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6
지난 열이틀동안의 모스포 여행은 날씨 면에서 행운이었다.
모로코에서의 3일은 맑고 따뜻하며 상쾌한 날씨였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습하지도 않았고 공기도 상쾌했다.
스페인 입국 후부터 포루투갈을 거쳐 다시 스페인을 종주하는 과정에서의 열흘 남짓한 시간동안도
항상 맑고 청명한 하늘이었고 날씨도 덥거나 차거나 하지 않았다.
여행하기엔 최적의 날씨였고 행운이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몬세라트에 가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떠나던 날 아침
뜻밖에 하늘이 찌뿌등하더니 마침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우리의 여정의 끝을 아쉬워하고 있고 있는 건가?
사실 이번 여정이 아쉬운 건 하늘편이 아니고 우리편이다.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 여행이 이처럼 황홀하고 아름다운데
불과 두 주도 되지 않는 수박 겉핥기 여행이 어찌 슬프고 아쉽지 않겠는가?
몬세라트는 거대한 베이커리 선반 같은 산이다.
제멋데로의 수많은 바게트빵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우후죽순이 되어 선반에 꽂혀 있다.
그 험준하고 거대한 빵산의 품에 안긴 수도원은 기묘하다는 느낌이다.
몬세라트 수도원을 마주하며 갖는 감상은
어떻게 이렇게 험준한 산 허리에 이처럼 거대한 수도원을 건축하였을까 하는
공학적 건축학적 질문과 무관한 것이다.
우리 인류가 지구상 수많은 곳에 펼친 엄청난 유적들을 통해
인간의 그러한 능력들은 이미 기원전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위대한 상상력과 기술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카탈루냐의 수호성인 검은성모상이나 소년합창단, 이냐시오성인의 동굴 등
몬세라트가 지닌 다양한 관심사는 이미 잘 알려진 것이지만
나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다.
질문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의문과 맞닿아 있는데
그것은 이곳 수도원처럼 전세계 곳곳에 세운 봉쇄수도원 수도자들의 삶에 대한 것이다.
중국의 현공사(懸空寺)에서 느꼈던 그 아득함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또한 봉쇄적이다.
지금은 케이블카로, 열차로 그 길이 열려 이미 관광지가 되었지만
몬세라트 수도원도 예전엔 철저히 고립되고 비밀에 쌓인 봉쇄수도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왜 스스로를 그토록 처절하게 봉쇄해야만 할까?
봉쇄수도사들의 삶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고 자신과 자신의 신과의 계약이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역설적으로 봉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지의 박약함의 징표이다.
불자는 스스로의 몸을 불태워 소신공양으로 등신불이 되기도 하고,
신자들은 목이 잘리는 참형조차도 두려움없이 받아들여 순교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의지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인식체계인가?
비 오는 날의 몬세라트 수도원 방문은 다시 한번 인간 존재의 나약함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되살렸다.
오늘도 그 의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얻진 못하지만
성조르디 조각상의 눈동자 따라 옮겨가는 의식의 흐름으로 생각을 이어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