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해군 50년사의 "파병 및 확장기"에서 백구부대에 대하여
① 최초로 파월된 LST-812함
②월남 해군본부
③백구부대기 수여식(사이공강 부두의 DD-91(충무)함상 1966. 5.31) ④백구부대 수송실적
⑤정박중 경계태세
⑥물자 하역작업
⑦베트공 로켓트 포화에 피격당한 LST-815함(1968. 6.15)
⑧장비 및 물자수송작전
⑨LST함상에 가득 적재된 차량들
⑩군수물자 적재작업
⑪월남인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백구부대 의료반
⑫백구부대 개선환영식 후 시가행진(1973. 3.20) 등 증거가 있고,
월남전쟁터에서 수집한 탄피와 차량 및 기타 많은 군수품(무기류포함) 등을 월남에서 한국으로 수송한 사실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미군 몰래 조치한 사항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기 어려움은 있겠으나 월남파병의 대가로 한국이 얻은 이익이므로 자료를 공개하여야 할것인 바 자료의 공개를 청구합니다. 당시 제3대 백구부대 홍기경 사령관의 증언내용을 증거자료로 제출합니다
문 :탄피를 수송하여 획득된 자금은 어디에 ?
답 : 병사들이나 초급장교들의 경우 전투수당의 80%를 본국에 송금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귀국박스는 채울 것이 마땅치 않았다. 이점을 감안하여 주월사에서는 병사들이 탄피를 귀국박스에 넣는 것을 용인하고 있었다. 따라서 부지런한 병사들은 주변에서 탄피를 수집하고, 부피를 줄이기 위하여 불로 달구고 망치로 때리고 해서 대략 100여개 내외를 포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현장에서 팔려 나갔다. 대략 1개당 5,000원 정도로 기억된다. 지금 현재 시세로 따지면 5만원 정도라고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대에서 수송한 탄피는 개인용도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모두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춘천 제일 고등학교와 중경고등학교의 설립자금도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물자 수송이 있었다. 하나의 예로써, 당시는 1.21청와대 기습사건 직후였다. 이 때문에 대통령께서 최신의 소총이던 M-16소총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청와대 경비와 연구를 위해서 M-16소총을 본국에 보내기로 하였다. LST의 물탱크에 숨겨서 수송을 했다. 기타 전화선 등도 수송을 했는데, 당시에는 국내의 부두에 대 간첩작전을 위해 설치된 해안초소에도 유선시설이 없었다. 그러다가 월남에서 들어오는 전화선을 이용하여 유선화가 된 사례도 있었다. 아무튼 당시의 정상적인 군원 물자보다는 월남에서 비공식적으로 실어오는 물자가 더욱 많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보결정 통지서
가. 파월 백구부대의 임무는 사이공항을 모항으로하여 월남의 주요항구인 다낭. 나트랑. 푸콕 등에 군수물자의 수송지원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나. 파월장병들이 귀국 중에 발생한 내용으로 백구부대의 임무와는 무관한 내용들입니다. 따라서 백구부대의 증언내용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체험담을 증언으로한 내용으로, 해군의 역사자료를 심도있게 검토한 결과, 증언에 대한 사실여부는 해군역사 자료를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음을 통보합니다.
비공개사유 : 개인의 체험을 기록한 증언으로 파월 백구부대 고유의 임무와는 무관한 사항이1니다. 따라서, 해군의 관련기록 자료로서는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