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연은 학관에서 개인당 한권씩 나눠준 책자 한권을 질린듯이 바라보았다.
넘겨보기 두려울 정도로 두꺼운 한권의 책!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책자는 무슨 절정신공이 수록된 신공비급은 절대로 아니었다. 비급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천무학관 무학도의 수강신청 참고편람』이라는 긴 이름을 지닌 이 책자의 진정한 용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수강신청편람이로군"
비류연의 옆에 있던 장홍이 아는 척했다. 비류연의 눈이 자연스럽게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는 아직 이 책자의 진정히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베개나 흉기로 사용하는 것 말고도 이 책의 또 다른 용도가 있다면 부디 가르쳐주게."
정말 대단히 궁금하다는 투로 비류연이 물었다.
그러자 장홍은 그의 기대에 부응해 주었다.
"뭐 가끔 수면제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지."
정말인 것처럼 장홍이 말했다.
"그래 여러 가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어 매우 편리하군."
" 물론일세. 인체엔 아무런 해가 없지만 효과 하난 끝내주지 내 보증함세."
" 그것 말고는 또 없나?"
"어, 자네 정말로 모르나?"
장홍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앞에 말은 그냥 지나가는 가벼운 농담인줄 알고 맞받아 주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 이건 앞으로 있을 무공무학강의 수강신청을 위한 참고서적이라네.
천무학관에서 가르치는 무공은 그 종류와 범위가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해서 몇 가지 유사관련분야로 나누어 그 분야의 전문가가 강의 교습을 하고 있다네. 그런 만큼 그 종류와 숫자가 엄청나지.
얼마나 방대한가 하면 한 개인이 평생 매진해도
다 습득하지 못할 정도지.
그런 만큼 선택의 폭이 무자비하게 넓고 눈 돌아갈 정도로 많기 때문에 강의신청에 어려움이 많지 이건 학생들이 무공희망분야를 수강신청 하는데 참고가 되라고 천무학관측에서 친절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
장홍은 무식하게 두툼하고 질릴 정도로 긴 이름을 지닌 『천무학관무학도의 수강신청참고 편람』에 대해 생각보다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두꺼워? 제목도 엄청나게 길군
이걸 한꺼번에 다 배운다고?"
한장에도 2개 이상의 강의가 참고주석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수강 참고 편람에는 각장마다 최소 2개 이상의 과목과 각 과목의 담당노사 강의목적및 개요시간표등이 알기 쉽도록 자세히 적혀있어 그 종류의 다양함과 방대함은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다.
"물론 거기 있는 걸 다 어떻게 배우겠나? 몇 가지만을 시간표에 맞게 정해 골라 듣는 거지. 게다가 이곳은 무학뿐만 아니라 사서삼경, 대학,중용을 비롯한 주역,도덕경,노장사상,의학,약학,독학등등 제자백가의 모든 학문과 다도,,예도,,무도등금,기서화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방대한 영역과 양의 가르침이 준비되어 있다네.
물론 무인들중엔 학문에까지 함께 신경쓰는 사람은 적은 형편이지만 너무 무에만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지정된 학점 이상은 반드시 수강하도록 되어 있지 그안에 수록되어 있는 걸 다 말로 꺼냈다간 내 입이 헌 걸레처럼 헐어 버릴거야.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지."
" 끙."
비류연은 자신의 머리가 쪼개진다는 듯 머리를 감싸쥐었다.
고작 무공 한번 배우기 위한 그 절차가 너무 복잡했던 것이다.
베개로 쓰기에 딱 알맞을 정도로 두툼한 수강신청 편람은 천무학관의 가르침이 얼마나 방대한 양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었지만 비류연은 전혀 고맙지 않았다. 어차피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고수가 되기 위함이 아닌가.
근데 고작 고수 한번 되는데 웬 절차가 그리 복잡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와, 이것 봐요. 절정검 나환천 대협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니 전 정말 행운이에요."
비류연의 복잡한 속도 모르고 같이 온 화산파 매화과민증 환자 출신의 윤준호가 수강편람을 넘겨보더니 감탄을 터트리며 행복감에 잠겨 있었다.
절정검 나환천이라 하면 9대문파중 하나인 무당파의 속가제자로 본파인무당산에서도 그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검의 고수였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의 본 실력은 무당파의 장로급은 물론이고 천하오검수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고 한다.
윤준호가 태산의 밑자락을 건드리고 있다면 그는 벌써 구름위에 올라 태산 정상 끝을 바라 보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 사람의 가르침을 마음껏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윤준호가 감동받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 일 것이다.
" 이, 이것 보세요.
이, 이럴 수가 저희 화산파의 전설같은 선배님인 화산 비천웅 문일기 사숙님의 검론을 들을 수 있다니.....
저는 정말 정말...."
이제는 아예 감동으로 눈물이라도 뽑아낼 기세였다. 제발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은 비류연은 위기감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자기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우상화시켜 놓고 혼자 감동 받으며 우는 주변인물을 두고 보는 악취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절대로 사양이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많잖아. 정말 이게 다 무공에 관한 거야 ? 무공이란 배우다 보면 다 하나로 귀결되는 거 아니겠어 ?"
천무학관의 가장 큰 특징 두가지를 뽑으라면 가르침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강신청편람중 독의 장을 펴들면 달랑 독공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독의 이해, 독의 제조, 강호에서 사용되는 독과 그 응급처치 등등 그 가지 수만 해도 25가지나 되고 사부의 수만 해도 10명이나 되었다. 오직 독과 그 관련 분야만을 가르치는데 10명의 사부가 25종류의 과목에 투입되는 것이다.
