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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스크렙 스크랩 이사야서에 나타난 ` (ber t)` 의 신학적 의미 I
임금택 추천 0 조회 43 10.09.30 13: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사야서에 나타난 '     (ber t)' 의 신학적 의미 I

박경철

1      개념에 대한 일반적 이해의 문제

구약성서 안에서     는 예나 지금이나 구약성서신학의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져 왔다. 또한 이 개념은 구약과 신약성서간의 논쟁 때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방민족들 간의 문제를 다루는 곳들에서 언제나 중심 개념으로 다루어져 왔다. 아울러 오늘날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대화의 논의에서도 한편으론 유대교에 대항하여 기독교 정통성을 주장하는 전통적인 주장들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기독교회의 새로운 자기이해와 유대교와의 새로운 관련을 맺고자 노력하는 입장에서도 역시      는 항시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에 대한 연구와 모든 논쟁들, 그리고 신구약성서 간의 이해의 문제 및 유대교와의 대화에 있어서도 제일 먼저 고려되어야 할 문제는 바로 그 용어상의 문제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계약(Bund)'이라고 번역하는 데 있다. 그리고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 이라는 조항이 결코      라는 용어와 함께 쓰이지도 않고 또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약형식문 (Bundesformel)" 이라고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구약성서의      라는 용어를 '계약' 이라고 번역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이 개념이 마치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협약과 같은 의미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계약이라는 이해를 구약성서 내에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련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구약성서가 말하고 있는      개념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는 쌍방간의 계약이 아니라 하나의 '일방적인 의지표명 (einsetige Willenserkl rung)' 이라는 말이 적당하다. 이런 의미에서 Kutsch는      에 대한 적당한 번역으로 '계약'이라는 말 대신에, '의무, 규정(Verpflichtung, Bestimmung)' 이라는 말을 제안한다. 자기 자신이 지우는 스스로의 의무 (Selbstverpflichtung)라는 의미가 인간의 측면에선 '서약'(수 9,15; 시 89,4; 겔 16,8), '맹세'(시 105,8-11; 신 4,31; 7,12; 8,18), '법'등의 의미를 지니고, 하나님의 입장에선 하나의 '약속'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Cr semann은      라는 용어의 이해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의무규정과 그 상대역으로서 인간이 이행해야하는 의무조항이라는 문제는 항상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그는 "구약성서 내에 반영된 계약신학은 [....] 쌍방간이 이행해야 하는 계약사상(Vertragsdenken)과는 전혀 그 거리가 멀다" 고 말한다.


한마디로 구약성서의      는 쌍방간의 계약사상도 아니고 쌍방간에 이행해야 하는 의무조항도 아니다. 다시 말해 야훼 스스로의 의무와 그 상대역으로서 인간의 의무는 서로 조건부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 별개의 것이라는 말이다. 중요한 문제는 이제      라는 용어가 성서 본문의 각기 다른 문맥에서 그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다. 우선 구약성서 내에서      개념이 야훼 스스로의 의무와 함께 인간의 의무가 병행되어 나오는 중요한 제사문헌의 두 본문(아브라함계약: 창 15장; 17장, 노아계약: 창 9장)을 통해 구약성서 내의      개념의 그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2 야훼 자신의 의무와 인간의 의무로서의     
2.1 아브라함 계약(창 15; 17장)

비록      단어가 창 15장과 17장에서 아브라함과 관련되어 나타나지만, 각각 그 의미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 두 장 모두에 쓰인      는 이미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도 결코 쌍방간의 계약개념으로 쓰여지고 있지 않다. 창 15장과 17장에서      용도의 차이가 있다면, 창 15장에서는 단지 야훼 자신이 지는 의무사항만이 나타나는 반면, 창 17장에서는 야훼의 의무조항과 함께 인간이 이행해야 할 의무 조항에 대해 다루고 있다.


창 15장은      '세레모니(Zeremonie)'로써의 하나의 제의 행위(        )에 대하여 말한다. 물론 여기서      는 앞서 지적한 쌍방간의 '계약'의 의미가 아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겠다는 야훼만의 약속이다. '        ' 세레모니는 계약체결 당사자들이 짐승을 쪼개고 그 사이를 지나감으로써, 이후 계약체결 당사자 중 누군가 계약 불이행시 그 쪼개진 짐승과 같이 처벌을 받을 것임을 서로 약속하는 상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주의해 볼 것은 창 15장의 제의절차에서는 오직 야훼만이 쪼개어진 짐승 그 사이를 지나간다는 점이다. 이 말은 야훼 그 자신만이 의무 조항을 이행하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 아브라함이 지게 될 그 어떤 의무조항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단지 깊이 잠들어 있을 따름이다(12절 상반절). 18절 상반절에 있는 "야훼가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고"의 표현은 결코 야훼와 아브라함 사이 쌍방간의 계약체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 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쪼개어진 짐승처럼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당사자란 오직 야훼뿐이다.


