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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에는 곳곳에 시위용품을 쌓아 놓은 심상치 않은 모습의 군중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고, 신타그마 광장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는 한 청년이 그리스 국기를 온몸에 두르고 일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여행자들은 그리스 전통의상을 입은 근위병의 모습과, 시위를 벌이는 청바지 차림의 청년의 시위 모습을 카메라
에 담기 위해 분주히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청년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오후가 되자 군중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더니, 국회의사당과 총리 관저, 각국 대사관이 몰려있는 중심 도로가 마비되었고 수십
만의 군중들은 국회의사당을 완전히 포위했다. 그 날 그리스 의회는 역사적인 결단을 앞두고 있었다. 경제 위기로 인해 국가부
도 상황에 빠진 그리스가 IMF 구제금융안을 수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대한민국의 암울했던 그날,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IMF 구제금융안을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라고 발표하던 바로 그날의
운명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그리스 의회는 오후 5시에 회의를 시작해서 구제 금융안을 의결하게 되어 있었지만,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야당의원 22명이 격렬
한 반대 토론 후 7시쯤 먼저 퇴장했다. 시민들은 반대 의사를 밝히며 퇴장하는 의원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주먹을 불끈 쥔 의원
들은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군중 사이를 지나가며, 주먹을 흔들었다. 의사당에 남아 있는 나머지 250명의 의원들이 저절로 매국
노로 규정되는 순간이었다.
흥분한 시민들은 그날을 ‘유럽연합, 유럽 중앙은행, 독일’의 트로이카가 매국적 지도자들과 함께 그리스를 팔아먹은 날로 규정하
고 있었다. 곳곳에 유로존의 지도 위에 나찌의 문양을 그린 포스터가 붙어있고, 네오나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결국 결의안은 통과되었고, 시위는 점점 격렬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거리는 두 가지 모습이었다. 골목 한쪽에서는 일부 히피
들을 중심으로 한 격렬한 몸싸움과 길거리에 방화를 하는 모습까지 등장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고 지극히 민주
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국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폭동이라도 일어난 듯 외신으로 실시간 전해진 검은
연기의 그리스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던 셈이다.
시민 몇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만약 구제 금융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는 5일 내에 국가부도에 이르게 된다. 그런
데도 이렇게 반대를 한다면 거기에 대한 다른 대안이 있는가?”.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도 시위를 한다고 해서 이 상황이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통과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저들에게(정치인들) 최소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상황은 돌이킬 수 없지
만, 그렇다고 결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던 셈이다.
실제 그리스 문제는 여전히 복잡하다. 심각한 재정적자에 망가진 연금체계. 유럽 최대 규모의 지하경제, 낮은 담세율, 유로존 가입
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문제다. 일부에서 제기하듯 낮잠 자는 게으른 민족이라는 폄훼는 그들의 기후와
지리적 특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본질은 근본 문제를 방치한 무능한 정치와 불투명한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유로존 가입이라는 악수를 둔 것이었을 뿐, 그리스의 경
제 규모는 일인 …당 소득으로 볼 때 여전히 우리나라의 1.5배 수준이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났다. 결국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았고, 공적연금을 평균 75% 삭감했으며, 길거리 노점상에게까지 과세
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 최대 항구인 피레우스항구까지 매각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런 그리스의 문제가 강 건너 불이나 남의 일만은 아니다. 증가하는 재정적자에 대한 대책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 투명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 역시 같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문제를 모를 수는 있다. 하지만 알면서 고치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스 문제는 바로 우리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노란 신호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