게다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수업수가 많기도 했지만 그 수업 하나하나는 모두 독과 관련된 일정분야에 대한 매우 세밀하고 전문적인 지식전수를 목적으로 하는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생도들의 경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천무학관의 세심한 배려였다.
일단 잊어 버릴 때 잊어 버리더라도 우선은 알아야 한다.
알고서 버리는 것이 진정한 버림이기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백치의 상태로
보다 높은 경지로 들어 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배워놓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걸 어떻게든 잊어버리는 것이다.
말은 쉽고 간단한데 이 대목이 엄청 어렵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 긴 세월동안 진정한 절대고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는 모두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일이었다. 새로운 경지로 들어서기 위한 깨달음은 자신 스스로 알지 않으면 안된다. 누가 친절하게 손잡고 끌고가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나비가 성충이 되기 위해 자신의 허물을 벗듯 새로운 경지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손으로 이루는 수밖에 없다.
천무학관은 단지 고치를 만들기 위한 실과 영양소를 제공해 줄 뿐 학생을 위해 대신 허물을 벗어줄 수는 없었다. 단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를 위한 조그맣고 하찮은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미약하고 하찮은 도움을 위해 베개만큼이나 두터운 수강편람과 수백개나 되는 무공과목, 그리고 수십명의 노사들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베개대용품을 성의없이 뒤적거리던 비류연은 문득
한가지 의문이 고개를 내미는 것을 느꼈다.
" 다 좋은데 이렇게 잡다하게 배워서 뭔가 효과가 있긴 있어 ? 하나의 분야에서도 대성하기 힘든데 이렇게 잡다해서야....."
이런 비류연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는게 힘이 되기는 하지만 때때로 독이 될 수도 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팔방미인, 십전십미
말은 근사해도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하고 애매모호한 상태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렇듯 어떤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산만한 지식습득은 오히려 깨달음에 지독한 장애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
죽도 밥도 안되면 숟가락 쪽쪽 빨며 밥을 굶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 기왕이면 다양성이라고 생각해 주게. 물론 모든 걸 다 잘하길 바라는 건 아냐.
옛말에도 성공하고 싶으면 한우물만 파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전공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단지
참고사항일 뿐일세.
그리고 개중의 대부분은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법들로 구성되어 있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너무 많은 인재들이 젊은 나이에 강호의 암계에 휘말려 생을 마감하고 있지. 살아남아야 새로운 경지를 접하든가 말든가 할게 아닌가."
"쩝, 그런가"
하지만 여전히 미덥지 못한 듯 비류연이 입맛을 다셨다.
"자네가 신청하기 고달프다면 내가 대신 신청해 주겠네.
1학년 필수 과목을 제외하고 자네가 듣고 싶은 분야를 고르게나."
그거야말로 비류연이 바라던 바였다.
그런데......
" 필수 과목?"
"천무학관에서는 매학년마다 강호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분야를 특별 지정해 반드시 수강하도록 관규로 정해져 있지.'
"그래?"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던 생소한 사실이었다.
"자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군."
"여태껏 살아 오면서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거든."
" 천무학관에 대해 백치에 가까운 자네가 아직까지 무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적같군."
"난 필요하다면 기적도 일으키자는 주의야. 난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구.
그리고......"
비류연이 잠시 한숨을 돌린 다음 말을 이었다.
"현재 지금 이 시각에도 별 중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정말 믿을 수 없다는 투로 장홍이 외쳤다.
비류연만큼 아무런 사전지식과 정보의 습득 없이 무작정 들어오는 경우를 오히려 비정상으로 여겨야 했다.
모두들 입관전에 나름대로 천무학관에 대한 사전지식을 숙지한 후에 들어 오는게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즉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했을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들어 온 것이었다. 장홍은 빈혈기가 없는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 할 수 없지 내가 자세히 설명해 줌세."
"난 자세한 설명보다는 간단한 설명 쪽을 더 선호하는 편이지.
자세하면서도 간단히 설명해 줘."
골치 아픈건 질색이라는 어투로 비류연이 말했다. 여전히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장홍은 다시 한번 절망했지만 내색하지는 않기로 했다.
" 우선 1학년이 필수로 들어야 할 과목으로는 독공입문이 있네.
독과 관련된 학문은 전문적인 독공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신체의 최소한의 방어와 생존을 위해 전학년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분야야.
그만큼 강호는 계략과 암투가 판치는 냉혹무정한 세계니깐.
암기도 그런면에서는 마찬가지야.
이 두가지는 실력의 증강보다는 무림도상의 생존과 결부되는 경우가 많지. 어차피 우리 정파측 에서는 사천당문을 제외한다면 독과 암기를 다루는 문파는 전무하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지. 그외에도....."
장홍은 쉬지 않고 필수과목에 대해 설명했다. 독과 암기분야 이외에도 1학년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할 과목으로는「무공 구결 독해론」,「진법 파해 입문」, 「검법 총론」, 「다양하고 신기한 인체 점혈법 응용편」, 교양으로는 「무림 정세론」등을 의무적으로 들어야만 했다.
어느 것 하나 골치 아프지
않은 것이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며 고통을 호소하던 비류연의 시선이 문득 같이 온 효룡을 향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효룡은 질리지도 않는지 옆에서 열심히 책자를 뒤지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쩐지 비류연은 그의 동작이 능숙하다고 느껴졌다. 어떻게 처음인데도 이 둘은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아니면 사전 예비지식 없이 들어온자신이 신기한건지 비류연은 아리송하기 만했다.
