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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
18. 마치는 말 - 하나님의 복음에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롬16:1~2]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4 (없음)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로마서 16장 1절과 2절에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름은 우리말이 아니라서 기억하기 어렵지만, 왜 이것을 다 기록해 놓았는가? 이것을 읽으면서 내가 쓴다면 여기에 누구누구를 대입하면서 쓸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썼다. 그렇지만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수 없고 또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일부러 써놓았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이름을 호명할 때 그것이 자기인 줄 알기를 바란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복음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끝을 맺는다. 복음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하나님 아들로 인정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관한 것이다.
로마서 16장은 마치는 말이다. 여기를 보면 하나님의 복음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마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맨 첫장에서 하나님의 복음은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했다. 마지막도 마찬가지로 비밀의 계시, 이렇게 말했는데 이것은 아들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끝난다. 복음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시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 부활하여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 1장에 나와 있는 말이다. 복음! 그것이 무엇인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분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육신으로 오신 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신 분이다. 그러니까 분명히 사람은 사람인데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신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 그 사람이 복음인가 하면 그 사람 이전까지는 하나님 아들하면 천사들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 되었다는 이것이 복음이다. 천사들이 하나님 아들이 아니고 진짜 하나님 아들은 사람이다. 사람에게서 하나님 아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 아들은 하나님을 그대로 받았다는 그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는 이것이 복음이다. 그전에는 천사들이 하나님 아들이니까 이런 길이 없었다. 그 말은 ‘천사들!’하면 천사들은 못할 것이 없는 그런 존재로서 죽지도 않고, 우리가 말하는 신이고, 하나님과 방불하는 그런 존재들을 말한다. 그런 존재들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일컬어졌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는 길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옛날에는 황제랄지 유명한 신이랄지 철인이랄지 장군이랄지 이런 사람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종교나 계시 안에서는 천사들을 하나님 아들로 불렀다. 하여간 그들은 위대한 존재들이었다. 육신으로 말하면 황제같은 그런 존재들이고 영으로 말하면 천사같은 그런 존재들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이 아니고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다. 인간인데 하나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 중요한 것이 지금도 기독교 안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 될 수 있냐 없냐?’는 이 문제에서 헷갈리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여러 가지로 방면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결국은 천사숭배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자꾸 높이고 하다보니까 도로 천사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은연중에 그렇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예수는 신인가? 사람인가?’하고 물으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도 되고 사람도 된다.’ 이렇게 대답한다. ‘예수는 그냥 사람이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예수는 그냥 사람이다는 말을 했다가는 예수를 너무 격하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번에 이단이라고 한다. 그래서 감히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도 되고 신도 된다고 말해야 교리적으로 흠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보니까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육신의 영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시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었다. 사람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인데 죽음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인데 ‘신은 신이고 사람은 사람이다.’하면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신이고 사람이다.’ 이렇게 해도 복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신과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을 뿐만아니라 우리가 신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들이 되신 분이다.’하는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인해서 나타난 교회! 이것이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만 있고 말아버리면 세계(世界)가 없는 것이 된다. 이 세상은 하나의 세계인데 예수의 세계가 없으면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애굽에 사는 생활은 종살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가 있는 것이 복음인 것이다. 사람이지만 하나님 아들이 된 그 사람과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나타난 교회 이것이 복음이다. 만일 교회가 없다면 반쪽 복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아주 못을 박아놔야 한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말씀으로 예언되었고, 사도들에 의해 전파된 신비한 계시를 따라 나타난 것으로서, 로마서의 결언인 16장은 교회들을 향한 바울의 문안과 이 복음으로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끝을 맺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서 선지자들의 말씀으로 예언이 되었고 사도들에 의해 전파된 신비한 계시를 따라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어떤 종교가 나타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이미 선지자들에 의해서 예언이 되었었고 사도들에 의해 전파된 신비한 계시에 따라서 나타난 것이지 그냥 우연히 되었거나 사람이 어떻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서의 결언인 16장은 교회들을 향한 바울의 문안과 이 복음으로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끝을 맺었다. 로마서 16장 전체는 전부 문안인사뿐이다. 이런 것을 뭐 하러 성경에 써놓았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로마서의 결론을 맺는말에 교회만을 언급하고 있다. 교회라는 것이 방금 읽은 이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을 언급하고 마쳤다. 이 교회를 복음으로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하고 끝을 맺었다.
