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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급호텔 F&B의 문제점
이민 대표/총지배인(이하 이민)_ 1980~90년대 특급호텔의 식음(F&B)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호황기를 누렸다. 전체 호텔 매출의 50%를 넘어서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 조정단계에 들어서 지금까지 업장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많이 위축된 상황이다. 외부 레스토랑이 활성화돼 있고, 많은 외부 셰프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아직까지 호텔 레스토랑은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다. 이러한 점들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하영철 총주방장(이하 하영철)_ 그동안 한국의 요식업은 호텔이 주도해왔다. 정통 레스토랑의 면모는 그래도 호텔 레스토랑이 이어가고 있다. 호텔들이 코스트를 생각하다보니, 한식당을 없애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해외에서 한국에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한식을 접하려 하는데, 한국에 제대로 된 한식당이 부족한 편이다. 호텔 외부 한식당들은 아직 한식의 모든 걸 충족시켜 주지는 못하고 있다. 호텔들이 너무 정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호텔 레스토랑이 한국 요식업을 선도해 나간다는 마인드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민_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로 볼 때 호텔 레스토랑은 소외돼 있다는 느낌이다. 얼마 전 자갓 서베이 패널 활동을 할 때 느낀 것은 소비자들이 호텔 레스토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H카드사 고메 이벤트에도 호텔 레스토랑은 별로 없다. 블루서베이 셰프 초청 행사에서도 그 많은 셰프들 중 호텔 레스토랑 셰프는 나 혼자였다.
▲ 왕성철 총주방장_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Chef Table 회장 |
왕성철 총주방장(이하 왕성철)_ 예전 많은 특급호텔들이 오픈하면서 특급호텔 식음의 중흥기를 맞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IMF 외환위기 때까지 주도했다. 현재는 외부 파인다이닝 규모가 상대적으로 많이 커졌고, 셰프들의 선호도도 외부 업장에 몰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호텔 레스토랑의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인력에 대한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다운되다 보니 우수한 인재가 호텔에서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떠오르는 스마트 고객들의 호텔 식음 이용이 늘어나야하는데, 그들은 호텔보다는,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외부 다이닝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미디어 상에서도 외부의 젊고 스마트한 셰프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하영철_ 미디어에 등장하는 셰프들의 모습은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 아무래도 보여주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탤런트로서의 모습보다는 진정성 있는 셰프들의 삶과 모습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강재현 총주방장(이하 강재현)_ 외부 파인다이닝이 많이 성장한건 사실이다. 호텔 자체의 영업 방식도 외부 파인다이닝의 영향으로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인다이닝을 선도하던 호텔 레스토랑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은 분명하다.
하영철_ 아직까지 오래가는 외부 파인다이닝은 드문 편이다. 호텔 레스토랑처럼 베이직하게 꾸준히 가는 데는 거의 없다. 외국인의 경우, 한국에 와서 전통을 맛보려는 것이지 퓨전을 보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선보여야 하는 외부 다이닝은 자칫 기본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크다. 최근 들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도 한계에 부딪혀 많은 곳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계속 바꾸려다 보니, 이상한 것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가장 중요한 음식의 맛을 놓치고 있다는 평가다.
‘기본’을 지키는 요리
왕성철_ 요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야할 것과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것을 어떻게 융합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너무 새로운 것에 집착하다보면 요리의 기본적인 것을 잊게 되고, 뿌리가 없는 요리가 나오게 된다. 고객이 원하는 니즈에 맞추는 새로운 요리도 중요하지만, 요리의 기본적인 요소를 지켜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역할을 바로 호텔의 레스토랑이 해줘야 한다.
하영철_ 미디어를 통해 보면 호텔이 점점 뒤쳐지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 한국 요식업 수준을 끌어올린 건 누가 봐도 호텔이었다.
왕성철_ 초창기의 순수한 블로거들이 줄어들고 너무 트렌드에 민감한, 상업화된 블로거들의 활동도 문제이다.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개발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일차적으로 요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것은 지니고 가야 한다. 시간이 흘러도 지켜나가야 할 것은 있다.
