어떻게라도 해 주세요. >
라고 될 대로 되란 식의 말투로 얘기한다.
그런 사실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육체의 제기관의 의식도,
결론은, 혼이 타는 배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지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선장인 의식, 그 중심인 마음이 확실하게 해주지 않아서는,
그들도 협력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육체는, 항상 그 주인에게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무모한 생활을 하지 말고,
소중하게 취급하는 것이 육체에 대한 보은일 것이다.
몸 밖으로 배설되어 가는 오물에 대해서도,
그 영양의 공적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배설물이 막히거나 하면 큰일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들어가는 것에도, 나오는 것에도,
우리가 무시하여 아무렇게나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육체는, 모체(母體)를 빌려,
육체로서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신불과 약속하고 나온 생명이며,
언젠가는 그 사명과 목적을 다하고,
자연으로 순환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혼과 육체는,
이처럼 인연에 의해 묶여,
인간으로서의 수행은,
그 위에서만이 성립되고 있다고 하는 자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