창 15장의 야훼의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은 야훼 자신만이 갖는 의무이다. 그 약속은 땅과 자손 그리고 온 민족과 인류에게 미치는 축복의 약속을 담고 있다(특히 창 12,1-3 참고). 창 15장의 야훼 자신이 지는 의무조항은 바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민족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을 말해준다. 단지 인간이 이행할 것이라곤 야훼의 약속에 대한 믿음뿐이다(창 15,6). 온 민족들에겐 그들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해당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결국 온 민족, 온 인류의 축복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온 민족들의 구원에 대한 관점은 바로 이사야서 전체의 신학적 주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사야서에 나타난      개념을 다룰 때 좀 더 자세히 언급하게 될 것이다.


창 15장이 오직 야훼만의 의무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는 반면, 창 17장은 일반적으로 '아브라함 계약'이라고 불린다. 본문에 나오는 '영원한 계약'(         )은 야훼가 아브라함이 온 민족의 아비가 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는 야훼 자신의 의무임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된다(2-9절). 인간의 의무사항으로 나오는 것은 할례조항이며 이것이 계약의 표시로 나타난다(10-14절). 비록 창 17,1-22내에서      단어가 매우 중요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사용되곤 있지만, 창 17장에서 역시      개념이 결코 쌍방간의 계약 개념으로는 쓰이고 있지 않다. 또한     가 본문에서 하나님과 인간 양쪽에 함께 관련되어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이행해야 할 의무조항의 여부가 하나님 스스로의 의무조항에 그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창 17장에 나타난 야훼 스스로의 의무조항은 단지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까지 지워진다(17절 상반절:                 ). 8절의 가나안 땅에 대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보여주는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분명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민족의 조상이 될 것(6절 상반절            , 참고 12,2: '큰 민족'          )임을 밝힘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임과 동시에 온 민족의 하나님임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민족들과 구분할 수 없다. 이는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온 민족들과 관련지어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4절, 5절 하반절, 6절 상반절).
요약하자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는 하나님이 한편으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온 민족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의 '영원한 의무'(         )인 것이다.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이는 하나님과 민족들과의 그 어떤 관련도 생각할 수 없다(참고 사 19,25; 42,1-6; 45,18-23; 출 19,5f.; 슥 8,23).


창 17장에 나오는 인간의 의무행위로서의 '할례'의 문제는 이상의 하나님의 의무와 어떤 관련을 맺는 것일까? 창 17,10-14에서     는 항상 그 주체가 하나님 자신(      10.13.14절)이고 이와 연결된 것이 바로 인간이 이행해야 할 것으로써의 할례이다. 할례는 하나님과 인간 그 관계를 보여주는 '계약의 표시'(        )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무 조항인 할례는 곧 야훼가 자신의 의무인      를 인간의 몸에 새기시는 영원한 계약의 징표가 되는 셈이다(13절 하반절). 무할례자는 그의 백성으로부터 추방(    니팔형)을 당할 것이다(14절). 그러나 창 17장 아브라함 계약에 나타난 인간이 이행해야 할 의무 조항인 할례와 연관된      는 하나님의 의무인      에 그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은 또한 아니다. 결국 할례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며 온 민족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 자신의 의무조항을 변경시킬 수 있는 그런 쌍방간의 계약개념으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안식일과 할례 준수는 포로기에 와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밝히는 신앙고백의 규정(status cofessionis)이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포로기시대부터 할례의 요구는 단지 외적표시가 아니라 내적인 문제, 즉 '마음의 할례'(신 10,16; 30,6; 겔 44,9; 렘 4,4.14.18; 9,25)로 그 강조점을 바꾸고 있다. 이사야서 전체에서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문제는 백성들의 마음의 문제에 그 초점을 맞춘다. 비록 백성들이 야훼께 가까이 나아오며 그 입으로 야훼를 찬양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 마음은 야훼로부터 멀어져 있다고 말한다(사 29,13). 백성들의 마음은 악을 즐기며(사 32,6), 그 마음이 깨닫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이해하지 못한다(사 44,18). 백성들의 이 사악한 마음의 문제는 바로 정의의 문제이다. 죄지은 백성들의 마음은 정의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사 46,12; 57,1).

