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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정원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데이먼 영/이론과 실천
문밖에 처음으로 나선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문밖에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겨울에도 가벼운 겉옷만 걸친 채 아테네를 돌아다닐 정도였단다. 숲의 신성한 분위기에 취한 소크라테스는 본능적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작은 숲의 아름다움은 몽상과 묵상으로 이끄는 심미적 미끼였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할 일이라고는 숲에서 얻는 그 특별한 감수성과 감각을 발휘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문밖으로 처음 나선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이야기 하면서, 책의 서두엔 당연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고 있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Academy),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Lykeion)도 신성한 숲에 자리했으며,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정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다고 말한다. 정원에서는 철학의 두 기본 요소가 결합하기 때문인데, 바로 인간과 자연이다. 정원의 특별함은 자연과 인간의 결합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데 있다. 정원의 뿌리는 보다 근본적인 충동에 있다. 땅의 일부를 다듬어 그곳을 어느 장소들보다 돋보이게 하려는 충동. 이는 신성하다(sacred)라는 단어의 기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일까? 이슬람사원의 3대 요소는 탑, 물, 정원이라는데, 신성함의 의미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Jane Austen
UNESCO가 세계 도서의 날에 맞춰 실시한 ‘당신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는 주제의 설문에서 [오만과 편견]은 1위를 차지했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익히 잘 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나온 문구다. 2017년에 영국 지폐에 새겨진 문학가 중 최초로 10파운드 모델이 되기도 한 제인 오스틴. 영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제인 오스틴. 그녀 문학의 바탕에 바로 그녀가 사랑한 정원 초턴 코티지(Chawton Cottage)가 있다.
♣Marcel Proust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
처음 알았다. 팬지가 향을 맡아도 천식을 유발하지 않는 유일한 꽃이라니. 프루스트 덕분이다.
분재에 대한 생각도 프루스트 덕분에 달라졌다.
‘하나의 씨앗이 미래의 꽃을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분재도 그 나무가 지나온 서글픈 시대와 다소 우울한 풍경을 꿈꾸도록 유도한다고 프루스트는 주장했다.’ 그래서 분재를 상상의 나무라고 말한다고 한다. 프루스트가 분재를 통해 떠올린 생각들은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 그이 사례는 정원이 꼭 넓고 사치스러울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분재의 원리는 마당의 올리브 나무나 현관의 제라늄 화분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경관의 소박함이 마음의 가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한 프루스트의 분재 철학에는 보다 광범위한 주장이 담겨있다. 인생에서 가장 평범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을 기념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외침이다. 그 외침은 익숙함에 무감한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다. 소소한 디테일, 자잘한 사물, 건성으로 보아 넘긴 사실 들을 가까이에서 면밀히 살펴보면 그것들 안에서 놀라운 통찰력과 인상을 얻을 수 있다.
♣Leonard Woolf
나에게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가 먼저 다가온다. 이들 부부가 몽크스 하우스(Monk’s House)로 이주해 온건 1919년 이었다고 한다. 버지니아는 이곳에서 22년을 레너드는 50년을 살았다고 한다. 몽구스, 맨드릴이라는 애칭을 불렀다는 부부.
유엔의 전신 격인 국제연맹이 탄생하는데에도 ‘그 무엇도 중요치 않다(NOTHING MATTERS)’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은 레너드의 공이 컸다고 한다. 정원은 책을 읽거나 쓸 가치가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매달릴 가치가 있었다. 더 명확하고, 더 온건하고, 더 정직한 인생이 정원 안에는 있었다고 느끼며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 속에서도 지저분한 손으로 사과나무 가지를 치고 있는 레너드.
♣Friedrich Nietzsche
생각은 걷는 발뒷굼치에서 나온다
니체가 특정한 나무 밑에 서 있을 때마다 그의 머리 위로 생각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 나무가 바로 게당켄바움(Gedankenbaum) 즉 생각나무다. 생각나무는 그에게 가족과 계층, 전통적 교육이라는 보장된 확실성을 잔디밭 아래 묻어버리고, 자연처럼 폭력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혁신적으로 변할 것을 요구했다. 니체에게 이탈리아 소렌토 레몬나무 숲은 그의 생각과 가치, 경력, 관계를 실험하는 도전의 장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레몬나무 숲은 철학자 니체에게 인간적인 위안이었다. 그곳은 작은 레벤스라움(Lebensraum) 즉 살아 있는 공간이었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과 악을 초월한 좋은 고독의 장소였다. 니체는 풍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 했다고 한다.
♣Sidonic Gabrielle Colette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칭송받는 여류 작가란다. 또한 스캔들 제조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녀는 시대를 앞서 나간 레즈비언이었다. 또한 잘 정돈된 고독 속에서 현실과 상상이라는 두 세계 속에서 살았다.
