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매와 쪽잠
-한세월 불야성지고
-동구능 언저리
월매와 쪽잠
서정원
쪽잠은 언제나 월매를 불러드렸다
웅크린 잠자리* 파고 들적에
남산골 불어오는 밤꽃 그 수컷 비릿한 냄새
잠 못드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태백이 놀던 저 둥근달 속
절구질하는 옥토끼 한쌍 그림자 비추고
6월의 여름날 쓸쓸이 환자복을 입은 아내
우두커니 처다보는 내눈에
둥둥 떠다니는 술잔의 향기* 얼큰해
옛적 춘향이 시절 생각나
척추로 몸을 다친 생의 동반자
그늘 드리워진 병실에서
실없이 웃고있다
*백병원
*술이름(월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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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월 불야성지고
서정원
떡방아간에서
떡치는 소리 요란하다
그옛날 전쟁이 이강토 휘감던 때
목에 풀칠하기 어렵던 여인들
하나둘 모여들어 방앗간 차리고
돈벼락 맞았다는 소문에
신장 방앗간이 줄을이어 문을 열었다
한세월 파시의 등불 불야성을 이루다
어느때 부턴가 북풍이 사나워 남쪽 바닷가 고을로
이삿짐을 옮긴 떡치던 젊음들
어둠의 장막 드리워진
용주골 떡방아간
이제는 드문드문 늙어서 서러운
젊을때 떠나지 못한 여인네들만
어둠이내린 방앗간 불빛만
한밤 내내 졸고 있다
어긋난 사랑 단거리 사랑 생겨난 아이들
사랑도 울고 버림받은 여인들
바람으로 잠시 만난 사랑
바다건너 울음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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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능 언저리
서정원
조선왕조 문을 연
이성계 장군묘(健元陵) 찾아가는 날
폭염은 저 산 너머 어딘가로 떠나고
10월 바람에 발걸음이 앞선다
빛나는 유네스코에 이름을 올린 깃발이
갈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저무는 고려왕조 잠재우고
오백년 조선왕조 이땅에 세우려
떠오르는 대륙의 명나라 시조 주원장과 힘겨루기하며
반도에 불어오던 바람 잠재운 이
여기 잠들어있다
자신의 유언대로 함경도에서 떠온
고향의 억새풀로 잔디 대신 지붕삼고
영욕의 조선 왕조 오백년 내내
지금은 동강난 한반도 지켜보며
‘어명이다 정신들 차려’
억새풀 사이로 쩌렁쩌렁 봉분안의 소리
울려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