 

 이완 반대로 하나님의 구원과 그의 정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깨닫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토라를 받아들이는 자에게 선포된다(51,6-7). 야훼는 상한 마음을 위로한다(57,15; 61,1; 65,14; 66,14). 이사야서는 전반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의 문제를 중요시 여기는 반면 그 어디도 할례 준수를 요구하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할례 준수를 '계약을 지키라'(        )는 창 17장의 아브라함 계약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 56장에서는 '나(야훼)의 계약을 붙잡으라'(         )고 말한다. 사 56장에서 '지킨다' 라는     와 연결된 것은 야훼의 계약이 아니라 안식일이다. 만약 사 56장의      개념이 창 17장 아브라함 계약과 관련이 있다면 이는 할례 준수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고 온 민족, 인류의 하나님이 되실 거라는 약속에 들어있는 하나님 자신의 스스로의 의무조항과 관련된다. 사 56장에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고자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권고는 이스라엘과 온 민족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당신의 신실하신 의무(     )의 약속을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사 63,16에서 야훼의 종이 탄원하는 장면은 이를 더 분명하게 말해준다. 비록 사 63,16에 언급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이 분명하게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그리고 탄원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보다도 야훼의 종들의 신실한 믿음의 고백에 그 중심을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탄원하고 있는 야훼의 종들은 야훼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 야훼는 그들의 아버지이며 속량자이다. 사실 "야훼는 누구이며 그의 이름이 무엇인가?"란 주제는 사 63-64장의 근본 주제이다. 또한 '속량자 야훼' 주제는 이사야서 제2부와 3부의 근본 주제이기도 하다. 이 고백은 이어지는 다음장인 사 64,7-8에 다시 나온다. 여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표상인 '아버지 야훼'와 '창조주 야훼'가 하나로 묶여있다. 탄원자는 "우리는 모두 당신의 백성"이라고 외친다. 하나님의 백성의 표상과 하나님 자신의 표상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또한 이 고백 뒤에는 창조주 하나님은 바로 온 인류의 하나님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하나님 표상은 바로 창 12; 15; 17장에서 말하고 있는 온 민족들과 관련된 하나님 관련 사상과 그 맥이 다르지 않다. 이사야서 제3부 전체에 흐르고 있는 야훼의 종 공동체(Gottesknechtsgenmeinschaft)는 아브라함-이스라엘이라는 혈육 공동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온 민족들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 자신의 약속에 근거한 신뢰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훼의 종들'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방인들까지도 새로운 야훼의 종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길이 열려 있다. 이스라엘과 온 민족들과 관련된 하나님 표상은 민족들의 순례를 말하는 종말론적 표상으로 이사야서 전체 앞, 뒤를 감싸고 있다(사 2,2-5; 66,18-24). 이 주제는 이사야서 전체에 여러 다양한 표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다. 한마디로 아브라함 계약의 표시로써 쌍방간의 계약 개념이 아닌 한쪽 편인 인간의 의무조항으로서의 할례의 문제는 이사야서 전체에서 민족들에 대한 종말론적 구원의 표상에 있어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 63장의 탄원자가 아브라함이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탄원하는 것은 이들이 곧 무할례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계약에서는 인간의 의무라는 측면에서 오직 할례자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지만, 사 63장의 탄원자는 아브라함 계약의 인간의 의무조항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무인 약속에 의지한다. 이들은 아브라함을 저들의 아버지(조상)로 부르지 않고 야훼를 아버지로 부른다. 이 점이 이사야서의 새로운 야훼의 종 공동체 성격을 말해 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에 따라서 할례자(아브라함/이스라엘)의 하나님임과 동시에 무할례자(민족들)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이사야서 전체에 할례 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스라엘만의 구원이 아니라 온 민족들의 구원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2.2 노아계약(창 9,1-17)과 이사야서의 평화사상
창 17장과 마찬가지로 창 9,1-17의 이른바 노아계약 역시 9-17절의 야훼 자신의 스스로의 의무조항과 함께 4-6절에서는 인간의 의무조항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역시 쌍방간의 계약개념으로      는 쓰이고 있지 않다. 창 9장에서      는 오직 야훼에게만 쓰이고 있고, 창조행위가 야훼에게 전적으로 속한 것이라면, 영원한 언약의 표시(        )로써의 '무지개'를 야훼가 손수 하늘에 두셨다는 것은 이 언약의 표시 역시 야훼에게 속한 것임을 보여준다. 야훼는 무지개를 보고 당신의 언약, 즉 다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언약(의무조항)을 기억하신다는 것이다(15.16절). 이것이 노아계약에 나타난 야훼 스스로의 의무이다.