그러니까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그 목표는 바로 교회에 있었다.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로마서를 교리책으로 보는 것은 정말 잘 못된 것이다.
교회는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이다.
아담 안에서 인류는 선악을 아는 지식에 의해 사단에게 팔려갔다. 이런 인간을 되찾아오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선악과의 값은 세상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치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의 피를 값으로 주고 세상에서 그의 백성을 구속하신 것이다.
교회는 예수의 피로 값주고 산 것이다. 아담 안에서 인류는 선악을 아는 지식에 의해서 사단에게 팔려갔다. “네가 이것을 먹으면 정녕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같이 될 것이다.”그래서 갔다고 했는데 이것은 팔려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사면 대박난다. 이것을 사면 로또복권 당첨된다.’고 해서 거금을 털어서 샀다는 말이다. 자기 목숨을 다 내놓고 산 것이다. ‘네가 이것을 먹게 되면 하나님같이 된다.’하니까 자기의 전부를 걸고 산 것이다. 그래서 팔려간 것이다. 팔려간 것이 다른 게 아니다. 우리도 그렇다 어디에 가서 보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라. 논밭 다 팔아서 살 것이다. 논밭 다 팔아서 안 사겠는가? 목숨이라도 내 놓고 사려고 할 게 아닌가? 이것이 그런 뜻이다. 선악을 아는 지식, 이것으로 사탄에게 팔려갔다.
그런데 선악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도 오해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악이라고 하면 세상에서 알고 있는 선악이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이다. 얼른 생각하면 가인과 아벨,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해 봐도 눈살 찌뿌리게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악한 것이고, 어디 아름다운 이런 것은 선한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다. 불교에서는 선악이라는 게 원래 없는 것이다. 원래 없는 것인데 기독교에서 선악을 이야기 하는 것은 차원이 낮은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없는 것을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하냐고 한다.
그런데 이 선악을 아는 지식이라는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선악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원래 없는 선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지식을 가지면 하나님 같이 된다는 선악이다. 이것은 지식의 나무다. 그러니까 ‘이 지식을 먹으면 네가 하나님 같이 된다.’ 이것은 전능자가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전능자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선하고 악한 이런 문제가 아니다. 표현은 지금 선악을 아는 나무라고 했지만 지식의 나무다. 지식의 나무냐 생명의 나무냐 이것이다. 생명나무라는 말은 생명의 나무라는 말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말은 지식의 나무를 말한다. 그러니까 이 지식은 어떤 지식인가 하면 전능자가 되는 지식이다.
황제(皇帝)가 되면 전능자가 된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그래서 황제를 고대 사회에서는 신이라 그랬다. 그런데 이것은 정치적으로 신이고 또 다른 신도 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어떤 경지에 이른다면 그것도 신이다.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돌파했다면 신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관운장을 보고 신이라고 한다. 신으로 숭배한다. 그래서 관운장 사당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모택동도 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 역사에서 모택동과 같이 위대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전 중국을 통일한 사람은 모택동 뿐이다. 관운장은 의리와 용기, 이런 것 때문에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볼 때 ‘네가 이것을 먹으면 정녕 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같이 된다.’는 그 하나님, 전능자, 이것은 여러 방면에 있다. 우리는 정치적 방면에서만 말하니까 그렇다. 종교적 방면에서도, 철학적 방면에서도 예술적 방면에서도 생각해 보라.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경지가 있다면 신적이라고 한다.
