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암의 봄
찻물에 온몸이 푸른 여인들
화엄에 둥글게 빚어진 여여한 얼굴로
붉게 발효했다
봄빛은 방안의 차향에 젖어
무지개 빛이었다
‘쑥을 캘 때는 남의 보따리를 보지 말고,
엉덩이를 움직이지 마라’
영혼에 엉키는 그 범문
마음에 살포시 들어와
생의 길에 부끄러움이 앉는다
어린 쑥은 정진의 살이 붙어
향기도 무 였다
쑥의 소쿠리에 붉은 열정들 설렘의 봄빛들
햇살 가지로 실크 빛이다
서운암 장독대에 여자로 앉아
묵언정진 중이다
금산사
천년을 살다 부처로 태어난 나무
세상이 꽁꽁 언 날
목와불, 부처의 몸속에 들어간다
감로단의 칠 여래불 목 탱화 아래
두 손을 모았다
극락전의 백 팔 아미타불
환희심의 길 위에 삭발한 붉은 몸의 여자
전율로 선다
세상을 비추는 인등의 눈앞에
생의 누적된 빚
와불의 금 옷에 길이 있다는 보살
순간에, 긴 밝음을 끌고 밖으로 달린다
도시철도 계단에 엎드린 얼룩진 육신의
부처에 길들여진 추위
천년 목어의 비늘이
물결에 흔들리는 소리
빈 마음에 감긴다
꽃무릇
꽃무릇 몇 포기를 스님의 꿈에서 꺼내 온다
마음을 닦을수록 울대가 비치는 푸른빛
여자를 닮았다
가을을 찾아 걷는 꽃잎의 모습
노을 되어 아련하다
꽃물을 훔친 석양
벌컥벌컥 서리를 마시며
시린 추억에 푸른 잎을 키운다
달빛을 바라보며 풍경 밑에 가만히 앉았는데
여린 꽃술에 앉은소리들
겨우내 푸른빛 기억해
한사코 이별이란다
한밤 묻혀오는 고요
달빛 아래 퉁퉁 부은 가을
혼자 푸르게 젖는다
백영희
약력: 94년 월간 시문학 등단
부산시인협회, 여류시인협회, 바다문학회부회장
부산문인협회, 금정문인협회이사
부산시문학, 목마, 금정동인
시집 물속에서 하늘보기외 1권
e메일: mearib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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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4집
10년 원고 백영희
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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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2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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