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따라 충남 서천 여행
볼록한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손에는 지도와 작은 여행안내서 한 권이면 족하다. 닫혀 있던 일상의 문을 활짝 여는 순간, 앞에는 젊음과 자유를 길라잡이 삼아 누빌 세상이 펼쳐진다. 푸른 바다, 유유한 강, 초록빛 아연한 들판…. 곳곳에 오롯이 남아 있는 문학의 산실과 역사의 현장.
그 낯선 땅에서 저마다의 삶을 만드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훌쩍 떠나는 느긋한 여행은 그래서 낭만이자 설렘이다.
전국을 거미줄처럼 잇는 철도가 있다. 그림엽서에나 나올법한 예쁜 간이역을 스치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거나 철도의 끝자락 낯선 땅에서 캔 맥주를 마시며 바닷가 일몰에 온 몸을 맡겨도 좋다.
세상을 헤집고 다녀도 모자랄 젊음이 내 속에 있기에, 무한 자유를 갈구하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있기에 앞을 가로막을 장애는 없다. 발 닿는 곳이 목적지이요, 머무는 곳이 곧 쉼터가 된다.
이 모든 게 7일간의 젊은 자유 족들을 위한 무제한 열차 티켓이 있어 가능하다. ‘내일로(Rail路) 티켓’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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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55분 열차는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54분도 56분도 아닌 딱 55분이다. 속도 경쟁에서 KTX에 밀리는 새마을 열차지만 의자간 거리는 다리를 한껏 뻗을 만큼 넓고 등받이를 젖히자 허리를 쭉 펼 만큼 내려간다. 편안함이 밀려온다.
동대구 역에서 경부선을 이용해 천안에 도착, 다시 장항선을 갈아 탄 뒤 충남 서천군에 닿아 그곳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17시간의 자유 열차여행.
기분 좋은 열차의 흔들림과 소음이 요람처럼 느껴지는가 싶더니 잠의 여신 히프노스가 귀전을 속삭인다.
#마음은 풍경을 품고, 풍경은 마음에 물들고…
잠시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깨자 열차는 철교 위를 내달리고 있다. 창 너머로 산과 들은 지난 밤 장맛비 덕에 초록빛이 완연하다. 얕게 깔린 장마구름과 야트막한 야산, 창끝같이 잎을 곧추세운 벼가 자라는 너른 논과 먼 산봉우리들의 잿빛 실루엣이 여행의 흥취를 흠뻑 불러일으킨다. 마음이 풍경을 품자 풍경은 곧바로 마음의 빛깔로 자리한다.
이름모를 간이역을 지날 때면 철길 옆 사람들의 한가로운 일상도 눈에 박히도록 정겹다.
눈부신 초록세상을 내다보며 커피를 주문했다. 좌석에서 꺼낸 받침대에 커피 잔을 놓고 여유를 부리니 ‘달리는 카페’와 다름이 없는 열차여행의 호사다.차창 풍경도 지루할 즈음에는 평소 읽을 책이 있다면 꺼내 읽어도 좋을 듯싶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은 지 2시간 30여분. 호두과자 굽는 냄새가 은은한 천안 역에서 서천 행 장항선으로 옮겨 탔다. 같은 새마을 열차인데도 속도가 조금 전과는 느리다. 단선철길인 장항선은 열차 간 교행을 위해 속도를 줄인 듯싶다.
열차는 아산을 거쳐 홍성, 광천, 대천을 지나고 있다.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들녘 저편에는 불어난 냇가에서 투망과 반두로 물고기를 잡는 풍경이 벌어진다. 머드축제로 유명한 대천 해수욕장의 대천 역에선 이른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부산하다.
목적지인 서천 역에 다다르자 역사는 한가로운 오후를 맞이하고 있다.
#아득한 해변에서 여름 낭만을 그려보다.
서천 읍에서 버스로 50분. 끝없을 듯한 갯모래 해안과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 춘장대는 해변을 감싸 안은 해송의 진한 솔향기가 퍼지는 서해안 보석 같은 해수욕장이다.
사각거리는 해변에 발을 들이자 놀란 갯모래 게들이 숭숭 뚫린 제 집 구멍으로 줄행랑을 친다.
본격적인 피서객을 맞기에 아직 이른 시기. 바닷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걷는 연인들과 두꺼비집을 짓고 노는 한 무리의 아이들은 드넓은 해안선을 따라 한 폭의 그림이 된다.
한 두주 후면 이 곳도 뜨거운 태양아래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밀가루 닮은 고운 갯모래 해안엔 피서객들의 즐거운 함성과 웃음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밤이면 또 손바닥만한 하늘을 드러낸 소나무 숲에서 별 헤는 사람들의 소망이 은하수를 건너 뻗쳐나가리라.
춘장대 해수욕장 바다 너머로 보이는 홍원항은 차로 10여분 거리. 전어 축제로 유명한 홍원항은 낚시 포인트로 활용되는 긴 방파제가 있어 썰물 때는 대나무 낚싯대로도 망둥어, 농어, 참돔 잡이가 가능한 작은 포구다.
