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미로는 티끌이 모여서 태산을 이룬다 지만
실제로는 티끌이 곧 태산이라는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티끌을 떠나서 태산이 존재하지 못하고
태산이 없이는 티끌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시적인 세계의 눈으로 본다면
티끌 하나에도 무수한 태산이 존재하며
태산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티끌 하나에
불과한 것임을 물리학자들은 증명합니다
결국
'티끌이 있으므로 태산이 있고
태산이 있으므로 티끌이 있다'
'티끌이 없어지면 태산도 없어지고
태산이 없어지면 티끌도 없다'
는 수학의 방정식과 같은 등식이 성립되니
이는 곧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생기 연기연멸
즉 연기의 법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법문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잠시 시내에 내려가서
백제시대 성왕이 세웠다는 대통사지에 남은
당간지주와 석물들을 보고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520년대에 세웠다고 전하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5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시기에 지어졌던 절로
당간의 주변에서 대통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고 전합니다
1971년 릉이 온전하게 발굴되는 바람에 이목이 집중되었던
성왕의 아버지인 무령왕부터 양나라와 교류를 통해
한성백제에서 잃어버린 국력을 회복하려 노력하던 때이고
양나라 무제의 년호가 대통이었기에 양무제에 대한 답례로
대통사라는 절을 지었지 않은가 하는 설과 함께
법화경에 나오는 대통지승여래라는 불명호에서
대통사라는 절 이름이 생겼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양나라 무제는 전에도 소개한 것처럼
불심천자라 불리울만큼 불교를 위해서
천불 천탑을 짓고 경전을 간행하는 등 노력한 인물로
불조의 맥을 이어 왔다는 달마대사와 만났다가
자신의 불사한 공덕이 하나도 없다는 대답에
기함을 해버린 왕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대통사 당간지주는 보물 150호로 지정되고
주위는 천여평에 가까운 지역이 보호구역으로 꾸며져서
소나무도 심어져있고 정자도 몇개 만들어져서
주변에 사시는 노인 어른들이나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휴식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진기를 가지고 당간지주의 동서남북 방향과
아래서 위로 두손을 뻗친듯 보이는 잘생긴 두개의 석주를
사진기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노라니
천오백년전의 영화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이제 가을의 단풍이 제법 물들어서 조락의 계절이 되니
당간지주 주변으로 구르고 흐르는 낙엽들조차
웅진(곰나루)백제의 영화와 한을 노래하는듯 합니다
당간지주 주변으로는 커다란 주초석들이 여러점 있는데
아마도 어떠한 전각의 주춧돌로 사용되었으리라 보여질만큼
네모꼴의 모양의 음각과 둥근 모양의 돋을 새김등이 있습니다
성왕은 무슨 까닭에서인지 모르지만 대통사를 짓고나서
사비로 천도를 하는 것으로 백제의 부활을 알리는듯 했으나
결국은 백여년후 의자왕대에 이르러 멸망의 길을 밟았으니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역사는 뺏고 뺏기며 싸우는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만큼 크고 작은 전쟁의 역사였나 봅니다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해도
집권자들이 이해관계 속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나면
그밑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백성들은 그저 부평초처럼
전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떠돌다가 돌아가버리고 하였으니
그같은 역사를 놓고 보면 이 땅 어느 한곳도
피와 한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음을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군주들은 욕심으로
이땅을 백성의 피로 물들였다면
보살은 반대로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피로 이 땅을 물들였으니
둘 사이에 피를 보기는 마찬가지지만
하나는 돌고도는 인연과보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해
영겁을 두고 고통의 바다에 떠돌아야하는 고해의 길이요
하나는 죽음으로 생사해탈을 이루고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대비관음보살의 천수천안이 아님이 없다 하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대통사 당간지주가 있는 바로 앞에는
일제시대 공주 갑부였던 김갑순씨 살던 집자리가 있고
제민천 방향으로는 일제시대 신간회 활동을 하고
초대 민선 도지사를 한 서덕순씨 집터 자리도
검은 오석에 위치를 표시하며 표지석으로 남아있으니
부처님 머무셨던 자리가 분명코 명당은 명당인가 합니다
과거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없는 과거 역시 생각할수 없으니
만약에 잘못된 과거가 있다면 바로잡을 곳은 오직 현재이고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려 노력을 하다보면
과거의 잘못은 저절로 정립되게 되어 있는 법이라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숙고할 때라 생각됩니다
과거 내가 엮었던 신문으로 본 공주불교 책자에
김갑순씨가 제민천에서 거둔 석불상 한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느곳에 모셔져 계시는지 알길이 없고
천오백년전의 백제의 영화를 어떻게 되살려낼지에 대해서는
지금 시세가 점점 위축되고 인구도 줄어들면서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공주의 숙제입니다
대통사지와 주변을 사진으로 찍어서 앨범란에 올렸으니
한번들 보시고 천오백여년전의 백제가 오늘에 어떤 모습으로
재조명되어야 할지 미소를 떠올리며 살펴보소서
충담스님이 경덕왕의 청에 지었다는 안민가 한수 적습니다
임금은 아비여/
신하는 사랑하시는 어미여/
백성은 어린 아이라 할 때/
백성이 사랑을 알리라//
탄식하는 뭇 창생/
이를 먹여 다스릴러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하실진대/
나라를 보존할 길 아노라//
아, 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태평하리이다.//
이 모두가 부처님 덕분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