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거제해녀의 전통을 잇는 '거제해녀아카데미'가 개설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거제해녀협동조합이 주관하는 아카데미는 해녀문화를 알리고 계승하자는 차원에서 교육비 전액 무료로 기획됐다.
지난 5월 7일부터 8월 27일까지 매주 토요일 진행되고 있다. 거제로 원정물질에 나섰던 제주해녀들이 이제는 거제해녀의 뿌리가 되어 후진 양성을 위한 강사로 나섰다. 60대 후반에서 70대 후반까지 고령화되면서 점차 해녀 수가 줄어들고 있어 이번 아카데미 과정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좌충우돌하는 젊은 해녀·해남 지원자들의 수업현장을 따라가 본다.
황숙경 편집위원
1기생 20명 모집에 120명 넘게 지원
거제해녀협동조합은 해녀 관련 복지시설 설립, 프로그램 개발과 연계해 거제해녀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거제해녀아카데미 과정을 개설했다. 조합은 20세 이상 50세 미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1기생 모집 공고를 냈을 당시 지원자가 적지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지난 2~3월 받은 지원서가 120장을 넘어가자 오히려 대상 선정에 고심하는 처지가 됐다. 지원서와 면접 심사를 통해 연령, 체력, 경력 등 몇 가지 기준에 따라 모집정원 20명을 훌쩍 넘긴 28명을 선정하고, 17주 과정의 수업에 들어갔다.
해녀아카데미라고 여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28명 중 8명이 남자 수강생이다. 남녀수강생들은 회사원, 통역사, 대학원생, 해군장교, 자영업자 등 각양각색이다. 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경력 40~50여 년의 거제해녀협동조합 소속 해녀 7명이 나섰다.
지난 5월 한 달 실내에서 진행된 이론수업을 거친 예비 해녀·해남들은 6월부터 거제시 사곡해수욕장에서 실기 수업을 받고 있다.
40~50년 경력 해녀 7명 강사로 나서
수강생 28명은 1조 4명씩 7개조로 편성돼 실기수업을 받는다. 1조에 해녀강사 1명씩 배치돼 이들을 가르친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체조로 몸풀기를 한 후 수영수트와 납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코까지 덮는 일안식의 수경을 쓴다. 마지막 채비로 오리발을 신고, 직접 만든 *태왁과 망사리까지 어깨에 메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수강생들의 모습만큼은 이미 전문 해인(海人) 느낌을 풍긴다.
젊은 수강생들은 그렇다 치고, 현대식 수영수트를 입은 60~70대 해녀들의 차림에 의아해지기도 한다. 짙은 화장도 짐작했던 해녀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바닷물에 반사된 햇빛에 그을리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화장을 한다는 해녀선생님들이 "그래도 별 소용이 없다"며 웃는다.
앞장서 입수한 해녀선생님들이 자맥질하는 법, 수압에 적응하는 법,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숨비소리를 내며 휴식하는 법을 시범 보이며 가르친다.
"우리야 제대로 헤엄칠 줄도 모르면서 물질을 배웠다. 배웠다고 할 수도 없다. 어머니나 언니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하면서 터득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 수영을 잘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빨리 배운다." 제주도에서 16살부터 물질을 시작해 거제로 옮겨온 지 30년 됐다는 고정자(71)씨는 수강생들이 잘 따라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물질 경험 토대로 수업 진행하고 실습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보라를 일으키며 잠영하는 수강생들이 해삼이나, 청각 등 채취한 해산물을 손에 쥐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 때마다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태왁에 매달려 숨을 몰아쉬는 수강생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며 격려도 한다.
거제에서 30년째 물질을 하고 있다는 김성량(71)씨도 제주도 한림면 출신 해녀다. 제주도에서 결혼해서 가족을 이끌고 거제도로 왔다. 지금은 거제가 고향이나 마찬가지라는 그는 해녀 경력 52년차. 30대까지 물질을 한 어머니를 따라 다니다 해녀가 됐다. 지금까지 물질하며 살 줄 몰랐다는 그는 수강생들의 열정에 놀랐다면서 안전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용기가 좋다. 하지만 바다 속 세상에 너무 빠져있다 보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숨이 닿는 데까지만 내려가야 한다. 작업할 때는 바다 위도 잘 살펴야 한다. 멀리 보이던 배가 물 위로 올라올 때 머리 위에 와있는 경우도 있다. 항상 안전을 염두에 둬야 한다."