홍원항을 나와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 마량포구 가는 길. 서해 바다 너른 갯벌이 눈 시리도록 펼쳐진 바닷가 언덕위에는 서천해양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각 해안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족과 개복치, 흑범고래 등 희귀 박제본 등을 비롯해 패류, 산호류, 화석류, 갑각류를 포함해 5천여 점의 해양생물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어류를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터치 풀’ 체험관도 마련돼 있고 2층 전망대에서 서해안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은 버들잎 꺾어 석별의 정 나눴건만
땅거미가 짙어지는 오후 7시. 여름날의 서천 역 하루해도 뉘엿 기울고 있다. 한적한 역사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 서넛이 고작이다. 개찰도 필요 없이 그저 승객은 시간이 되면 플랫폼에 나설 뿐이다.
옛 사람들은 버들잎을 꺾어 기약 없는 헤어짐을 애석했다지만 딱히 누구랄 것도 없는 막연한 그리움에 자꾸 뒤로 돌아봄은 먼길 나선 나그네의 공통된 마음일까. 석양빛에 길게 그림자 드리운 서천 역사엔 때 이른 잠자리들만 철로위로 오고 간다.
◇내일로 티켓이 추천하는 아름다운 철길과 가볼만 한 곳
1.영동선=가장 이색적인 구간을 달리는 철길로 유명하다.. 경북 영주를 출발 태백 통리역을 지난 열차는 백두대간을 넘고 삼척 도계읍, 아리굴, 스위치 백 구간을 지나 동해역을 지나면 바야흐로 열차안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가장 긴 코스가 시작된다. 묵호, 옥계역을 지나 정동진, 강릉 사이의 안인역까지 40여분간 오른 쪽을 동해바다를 두고 달린다. 파란 바다가 열차가 되는 순간이다. 정동진에선 바다가 코앞이다.
2.동해 남부선=부산역과 포항역 사이를 반복 운행하는 동해 남부선은 최근 남쪽 기점이 부산진역에서 부산역으로 바뀌었다. 지도로 보면 거의 모든 구간이 해안선과 나란히 달리지만 정작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스쳐지는 가는 구간은 영동선에 비해 짧다. 송정과 해운대 사이 약 10분 남짓 남해바다가 계속된다. 도심속 바다와 철길이 어우러진 미포 건널목이 유명하다.
3.전라선=익산역을 출발, 광활한 남해평야를 가로질러 전주, 임실, 남원, 곡성, 구례, 순천에 이르는 긴 여정 뒤에야 남해바다가 보인다.
그러나 열차가 달리는 동안 남해평야와 덕유산, 지리산, 한려해상공원 등 남도의 산과 들판, 바다의 다채로운 풍경을 파로라마처럼 펼쳐 놓은 것이 특징, 바다 구경은 만성리 해수욕장을 지나 여수역까지 5분정도. 그러나 아슬아슬한 절벽을 달려 차장 가득 바다만 보여주기에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경춘선 남춘천역
*춘천 호반여행=강과 호수로 엮이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물의 도시. 연중 펼쳐지는 신명나는 축제에 젊음과 활기가 넘쳐난다. 이런 까닭에 특별한 목적지 없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이다.
▶장항선 대천역에서 9.6km
*보령 머드 축제=올해부터 축제탄생 10주년을 맞아 기간을 2일 더 늘렸다. 대천 해수욕장 머드 축제에선 얌전빼며 멀리서 보기만 하면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온 몸에 흠뻑 머드를 묻혀야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축제는 22일까지 열린다.
▶중앙선 원주역에서 95km
*봉평 메밀국수=메밀의 주산지답게 사계절 메밀을 갈아 만든 국수냄새가 진동한다. 면소재지에 자리한 메밀국수집만도 대략 15군데. 어느 곳을 들러도 국수와 부침개 등 메밀요리가 풍성하다. 국수 맛의 생명인 육수도 과일과 채소만 갈아 만들어 그 맛이 깔끔하고 달착지근하다.
▶호남선 정읍역에서 31.5km
*부안 내소사=문득 새소리, 바람소리 그득한 숲이 그립다면 부안 내소사에 들러보자. 특히 내소사에서 직소폭포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 계곡 길은 트레킹코스로 안성맞춤이다. 30m물줄기가 급전직하하는 직소폭포의 푸른 소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
▶경원선 의정부역에서 16.4km
*포천 국립수목원=600년 역사를 간직한 숲으로 바쁜 일상과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줄 휴식공간으로 녹음이 우거진 산림욕장을 거닐다보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수목원내의 목본식물은 1천863종, 초본식물은 1천481종으로 단연 우리나라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내일로 티켓=철도청이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철도이용 상품으로 본인에 한해 KTX와 전철을 제외한 모든 열차를 7일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기간은 지난 11일부터 8월 31일까지로 대상연령은 만 18세~24세이다.
전철역과 여행사를 제외한 전국 모든 열차역에서 발매하며 가격은 4만9천800원. 여행안내책자와 승차권 케이스를 기념품을 증정한다. www.korail.com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