불교(佛敎)에서는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인생들이 육도를 윤회한다고 본다. 거기에는 지옥도 있고 천당도 있다. 천당이라는 말을 잘못하면 그것은 육도 안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중생들이 그 테두리를 못 벗어나고 빙빙 도는 그 속에 하나가 극락, 천당이다. 지옥의 반대다. 그래서 이것은 늘 돈다. 천당에 갔다가 떨어질 수도 있고 극락에 갔다가 떨어질 수도 있고 돈다. 그래서 이것을 저주라고 한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다. 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것, 마치 무중력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아무리 쏘아 올려도 지구의 중력 때문에 떨어진다. 그런데 일단 대기권을 돌파하고 나면 무중력 상태가 되니까 가만히 있어도 둥둥 떠 있다고 한다. 그냥 떠 있기 때문에 힘을 전혀 안 써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잘은 모르지만 해탈의 경지가 그런 경지가 아닌가 싶다. 전혀 중력을 받지 않는 경지, 누가 끌어당긴다고 끌려가지도 않고 그냥 떠 있을 수 있는, 아무 힘도 안 써도 그냥 떠 있을 수 있는 그런 경지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도교(道敎)에는 무아라는 것이 있다. 무아라는 말은 아무 데도 장애를 받지 않은 그런 상태를 말한다. 무아경, 무아지경 이라고 말한다. 모든 인간들이 다 육도를 윤회하고 있는데 내가 대기권을 돌파했다면 위성이 되는 것이다. 인공위성이다. 그러면 그것은 전능자다. 인간으로서 전능자다. 그 이후로는 다시 유혹을 받을 필요도 없고 끌어당길 필요도 없고 누구도 방해받을 수 없으니까 완전한 자유고 그럴 것이다. 육도라는 데 매여서 노력을 해야 지옥에서 어디로 좀 올라오고 또 어디로 올라가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전능자가 되는 것이고 천사같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오늘 아침에 가만히 생각해 봤다. ‘전능자라는 것이 여러 가지구나. 무력을 가지고 전능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정신력이나 도력 이런 것으로 전능자가 되는 것도 있구나.’ 그래서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전능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일생을 걸지 않겠는가? 내 생명이라고 걸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죽음도 없고 쇠함도 없고 시들어짐도 없고. 성경에서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할 때 그렇게 말한다. 쇠함도 없고 다함도 없고 끝도 없고 영원하고 그렇게 말한다. 그런 경지에 가는 것이다. 사람은 그런 경지에 갈 수 없는 데 신만이 그런 경지에 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 경지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 없는가?
내가 어렸을 때 암자에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스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매일 참선하신 분이니까 그래서 들어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당기기도 하고 이런 것이 있었다. 그래서 중이 되어라 고 권고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게 있어서 ‘뭔지 모르기는 모르지만 불교는 아니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것은 사실 모르고 한 생각이었다. 뭘 알고 한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려서 교회를 다니는 게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교회 유치원을 다니는 게 중요하다. 어려서 박히는 게 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 데 사람에게 배어 있다. 그래서 친근감이 생긴다. 불교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은 큰 다음에도 거기에 친근감이 있다. 교회 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은 큰 다음에 뭔지 모르지만 교회에 친근감이 있는 것이다. 연어가 모천을 찾아오듯이 그래서 교회를 찾아 온 사람이 많다. 어려서 완전히 교회를 벗어났는데 어떤 사건이 생겨서 다시 교회를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어려서 주일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다. 그냥 온 사람들은 거의 드물다. 나도 그때 그런 것이 배여 있었던 것 같다. 연어의 모천처럼 교회가 박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이지 내가 뭘 알아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네가 지식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같이 된다.’ 그랬으니까 내 운명으로 버렸다. 그렇지 않은 데 내 운명을 걸 만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라.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 없고 하나님의 동산에 사는 데 뭐가 부러운 게 있겠는가? 그런데 거기를 떠났다. 분명히 죽으리라 했는데도 갔다. 왜냐하면 전능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사람 속에 그런 것이 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들은 말씀을 많이 들어서 안 될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어보라. 그러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내가 그것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는가 하면 계속해서 입력을 시켜야 되기 때문이다. 속에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하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또 하고 또 해야 한다. 신명기처럼. 왜냐하면 이미 오염되어 있으니까.
