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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전차 N형의 해외 작례, 전면 장갑을 보강하기 위해 캐터필터를 덕지 덕지 붙힌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난 번 글에 이어서 독일 3호 전차 이야기 계속됩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시작하는 것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보곤 합니다. 1940년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프랑스를 점령하게 됩니다. 히틀러에게는 얼마 안있으면 유럽 대륙과 소련까지 자신의 손바닥 안에 쥐게 될 것이라는 망상을 갖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듭하게 됩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히틀러에게 자신이 상대하는 연합군이 마냥 물렁거리는 약골이 아닐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안겨준 첫번째 전투가 어쩌면 앞글에서 언급했던 프랑스 점령 직전에 영불 연합군의 마지막 항전 "아라스 전차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국의 마틸다 전차는 프랑스 침공의 선봉에 섰던 독일의 2호 전차의 20mm 주포에도, 독일 육군의 37mm 대전차포에도 몇 안되어 뒷전에 밀려있었던 3호 전차의 50mm 주포에도 심지어 4호 전차의 75mm 주포의 사격에도 전면 장갑은 끄떡없는 "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숫적으로 가장 많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마틸다의 밥이 되어버렸던 2호 전차는 독일이 이 전차전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수가 파괴되고 수많은 기갑병들이 탱크 속에서 숯덩이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불세출의 명장 롬멜이 독일 공군이 사용하던 88mm 대공포를 끌고 와서 마틸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자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훗날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면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맹활약을 했던 롬멜은 프랑스 침공을 성공으로
이끈 아라스 전투에서 88mm 대공포를 사용하여 무적 철갑의 영국 마틸다 탱크들을 부숴버립니다.)
아라스 전차전 이후에 히틀러와 독일군 군 수뇌부는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을 느꼈고, 좀 더 과감한 추격을 명령했다면 대서양 해안에서 영국의 선박들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던 엄청난 수의 영국군과 프랑스 군들을 섬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격을 늦추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2차대전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연합군측 철수작전이라고 할 수 있는 툉케르크 철수 작전은 5월 27일~6월 4일 단 9일 동안 무려 34만명이 가까운 패잔병들의 철수를 마치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프랑스 침공이 1940년 6월에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리게 되자 이번에는 동부 전선에서 스탈린의 소련과 전면전이 시작되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3호 전차에 좀 더 촛점을 맞추게 되면,
(3호 전차 E형)
3호 전차는 현대 전차의 모습을 최초로 갖춘 전차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전에 1호 전차가 2인승, 2호 전차가 3인승이었던 반면 3호 전차는 5인승, 즉, 전차장-무전수-포수-탄약수-조종수의 분담 체제를 갖춘 첫번째 전차인 것입니다. 게다가 무전기의 기본 탑재를 하는 것도 그런 평가를 받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향후 독일 뿐만 아니라 연합군들조차 자신들의 탱크 개발에 3호 전차의 설계를 참고할 정도로 독일의 기술력을 입증하는 훌륭한 차체를 갖고 뛰어난 안정성과 기동성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1940년에 소련이 아직 독일과 전면전을 시작하기 이전에 수입해온 3호 전차의 차체 설계의 안정되고 훌륭한 서스펜션 설계를 참고하여 2차대전 독일과 연합군 통털어 최고의 전차로 평가되는 몇대의 전차들 중에 하나인 T-34 전차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또한 1942년에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에게 포획된 3호 전차 L형은 미국으로 옮겨가서 미군이 자신들의 탱크 개발을 위해 서스펜션 설계를 그대로 복제하여 M18(헬켓), M24(채피), M26(퍼싱) 전차 개발에 사용합니다.
(3호전차 N형)
(미육군이 타이거1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퍼싱 전차의 서스펜션은 3호 전차의 그것의 복제품이라는....)
(독소전쟁 초기 독일은 작전명 "바르바로사"로 불렸던 대규모 공세로 순식간에 소련의 중심부까지
진격해나갑니다. 3호 전차는 그 공격의 선봉에 선 주력 전차였습니다.)
1936년에 처음 생산이 들어간 3호 전차는 초기 A형에서 D형까지는 실전에 배치될만한 수준이 못되었지만 본격 양산이 시작된 E형의 경우 실전 투입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애초 37mm 주포를 채택하였지만 향후 화력 강화를 감안하여 50mm로 주포를 교체할 수 있도록 포탑의 크기를 설계하게 되는데 실제 전쟁이 진행되면서 독일이 상대하는 연합군의 주력 전차들의 주포가 훨씬 더 큰 사이즈가 되자 기존 설계에서 75mm까지 늘려보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한계를 드러내고 포기하게 됩니다.
1940년 프랑스 침공에서 "어쩔 수 없이" 선봉에 섰던 2호전차는 이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정찰용이나 보병 지원용으로 사용하면서 독일 기갑 전력에 중심에서 제외되게 되었고, 양산 체제에 돌입하게 된 3호 전차는 우선 1940년~41년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어 연합군들의 전차들과 다시 한번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한 독소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독일의 주력 전차로 선봉에 서게 됩니다.
