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 자란도, 육지와 가깝지만 외로운 섬
고을개·모래치 두 마을 형성, 주민 11명…멸치·감성돔 주로 잡혀
청정해역 자란만 내해 깊숙이 위치
고성군 서쪽에 위치한 하일면과 삼산면에 둘러싸인 자란만. 굴양식장이 많아 1972년 체결된 한미패류위생협정에 따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해마다 봄이면 수질검사를 비롯해 위생점검을 하는 곳이다. 그런 만큼 ‘청정해역’하면 자란만이 대명사
처럼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자란만 안쪽 깊숙이 자리한 자란도를 찾았다. 육지와 가깝지만 주민이 얼마 되지 않아 정기 배편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외로운
섬으로 느껴진다.
행정구역으로는 하일면 송천리에 속하지만 주민들은 어선으로 섬과 가장 가까운 하일면 용태리 하중촌 선착장이나 육지교통이
좀 더 편리한 학림리 임포 선착장을 주로 오간다. 뱃길로 하중촌에서는 5분, 임포에서는 8분 정도면 닿는다.
자란도로 가기 위해 고성군 어업지도선의 도움을 받았다. 어업지도선 정박지인 삼산면 두포리 군령포 선착장에서 자란도까지는
제법 멀다. 뱃길은 자란만 외해를 지난다. 남해안에 적조가 발생해 행정당국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어업인들의 근심이 깊어질
때지만 자란만 바다는 맑고 푸르렀다. 곳곳에 펼쳐진 굴양식장이 청정해역을 말해주는 듯하다.
고성자란도
사람이 그리운 촌로 반갑게 맞아
30여 분 만에 자란도 고을개마을 선착장에 도착하자 촌로 한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급히 다가왔다. ‘미리 연락한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이지’ 생각하며 인사를 건네자 “섬에 사람이 귀해 배가 오는 것을 보고 반가운 나머지 와봤다”고 한다. 자란도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는 신부용(82) 어르신을 그렇게 만났다.
워낙 주민이 몇 되지 않은데다 나이 드신 분만 있어 섬 이야기를 들을만한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어르신을 만나 다행이다.
어르신은 우물을 자랑하더니 선착장과 가까운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부인은 진료차 삼천포에 있는 병원에 가고 없었다.
고성자란도
자란도는 육지에서 끌어온 상수도가 놓여있어 물 걱정은 없다. 하지만, 신부용 어르신은 지금도 집 우물을 이용한다. 두레박으로
길어주는 물을 먹어보니 담 너머 바다와 30여m 거리인데도 짠맛이 전혀 없고, 물맛도 괜찮다. 고을개마을에는 폐교된 수태초등
학교 자란분교 건물을 매입해 별장으로 만든 사람을 비롯해 외지인 몇 명이 오가지만 상주하는 주민은 신부용 어르신 부부와
할머니 두 분 등 3가구 4명에 불과하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중에도 텃밭에서 김을 매는 여든네 살 할머니를 만난 게 전부다.
한 때 양조장 있었을 정도로 번창
고을개마을은 신부용 어르신이 어릴 때 30여 가구가 있었을 정도로 동네도 컸고,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던 어선들이 모여들어
양조장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르신은 이곳에서 어선어업을 하면서 2남4녀를 키웠다. 지금도 주낙으로 낙지와 장어를 잡아
내다팔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 생업으로 하지는 못하고 소일거리라고 한다.
작별을 아쉬워하는 신부용 어르신을 뒤로하고 배는 모래치마을로 향했다. 자란도 서쪽 작은 포구인 고을개마을은 송천참다래
정보화마을을 마주보고 있다. 반면, 모래치마을은 섬 북쪽 끝에 위치한다. 두 마을을 이어주는 1㎞ 정도 길이의 해안로가 있지만
섬사람들은 예전부터 주로 배를 이용해 오갔다.
배를 타고가면서 바라보는 육지는 서쪽에서부터 하일면 송천리와 학림리, 용태리로 이어진다. 멀리 문수암이 있는 무이산
(546m)과 보현암이 있는 수태산(574.7m)이 자란만을 내려다보고 있다.
학림리 임포마을 선착장에서는 인근 바다에서 잡혀온 횟감용 생선이 매일 아침 경매에 붙여진다. 학림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돌담마을로 유명한 학동마을이다. 공룡화석지가 있는 용태리 가룡마을과 삼태마을은 명절을 앞두고 마을 앞 갯벌을 개방한다.