하지만 이내 신경을 꺼버렸다. 어느 쪽이든 그로서는 별 상관없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곳에 대해 잘 아는 장홍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자네 특별히 듣고 싶은 무공 분야가 있나 ?"
책자를 뒤지며 장홍이 물었다. 비류연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직 뭔가 특별히 더 배울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검, 도, 창을 전공으로 많이 선택하지. 가장 보편화되어 있고 또한 그만큼 가장 잘 다듬어진 분야이기 때문이야. 체계도 가장 잘 잡혀 있고 좋은 스승도 구하기 쉽지. 많은 사람이 걸어간 길인 만큼 많은 조언과 다양한 관련무공을 접해 볼 수 있어. 그중에서도 백도인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검이 아니겠는가. 역시 만병지왕은 검이지."
장홍 역시도 검을 익힌 처지라 그런지 검을 대단히 신봉하고 있었다.
도나 창은 무도의 정도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셋 모두 사양하겠네."
"아니 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기문병기나 기타 무공으로는 최절정 고수가 되기 어려워.
당장 한두해면 모르지만 종국에 가서는 명인의 소리를 듣기는 힘들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생각을 바꿔 보는게 어때?친구로서 하는 진심 어린 충고야."
효룡은 당연히 검을 선택했다. 그는 검막을 시전할 만큼 높은 수준의 검도고수였다. 검의 더 높은 경지를 보고자 하는 욕구는 검객으로서 원초적이고도 본능적인 당연한 욕구.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검도경지를 더 높여줄 수업을 찾는데 열중하고 있어 비류연과 장홍의 대화는 귀에 들어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걸로 신세 망치기전까지는......
비류연은 자신의 수강 신청 대부분의 선택권을 전권 장홍에게 넘겨주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전공선택에서 전공삼대무학을 외면하고 있으니 낭패였던 것이다.
검, 도, 창 모두를 외면한 비류연이었지만 딱 하나 놀랍게도 흥미를 가지는 학문분야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문에서 대여해 가지고 온 묵금(墨琴)을 보다 잘 연주하기 위한 무공, 바로 음공(音功)이었다.
"그건 걱정하지마. 나처럼 우아한 미소년이 어디 흔하겠는가. 멍청이 사부가 음율에 대해선 알아도 음공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니 이 기회에 음공이나 배워 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 하지만 음공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무학이라네. 음율에 대한 조예는 물론이고 시전을 하려면 막대한 내공을 필요로 하지. 게다가 실전에서의 운용도 어려운 편이고 배움의 깊이와 난해함에 비해 진전속도도 굼벵이처럼 느리고 효과도 코딱지만큼 적고.......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공부야. 그런데도 듣겠나?"
물론 비류연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오만하다 욕할지 모르지만 음공이외의 다른 분야에 미련을 가질 만큼 궁한 처지가 아니라는게 그 자신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판단을 뒤집을 만한 근거와 대면한 적이 한번도 없으므로 바뀔 생각도 없었다.
" 음..... 나도 평소 음공에 관심이 많았었지. 우리 함께 수강하는 게 어떨까?"
옆에서 두툼한 수강신청편람을 열심히 넘기며 생각에 잠겨있던 효룡이 느닷없이 끼여들었다. 검이외엔 신경도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음공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좋을 대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장홍이 수강 신청 편람에서 음공편을 찾아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많은 종류의 강의가 수두룩하게 적혀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히고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네 음율에 대해선 좀 안다고 했지? 그렇다면 음율 기초편을 빼고 여기 천음선자 홍란님의 「음공 입문편」이 좋겠군. 역시 모든 건 기초가 중요하지. 그다음엔 금을 원하나 아니면 퉁소, 대금, 피리,경종을 원하나?"
"거참 종류도 많군. 뭐가 그리 복잡한지......"
"이왕이면 전문적이라고 표현해 주게. 그쪽이 어감도 더 좋잖아.
입문편이야 기초이론에 대해 배우는 것이니 같이 듣는다지만 연주하는 악기가 다른데 어떻게 모두 함께 한사람에게 배울 수 있겠나. 음공은 당연히 사용하는 악기에 따라 가르침이 완전히 달라진다네.
이런 걸 보고 상식이라고 하지."
장홍이 은근히 비류연의 상식없음을 비꼬았다. 하지만 비류연은 그따위세심한 것에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섬세한 신경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필요시에는 자신의 무척이나 개인적이면서도 작위적인 기준을 가지고 주변상식을 재구성할 수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제로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생긴 피치못할(?) 수많은 비극은 약자의 서러움과 함께 사이좋게 조용히 매장당해 왔고.....
"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금이야. 내가 할 줄 아는 것도 금뿐이고."
"그래? 그렇다면 여기 비금 서평 노사의 「초급무공측면에서의 금음이해」가 좋겠군. 그 노사님은 강호에서도 아주 유명한 음공의 대가지.'
" 그럼 그걸로 해 줘."
강호정세에 어두운 비류연은 마음 편하고 속시원하게 모든 일을 장홍에게 떠맡겨 버렸다.
"그럼 이걸로 하지. 나중에 딴말만 하지 말게."
장홍은 친절하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경고를 비류연에게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비류연은 음공을 전공으로 택하게 되었고 다행히도 효룡과 함께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음공에 관한 두가지 강의를 추가로 신청하게 되었다. 과연 그가 음공을 제대로나 배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것은 아마 앞으로의 사태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전망이 절망적일 정도로 어둡다해도 벌써부터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이른지도 모른다.
