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선발투수는 롯데의 최동원, 해태의 선동렬이었습니다. 훗날 한국 야구사에 최고의 투수로 기록될 두 선수의 맞대결이었습니다. 첫 번째 대결은 1986년 4월, 앞으로 최고 투수가 될 선동렬 선수의 1-0 완봉승이었습니다. 8월에는 당대 최고투수인 최동원 선수의 2-0 완봉승이었습니다. 세 번째 대결은 어떻게 펼쳐질지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습니다.
경기는 치열하게 전개 되었습니다. 물러설 수 없는 대결로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습니다. 이 날 경기에서 최동원 선수는 209개, 선동렬 선수는 232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21세기에는 불가능한 투구수입니다. 지금은 아무 선수도 그렇게 많은 공을 던지려 하지 않을 것이고, 감독도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선수를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할 것입니다.
선발투수는 100개 내외의 공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연장 15회까지 이어진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한국 프로 야구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두 투수가 맞대결을 펼친 최고의 명승부였습니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실력이나 인기에서 최고의 선수를 선정한다면 두 선수가 최종후보에 오를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두 사람 중에 최고를 정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언론은 두 사람을 ‘세기의 라이벌’이라고 비교하기를 원했지만, 당사자인 선동렬 감독은 “최 감독님은 나의 야구 영웅”이라고 고백합니다.
최동원 감독이 선동렬 감독보다 다섯 살 위입니다(58년생). 두 선수가 숨을 몰아쉬면서 맞대결을 펼치는 경기를 다시 관전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최동원 선수는 프로야구 선수시절 248경기에 등판해서 그 중에 80경기를 9회까지 완투했습니다. 80경기 중에 15경기는 완봉승이었습니다.(9회까지 1점도 주지 않은 경기가 완봉승입니다)
그래서 "무쇠 팔"이라는 애칭을 얻었습니다. 특별히 1984년 한국 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어서 무쇠팔임을 널리 알렸습니다(한국시리즈는 7전 4승한 팀이 우승합니다). 그 무쇠팔 최동원 선수가 지난 주(2011년 9월 16일)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장례예배에서 집례한 김명수 목사님은 “고인이 암 투병 중에도 늘 용기를 잃지 않고주위 사람을 돌보았고... 병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겨 낸 용사였다”고 설교했고, “최동원이라는 최고의 투수를 만나 우리 모두 행복했다”고 그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동생 최수원 KBO 심판은 “어머니가 형에게 선수시절 던지던 공을 손에 쥐어 주었으며, 형은 운명 직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 공을 쥐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타자를 향해서 눈을 치켜뜨고 어깨를 움직여 두려움을 준 후에 15 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고는, “잘 봤지” 하는 표정으로 금테 안경을 치켜 올리던 당당한 모습을 이제는 기억 속으로 묻어야 하겠습니다.
원년 프로야구 홈런왕이었던 김봉연 선수는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투수 1호는 최동원 선수, 타자 1호는 장효조 선수가 선정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 두 선수가 일주일 사이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난 30년, 프로야구와 함께 한 팬들에게는 가슴 답답한 한 주였습니다. 무쇠팔도, 영원한 3할 타자도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라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그렇게 한국 프로야구 1세대가 기억 속으로 자리를 옮긴 한 주였습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 일서 2: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