▲ 이민 대표이사/총지배인_ 해비치 호텔 앤 리조트 |
인건비 상승과 리더십 부족
이민_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호텔은 특히 인건비 비중이 높은 편이다. 외부 레스토랑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호텔은 장기근속자도 많고 오너 입장에서는 비중이 큰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왕성철_ 동감한다. 호텔 업장의 인건비에 대한 부담감은 큰 문제다. 예전에 비해서 주니어가 많아졌다. 시니어와 주니어 비율이 이상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데, 식음업장 매출은 자꾸만 떨어지고 인건비, 식재료비 등 고정비는 올라가 셰프들의 이상적인 구성 비율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결국 이는 가격경쟁력도 떨어뜨려 지속적으로 호텔을 뒤처지게 하고 있다.
하영철_ 현장 경험이 풍부한 리더십의 부재는 해당 업장의 영업 활성화와 매출 증대를 위한 전략적 방안을 창출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다. 또한 조직의 안정된 운영에도 좋지 않은 요인이라고 판단된다. 인건비에 대한 포지션이 다소 부담감이 있더라도 조직에 기본을 충실히 하여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전략의 변화가 올바른 방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호텔 조직과 스타셰프
강재현_ 외부 파인다이닝도 많이 발전했다. 음식 질과 서비스 모두 좋아졌다. 외부 레스토랑은 마케팅 활동을 상당히 열심히 한다. 스타셰프 만들기와 같은 그들의 생존 방식을 호텔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 조직생활 측면이 강한 호텔은 스타셰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이민_ 호텔도 각 레스토랑마다 스타셰프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총주방장의 경우에도 총주방장이라는 타이틀은 조금 여미고 한 명의 셰프로서 고객과 만나야 한다. 박효남 셰프가 총주방장이면서도 밀레니엄 서울 힐튼 프렌치 레스토랑 시즌즈[Seasons]의 주방장직을 유지했었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시도했었던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 그릴 BY 이민’도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각각의 호텔 식음업장마다 스타셰프를 만들고 서로 경쟁을 유발시켜야 한다. 그래야 미디어의 관심도 불러올 수 있다.
왕성철_ 스타셰프 한 명의 부가가치는 예상하는 것 보다 크다. 마케팅적으로 고객들의 관심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 전략적으로 잘 키워서 고객과의 친밀도를 높이고 레스토랑 인지도도 동시에 상승시켜야 한다.
▲ 하영철 총주방장_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
호텔 레스토랑만이 할 수 있는 것
하영철_ 무엇보다 호텔 레스토랑은 외부 레스토랑이 못하는 것을 해내야 한다. 호텔 레스토랑의 핵심 경쟁력은 ‘정통성’이다. 오래 유지해가면서 고객 신뢰감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위생부문에 있어서도 호텔 레스토랑은 경쟁우위에 있다고 본다. 위생은 곧 투자다. 일반 레스토랑에서는 아직 여력이 부족하고 필요성도 못 느끼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오가닉푸드, 헬스푸드 요소도 가미해서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 호텔이 가격은 비싸지만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고객의 믿음을 키워야 한다.