그들이 한창 수강신청에 몰두하고 있을 때 신청소 한쪽 구석에 위치한 신청 창구 하나가 갑작스럽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우당탕탕탕"
신청 창구 하나가 과밀한 인구집중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소리와 함께 무너지자 좌중의 시선들이 일제히 비명의 근원지로 쏠렸다. 그곳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한산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주변 신청 창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라 매우 인상적이었다.
천무학관 수강 신청소에서는 각 분야와 종류별로 신청창구가 나뉘어져 있어 신청희망자들의 분산을 꾀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이유없이 수강신청 창구가 무너진 것일까? 외적의 침입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전무한 이런 곳에서 웬 소란이란 말인가 ?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비류연은 한번 마음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치밀어 오른 궁금증을 그대로 놔둘 만큼 진득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한번 생긴 의문은 이유를 불문하고 속전속결로 풀어야만 하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었다.
북적이는 수많은 인파로 정신이 없는 그 수강 신청 창구가 도대체 누구의 수업이기에 저토록 인파가 붐비는지 궁금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놈일 것이다. 비류연은 옆에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질문해 보기로 했다.
"아니 저긴 도대체 왜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 거죠?"
저쪽 한켠에서 서로 피터지게 싸울 기세로 우르르 몰려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비류연이 물었다. 신청창구가 무너졌는데도 사람들은 수강신청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자네는 모르나 ?"
"뭐가 말인가요?"
사내는 매우 이상한 생물을 보는 듯 한 시선을 비류연에게 잠시 보냈다.
그의 시선에는 '쯧쯧 이렇게 소식이 늦어서야....' 하는 근심의 빛이 친절하게도 봉인되어 있었다. 사내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새로 초빙된 고수중에 아주 유명한 고수가 있는데 저기가 바로 그분의 수업을 듣기 위한 수강 신청 창구라네.'
이곳 수강 신청소에서는 분야별과 종류별 신청창구 이외에도 몇 몇 유명 인기강의및 특별강의를 위한 수강 신청 창구가 따로 마련 되어 있었는데 조금전에 무너진 곳이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얼마나 유명한 고수이길래?
" 누구 수업인데요?"
들어 봤자 알리도 없으면서 비류연이 물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분은 강호의 경험및 지식이 먹통인 비류연으로서도 익히 잘 아는 사람이었다.
"모른다면 듣고 놀라지 말게 바로 염도대협이라네."
비류연은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그가 놀란 이유는 상대방의 걱정처럼 그 인물의 대단함에 놀란 게 아니라 난데없이 상대방의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자기제자(?)의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자네도 그 유명한 독불장군 염도대협 알지?"
물론 비류연은 그 사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처지였으므로 대번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비류연만큼 그 일의 전말과 숨겨진 비리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염도 그 자신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염도는 본래 혼자 다니길 좋아하고 여타 세력과 어울리거나 소속되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그가 이곳 천무학관에 머물며 가르침을 베푼다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분의 수업을 듣기 위해 도를 좀 쓴다는 그 방면에 난다 긴다 하는 이들은 모두 접수처로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네.
게다가 양강무학을 익힌 이들까지 함께 달려들어 난리라네 난리.
이러다간 비무로 접수인원을 결정지어야 할 판이야.
빙검 관대협과 좋은 승부가 되겠어."
" 아니, 빙검 관대협이라면 그 천하 오검수의 일인인
빙검 관철수 대협을 지칭하는 말입니까?"
경악을 터트리며 윤준호가 끼어들였다.
천하 오검수라면 그가 꿈에도 그리는 우상같은 인물들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자기주변에 그것도 매우 근접한 거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터질듯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그분 말고 또 누가 빙검의 칭호를 지닐 수 있겠나. 자네가 알고 있는 바로 그분일세."
현재 천무학관에서 검도분야에서 가장 인기좋은 건 바로 빙검의 검도수업이었다. 수업시간도 별로 많지 않은지라 그 희소성이 더해져 조금이라도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수강인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므로 원하는 과목을 먼저 듣기 위해 관도들은 수강 신청 전날 접수 창구 앞에서 날밤을 새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며칠씩 천막 치고 줄서는 지독한 사람들도 있어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이 총동원된다고 한다.
" 아아 그런 분의 수업을 바로 곁에서 들을 수 있다니....." 또다시 윤준호는 감동의 바다에 빠져 익사를 시도했다.
그런 윤준호를 바라보는 비류연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자넨 아직 못들어."
다행히도 사내는 윤준호가 만든 감동의 도가니에
찬물을 끼얹어주었다.
"왜죠?"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야박할 수가 있느냐는 듯한 시선으로 윤준호가 사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사내는 그의 눈에 담긴 간절감을 간단히 짓밟아주었다.
그런데 왜 비류연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거지 ?
"자네 아직 일학년이지?"
" 예."
" 그분 수업은 3학년 이상 또는 최소 삼검룡 이상의 자격이라야 신청이 가능하지. 실제로는 경쟁률 때문에 거의 다 오검룡 이상의 실력자들 뿐이야.
아직 처음이라 잘 모르는가 본데 이곳 천관의 몇 몇 특정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자격이 필요하지.
이곳은 자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냐.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전장같은 곳이지.
자네들도 방심하지 말고 수련에 용맹 정진하게.'
" 감사합니다. "
윤준호는 포권을 취하며 선배의 조언에 감사를 표했다. 그도 그제야 이곳 천관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낀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 비장함이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빙검 관철수가 대쪽같은 성품과 칼같은 완벽감, 그리고 얼음같은 냉철함으로 명성을 드높였다면 염도는 무림에서 뛰어난 도법 실력외에 불같은 성미와 호탕함, 그리고 무수한 기담기행으로 인해 지명도가 높았다.