대선배 해녀로부터 수업을 받는 수강생들은 실제 물질 경험을 토대로 설명을 이어가는 수업방식이 너무 좋다고 입을 모은다.
각양각색 수강생들 참여 동기도 다양
'수영이 좋아서', '스쿠버다이빙이나 스킨스쿠버와 방법이 다른 해녀 물질을 배우려고', '바다가 좋아서', '해녀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등등 다양한 참가동기만큼 다양한 참가자들의 면면이 수업분위기를 한층 띄운다.
대학원생 김지애(31)씨는 매주 토요일 대구에서 수업을 위해 거제에 온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다는 그는 "해녀는 해산물 채취만 하는 줄 알았는데 바다 보존사업도 같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환경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저에게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수업이 됐다"고 말한다. 김씨는 후배들에게 해녀아카데미를 알려서 프리다이빙과 접목한 체험프로그램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중학교 교사인 최혜선(38)씨도 바다가 좋아 수영과 스쿠버다이빙, 스킨스쿠버까지 다 경험한 바다레포츠 마니아다.
수경이 코를 덮어 숨 쉬는 법이 다르고, 수압을 견디는 법도 달라서 해녀 영법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는 최씨는 수료 후 바다환경 보존을 위해 봉사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스쿠버다이빙을 해보고 바다 속 세계에 반했다. 하지만 수중 세계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쓰레기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해녀들은 바다 청소 봉사활동도 펼친다. 잘 배워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학생들에게도 바다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스물다섯 살 참여자 해녀로 전직 계획
해녀아카데미 수강생 중 가장 젊은 진소희(25)씨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해녀가 되기 위해 참여한 경우이다. 간호조무사로 병원근무를 해오던 진씨는 "실내 근무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야외근무를 택한 셈"이라면서 "노력한 만큼 벌 수 있고, 하루 최대 4시간이라는 작업 시간외 개인적인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전업을 작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익혀온 수영 실력을 뽐내며 바다를 누비는 진씨의 모습은 이미 해녀 선배들 못지않아 보였다.
조영승(29·거제국제교류센터장)씨는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직무 때문에 좀 더 한국적인 것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고자 아카데미에 지원했다. 그는 "수영을 좋아해서 바다와 친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녀선생님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즐기는 바다와 다른 의미의 바다를 알게 됐다. 채취 목적의 해녀 잠영을 외국인들에게 경험하게 해서 독특한 한국 해녀문화를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조씨는 아카데미가 진행되는 중에 외국인 대상 해녀 체험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거제해녀협동조합과 함께 지난 6월 12일과 26일 덕포해수욕장에서 두 차례 진행한 프로그램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첫 회 행사에 미국,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포르투갈, 프랑스 등 6개국 15명이 참여하면서 거제 체류 외국인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해 신청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전통문화 계승과 함께 일자리 기회도
현재 거제에는 250여명의 해녀가 17척의 해녀 작업선에 각자 소속돼 물질하고 있다. 거제나잠회 소속 회원이 되거나 각 어촌계 계원이 되어야 해산물 채취를 위한 물질을 할 수 있다. 아카데미 수료생들은 수료 후 거제나잠회 회원이 될 수 있어 해녀와 해남이란 전문 직업인이 될 수도 있다.
최영희 거제해녀아카데미 교장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해녀문화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이번 과정을 개설했다"며 "단지 전통문화의 계승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취업에도 의미를 두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바다경험을 통해 기업체 취업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무궁무진한 기회의 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제주해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노력이 답보상태인 가운데 일본이 한·일 합동 등재 운동을 벌이고 있어 안타깝다는 최 교장은 "해녀문화는 제주도가 뿌리인 우리만의 고유문화"라며 "빈약하기 그지없는 해녀에 대한 자료보존과 복지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도 각계각층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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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왁 해녀들이 물질할 때 물 위에 띄워 놓은 부표. 위치 표시, 쉼터, 수확한 어획물을 모아두는 저장고 역할을 한다. 옛날에는 주로 박으로 만들었으나 요즘은 스티로폼으로 만든다.
**숨비소리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던 숨을 휘파람같이 내쉬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