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DadIUa1hi8
왕상 16장 14절까지 읽었습니다만 오늘 함께 살펴볼 내용은 16장 전체입니다. 모두 다섯명의 왕이 등장하는데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인데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그리 많은 것도 안됩니다. 단순한 패턴이 반복되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다는 패턴입니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한구절씩 짧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아사 같은 경우 바아사에 대한 평가가 7절에 나옵니다.
엘라는 바아사의 아들인데 이에 대한 평가는 13절에 나옵니다.
그 다음 시므리는 엘라왕을 암살하고 왕이 된 자인데 이때 엘라왕이 암살당할 당시 백성들은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는데 왕궁에서 엘라왕이 죽고 시므리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시므리를 인정하지 않고 전쟁터 현장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새로운 왕으로 세웁니다. 왕이 두 명이 공존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오므리가 군대를 이끌고 왕궁에 와서 불을 지르니까 왕궁안에 있던 시므리가 상황이 불리하게 된 것을 알고서 그 자리에서 자살함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시므리가 엘라왕을 죽인 지 7일만에 자살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시므리에 대한 평가는 19절에 나옵니다.
그 다음 오므리가 왕이 되었을 때 무리가 둘로 나뉘어져서 디브니라는 사람을 좇는 파와 오므리를 따르는 파로 나뉘어져서 둘이 쟁탈전을 벌이다가 오므리가 이김으로 오므리가 왕이 됩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가 되었다는 내용이 24절에 나옵니다.
오므리에 대한 평가는 27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오므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자가 그 유명한 엘리야와도 대결을 벌였던 아합왕입니다. 북이스라엘 19명의 왕들 가운데 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아합입니다. 32절과 33절에 아세라 신전과 바알신전을 세운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부인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입니다. 아합에 대한 평가는 30절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 다섯명의 왕들 공통점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악한 왕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이 되고 시므리는 자결합니다.
바아사도 왕이 될 때 그 전 왕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된 자입니다. 바아사나 시므리나 패턴이 같습니다. 오므리도 시므리를 잡기 위해 왕궁을 포위하는 가운데 시므리가 자결했기 때문에 오므리도 절반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고 죽이고 하는 패턴이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바아사와 엘라는 부자지간이고 오므리와 아합도 부자지간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 외에는 모두 혈투가운데 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다섯명의 왕들이 등장하던 기간은 모두 35년이라는 것입니다. 35년 동안에 다섯왕조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이 다섯명의 왕들이 세워지는 때에 대해 남유다의 아사왕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3절.. 아사왕 3년째에 바아사가 왕이 되었고
8절.. 아사왕 26년째에 엘라가 왕이 되었고
15절.. 아사왕 27년째에 시므리가 왕이 되었고
23절.. 아사왕 31년째에 오므리가 왕이 되었고
29절.. 아사왕 38년째에 아합이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아사왕 3년째에 바아사가 왕이 된 것을 시작으로 아사왕 38년째에 다섯 번째 아합이 왕이 된 것이므로 아사왕 3년째부터 38년째에 이르기까지 35년에 걸쳐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알게 되는 중요한 사실은 남유다 한 명의 왕 아사가 통치하는 동안에 북이스라엘은 다섯명의 왕이 교체될 정도로 매우 불안정하고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데 전장 15장에 보시면 아사가 통치하는 동안에 다섯명 왕이 아니라 한 명이 더 추가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15장 25절에 보시면 아사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남유다에서 한 명의 왕이 통치하는 동안에 북이스라엘에서는 여섯명의 왕이 교체되는 매우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섯명의 왕들이 교체되는 동안에 백성들의 삶이 과연 평안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불안정하고 불안한 정국을 맞이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와 국방력의 문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못했던 이유 때문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바로 서지 못한 이유로 인해 이런 배신, 암투, 살인 정국을 보낼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억하실 것은 지도자의 악함에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백성들의 지적, 영적수준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만 이들은 시므리가 왕을 암살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전장터에서 오므리를 왕으로 삼고 시므리를 타도하러 왕궁을 향해 나아간 것이나 오므리가 성공한 후에도 디브니를 또 다른 경쟁왕으로 삼은 것을 보면 무조건 좀비들마냥 따라다니는 존재들만은 아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 왕이 된 이후에 북이스라엘 왕국 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남유다로 넘어왔다는 내용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을 보면 깨어있는 백성들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이나 왕이나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한마음으로 범죄함으로 인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남유다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왕국이었지만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부터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언약을 계승한 왕국입니다만 북이스라엘은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남유다도 부족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이 그 밑바탕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멸망직전까지 갔어도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이고 북이스라엘은 그야말로 듣보잡 여로보암이 등장해서는 왕국을 이끌겠다고 하더니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만 것을 보게 됩니다.
열왕기상하 다음에 역대상하가 나오는데 역대상하는 남유다만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북이스라엘만의 역사 이야기는 왜 성경에 없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된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인정하는 역사와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에 어쩌면 북한과 대한민국의 상황과 북이스라엘 남유다가 유사한지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한은 현재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으로 모시는 종교집단입니다. 나무위키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김일성 동상, 흉상만 약 35000개로 파악이 된다고 합니다.
남북한의 경제적 차이가 개인은 30배, 국가는 60배 차이가 납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인정하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도 결코 안정된 상태는 아닙니다. 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영적으로 돌아보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이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는 가장 필요한 일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34절입니다. 여리고를 건축할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하신 말씀과 같이 그대로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 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 6장에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에 여호수아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내용입니다.
여리고성은 가나안을 대표하는 성입니다. 가장 크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른 첫 번째 전쟁이 바로 여리고성입니다. 성경에서 첫 번째 것, 장남, 은 모든 것을 대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담이 죄인된 인류를 대표하고 예수님이 구원받은 인류를 대표하고 가축의 첫새끼는 모든 가축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가나안을 대표한다는 것은 죄악으로 가득찬 가나안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래서 무너진 여리고성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신 죄악을 다시 불러일으킨다는 의미를 담은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가나안 땅의 죄를 답습하거나 모방하거나 따르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서 여호수아가 선포한 것입니다.
그것이 잘 지켜지다가 북이스라엘 아합 왕 때에 히엘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여리고성을 세우다가 장남과 막내가 죽는 불행한 일을 겪게 된 것입니다. 남유다 땅이었다면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동조하고 따르는 정치지도자들을 볼 때마다 여리고성을 세우던 히엘이 떠오르게 됩니다. 김일성 사상은 단순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이단종교와 같은 것이고 우상숭배와 같은 것인데 이것을 아무렇지 않게 동조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앙인으로서 국민으로서 참으로 불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 심지어 분노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나라를 망하게 할려고 하나...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정명석 이런 것만 이단이 아니라 김일성 사상은 더욱 무서운 사상인 것을 우리 신앙인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면 장남이 죽고 막내가 죽는 불행한 일을 겪게 됨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나라가 되기를 위해서 그래서 쓰임받는 나라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인의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믿음을 물려주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쓰임받는 온유교회 권속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