그중에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날뛴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그는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의 화통하고 화끈한 지극히 사내다운 성격 -
빙검측이라면 앞뒤 생각없고 힘만 앞세운 무식하면서도 과격한 행동이라 비난하지만 - 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특히 도를 쓰는 자중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염도가 혼자 다니기를 좋아 하다 보니 사람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만큼 그의 실력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이 날고 긴다하는 천무학관에서도 그만한 실력을 가진 자는 현재 드물었다.
게다가 성격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도법분야와 양강무학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소유자였다.
때문에 그의 강의를 한토막이라도 주워 듣기 위해 지금 관도들이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지사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비류연의 마음은 전혀 납득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제자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단 말인가?
근 두달을 함께 생활해 본 비류연으로서는
도저히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우뢰매라고 불러줘
장홍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강신청을 끝마친 비류연 일행은 별다른 일이 없으므로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거기남아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제건(염도 수업 수강신청)으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들 틈에 끼는 것은 비류연으로서는 사양할 일이었다. 혹 준호나 효룡이라면 질식사할 위험부담을 끌어안고 그 경쟁 틈사이에 끼여들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비류연은 절대 아니었다.
제자에게 배우려고 기를 쓰는 사부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숙소로 돌아가던 네 사람은 문득 미세한 공기의 파동을 감지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꽉 찬 대기를 날카로운 속도의 검으로 휘저어놓은 듯한 느낌. 더불어 찢어질듯한 울음소리가 그들의 귓전에 울렸다.
그들의 시야안에 하늘로부터 막 지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 내려오는 매 세마리가 눈에 들어 왔다. 절대 자연산이 아니라는 사실에 전 재산을 걸어도 좋을 만큼 확신할 수 있는 인간의 손길로 길들여진 매 세마리는 모두 담 넘어 한쪽에 위치한 건물로 날아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담이 높아 대략의 위치만 어림짐작할뿐 건물의 정확히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건물의 위치보다 궁금한 것은 바로 방금전 내린매들이 가진 의미였다.
" 저게 뭐지?"
"어, 몰라?"
놀랍다는 눈길로 효룡이 비류연을 쳐다보았다. 이제 그만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그는 아직도 비류연의 경악해 마지 않는 몰상식을 대할 때면 종종 놀라곤 했다.
"응."
" 저건 천무학관의 유명한 전서응(傳書鷹)들이야. 서신과 소식 혹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된 특수매들이지."
" 그래? 처음 들었어."
비류연은 요즘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를 대하고 있음에도 끈질지게 자신의 몰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신이나 정보는 보통 비둘기를 이용하지 않나요?"
윤준호의 질문에 장홍이 책망하는 듯 한 시선을 보냈다.
'자네도 만만치 않군. 각성하게' 라는 의미의 눈빛이었다.
"요즘 강호는 모두 전서구에서 전서응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야.
연약한 전서구보다 위험도는 훨씬 적고 안전성은 훨씬 높은 전서응을 선호하는 거지. 그래서 요즘은 이름 있는 무인치고 전서응을 지니지 않은 이들이 드문 형편이지."
" 그러니깐 일종의 유행이군요."
윤준호의 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는 유행을 넘어 거의 보편화되었다고 봐야 옳겠지."
이제 전서구는 한물간 과거의 유산이었다. 요즘 누가 소식을 전하는데 주위의 강대한 비웃음을 무릅 쓰고 전서구를 날리려 하겠는가.
명예와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이라면 감히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서찰을 전하지 않을 때는 매사냥도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해야겠지. 매사냥은 강호에서도 매우 고급스런 취미라네." 매사냥은 말 그대로 매를 이용한 매우 사치스런 사냥법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치스런 취미에 이용되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경향이 있다. 매를 이용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사냥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 아님을 쉽게 살 수 있다.
사냥에 사용되는 매값 만으로도 일반 평민 다섯 식구가 석달을 먹고 살 수 있는 액수가 족히 되었다.
" 나도 저거 하나 갖고 싶어. 어떻게 하면 되지?"
장난감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비류연이 말했다. 또다시 그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 사면 되지."
" 참 고맙군. 그렇게 간단히 얘기해 줘서."
" 난 항상 핵심을 찌르는 것을 즐기지."
장홍이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게. 무슨 일 당할까 봐 무섭네."
"하하 그건 소중한 우정에 금이 가는 소리로군."
비류연이 웃으며 말했다. 장홍은 애써 비류연의 말을 무시했다.
" 금갈 우정이 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겠지?"
"자네와 나 사이에 금갈 우정이란게 존재했다니 실로 놀라운 발견이로군."
"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 그랬다간 영원히 그 존재를 몰랐을지도 모르지 않나."
장홍은 웃으며 전서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호에는 요즘 전문적으로 전서응을 훈련시켜 파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네. 그 덕분에 가격도 많이 내렸지.
대중화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천응방, 천응방의 최대 수익원이 바로 이 전서응 판매운영 사업이라네.
요즘은 무공보다 그 사업쪽으로 더 유명하지."
천응방은 천응팔조공이란 조공을 설명절기로 하는 무림문파로 요즘 한창 성세를 드높이고 있었다. 10년전까지 해도 작은 군소방파에 불과한 곳이었지만 전서응 열풍이 강호를 휘몰아치면서 급부상 하기 시작해 요즘은 대문파 부럽지 않은 초거대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전서응판매사업과 함께 전서응를 통한 신속한 정보이동 교환능력을 이용하여 정보매매조직으로 변신을 꾀해 큰 성공을 거둔 특이한 이력을 지닌 문파였다.
