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극복을
임성욱
(시인/사회복지학박사)
며칠 전, 시골에 있는 아주 작은 요양원을 다녀왔다. 사회복지현장실습지도 교육을 위해서. 필자가 지도교수이기에 매번 광주·전남·북 일대를 사회복지현장실습 지도점검을 위해서 순방한다. 그런데 상기한 요양원은 여타의 사회복지시설 및 기관과는 달리 유난히 애착이 가는 곳이다. 건물 자체는 작은 편이다. 그런데 방문하러 갈 때마다 이상스러울 정도로 편안함이 느껴진다. 마치 안데르센(동화작가, 덴마크, 1805~1875)의 동화에 나오는 동화마을 건물 같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이곳의 원장은 상당히 젊어 보이면서도 노인복지에 대한 노-하우(know-how)가 있어 보인다. 특히 치매(dementia)노인에 대해서. 그래서 방문할 때마다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런데 며칠 전에 방문했을 때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원장 및 실습생들과 함께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특히 치매의 진행 정도에 따라 그에 적절한 시설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누는 등. 대화의 주안점은 주로 보조성(subsidiarity)원리에 대한 거였다. 보조성의 원리는 국가 또는 상위의 집단이나 단체가 개인이나 하위 집단 또는 단체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원칙을 의미한다. 보조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살펴보면 이 뜻이 명확히 드러난다. 보조성이라는 개념은 라틴어 ‘subsidium(예비, 보조)’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원래 로마 시대의 군사용어로서 전방에서 싸우는 부대에 대해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비 부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즉 보조성의 원리는, 모든 상위 질서의 사회는 하위 질서의 사회들에 대해 지원과 발전의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로마의 비오 11세 교황은 1931년 발표된 회칙 ‘사십주년’에서 단순히 도와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상위 단체가 하위 단체의 역할을 뺏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원리를 통해서 각 개인과 여러 하위 집단의 자율성이 상실되는 것을 막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가정에서든, 시설에서든 치매 환자를 대하는 방법도 보조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케어(care)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으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적절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케어하는 자의 입장에서 리드해 간다는 사실이다. 이럴 경우, 치매 환자의 상태는 더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치매 환자는 한 인간으로서의 양질의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되고 케어하는 입장에서도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대상자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역사회가 모두 우울 모드로 변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조성 원리에 입각해서 극복해가라는 것이다. 이는 곧 케어하는 자도 언젠가 비슷한 전철을 밟아갈 때 극단의 상황만은 벗어날 수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식사할 때도 대상자가 스스로 즐기면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라는 것이다. 식사 후에는 대부분의 경우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침대에 누어있거나 멍하니 TV만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을 탈피하도록 패트병을 모아 각자에게 나눠줘서 고추나 꽃 등을 키우도록 지도하면 무료함을 이겨 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현재까지는 치매를 완치하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극단의 상황으로까지는 몰고 가지 않을 거라 생각되기에 최선의 노력만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건강한 상태에서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에게도 해당되기에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