히브리성서 안에 야훼의      가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 없이 온 인류, 나아가 모든 생명체(11.15.16.17절       )와 관련이 되어 나타나는 곳은 오직 이곳 밖에 없다. 현 정경의 최종형태의 모습 속에서 보면 노아계약에서 처음으로      개념이 나오는 것인데, 이는 그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관련된 모든 계약의 개념들보다 선행되는 개념으로 쓰임으로써 이 노아계약에 따라 그 이후 모든 계약들이 이루어 진 것임을 보여준다. 비록 히브리 성서 곳곳에 하나님과 민족들의 관련이 많이 언급되곤 있지만, 그러나 그 어디도 민족들과 하나님이 자신의      를 맺으셨다는 곳은 없다. 성서는 이스라엘만이 계약의 백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창 9장에 나오는 모든 생명체와 맺으신 하나님의      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 이것은 이사야서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노아계약 안에 나타난      개념은 그 어디도 하나님 스스로의 의무와 인간이 지켜야할 계명들간 쌍방간의 계약개념으로 쓰이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들(창 9,4-6)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할 지라도 그로 인해 하나님이 스스로 지는 의무조항(9-17절),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언약이 파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행해야 할 계명들과 야훼의 의무행위 이 둘 모두 온 인류 나아가 온 생명체의 보존이라는 문제와 함께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이행해야 할 계명들이란 바로 야훼가 금지시킨 조항들로 생명체의 피를 땅에 붓지 말라는 것(4절)과 6절의 살인금지 행위이다(참고, 레 17,10이하). 야훼의     , 그가 지켜야 할 것은 홍수로부터 온 생명체를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일이다. 한마디로 노아계약이 보여주는 것은 한편으론 인간들이 지킬 계명들과 다른 한편으론 야훼가 이행해야할 의무조항이 모두 온 생명체를 보존할 것이라는 동일한 주제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주제와 이사야서와의 관련은 어떤가?


성서는 홍수심판의 이유가 '온 생명체'(      )들의 '폭력'(   )과 동물들과 인간들간의 불화에 있었다고 말한다(창 6,13). 심판 이전의 폭력을 금지하는 것, 노아계약을 통해 인간과 동물들 사이의 모든 죽임의 행위들의 금지(9,5)가 이제 온 생명체와 맺으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평화의 규정이라는 것이다. '온 생명체' 폭력으로 인해 홍수 심판이 왔다면, 이제 그런 폭력을 근절하고 '온 생명체를 보존함으로써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창조의 규정이다(9,10-17).


노아계약에 나타난 창조세계 보존은 무언가 새로운 것임을 말한다(참고 창 1,28/9,1.7; 1,29-30/9,3-4). 홍수 이후 새로운 창조세계 보존은 이제 더 이상 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약속으로 시작되고, 이 시작은 바로 야훼 계약의 시작임을 현 정경의 모습이 전하는 의미이다. 이 계약의 시작은 곧 이스라엘과 하나님간의 관계를 이어가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임을 말하는 것이다. 심판과 구원의 주체는 오직 야훼에게 달려 있다. 야훼의 자기 백성에 대한 구원사의 모습은 언제나 노아계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이 스스로 지게된 자신의 신실한 언약의 의무조항에 의해 죄지은 자기백성을 영원히 심판한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함으로써 그의 구원사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서의 근본 주제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가 바로 출 32-34장에 나타난 '죄와 용서'가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금송아지 사건과 새로운 돌판'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노아계약에서 인간들이 이행해야 하는 계명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세계 보존의 근본주제와 동일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세계 보존의 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라고 보여준다. 비록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하신 언약의 의무이행을 통해 그의 구원사를 계속 이어나가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들 역시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존의 구원사역의 동역자임을 강조한다. 이 창조세계 보존의 동역은 바로 이 땅에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하는 폭력의 근절과 살인의 금지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사역은 온전히 하나님 혼자 일하시는 모습으로써의 두 번째 하늘과 두 번째 땅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있는 이 땅 위에서 피흘림이 없는 인간의 행위가 반드시 관련되어야 하는 세계의 시작을 가리킨다. 그런데 노아계약에 나타난 이러한 평화의 새 세계 사상은 이사야서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사야서 전체를 감싸안고 있는 첫부분과 끝부분인 사 2,2-5과 66,22-23에 나오는 종말론적 표상인 온 민족들 나아가 온 생명체(      )의 순례를 그리고 있는 점이다. 사 2,2-4은 모든 민족들 간의 전쟁의 종식과 함께, 나아가 아예 모든 전쟁 무기들과 전쟁연습까지도 종식되는, 온 땅에 진정한 평화가 실현되는 세상을 말한다. 이러한 세상이 실현되는 장소인 시온이 바로 온 민족들의 순례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민족순례의 전제는 바로 시온의 정의와 평화이다(참고, 사 1,26-27). 이런 모습은 야훼의 거룩한 산 위에 모든 동물들이 함께 평화를 이루고 살 것이라고 말하는 사 65,25과 그 평행본문인 사 11,6-9과도 동일하다. 사 65,25의 평화사상은 사 65,17이하의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와 묶여 있다. 그리고 이 새 하늘 새 땅의 주제는 그 다음 장인 이사야서 가장 끝에서 민족들의 시온 순례와 함께 다시 나타난다(사 66,22). 한 마디로 말해서 '새 창조, 종말론적인 평화사상, 사회정의의 실현 그리고 민족 순례'의 주제들은 서로 떼어 낼 수 없는 하나의 통일된 주제라는 것이다.