이런 인간을 되찾아 오려면, 이렇게 완전히 빠져버린 인간을 되찾아 오려면 대가가 있어야 된다. 이것이 유태인들의 관념이나 사고방식에서 나온 생각이다. 값을 줘야 찾아오지 안 주면 못 찾아온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노예로 팔렸다. 그렇다고 그냥 가지고 올 수 없다. 내가 그 대가를 줘야 찾아온다는 말이다. 여기서 구속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물린다, 물려온다. 그 친척 중에서 기업 물을 자가 있다. 이런 말이 나온다. 그 친척 중에서 사 오는 것이다. 친척이 빚을 갚아주고 종 되어 있는 것을 사 오는 것이다. 이것을 대속이라고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선악과의 값은, 하나님 같이 된다는 이것의 값은 세상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치를 수 없다. 생각해 보라. 내가 전능자가 되는 데 무엇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취소하겠는가? 지금 황제가 되려는 사람에게 무엇을 가지고 가서 취소를 시키겠는가? 하물며 전능자가 될 수 있는데 무엇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취소시키고 다시 나오게 하겠는가? 노름하는 사람이나 아편하는 사람, 요즘에는 심지어 다단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나오기 어렵다. 금방 돈이 보이는 데 나올 수 있는가? 금방 돈이 눈앞에 보이는 데 말이다.
내가 생각해 보니까 그 강의를 들으면 혹 빠지는가 보다. 내가 언제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들어 보다가 나도 빠져 버리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거기에 빠진 사람을 보니까 도저히 못 말린다. 아무도 못 말린다. 그런 분이 있어서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망하고, 저렇게 망하고, 이렇게 망하고... 누가 망하고 또 누가 망하고...쫙 이야기를 해도 안 듣더라.
하물며 전능자가 된다는 데 무엇을 내 놓고 상대해서 갚겠는가? 바꿀 게 없다. 세상에는 바꿀 게 없다. 그 형제가 나와 친하지 않은 형제가 아니다. 평범한 형제다. 수십 년간 같이 산 형제다. 그래서 내가 극구 말렸다. 그것을 하면 안 된다고, 누구도 망했고 누구도 망했으며, 누구도 망했다고, 봐라, 우리 교회에 이렇지 않으냐?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쫄딱 망했다.
그러니까 말릴 수가 없다. 그것에 말려 들어간 사람은 도저히 못 말린다. 아무리 해도 그 세력이 더 크다. 금방 돈이 틀림없이 될 것인데, 틀림없이 될 것을 왜 못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도 정말 대단한 사람도 있다. 틀림없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데 모임에 오려면 방해가 된다. 여기저기서 자꾸 모임에 방해된다고 이야기 하니까 모임 때문에 그만 둔 사람이 있다. 모임하려고 말이다. 깊이 안 빠졌으니까 그럴 것이다. 깊이 빠지면 못 나오는 데 아주 깊이는 안 빠졌다. 아주 돈 맛을 보지 못했다. 된다는 확신만 있지 아직 돈 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만 두었다. 교회가 너무 좋으면 그만 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이것을 빼내올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세상에서 그의 백성을 구속하신 것이다. 피로 값 주고 샀다는 말이 이 말이다. 그것이 목숨을 내 놓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선악을 아는 그 지식이라는 것이 인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까 이 지식이 없으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고 그럴 정도다. 그리고 이 지식이 없는 세상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없다면 세상이 안 된다.