"운영?"
"그래. 아무리 전서응이라 해도 중원전체를 다 돌아다니며 소식을 전할 순 없잖은가. 어떻게 이 넓은 중원땅을 다 돌아다닐 수 있겠는가 말야 아무리 날개 달린 매라 할지라도 힘든일이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래서 그들은 매가 쉴 곳을 군데군데 마련해 두었다네. 천응방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24개의 거점을 마련해 두고 운영하고 있다네.
만일 특정지역의 주변에 소식을 전할 일이 있다면 그곳을 이용하는 거지.
전서응의 훈련정도는 발목의 고리수로 나타낸다네. 고리가 많을수록 많은 훈련을 거친 최상품이지."
" 저 매는 고리가 7개니깐 상위품목인가 ?"
그 먼곳에 떨어져 있는데도 비류연의 눈에는 매의 발목에 달린 고리수가 잘 보였던 모양이다.
"물론 저건 7개의 비행경로를 훈련받았다는 표시일세. 12개가 최곤데,전서응은 경로표식에 따른 신호음으로 비행경로를 선택해 날아가지 신호음으로 특정장소에 대한 방향의 지정해 주는 걸세."
" 빙 둘러가지 않도록 말인가?"
" 맞았어. 직선경로로 갈 수 있는 것을 굳이 빙 둘러서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거야말로 시간낭비지."
"그 낭비란 말엔 동의해."
" 흐흠, 정말 갖고 싶은데....."
칭얼대는 아이처럼 비류연이 말했다. 설명을 들으니 갖고 싶은 욕구가 더욱 불끈불끈 솟아올랐던 것이다.
" 정 가지고 싶으면 사면 돼."
"정말 어떤 방법으로?"
" 아마 천무학관내에 천응방 분타라는 이름을 지닌 판매 유통망 지점 같은 곳이 있지. 친절하게도 말이야. 이곳은 백도무림의 중심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이름난 문파라면 모두들 이곳에 연락소 같은 거점을 두고 있지. 특히 천응방의 전서응은 강호생활의 필수품목이라 전서응 교육 훈련과 더불어 팔기도 한다네. 천응방의 가장 큰사업이지.
그리고 덧붙이자면 천응방의 전서응들은 모두 머리가 좋다고 정평이 나있어."
정말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은자의 지출이 유발되는 건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꼭 갖고 싶은 것이었기에 장홍을 재촉해서 천응방 분타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비응각 옆에 위치하고 있는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바로 옆에 생도들과 관의 전서응을 통괄 관리하는 비응각이 있어 그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 비응각은 일종의 전서응 전용숙사 같은 곳으로 비류연이 이곳에서 가장 감동 받은 점은 뭐니 뭐니 해도
관도들의 매를 공짜로 보살펴 준다는 사실이었다.
개인이 매를 돌본다는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므로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수고를 대신해 주는 그곳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하며 유용한 곳인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듯했다.
분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 결코 작지는 않지만 그래 봤자 큰 가게 수준이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새장 속에 많은 수의 전서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생김새나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이토록 다양한 색깔과 종류의 매가 있는지는 비류연은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찬찬히 분점안을 살피던 비류연의 눈에 한마리 전서응이 눈에 들어 왔다.
온몸의 깃털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특이한 놈이었는데 예리하게 벼리어진 칼날 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
비록 좁은 새장속에 갇혀 있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는 하늘의 제왕 같은 기개가 엿보였다.
비류연은 처음 보자마자 그놈이 마음에 들었다. 양발목에 금빛고리가 12개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상품의 매임이 틀림없었다.
"아, 손님. 그놈은 너무 사나워 아무도 길들이지 못한 놈입니다.
너무 자존심이 세고 고고해서 데려가려던 사람이 모두 실패했죠.
저쪽 동방의 고려라는 나라에서 들여온 해동청이라는 놈인데 너무 사납지요. 그리고 자신이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따르려 하질 않아요."
"그래요?"
그동안 30명 이상의 사람들을 4~5개의 할퀸 자국과 함께 돌려 보낸 맹금 녀석에게 비류연이 관심을 갖자 점주가 미리 주의를 주고 나섰다.
비류연이 그의 주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기하려들지 않자 점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누구나 다 시작은 좋았으나 결말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호언장담하며 도전했지만 볼썽사납게도 의복이 찢기고 피를 흘리는 상처를 부여잡고 고개를 내저으며 포기했었다.
이번이라고 크게 다를바 없을 거라는 것이 점주의 견해였다.
"소.... 손님!'
점주가 잠시 시선을 딴데 두었다가 비류연을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의 눈동자는 접시만큼 큼지막하게 커졌다.
"왜요 ? 참 얌전하기만 한데."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비류연의 팔목에는 그 푸른 깃털의 해동청이 우아한 자태로 서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주인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새장의 문을 열고 매를 꺼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그 사나운 매가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무슨 수로 잡으려고 함부로 새장 문을 열었단 말인가.
양식있는 인간이라면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손님의 무단 새장 개방에 대해 어느 정도 경악스러운 마음이 진정되자 그는 엄중히 항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팔목보호대가 없는데도 매의 발톱은
비류연의 팔뚝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물론 해동청이 갑자기 없던 자비심이 생겨 움켜쥔 발톱의 힘을 빼고 있는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고려 해동청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었다.