노아계약에서의 피흘림의 금지 사상은 이사야서 곳곳에서 무고한자들의 억울한 피흘림로 인한 불의의 문제와 함께 나타난다. 사 1,15이하의 "너희들의 손에 가득한 피"는 사회 하층민들에 대한 사회 불의에 대한 고발이다. 이전엔 공의와 정의가 넘쳐나던 시온이 이젠 창녀의 도시로, 그 안에 살인자들이 가득하다고 고발한다(21절).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시온을 공의와 정의로 다시 회복시킬 것이다(27절). 사 59,3 역시 공의도 정의도 사라진 모습을 두고 '너희들의 손에 가득한 피'라고 고발한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구원은 그의 피흘림의 죄악이 씻어짐을 통해서 가능하다(사 4,4). 불의한 피흘림이 그침으로써 비로소 평화가 찾아들 것이며, 피묻은 옷이 불태워진 다음, 평화의 왕권이 공의와 정의의 실현을 통해 이루어 질 것이다(사 9,4-6). 야훼는 결코 억울한 피흘림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야훼의 심판의 날에 땅이 그 속에 스며든 피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며 억울하게 살해당한 자들의 누명이 더 이상 감추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사 26,21). 정의는 결코 피흘림의 살인과 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 정의롭게 사는 자는 살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에 그렇다(사 33,15).


아울러 노아 홍수 이야기 안에 들어있는 '온 세상을 흔들어 뒤엎으신다'는 심판의 모티브는 온 땅에 대한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사 24장에서 특히      개념과 함께 나온다. 민족들이 시온으로 몰려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 60,8에는 무엇보다도 노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 8,8-11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 60,8 하반절에서 민족들이 시온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비둘기가 창문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창 8,8-11 홍수가 멈추고 방주의 창문 안으로 다시 돌아온 비둘기 모습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이사야서 곳곳에 나오는 불의한 피흘림에 대한 고발과 비난의 말씀이 노아계약에서의 피흘림 금지조항과 서로 연관이 있다는 점을 더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는 본문은 사 54,10이다.

 

 이는 야훼의 '평화의 계약'(          )은 노아와 맺은 언약을 새로이 회복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노아계약과 이사야서의 관련은 첫째, 종말론적인 평화사상이다. 노아계약에 나타난 야훼의 창조세계 보존 주제는 이사야서에서는 '사회정의, 종말론적 평화의 모습과 이에 따른 민족들의 순례'와 이어지는 "새 창조" 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아계약 안에 있는 인간들의 의무조항인 피흘림 금지 계명들은 이사야서 안에서 무고한 자들의 억울한 피흘림에 대한 사회 불의의 고발과 비난으로 나타난다.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인        의 관련 또한 노아계약과 이사야서와의 관련을 설명해 준다. 창 9장 노아계약에서 야훼가 '온 생명체'(      )와 그의 계약(    )을 맺었다면, 이사야서에서는 민족들의 시온 순례가 전체 이사야서 안에 매우 중요한 근본 주제로 나오는데, 이사야서 가장 마지막에 의도적으로 '민족들' 대신에 '온 생명체'(      )가 시온으로 몰려들 것이라고 쓰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호에 제3장 이사야서 전체에 나타난      개념을 통해 본
이사야서 전체의 신학적 의미를 알아봅니다.
참고문헌

* 본문의 각주와 아래 참고문헌에 수록된 단행본 시리즈물과 잡지류들의 축약형은 S.M. Schwertner, Internationales Abk rzungsverzeichnis f r Theologie und Grenzgebiete. Zeitschriften, Serien, Lexika, Quellenwerke mit bibliographischen Angaben, 2.Aufl. Berlin/New York: de Gruyter 1992 (IATG2)를 따랐으며, 아래 참고문헌의 이탤릭체 부분은 각주에 인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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