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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강숙려의 풀꽃 문학
 
 
 
카페 게시글
이런 저런 일 스크랩 피겨 약소국의 한 소녀
풀꽃 추천 0 조회 31 13.06.15 05: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서 같은 시기에 경쟁선수로 활약했지만,
둘이 걸어온 길은 전혀 달랐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돼" "피겨를 하다니 미쳤다"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들으며
김연아가 엄마와 둘이서 걸어온 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20대 중반이면 노장이나 다름 없는 피겨 선수의 길.

국내 피겨 선수가 약 100명이 채 되지 않는
피겨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난방이 되지 않는 태릉선수촌에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롯데링크장에서
연습하고 아파했던 김연아는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걸었습니다.




피겨 선수를 위한 경기장이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김연아는
끊임없는 노력과 재능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한국 피겨계에서 처음 나온 월등한 실력의 김연아는 어렸을 때부터 견제와 시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신들과 같은 환경에서 훈련했던 선수가, 자신들의 옆에 함께 서있던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란 것을, 자신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선수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질투하고 험담했습니다.

 

자신의 밥그릇이 줄어들까 염려한 어른들은 그녀에게 은퇴를 권하고,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언론의 힘을 이용해서 압박을 가했습니다.


한 때 그녀는 돈이 없어 코치없이 홀로 비행기를 나고 낯선 경기장에 홀로 들어서야 했고,
허리부상을 입은 채로 13시간을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며 악화된 허리부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등에 테이프를 동여매고 진통제를 맞은 상태로 참가한 대회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메달을 땄고,
여분의 부츠가 없어 투명테이프로 부츠를 고정한 채 경기에 참가했고,
우승한 후엔 갈라복이 없어서 똑같은 옷을 입고 갈라무대에 서야 했습니다.

김연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심판들이 점수를 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견고하고 놀라운 점프들은 그만큼 그녀의 몸에 충격을 주어
발톱이 몇번씩 빠지고, 허리부상을 입고, 내장이 한쪽으로 쏠리고,
발목이 휘어지고, 무릎과 허리와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치팅점프를 뛰는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발목을 확실히 꺾는

김연아의 발목은 눈에 띄게 휘어져 있습니다.)

 


점프를 하기 위한 회전은, 연습을 하지 않을 때에도 가끔씩 김연아에게 두통을 줍니다.
지금도 고관절 부상의 여파로 엉덩이쪽 근육을 쓰지 못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운 점프들의 여파들은 김연아의 몸에 그 결과를 더욱 깊이 드러낼 것입니다.


치팅은 생각도 안하고 거친환경에서 오로지 정석으로 뛰는 점프들은
김연아가 사용하는 약한 부츠에도 그 여파를 그대로 미쳤고,
한달이 채 지나기 전에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부츠에 매달 적응하기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였습니다.
이는 김연아와 엄마의 다툼을 발생하게 하는 원인이 되어

양쪽 모두에게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주었고,
한 때 두 사람은 은퇴를 생각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하던 김연아는 후원을 받은 후부터
매년 꾸준히 기부를 하여 지금까지 20억이 넘는 금액을
국내 피겨계의 발전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어린 국내 선수들을 지도하는 김연아)



김연아는 지금껏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였습니다.

07월드. 일본에서 열린 아사다 마오의 시니어 월드 데뷔를 위해 마련된 대회에서
부상입은 몸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놀라운 데뷔를 한 주인공은 김연아였습니다.

08월드. 스웨덴에서 열린 유럽 대표 카롤리나 코스트너를 위해 마련된 대회에서
부상으로 힘겨워하면서도 관중들에게 기립박수를 이끌어내며 대회의 분위기를 바꾼 것은 김연아였습니다.

09월드. 처음으로 부상없이 참여한 대회에서 김연아는 압도적인 연기로
세계 피겨팬들과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마지막까지 따라온 오심논란과 압박감 속에서도
완벽한 연기로 누구도 이의달지 못할 금메달을 얻었습니다.

 


 

 

 

 



처음 보는 국적에 생소한 이름.
피겨계에 연고지도 없었고, ISU에서 간판 하나 사줄 수 없는 선수.

처음보는 나라의 선수에게
자신들의 오랜 터전이였던 피겨계에서의 정상 자리를 주려고 하지 않았던
심판들과 피겨계의 원로들을 오로지 재능과 노력으로 수긍시킨 것입니다.

 

 

 


 


국가적인 돈을 들여 명실상부한 피겨스타를 키우고자 했던 일본의 시나리오는 무너졌습니다.
자신들의 스타를 띄우기 위한 도구로 삼았던 김연아가 진정한 승리자가 될 지
아사다를 발굴한 직후 진행된 아사다 금메달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일본 빙상연맹 중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연아의 역대 성적 - 김연아는 지금까지 참여한 모든 대회에서 3위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성적을 냈던 선수는 1960년 캐롤 헤이스 이후 김연아가 처음입니다.)


 


 

 

 

 


 

 

1990년 9월 5일 태어나다.


 

 

 

7살, 피겨스케이팅을 처음 시작하다.

미쉘 콴을 보며 피겨 선수의 꿈을 키우다.

 

 

 

 

13살, 처음으로 참가한 국제대회인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에서 우승하다.

 

 

14살, 국가대표로 선발되다.

 

 

 

 

16살, 주니어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하다.

 

 

 

 

 

 

17살, 시니어 데뷔 후 첫 세계선수권에서 쇼트 프로그램 신기록을 세우다.

부상투혼 중에 한국인 최초로 동메달을 따다.

 

 

  

18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프리 프로그램 세계신기록을 세우다. 

쇼트에서 5위를 한 후, 진통제를 맞고 프리에서 부상투혼을 펼쳐 프리 1위를 하고 동메달을 따다.

 

 

 

 

 

 

19살, 처음으로 부상없이 참가한 세계선수권에서 여자선수로서 처음으로 200점을 넘어서며 우승하다.

 

 

 

 

 

 

20살, 시즌 첫 대회에서 또다시 세계신기록을 세우다. 전 그랑프리 시리즈를 우승하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쇼트와 프리 모두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228.56점이라는 압도적인 점수로 여자 피겨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한국인 최초로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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