이것이 있으니까 이것을 보고 지금 막 달려가는 것이다. 지금 뭔가를 보고 달린다. 큰 물결의 사람의 떼가 어디를 향해서 막 달린다. 아프리카의 대 평원에 엄청난 동물의 떼가 어디를 향해서 막 달려간다. 그런 식으로 인류가 몰려가고 있다. 결말이 어떠하든지 간에 당장 앞에 보이기 때문에 막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막을 수 없다. 한강 다리가 끊어졌을 때 서울 사람들이 피난 간다고 나왔는데 다리가 앞에 끊어졌는데도 뒤에는 모른다. 그러니까 뒤에서 밀면서 ‘왜 빨리 안가냐?’고 한다. 그 말을 해석하면 ‘왜 빨리 죽으러 안 가느냐.?’ 이 말이 되는 것이다. 자기는 모르니까 ‘왜 빨리 앞에서 안 가느냐?’는 것이다. 가면 떨어지는 것인데, 한강에 떨어지는 것인데 뒤에서는 모르니까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런 식이다.
그러니까 이 지식이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있으니까 일을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더군다나 돈이 앞에 있으니까 서로 경쟁한다. 돈을 안 줘보라, 누가 경쟁하겠는가? 공산주의가 왜 안 되는지 아는가? 돈을 안 주니까 경쟁이 안 생겨서 그렇다. 시간만 맞추면 그만인데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9시 출근해서 12시 땡 하면 점심 먹고 2시까지 쉬는 시간 하고 2시에 기다려서 5시 땡 해서 나와 버리면 그만인데 월급도 더 받는 사람도 없고 덜 받는 사람도 없이 똑 같이 주고, 어떻게 생각하면 공평하고 딱 좋지만 의욕이 안 생긴다. 쫓아갈 의욕이 안 생긴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안 되는 것이다. 돈 맛만 보이면 금방 되는 데 거기는 돈 맛을 보일 수가 없다.
세상이라는 것은 그것 없이는 세상이 안 된다. 하나님 같이 된다. 이것이 없이는 세상이 안 된다. 전능자가 된다. 이것 없이는 세상이 안 된다. 그래서 학교도 그렇다. 이번에도 수능 시험 보느라 수십 만면이 봤다. 그런데 학교를 평준화해서 시험 없이 들어가자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안 된다. 그러면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이다. 나는 트위터에다 쓸데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무시험 입학을 시키자. 대학에 가서 경쟁하게 하자.’ 아무리 해도 안 된다. 경쟁심을 일으켜야 세상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여기서 떠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히 이를 해결하고 인권을 회복하여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할 수 있는 한 사람, 죽으시고 다시 사신 이를 생명(내용) 으로 하는 복음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복음) 안에서 구속을 받고 새 인류로 태어나서 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능히 해결하고 인권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할 수 있는 한 사람, 죽으시고 다시 사신 이를 생명으로 하고, 내용으로 하는 복음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우리 복음이 된다. 절대적으로 성공한 사람, 천사같이 된 것은 아닌데 인간으로서 절대적으로 성공한 사람, 이 사람을 내용으로 하는 복음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가치의 전환이다.
에덴동산에서 네가 하나님 같이 될 것이라 했던 그 하나님 같이 된 것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인데 예수를 보고 우리가 이 사람같이 된다는 이것을 보고 온 것이다. 지금 대상이 달라지고 목표가 달라졌다. 교회에 오면서도 창세기 3장에 있는 네가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하는 거기에 목표를 두고 있으면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그 세계에 준 말이 아니고 다른 세계에 준 말이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에게 소용이 없는 말이 되어버린다. 관계없는 말이 되는 것이다.
새들에게 준 말은 물고기에게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니까 새들은 꼭 들어야 되지만 물고기들은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속에서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줘도 듣는 사람이 있고 안 듣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복음인 이 사람, 이 사람 안에서 구속을 받고 그 사람 안에서 우리가 원위치로 회복이 되었고- 이 사람같이 되려니까 회복이 된 것이다.- 새인류로 태어나서 교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목표로 한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니까 ‘예수가 참 인간이다.’ 이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 사람이 성공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한 우리는 원위치로 돌아갈 수가 없다. 제자들도 십자가에 죽은 것을 보고 ;‘아이쿠! 끝났네, 틀렸네.’ 이렇게 하고 간 것이다. 만일 예수가 성공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그때 시체라도 서로 찢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옷 한 조각이라도 가져가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요즘에 예수의 얼굴을 덮었던 수건에 피가 묻었는데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까 여성 DNA는 나오고 남성 DNA는 없다고 한다. 성령잉태를 증명하려고 그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수건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피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XX, XY 염색체가 한쪽만 있고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분명히 남자로 인해 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사람을 보고는 구속을 받을수가 없다. 설사 예수님께서 XX만 있고 XY는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우리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두 가지가 다 있다. 다 있으면 마흔 몇 개라고 하던데 예수님 얼굴을 덮었던 그 수건은 22개만 있고 반이 없다고 한다. TV에서 그 얘기를 듣고 속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우리는 바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이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신 예수, 그 분을 보고 우리가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새 인류로 태어난 것이다.