(3호 전차 앞에서 지휘 중인 독일 전차전의 명장 구데리안 장군)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은 소련이 T-34라는 강력한 중전차가 있었고, KV-1과 같은 "괴물 전차"가 있었음에도 왜 독소전쟁 초기에 그렇게 무력하게 패배를 거듭하였는가입니다. 그 이유를 몇가지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멀리 보이는 T-34 전차와 소련군이 사용하던 대전차 라이플)
(T-34와 함께 또 하나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KV-1, 엄청난 체구의 골리앗을 연상시킵니다.)
첬째, 스탈린은 히틀러가 "감히" 소련이라는 큰 나라를 공격할 만큼 "미친 놈"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속단하고 독일과 마주 한 전선에 보다 강력한 방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 독소 전쟁의 개전 초기에 독일이 상대했던 소련군들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즉 유능한 장교와 하사관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1939년 소련은 스탈린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전체 군 장교와 하사관의 절반 가까운 숫자의 인원을 숙청하여 총살을 하거나 수용소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런 탓에 정작 전쟁이 터진 1941년 6월 당시에 소련군의 군대 편성의 엉성함은 물론이고, 제대로 능력을 갖추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장교와 하사관들이 태부족했던 것입니다.
세째, 스탈린의 부하 장군들 중에 포병 사령관이었던 그리고리 쿨리코 원수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T-34의 개발과 실전 배치를 늦추고, 훼방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유가 단순히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파워 게임의 목적으로 자신에게 경쟁 입장인 장군들이 주도하는 T-34 탱크의 성능이 독일의 3호,4호 전차보다 떨어진다는 이유로 생산을 저지했던 것입니다. 그런 탓에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6월에는 T-34 탱크가 제대로 전방에 배치되지도 못했거니와 기갑 부대 자체가 독일처럼 효율적인 공격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대로 훈련되거나, 효과적으로 편성되어 있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3호 전차가 훌륭한 차체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T-34는 뛰어난 방어력과 화력 (76.2mm 주포)과 3호 전차에는 떨어져도 그리 많이 열세가 아닌 차체 설계와 안정성으로 인해서 사실상 3호 전차에게 큰 위협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 이 권력욕에 눈이 먼 장군은
소련 기갑 전력에 큰 방해 요소였지만 그의 최후는
1950년 스탈린 비방죄로 체포되어 총살되었습니다.)
게다가 독일이 최초로 수행한 "양익포위" 전술은 초기에 매우 효과적으로 소련군들을 섬멸하게 되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소련은 매우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이므로 전방에서 독일의 공격을 받아서 패퇴하게 되는 병력은 멀찍이 도망 간 후에 후방에서 합류하게 되는 지원군들과 함께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춰서 다시 반격하게 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력의 독일이라도 이런 식으로 소련군이 후퇴-> 회복 -> 반격 -> 후퇴 -> 회복 -> 반격을 반복하다보면 비록 전진은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독일이 더 불리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자신들 앞에 나타난 소련군들이 패하더라도 후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되고 완전히 섬멸하거나 포로로 잡아서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탓에 독일은 보병들이 전면에 소련군들과 접전을 하면서 발을 묶어놓은 동안 기갑부대가 신속한 기동력의 3호 전차를 사용하여 양 날개로 돌아가며 포위를 해서 공격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독소전쟁 중에 투항하는 소련군들, 이들 대부분은 독일군에 의해서 학살 당합니다.)
초반에는 독일의 양익포위 전술로 무력했던 소련군들이 엄청난 솟자가 항복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군 입장에서 갈 길이 바쁜 상황에서 이들을 처리할 방안이 없었으므로 대부분 벌판에서 기관총으로 난사하여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독일의 포로에 대한 학살 소식이 소련군에게 전해지게 되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련군들은 부실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항전하는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게다가 애초에 스탈린과 중앙 공산 정부에 반감이 있었던 소수 민족들이 독일군이 점령하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철저한 인종 차별 주의자들이었던 독일군들은 이들에 대해서 유대인이나 집시들처럼 잔혹한 학대와 학살을 자행하게 되자 점령된 지역의 소수 민족들도 레지스탕스로 돌변하여 독일군에게 공격을 가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련도 무엇이 잘못되었음을 파악하게 되자 T-34 탱크의 생산의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일단 제대로 기갑 부대를 갖추고 나타난 T-34 탱크가 3호 전차보다 훨씬 강력한 76.2mm 주포로 공격을 가하자 더이상 3호 전차는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3호 전차의 화력의 한계는 50mm였고, 아무리 뛰어난 차체를 가지고 기동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공격을 하지 못하는 전차는 절대 승리할 수 없는 신세였습니다.(후에 50mm 장포신을 장착한 3호 전차가 T-34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만 여전히 T-34와는 현격한 열세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T-34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지 않았다고 소련이 전차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BT-7과 같은 구형 전차는 3호 전차 앞에서 고철 덩어리일 뿐이었습니다.)
