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사투리로 일본어가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데,
원투스리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들여 키운 자식을 보내는 부모같은 것이었다.
수호령인 후완 신 후와이 신포도 옆에서 눈물을 억누르고 있었다.
나는 인간쓰레기였던 것이다.
지도령이 옆에 있어도 맹인과 마찬가지로 알지 못했던,
마음(양심)이 없었던 내 모습--,
나 역시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32 년간 찾아 헤매왔던 인생의 가치를 깨닫고 기뻤다.
신은 우리의 선한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 알 수 없었던 신의 마음에,
아내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욕망과 허영덩어리였던 나,
집착의 화신이었던 나 ---.
하지만 지위도 명예도 돈도 필요없고 죽어도 좋다고,
모든 집착심을 버린 7월 12일부터,
인생의 사고방식이 180도 바뀌었다.
내 마음을 감쌌던 어두운 구름은 맑아지고,
지금까지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났다.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일체의 집착심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망쳐왔던 것을 깨닫고,
지금은 참으로 평화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마음의 어두운 구름이 개이면,
실재계의 빛의 대지도령과
이렇게 이야기하며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사후세계등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체험을 하게하고 싶다.
문득 내 마음속에,
사람들의 마음에 인간의 사명과 목적을 설명할 때가 올 것이라고 각인되어 갔다.
원투스리는 아내 옆에 서 있었는데
곁에 있는 후완 신 후와이 신포와 뭔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포는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가 남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애로 넘치는 눈이었다.
신포는 원투스리에게 뭔가 재촉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서 원투스리는
<나.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모세라고 불렸던 사람. 원투스리. 나의 약칭.
여기에 있는 사람. 후완 신 포아이 신포.
2천년 전,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예수라고 불린 사람.
당신, 처음, 이 사람의 이름. 예수라고 말하면.
성서. 암기해 버린다. 잘못. 두렵다.
지금. 당신의 길 알았다. 비로소 진짜 이름 얘기해 준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의문이 스쳐갔다.
그것은 너무나도 놀라웠으니까, 그러자 곧바로
<당신. 믿지 않는다. 사실 .나. 모세>
라고. 내 마음속에 울려오는 것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모세라는, 예수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성서를 암기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원투스리는,
자기자신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에게 번번이 주문을 하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전날의 일과 관련하여 그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제는 괜찮다고 하여 두 사람은 본명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실재계의 빛의 대지도령들의 자애에 넘친 배려,
눈 먼 채 고락의 인생을 보내며
헤매는 사람들의 마음에
인생의 의의와 가치와 목적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도 아이를 달래듯이 가르쳐준
이 지도령과 수호령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전생윤회(轉生輪廻)의 과정에서
체험하고 배워 온 위대한 보고(寶庫)의 문을 열어,
의식 속에 기록되어 온 신의 자식으로서의 길을
차례차례 생각해내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신리(神理)에 맞는 마음의 본질과 생활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마음에는 구름이 없어지고,
신의 빛으로 충만되어 가는 것이다.
스스로의 지혜와 결점을 수정하는 스스로의 용기,
하루하루의 노력에 의하여
우리는 인생에의 도를 높여 가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에 있다.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할 때,
인간은 욕망에의 집착이 없어지고, 스스로 만족함을 깨달아간다.
인생의 목적은,
보다 풍요로운 둥근 마음을 완성하고,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조화된 유토피아를 이 지상계에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지위도 돈도, 일체의 재산을 갖고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만약 갖고 돌아간다면 갖고 가는 것은 집착심이다.
스스로 욕망의 포로가 되어
마음의 왜곡이 만든 어두운 구름에 휩싸여
신의 빛이 차단된 채,
힘든 지옥계에서의 반성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나라를 전생윤회(轉生輪廻)하여 현재가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이집트에, 이스라엘에, 인도에, 중국에,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우리의 잠재된 의식 속에는 그 기억이 모두 기록되어있다.
물질, 경제, 지위라고 하는 육체적 조건을 제외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것, 사고하는 것,
장점과 결점이 과거세와 현세에 걸쳐
만들어져 가는 상념의 총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억의 테이프레코더의 스위치를,
우리는 스스로 잘못된 생활행위에 의해 켤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생활환경은
스스로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학습의 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초 일초의 마음과 행위의 본질이,
우리의 의식의 기억실에 모두 기록되어간다.
이윽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선(善)한 중도(中道)의 마음으로
그 상념의 일체를 스스로 재판하고,
미래의 나라에 가는 인생의 명암을 결정하는 것이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며,
두려운 것은 인생항로의 중도(=양심)를 이탈하여
생활을 한 사람들의 행위와 상념이며,
그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배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격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천상계, 지옥계, 현세, 과거세로
차례차례 지도령, 수호령에게 가르침을 받아
인생의 가치를 깨달아 가는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