바울은 이 교회를 향한 자신의 사랑과 관심으로 문안하고 복음으로 교회를 견고케 하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바울은 이 교회를 향한 자신의 사랑과 관심으로 문안하고 복음으로 교회를 견고케 하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는 하나님 경륜의 중심이다.
교회라는 용어가 로마서의 결론인 16장에서 처음 등장하여 네 번이나 언급되었고(16:1,4~5, 16,23) 16장은 교회에 대한 문안으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로마서 전체 안에 있는 모든 거룩한 항목들이 교회를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교회라는 용어가 로마서에 여기에 처음 나온다. 16장까지 오는 동안에 교회라는 용어는 16장에 처음 나오는데 그래서 4번이나 나온다. 로마서의 결론이 16장에서 처음 등장하여 네 번이나 언급되었다. 16장은 교회에 대한 문안으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로마서 전체 안에 있는 모든 거룩한 항목들이 모두 교회를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거룩한 항목은 많은데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 구속함 등등 좋은 것이 아주 많다. 그 모든 것은 다 교회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 없이 그것들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성도들에 대한 문안
교회를 위해서 함께 한 성도들을 열거하고 그들을 본으로 살 것과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고 사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교회를 위해서 함께 한 성도들을 열거하고 그들을 본으로 살 것과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고 사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복음자 뵈뵈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는 많은 사람들을 후원하였으니 성도의 합당한 예의로 영접하고 필요한 것을 도우라 하였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언제나 돕는 자들이 있었다.
복음자 뵈뵈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후원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복음 전하는 사람이 다른 것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을 후원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이 뵈뵈는 대표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우리말성경에는 보고자라고 되어 있는데 후원자이다. 성도의 합당한 예의로 영접하고 필요한 것을 도우라 하였던 것은 이 사람이 이방인이든지 종으로 있었던지 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까 성도의 합당한 예의로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분상으로도 여러 가지로 결함이 많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결국 복음을 전하는데 후원자가 됐다. 그러니까 성도의 예의로 영접을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혹시 필요한 것이 있거든 도와주라고 권고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아주 귀한 사람들이고 자기가 직접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없이는 복음이 전파되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꼭 말씀으로만 전한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돕는 사람도 더 중요하다.
동역자 브리스키라는 순교까지도 함께 할 각오를 하였으며, 또 그의 집을 교회로 개방하였다. 처음 교회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되었다. 많이 수고한 마리아, 함께 고난(감옥)을 받은 안드로니고와 유니게는 사도들 중에 유명한 자들이었고, 주안에서 사랑하는 암블리나, 동역자 유로바노, 사랑하는 스다구,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은 아벨데와 아니스도블로의 집안 사람들, 친척 헤로디온과 나깃수의 집안 사람들 중 주안에 있는 자들, 많이 수고한 자매 버시, 선택된 루포와 그의 어머니......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하며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의 문안을 전하였다.
동역자 브리스길라는 순교까지도 함께 할 각오를 하였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하였던 사람이다. 처음 교회는 대부분 집을 개방해서 시작된다. 어디 가서 처음부터 건물 짓고 하지 않는다. 다 개인의 집이 개방되어서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어서 교회가 되는 것이다. 나도 이웃집 방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가는 사람이 되었다. 이웃집 아줌마가 자기 집에 사람을 불러서 방에 모았기 때문에 방에 들어갔다. 집에 있는 교회라는 말이 그런 뜻이다.