(T-34 전차- 우리에게는 한국 전쟁 당시에 북한군이 앞세우고 왔던 바로 그 전차라서
나쁜 기억이 많은 놈이지만, 2차대전 동부 전선에서 독일 기갑병들에게는 KV-1과 함께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나마 75mm지만 단 포신의 주포(개전 초기에 4호 전차가 장착했던 포임.)를 장착한 N형이 나오지만 단포신의 곡사포는 의미가 없는 존재였던 탓에 1943년에 들어서면서 주력 전차 대열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2호 전차의 신세처럼 보병 지원이나 정찰용으로 쓰이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독일의 1호~3호 전차들은 비록 훌륭한 차체 설계로 기동력이 뛰어났으나 반면에 초라한 화력으로 소련이나 영국과 같이 제대로 된 기갑 전력을 갖춘 상대를 만나게 되는 순간 뒷전으로 물러나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3호 전차)
1941년 10월 우크라이나에서 3호전차 부대를 만나게 된 소련군의 T-34와 KV-1은 강력한 화력으로 전멸을 시키는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당시 3호전차는 50mm 주포를 장착한 비교적 후반기 개량형 J형이었지만 소련군이 자랑하는 주력 전차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하는 화력이었습니다.
(파괴된 3호 전차)
하지만 4호 전차보다도 측면 장갑의 방어력이 우수했던 탓에 N형은 1943년 일시적으로 타이거 1이 전선에 등장하자 이 거대한 괴물과 팀을 이루어 타이거 전차를 엄호하는 일종의 윙맨 역활을 하는 구성으로 전선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이는 타이거 1 전차의 생산 초기에 가뜩이나 부족한 숫자로 타이거 만으로는 부대를 조직할 수 없는 탓에 75mm 단포신의 주포를 가진 N형이 타이거 옆에 붙어서 일종의 호위를 하게 되는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성조차 타이거 1이 추가로 공급되게 되자 사라지게 됩니다.
(3호 전차 N형의 비교적 최큰 키트 - 포토 에칭 부품도 들어있는 고가품입니다.)
3호 전차를 가지고 "잠수 전차"를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수중 15m까지 잠수할 수 있었고 20분간 수중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괴작을 만든 이유는 1940년 "바다사자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본토에 상륙하려던 계획을 입안하면서 이 잠수전차를 무려 169대나 만들었습니다. 실제 작전은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후에 도하 작전에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모델러들에게 잘 알려진 3호전차 파생형으로는 지난 번에도 소개 드렸던 스투름게슈츠가 있습니다. 실전에서 꽤 효과를 보았던 돌격포입니다.
(스투름게슈츠 III - 주로 보병들과 함께 적 진지 파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3호 전차의 파생 모델 입니다. )
(깔끔하게 만들어진 타미야 키트 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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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사진과 고증들 잘보고 갑니다.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고두고 볼 아주 알찬 내용입니다.
T-34와 독일 3호전차가 갑자기 만들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앱을 설치하니 님들 댓글 바로 보고 인사드릴 수 있어 좋네요
김진형님 수많은 MMZ 메달 기록에 또 하나를 더 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아이쿠 과찬이십니다. 저의 부족한 작품을 잘봐주셔서 제가 넘 감사드립니다.^^
웹 사이트를 하나 개설하셔서 연재하셨던 내용을 취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카페 내에 밀리터리 모형잡지 칼럼이 하나 생긴 듯한 기분이에요. AFV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훌륭한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전 그냥 여기가 좋아요. 제글을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 한....또 언젠가는 제 제작기도 올린다는 희망도 있고......
이런글을 쓰실정도면 배경지식이 어마어마 하실듯~~~ afv는 문외한이라.... 많은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도움 되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집 목록에 삼호전차 추가입니다^^
지식이 어마어마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어릴 적부터 탱크 키트를 만들면서 그 탱크들이 갖고 있는 사연은 무엇일까 궁금해서 열심히 알아보다보니 2차대전 전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알게 되면 알수록 개발 과정이나 전투에서 벌어진 일들이 재미있더군요. 좀 더 많이 알고 작품을 만들면 더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글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Polish September Campaign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 해주셨네요.^^
전쟁사에서부터 병기에 대한 분석과 운용 방법까지, 제가 좋아하는 History chnnel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O^
훔~ 이건 원 보통 자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주인장 외 영자님들~ 게시판 하나 할애 해 주시는게 어떻실지요?
강추.!!!
(다른 방식으로 Wiki 같은 형식을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과분한 칭찬이시구요. 단 한분이 제글을 읽더라도 정말 모델링 취미에 도움이 되고,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저도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이런 여러분들의 댓글들이 있는 한 제 글들은 계속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타미야에서 발매했던 2차대전이나 그후 냉전 시대때 탱크 키트들 하나 하나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모두 풀어내면 엄청난 분량이 될 것이거든요.
너무 잘보고 있습니다..지식이 업데이터 되는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진오류가 있어서 L형이라고 쓰신 사진2곳에 위쪽은 E형같고요..2번짼 L형바탕에 N형같은데요..
그렀네요! 그런데 왜 이런 실수를 했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글 쓰면서 졸았나봅니다....T T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해박하시네요^^
감사합니다
3호 전차 사고 싶어지네요^^
이렇게 여러 고수님들 관심 가져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