아무도 길들이지 못하고 실패의 쓴 고배만을 마시게 만들었던 푸른 깃털의 해동청을 병아리처럼 다루는 비류연을 본 그의 눈은 감탄의 빛을 가득했다.
"그것 참 신기한 일이군. 그렇게 사납기 그지없던 놈인데....
주인이 정해진 것 같습니다. 손님."
" 얼마죠?"
"원래 값비싼 품종의 진짜배기 녀석이지만 주인을 찾지 못해 헤매던 놈이니 주인 만난 기념으로 싸게 해 드리죠."
판매담당자는 꽤나 화통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싸게 해 준다는 말이 비류연의 마음을 더욱 흡족하게 만들었다.
"고맙군요."
하지만 그 다음에 제시된 액수는 그의 구매욕구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딱 잘라서 은자 15냥만 내슈."
액수를 듣자마자 비류연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전 이런 금전적 농담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비류연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은자 15냥에 구겨진 안면 근육을 미소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 그는 엄청난 의지력을 소모해야 만 했다.
하지만 이런 비류연의 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중년사내가 말했다.
" 농담이라니요 손님 저희는 항상 공정가격으로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희 천응방의 신용도는 이 바닥에서는 최고 입니다."
물론 곧이곧대로 다 믿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그걸 믿으라고 하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절 호구로 보지 않는다면 말이죠."
"정말입니다, 손님.
원래는 30냥을 받아도 부족할 놈이지만 특별히 반값으로 해 드리는 겁니다."
물론 어느 상인이나 늘 그렇듯이 이 30냥은 거짓말이었다. 상인은 언제나 상대방 손님이 이득을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수작을 부려줄 의무가 있었다.
그 이득이 금전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심지어는 환상일지라도 환상만으로 상대방의 이익에 확신을 줄 수 있다면 그는 최고의 장사꾼 재질을 갖춘 인물일 것이다.
"10냥, 더이상은 안됩니다.'
은자 10냥도 그로서는 빈혈을 감수한 대대적인 출혈이었다.
" 절대 안됩니다."
점주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비류연의 날카로운 시선이 사내의 눈에 가서 정면으로 꽂혔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비록 장사치에 준하지만 점주도 명색이 무림인이었다. 이정도 협박에 굴할 수는 없었다.
방의 이익을 지키고 이윤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렇게 쳐다보셔도 안됩니다. "
그러자 이번에는 비류연의 몸에서 무형의 압력이 무럭무럭 솟구쳐 나와 사내의 몸을 은근히 압박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의 눈빛에 담긴 집념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아.....안됩니다. "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압력을 견뎌내며 사내가 말했다.
그의 투철한 상인 혼이 환한 빛을 내며 타오르고 있는 중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고른 셈이다.
"에누리 없는 장사는 없는 법이지요. 가격을 깎는 것이야말로 손님의 특권 전 절대로 그 특권을 양보할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비류연의 의지는 금강석처럼 견고하고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누군가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 해야만 했다.
그러나 문제는 둘 다 그 대상이 되는 걸 꺼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정된 값을 깎는 것에는 시간과 정열이 필요하다.
에누리된 값, 가격인하율의 상승은 투자된 시간과 끈질긴 정열에 비례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류연은 이쪽 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독한 놈이었다.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는 주인은 지금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가격 흥정없이 물건을 사본 기억이 없는 비류연이었다.
사부로부터 끈임없이 단련을 받아온 금전감각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패배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점주는 비류연과의 무모한 정면대결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힘껏 당겨진 현처럼 팽팽한 두사람의 신경전은 이제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있었다. 서로 자신의 위치에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면 이제 승패의 행방은 기가 약한 쪽이 지기 마련이다. 정신력이 모든 걸 좌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의 충만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비류연이었다. 게다가 돈에 대한 집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는가.
"14냥!"
점주의 정신력 저하와 함께 가격도 한단계 밑으로 내려갔다.
"11냥"
"13냥"
"11냥25문"
이제 흥정단계가 은자에서 동전으로 넘어갔다. 실로 훌륭한 솜씨였다
"절대 안됩니다."
"11냥 50문"
비류연이 압력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갔다. 상대가 움츠러 들도록 하는 예리한 감각을 흘려 보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방법은 효과만점이었다.
이것을 사용하여 지금껏 실패를 맛본 경험은 없었다
"11냥75문"
드디어 점주도 포기하고 동전단계에서의 흥정에 합의했다. 이미 대세는 판가름 난 것이나 다름없다.
" 11냥 50문 50푼"
이수준까지 이르면 이제 완전히 날강도나 다름없다.
" 제가 졌습니다. 11냥 50문 50푼에 팔겠습니다."
더 이상 심력소모를 견디지 못한 점주는 마침내 항복을 선언하고 가격을 깎아주기에 이르렀다.
철저하게 깎고 또 깎아서 11냥 50문 50푼으로 낙찰된
것이다. 무려 은자 3냥하고도 49문 50푼을 절약한 셈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비류연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그는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둘의 대결을 지켜 본 장홍과 효룡과 준호는 그만 그의 에누리형태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이미 타결된 가격에 미련을 갖는 것은
훌륭한 장사꾼으로서 지닐 수 있는 덕목이 아니었다.
점주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비류연에게 말했다.
"이름을 지으셔야죠?"
"어, 아직 이름이 없어요?"
"이곳은 주인의 작명특권을 뺏을 만큼 비정한 곳이 아닙니다."
