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일(5월 21일. 두가리-남원) 안개 낀 섬진강 물소리 들으며
맑음. 30℃
길을 걸으면서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아침 식사이다. 우리처럼 일찍 떠나는 사람을 위해 아침 식사를 주는 식당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민박집(슈퍼도 겸함) 아저씨께 부탁해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주인은 김치와 공기 밥을 가져다주는 친절을 베푼다.
06:50. 출발한다. 주인에게 길을 물어 어제 걸었던 17번 도로가 아닌 비포장 지방도로를 알아냈다. 과연, 17번 국도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나 있는 이 지방도로는 걷는 동안 차량이 거의 안 다니는 한적한 도로여서 그 동안 갓길에서 신경 썼던 것에 비하면 도보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길이었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길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은 물소리만 들렸다. 간혹 비포장 길도 나타나서 반갑기까지 하다. '뺑덕어멈 고개'를 넘는다. 곡성은 심청이 태어난 고장이라는데, 그 옛날 앞 못 보는 심봉사도 섬진강 물소리만 들으며 걸었겠지…….
고달면까지 걷는 동안 차는 고작 3-4대 정도 지나갔나? 그나저나 식당은 왜 안 보이는 거야? 아아, 배고파....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10시가 지나서 고달면 사무소를 지난다. 겨우 식당을 하나 발견했다. '섬진식당' 간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손님은 없고 방안엔
놀러온 할머니만 셋이 앉아서 얘기중이다.
밥을 좀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밥이
없어서 새로 해야 하니 기다리겠냐고 묻는
다. 우리가 자리에 앉으니까 먹다 남은 밥이
라도 좋으냐면서 곰탕과 함께 내온다. 배고
픈 3인방은 감지덕지 먹을 수밖에. 소머리곰
탕에 밥을 말아서 후딱 먹어치웠다. 배가 불
러지니 이제 주위가 보인다. 주방을 보니 천
정에 파리 끈끈이가 매달려 있는데 파리가
새까맣게 죽어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방안의 할머니들이 자꾸 힐끔거리며 쳐다본
다. 영감 셋이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지, 아니
면 불쌍해 보여서 그런지 그 속내야 알 수가
없다.
백곡면을 지나면서 갈림길이 나타나기에 자전거 타고 논에 일 나가는 아낙네에게 수지면 가는 길을 물었다.
-“수지면을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쭈욱~~가쇼잉!"
5분 정도 가니 아까 그 아낙이 남편과 함께 논가에 서 있다. 또 물어본다.
-"수지면까지 아직 멀었어요?"
-"아휴~~아주 잊어버리고 가쇼잉!"
11:30. 전라북도 경계에 들어섰다. 잘있거라, 전라남도. 거북이 걸음이지만 점점 북상 한다고 생각하니 반갑다. 수지면에 도착해서 '지리산 가든'에서 점심으로 백반을 시켰다. 반찬 가짓수가 한 자릿수로 변한다. 전라남도에서는 두 자릿수 였는데…….
커다란 저수지를 지나서 '오촌'이라는 마을 어귀 그늘에서 잠시 쉰다. 한 낮이 되니 날씨가 푹푹 찐다. 온도계는 30도. C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버린다. 이 근처 동네 이름이 재미있다. 내사촌, 외사촌 이란다. K는 집에 전화하면 식구들 안부를 묻는데, 마지막에는 꼭 '동춘'이 안부까지 묻는다. 강아지 이름 인데 아들과 같은 항렬로 이름을 지은 게 재미있다.
드디어 춘향의 고장 남원에 도착. 15:00.
지름길을 택해서 걸어 온 때문인지 거리와 시간 모두 예상 밖으로 절약된 셈이다. 슈퍼에 들려 낮에 C가 길가에서 주웠다는 2천 원으로 '메로나'를 사서 먹었다. 길 가면서 수입까지 올리는 확실한 재정담당이다. 남원에 오면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광한루와 오작교 지. 입장료까지 내고 경내를 돌아본다. 광한루를 나와 시내에 숙소를 정하고 목욕 후, 남원추어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오늘 걸은 거리 : 25.3km(6시간)
▶코스 : 가정역(두가리)-고달면-(60번 도로)-수지면-남원(전북)
<식사>
아침 : 곰탕(고달면)
점심 : 백반(수지면)
저녁 : 추어탕(남원)
■집 떠난 지 2주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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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백)전라북도로 들어오셔잉! 동춘이도 잘 있셔잉! ㅋㅋ 우리는 일주일이 휙휙이지만 3인방께선 그렇치도 않을꺼란 생
각이 드네요. 더운 날씨에 짐 보따리하고, 때론 아침도 대충 걸르면서 다녀야 하니.. 날이 갈수록 몸은 짱이 되어갈끼고... 06.05.21 22:08
(wanju42)문학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섬진강, 안개가 끼어 더욱 분위기 돋구네요. 혹사 시킨 발로 유적지 까지 관람하시고.
그 메로나는 더욱 맛있었겠습니다. 06.05.22 08:52
(캡화백맏딸)푸하하~ 남자들이 '東'자 돌림이라서 강아지 이름이 '東春'입니다. 아버지의 애교쟁이 막내아들이죠. ^^ 그나
저나 걸으시는 길이 너무 멋지네요~ 저도 꼭 걸어보고 싶은 곳~ *^^* 06.05.22 09:16
(늘푸른)어제는 서울도 28도 였답니다. 안개낀 섬진강이 한폭의 그림이군요. 마음속으로 헛둘- 헛둘- 같이 걸어봅니다. 아
자! 아자! 글쓰는 중 마악 전화한 울짝- 세분 샘께 안부전해 달래요. 06.05.22 17:40
(짬송)누가 떨어뜨린 돈이런가. 시골에선 제법 큰 돈일텐데. 쯧쯧. 여튼 덕분에 3인방 시원한 메론맛 메로나도 먹고 좋으네
요. 이제 전라북도이니 충청도도 지척이네요. 더욱 힘내시기를, 만나 뵐 때까지. 06.05.23 12:58
첫댓글 나는 시내만 걸어 다녀도 무릎이 아픈데
형들은 그래, 귀가 후 모두 괜찮으신지?
귀가 후에도 한동안은 꿈 속에서도 계속 걸었지요. 요즘도 걷는데 비포장 흙길은 아무리 걸어도 안 아픈데 포장길은 역시 힘들고 피곤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