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에 갇힌 연합군 34만명의 운명은??-
1940년 5월 프랑스의 100만에 달하는 그랑다르메가 -_- 독일군의 함정에 빠져 순식간에 분쇄되었고, 그나마 바다쪽에 있어서
피해가 적었던 영국군의 독일군의 기동전에 밀리고 밀려 바닷가로 밀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패잔병들이 모인 덩케르크에서
연합군은 언제 독일군이 처들어오나 전전긍긍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더 이상 진격해오지 않았습니다. 제 2차대전의 미스테리
중하나가 발생한거죠. 후일이야기 입니다만, 독일육군은 A집단군 사령관 룬트슈테트 상급대장의 명령으로 진격을 멈췄습니다.
룬트슈테트는 히틀러의 명령이라고 했죠. 역사가들은 영국에게는 호의적이었던 히틀러가 34만명이나 되는 연합군을 학살or포로
로 잡는 거 대신 돌려보내서 영국과 협상을 하려는 생각이었다는 설도 있고, 괴링이 자신있게 공군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던것을
믿고 육군에게 휴식을 주려고 했다는 설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여간 육군은 포위망을 더 이상 좁히지 않았고,
연합군은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한편 영국해군은 이 고립된 병력을 구하기 위해 수송선 및 민간 선박을 징발하였고, 영국국민
에게 이 들의 구출작전을 호소 했습니다. 영국인들은 자신의 선박을 주거나 아니면 '해군 새퀴들 못믿어 내가 직접간다'라며
직접 작전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작전명 '다이나모'라 명명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구명정에 몸을 싣는 영국군-
1940년 5월 27일부터 시작된 이작전은 영국군에게 행운이 있었는지 구름이 많이 끼는 흐린 날씨 덕분에 독일 공군의 공습 걱정
없이 순조롭게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5월 29일 처음으로 독일군의 중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급강하 하는 슈투카 어딜도망가??-
독일공군의 슈투카는 급강하하면서 선박들을 주로 노렸고, Bf109및 Bf110기들은 해안가에 모여있는 병력들에게 기총소사를
퍼부었습니다. 말그대로 아비 규환이었죠. 하지만 영국도 가만히 앉아 당할수는 없었고, 즉시 영국공군기들이 파견되어 하늘에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비행중인 영국 허리케인 부대-
하지만 낮은 구름으로 인해서 하늘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대해 잘 몰랐던 영국 육군은 '우리 공군기 다 어디갔어 ㅅㅂ'를
외쳤다고 합니다. 덩케르크 상공의 날씨가 워낙 좋지 않아서 헤르만 괴링이 장담하던 공군력 만으로 작전을 성공시킬수 있다는
말은 허언이 되어버렸고, 6월2일까지 영국육군 19만명과 프랑스군 14만명이 영국으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6월 3일 덩케르크
외곽을 수비하던 프랑스군 2개사단은 독일군에 항복했고, 결국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연합군의 성공적인 작전으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연합군도 만만찮은 피해가 있었으니 중화기와 중장비들은 전부 해안가에 버리고 탈출해야했고, 비록 날씨는 좋지 않았
지만 독일공군의 집요한 공습에 9척의 구축함과 9척의 대형 수송선 그리고 200여척에 달하는 선박이 침몰했고, 200여척의 선박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하늘에서도 독일 공군이 132기를 잃었지만 영국공군은 무려 474기나되는 공군기를 잃었습니다. 이 철수한
병력은 후에 독일군을 괴롭혔습니다. 한편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끝나고 뒤늦게 진입한 독일 육군은 연합군이 남기고간 장비를
수습하면서 괴링을 욕해대기 바뻤습니다. 독일 공군은 한편 용감히 싸우던 영국 공군의 전투기들을 잊지 못했습니다. 지금껏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난적없이 일방적으로 이겨오던 싸움에서 호적수를 만난 느낌이었을까요? 독일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영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용기와 자신들의 Bf109기와 맞먹는 성능을 지닌 영국 공군의 기체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국 공군의 자존심 스핏파이어 독일 공군은 이 기체의 전투력에 감탄했습니다-
한편 이제 독일 육군을 저지할 프랑스 군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수도 파리까지 지척인 벨기에를 점령했기에 독일 육군은 빠르게
파리로 향했습니다. 1940년 6월 14일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독일군에게 점령되었고, 급히 수도를 비시로 옮긴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했습니다.
-파리 점령 인증샷-
한편 독일에서는 빨리 영국을 공격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 괴링을 위시한 독일공군 장성들은 그 작전의 선봉에 공군이
서게 될것이고, 하루 빨리 공군을 프랑스로 배치 시킨뒤에 영국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공격을 가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가 반대했죠. 히틀러는 묘하게 영국에겐 관대했습니다. 그는 영국과 강화조약 혹은 명예로운 항복을 제시할 생각이었
습니다. 일단 독일 공군은 모든 동원가능한 병력을 미리 프랑스로 배치 시켰고, 미리 작전계획을 짜놓고 있었습니다. 한편
파리 관광온 히틀러는 제 1차대전때 참전했던 감회가 새로웠는지 파리관광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동안 영국은 물자를
비축하고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히틀러는 수많은 외교채널로 영국에게 강화 혹은 명예로운 항복을 제시했지만 영국은
그런 제안을 그냥 무시했습니다. 머리 끝까지 화가난 히틀러는 결국 7월 4일 영국을 침공하는 명령에 사인했습니다.
이는 영국 항공전의 시작이었습니다.
-도버 해협 건너 영국을 바라보는 독일 공군 장성들-
첫댓글 영국공군의 피해 기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죠? 이 전투를 서술한 다른 글들은 독일공군과 영국공군의 피해를 비슷하게 기술했는데 말입니다...,
위키피디아 참조했습니다
이제 영국 항공전이 시작되겠군요..
ㅋㅋㅋ점령인증샷 ㅋㅋㅋ
그래도 도버해협은 좀 좁은편이니까요 (날씨가 좋으면 대륙에서 보이는 정도니-_-;;) 급한대로 아무렇게나 내려진 낡은 구명정에 줄줄 새들어오는 바닷물을 철모로 퍼내고 모자라는 노대신 소총 개머리판으로 노를 저어가며 귀환한 병사들도 있는 판이라니까 뭐 ㅋㅋㅋ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 임기응변이라는게 참 대단한거 같습니다.
좁다고 해도 가장 좁은 폭이 40km라던데요 ㅎㄷㄷ
대체 히틀러는 뭘 믿고서......;
아..뭣 떄문에 히틀러가 진격을 멈추라고 했는지 읽었었는데 기억이 안나..
이제 기다리던 영국 본토항공전이군요. 오오오오오 기대기대 기대 만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