왕성철_ 일본의 3대 기업 중의 하나인 교세라 그룹 CEO 이나모리 가즈오는 “기업의 생명이 길고 높은 영업 실적을 내는 회사의 공통점은 직원들이 회사의 경영 이념과 올바른 정체성을 소유했기 때문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호텔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성도 높은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하려면 맛, 서비스, 시설의 모든 면에서 호텔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hardware부분이나 software부분의 지속적인 투자와 관리, 우수 인력 확보 등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하영철_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의 경우, 주방 안에 셰프 테이블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스페셜 고객을 위한 서비스로 고객은 대우받는다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아직까지 주방은 신비에 쌓여있는 곳인데 그 안에 들어가서 선택받은 식사를 한다는 것이 호텔이 외부와 경쟁할 수 있는 예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재현_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는 동남아시아 요리에 베이스를 둔 레스토랑을 2012년에 오픈했다. 서울에 정통 동남아시아 레스토랑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매분기마다 동남아 셰프를 초청하고 직원들도 1년에 4번 현지에 보내서 트레이닝을 시킨다. 매출이 가장 저조했던 업장이 지금은 제일 잘되고 있다. 호텔별로 호텔마다의 색깔을 살리고 정체성을 다져 나간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호텔 한식당의 경쟁력
하영철_ 유지비용 상승으로 철수했던 한식당들이 지금은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외부 정통 한식당 중에서 호텔 한식당들만큼 기본을 지키며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같은 경우는 한식당이 호텔의 메인 색깔이 되어가고 있으며 해외 한식당 프로모션 요청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왕성철_ 한식당은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도 두달 정도 한식 프로모션을 했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다. 한식 요리사들이 예전에 비해 줄었지만, 외부 다이닝과 경쟁하기에는 경쟁력이 충분하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에서도 몇 년 전부터 한식당에 대한 인식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호텔 레스토랑의 브랜드화
이민_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호텔 레스토랑의 브랜드화다. 고객이 호텔에 간다라는 인식보다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서 호텔에 간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호텔 레스토랑의 브랜드화를 위해서는 천편일률적인 레스토랑 콘셉트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도 어떤 곳은 나폴리식 요리가 중심이라던가 하는 콘셉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인재 양성과 충성도 확립
하영철_ 이와 함께 우리가 배웠던 것처럼 후배 양성에 힘을 더 기울여야 한다. 후배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더 확장해서 그들의 역량을 키우는데 아낌없는 투자를 바쳐야 한다. 모든 호텔 레스토랑에 외국인 셰프들이 있었을 때, 그때 그들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와서 배우고 가기도 한다. 호텔 식음 수준이 전반적으로 많이 올라와 있다. 그것을 이제 후배들에게 제대로 전수해 줘야할 책임이 생겼다.
▲ 강재현 총주방장_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
왕성철_ 후배 양성과 관련해서 풀어야 할 문제점이 호텔 별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높은 이직률이다. 이는 서비스 스킬, 상품 지식, 상품 업셀링 등 판매기법의 부족과 고객정보의 부재로 이어져 안정된 고객 케어가 이루어지지 않아 현장에서 영업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호텔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회사와 직원, 직원과 직원, 직원과 고객 사이의 올바른 관계 형성이 필요하며 아이덴티티를 가진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육성하여 충성도 높은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 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강재현_ 직원이 곧 호텔의 상품이고 경쟁력인 상황에서 호텔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과제 부여와 건전한 제안을 상시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직원 상호간의 건전한 경쟁심을 유발하고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 제안할 수 있도록 수평적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충성도 높은 직원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해외 브랜드 도입 필요성
이민_ 미슐랭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국내에 미슐랭이 들어오면 판도가 바뀔 것은 분명하다. 호텔 업장에서 미슐랭이 나오기에는 힘든 상황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력이 된다면 외국 브랜드도 좋은 브랜드는 들여와야 한다.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도 자체 수익면은 차치하고서라도 롯데호텔의 이미지 개선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특급호텔 F&B의 중장기적 증진 방안
왕성철_ 현재 단기적인 매출 창출을 위한 호텔들의 여러 가지 프로모션과 운영 방안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수익 개선에 큰 도움은 안된다. 외부 파인다이닝과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각 호텔 업장은 포지셔닝을 잘 해야 한다. 우리 업장은 과연 어느 그룹에 속해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에 따른 영업 정책이 필요하다. 덧붙여 상품의 질적인 우위, 고품질의 서비스, 가격의 경쟁력으로 충성도 높은 고정 고객을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신규고객을 창출해야 한다. 차별화되고 디테일한 영업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연관해서 R&D 강화와 미래를 판단 예측할 수 있는 전담 부서의 유기적인 역할도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한국 호텔 식음의 미래는 가져가야할 정체성을 충실히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객 맞춤형 아이템과 서비스 개발에 노력하면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호텔 레스토랑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원 높은 고객 서비스와 상호 소통, 신뢰가 어우러져야 경쟁력이 다져질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