콜레트는 꽃들의 규칙적 모양과 색깔, 생리적 주기를 파악한 다음, 이를 종합해 보편적인 성격으로, 쇼펜하우어의 표현을 빌라자면 식물에 관한 단 하나의 변하지 않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예를 들면 팬지는 헨리 8세처럼 흔하지만 위엄 있고....자기만족적이며....금세 타락하는 성격이었다. 아네모네는 위선적이었고, 돌풍에 휘말린 낙하산처럼 갑자기 꽃임을 펼치기보다는 때를 기다렸다. 그런가 하면 장미는 왕조를 이루었다. 콜레트는 꽃을 통해 의식하는 방식을 점차 변화시킴으로써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Jean-Jacques Rousscau
언어를 통한 자화상 그리기에 재능이 있는 루소. 그의 망명지 생피에르(Saint-Pierre)섬의 숲 속. 식물학을 통해 루소는 그의 생각을 배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중요한 통로. 식물학은 관찰력과 분석력을 단련시킨다. 보는 것에 이름 붙이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제대로 보는 법부터 가르치자는 것이 루소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식물학은 정확하고 즐겁게 인식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문명화된 생활로 인해 마비된 의식을 치유한다. 루소에게 식물학은 사회와 자신의 페르소나로 인한 부담감을 덜어내는 그만의 자가치료 요법이었다.
♣George Orwell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에 내가 드러내고픈 거짓말, 내가 관심을 유도하고픈 사실 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거의 모든 글들은 직접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웰에게 있어서 정원 가꾸기는 그의 모든 모험이 그랬듯, 자책이라기보다 하나의 실험, 즉 사실들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이른바 오웰의 정원은 인식론을 연마하는 실험실이었다. 조지 오웰의 정원은 익숙하지만 거짓된 관념에 매달리지 말라고,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완벽한 이론을 조심하라고, 추종자들을 가르친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작가로 다가오며, 다시 한 번 그의 책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특히 ‘나는 왜 쓰는가’와 ‘위건 부두로 가는길’은 꼭 읽어보고 싶다.
♣Emily Dickinson
그 어떤 여객선보다도 다양한 장소로
여행을 시켜주는 것은 바로 책이다
이런 말을 한 것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해가 간다. 요즘말로 하면 심각한 집순이다. 거의 히끼코모리 같은 수준이다.
에밀리 디킨슨에게 제2의 언어는 바로 정원이란다. 그녀가 가장 사랑한 계절은 봄이다. “3월과 4월에는 / 그 무엇도 밖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 신과의 / 다정한 만남이 있기 전에는” 또한 그녀는 구근식물에 열광했고, 구근식물이야 말로 가장 매력적인 형태의 꽃이라고 여겼다.
♣Nikos Kazanzakis
솔직히 놀랐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본식 정원에 매료되었다니.
정원의 소박성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카잔차키스. 교토의 사찰 료안지(龍安寺)의 한 지점에 붙박인 듯 서서 카레산스이(枯山水) 즉 바위정원을 응시한다. 카레산스이에서 그가 인식한 것은 엘랑 비탈(elan vital)이다. 이것은 생명의 약동이라는 뜻으로 쉼 없고 창의적인 변화의 원리를 말한다. 료안지의 돌들에 관해 사색하면서 카잔차키스가 인식한 이상이란 바로 쉼 없는 혁신이다.
♣Jean-Paul Sartre
내가 세상을 알게 된 것은 책에 의해서였다.
사르트르는 작가로서 보기 드문 영향력을 가진 소설가였고 대담한 기자였다. 또한 전형적인 사회참여 지식인이었다.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철학자의 전형인 사르트르. 그의 정원은 혐오스러움과 아둔함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잃은 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두려움과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삶을 영위했고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Voltaire
하루 커피 40~50잔을 마셨다고 하는 볼테르.
볼테르는 시대를 막론하고 자유를 파괴하거나 사상의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를 파렴치한 것이라고 불렀다. 볼테르가 생각하기에 정원 가꾸는 것과 계몽주의적 개혁은 공히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증진하기 위해 타고난 지성을 이용하자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는 것은 바로지금 여기에서 이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들자는 의미였다.
우리나라 작가 박경리 선생도 직접 텃밭을 일구며 글을 썼다. 그녀가 사용한 장갑이 무려 300개나 된다고 한다.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쓴 장석주 시인 역시 그의 마당에 직접 나무들을 심고 지켜보고 감상하면서 어느 날 저절로 그 시가 쓰여졌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만큼 정원 일의 즐거움을 느낀 작가도 드물 것이다. 저자가 철학자만 집중적으로다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가만 전적으로 다룬 것도 아니다. 물론 저자의 기준에 의해서 선정해서 썼겠지만 작가선정에 일관성이 부족한 면은 아쉽게 느껴지고, 헤르만 헤세가 빠진 것 역시 매우 아쉽다. 그래도 새로운 면을 알게 된 콜레트, 레너드 울프, 그리고 더 알고 싶은 조지 오웰을 만난 건 반갑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첫댓글 날마다 꿈만 꾸는 정원 ~
실천하는 그들이 부럽기만 한 1 인 입니다.
덕분에 고민도 하고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