점주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원래 애완동물의 이름을 짓는 것은 주인이 가지는 특권중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뭐라고 짓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뭔가 획기적인 이름이 떠오른 듯 손바닥을 "탁" 마주치며 고개를 들었다.
"우뢰매라고 짓는게 좋겠군요."
하늘의 제왕같은 고고한 기상과 시린 듯 푸른 깃털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감도 좋으니......
" 우뢰(宇雷)라 좋은 이름이군요."
점주도 그의 의견도 동의했다. 볼일이 끝난 비류연 일행은 새로이 그들의 일행이 된 매 한마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문밖을 나서는 그들의 등뒤로 점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정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는 끝까지 친절을 잊지않았다.
"연애사업에도 그만입니다. 잘 해 보세요."
점주는 손까지 흔들며 그를 배웅했다. 비류연이 치열한 가격협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우뢰를 데리고서 의기양양하게 나설 때 동시에 한 청년이 들어와 계산대 앞에 섰다. 용맹하게 생긴 매서운 눈을 가진 두마리의 매를 어깨위에 얹고 있는 이십대청년. 두마리의 매를 어깨위에 올린 청년의 견갑골 부근에는 가죽으로 된 보호대가 착용되어 있었고, 그것은 매의 발톱에 신체가 상처입는 것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 검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팔뚝에 찬 단단한 강철비구(팔보호대)로 보아 권법이나 조공(爪功)의 달인같았다. 검게 단련된 청년의 열 손가락으로 보아 아마도 조공의 달인인 듯 싶었다.
그를 본 점주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의 격식을 갖춘 인사는 결코 보통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삼공자님 오셨습니까?"
"잘 있었나, 하총관"
가슴에 황금빛으로 매가 수놓아져있는 청년이 아는 체를 했다. 그는 천응방주 비응왕 응성현의 세 번째 애제자 귀웅조 우성찬이었다.
그러기에 하총관의 태도가 깍듯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금 나간 사람들은 누군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 예 금년에 입관한 1년생들이지요 아마 입관기념으로 전서응을 한마리 구입하러 온 것이겠지요. 매년 있어 온 일이니까요."
연중행사처럼 항상 이맘때면 이곳 천응방 지부는 자신의 전서응을 구입하러 온 손님들로 붐볐다.
그만큼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근데 혹시 방금 전 손님이 가져간 건 혹시 그놈 아닌가 ?"
우성찬의 관심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들고 간 매에 있었다.
일단 우성찬은 해동청의 새 이름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놈이라고 불렀다.
그가 지칭하는 것은 분명 비류연이 치열한 에누리끝에 구입해 간 우뢰가 분명했다.
"예예, 맞습니다. 그녀석이 드디어 제짝을 만난 거죠."
"그 녀석은 사부님 이외에는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던 천덕꾸러기가 아닌가?
그런 놈이 순순히 손님을 따라갔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군 그것도 1학년 풋내기 애송이들을 말일세."
"예, 저도 쉽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방주님 이외에는 누구 앞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던 놈이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손님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정말 예상 밖의 일입죠.'
"호오, 그거 정말 흥미로운 일이로군. 자네 방금 나간 손님의 이름을 알고 있겠지 ? 가르쳐주게."
전서응이란 서신을 주고 받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파는 곳에서는 전통에 각자의 개인번호표시와 지역표시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야만 전서가 뒤바뀌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천응방 지부에서는 전서응들의 주인도 장부에 기록해 두고 있었다.
천응방은 전서응의 판매도 판매이지만 전서사업운영으로 막대한 부를 비축한 문파였다. 전서응이 전서구를 밀어내고 강호의 창공을 장악함에 따라 천응방도 함께 힘과 부를 키워 온 것이다.
하총관이 장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여기 있습니다. 비류연이라고 하는 군요."
"그래? 처음 듣는 인물이군. 강호 후기 지수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인물이 있었던가?"
청년은 잠시 머리속의 인명록을 들추어 보았지만 자신의 머리속 리스트에는 그런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명도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나중에 알아보면 되겠지 녀석을 얌전하게 만든 녀석이라.....
누군지 궁금해서 그런 것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게나.
그놈은 성질이 고약하기는 하나 능력만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녀석이지. 오죽하면 사부님께서 직접 훈련시키셨겠는가.
"맞습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내 정신 좀 보게. 내 취아의 목걸이 때문일세.
새 걸로 바꿨으면 해서 말야."
그제야 청년은 자신의 용건을 꺼내 놓았다. 취아는 그가 소유한 두마리중 왼쪽 어깨에 앉아있는 갈색 송골매의 이름이었다. 대부분 매는 주인의 취미에 따라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목걸이에는 매의 이름과 소유주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이것은 소유주를 나타내주는 역할 이외에도 요즘은 다른 용도로도 자주 애용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니 저번 목걸이는 어떻게 하시구요 ?"
점주 하총관의 질문에 우성찬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말을 늘어 놓았다.
"아.... 그거 말인가...... 그건 잃어 버렸네."
갑자기하총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축하합니다. 도련님 성공하셨군요. 근데 어느 소저분입니까?"
눈치도 빠르기는..... 우성찬은 잠시 하총관을 흘겨보고는 말을 돌렸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때문이었다.
"허흠.... 그런 것까진 알것 없고 그냥 새 목걸이나 마련해 주게나."
아차하고 하총관은 자신의 경망함을 책망했다. 젊은이들의 연애사업에 자신같은 폐물이 끼여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괜히 상대에게 점수 깎이는 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이쿠, 이런 이 늙은이가 잠시 주책을 부렸습니다. 그럼 맡겨주십시오.
내일까지 확실히 만들어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