종패를 뿌려 1년 간 기른 바지락을 바구니 가득 채취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입장료를 받지만 많은 외지인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인기척 없고 농작물이 길손 반겨
모래치마을 선착장에 도착하자 마을 앞 텃밭에 잘 가꾸어진 옥수수와 참깨 등 농작물이 길손을 반긴다. 원주민은 3가구에 7명이
살고 있다는데, 동네를 둘러보는 동안 아예 인기척조차 없다. 매미와 풀벌레 우는 소리, 백구 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고성자란도
마을을 돌아 북쪽 모서리로 가자 여자 한 분이 마른 멸치를 다듬고 있었다. 마을 주민 최분선(68) 씨다. 20년간 맡았던 자란도
이장직을 얼마 전 젊은 사람에게 넘겨줬다는 남편 이규현(70) 씨는 출타 중이다. 최 씨 부부는 섬 북동쪽 바다에 정치망 어장을
갖고 있다. 월 2000만 원 이상 매출을 올려야 어장이 유지될 만큼 제법 규모가 크다. 부부만으로는 어장을 운영할 수 없어 내국인
1명과 외국인 근로자 3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주로 잡히는 멸치는 말려 삼천포 위판장에 내다팔고, 각종 활어는 매일 아침 가까운 학림리 임포 어판장에
경매로 위판한다. 최 씨는 삼천포에서 자란도에 시집와 40년 간 살면서 1남1녀를 키웠다. 현재 자란도에서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주민은 최 씨 부부만이라고 한다.
길게 뻗은 갯바위 행렬 공룡 뿔 연상
자란도는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먼바다를 등진 섬 서쪽과 북쪽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동남쪽은 해안이 가파른데다 바람과
파도를 바로 맞기 때문이다. 동남쪽 해안엔 길도 나있지 않아 둘러보려면 썰물 때 갯바위를 따라 걸어야 한다. 어업지도선 박외도
선장님께 섬을 한 바퀴 돌자고 부탁했다. 파도가 잔잔한 자란만 외해에는 바다 위에 떠있는 굴양식장 부표가 점점이 펼쳐져 있다.
남쪽 멀리 사량도 지리산 옥녀봉과 출렁다리가 보인다.
자란도 쪽으로 눈을 돌리니 산과 갯바위 외엔 특별한 게 없다. 다만, 섬 남쪽 끝에 길게 뻗은 갯바위가 눈길을 끈다. 갯바위를
따라 뾰족하게 솟은 바위 행렬이 마치 공룡의 뿔을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유명한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이
멀지 않다. 임진왜란 때 여수의 전라좌수영에서 출발한 이순신 장군의 함대가 제1차 출전에서 첫날밤을 보냈다는 하일면
동화리와 춘암리를 돌아가면 상족암이다.
잔잔한 호수 같은 자란만과 하늘의 뭉게구름, 멀리 수태산과 무이산이 어우러진 자란도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돌아오는 배에서
바라본 삼산면 두포리 앞 바위섬의 무인등대와 그 옆에 떠있는 바다공중화장실이 자란만의 뱃길과 청정해역을 지키는 듯하다.
고성자란도
자란도의 어제와 오늘
섬 이름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자란自卵)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섬에 붉은 난(자란紫蘭)이 많아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자란도(自卵島)로 기록하고, ‘조선지형도’에는 자란도(紫蘭島)로 표기하고 있다. 예전부터 고을개
(읍포邑浦)와 모래치(사포沙浦) 두 마을이 형성돼 있다. 고을개는 임진왜란 때 고성현 읍치(邑治·고을 수령이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가 임시로 피난했던 곳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모래치는 모래사장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두 마을을 합친 자란도의 인구는 주민등록상 19가구에 25명이지만, 상주하는 주민은 6가구 11명에 불과하다. 산지가 많아 농사
지을 땅이 별로 없다. 그래서 예전엔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으나 지금은 어업을 할 사람조차 없다. 주변 바다 일대는
멸치와 감성돔, 참돔, 게 등이 주로 잡힌다. 자란만에는 특히 여름이면 ‘하모’로 불리는 갯장어가 유명하다. 겨울에는 물메기도
많이 잡히는 해역이다.
섬 면적은 58만 9000㎡, 해안선 길이는 3.6㎞다. 최고봉은 124m이고, 5부 능선 (표고 60m) 이하 지역이 전체 면적의 80%를
차지하나 경사가 심해 가용면적은 적은 편이다. 고성군이 자란도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광지 조성을 추진했으나 민간
자본이 투자를 주저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출처 경남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