집을 개방한다는 것이 조금 복잡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일단 모여야 하는데 아무도 집을 개방하지 않고 청소를 깨끗이 해놓고 정리해놓고 앉아있으면 어디 가서 모임을 하겠는가. 물론 청소 잘하고 깨끗하게 해놓아야 한다. 형제든지 자매든지 집 정리를 잘해야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못 오게 하면 안 된다. 그것이 문제이다. 예전에 서울에 00자매 집에 머물렀는데 주위의 아이들이 그 집에 놀러오는 것이다. 그래서 옆집에는 왜 안가느냐고 물었더니 집안에 어지럽혀진다고 못 오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애들은 다 남의 집에 보낸다. 사람 심보가 이렇다. 자기 집은 어지럽혀지니까 못 오게 하고 자기 아이들은 남의 집에 보낸다. 그러니까 이 집에 오면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오는 것이다. 지금 세상이 그렇게 된다. 교회도 그렇지 않겠나. 다른 사람 집에만 모이자 하고 자기 집에는 모이지 않으면 꼭 그 짝이다.
그러니까 집을 제공한 사람도 참 중요한 사람이다. 처음 교회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이 되었다.
많이 수고한 마리아라고 했는데 내용은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교회가 시작될 때 수고한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 아무도 수고하지 않고 되는 법은 없다. 옛날에 우리 집에서 해보니까 밥도 먹고 부엌에 들어가서 일도하고 하는 사람이 있고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기 먹은 밥그릇도 씻지 않고 가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면 수고하는 사람이 늘 수고한다. 안하는 사람은 또 안한다. 체질이 그래서 그런 것인지 정신이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안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안한다. 그런데 하는 사람이 항상 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볼 때 참 감사하게 생각이 되고 귀하게 생각이 되더라. 설거지도 하고 그럴 때 자매들이 예쁘게 보인다. 그냥 숟가락도 닦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누구보고 하라는 것인지 밥그릇도 닦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버린다. 우리 집이 2층일 때 많이 살았는데 속으로는 참 얄밉다. 자기 먹은 것이나 치우고 올라가지 그냥 두고 가는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난다. 사람이라서 할 수 없다. 마안하지만 저것을 손 좀 대고 가지 저것을 그냥 놔두고 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자기 집에 가서 살림을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 치고 집에 가서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에게 장가가면 곤란하다. 잘 봐서 골라서 장가가야 한다.
함께 고난을 받았다는 것은 함께 감옥을 갔다는 말인데 안드로니고와 유니게는 사도들 중에 칭찬받는 유명하게 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잘못해서 감옥에 가면 얼마나 비참한가. 복음을 위해서 감옥에 가면 영광스럽지만 잘못해서 감옥에 가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래도 우리 준영이는 감옥에 있어도 감사와 찬양이 끝이 안 나니까 특이한 체질이다. 원체 마음이 가난하니까 그런 것 같다. 거기서도 편지가 온 것을 보면 절절이 찬양이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암블리나, 이 사람은 일은 안했겠나. 일도 했을 것이다. 동역자 유로바노, 사랑하는 스다구,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은 아벨데와 아니스도블로의 집안 사람들, 친척 헤로디온과 나깃수의 집안 사람들 중 주안에 있는 사람들, 많이 수고한 자매 버시, 선택된 루포와 그의 어머니......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하며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의 문안을 전하고 있다.
이것이 교회이다. 교회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봉사와 관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것을 지금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이런 사회가 없다. 여러 종류의 사회가 있지만 계추 하는데도 있고 다 있는데 대구에는 유독 계추가 제일 많은 곳인데 계추 하는데서 이런 문안이 나오겠는가. 계추 하는 사람들끼리 어디서 만났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요즘 로또나 샀느냐? 당선은 됐느냐? 돈은 벌었느냐? 애 학교는 어떻게 됐느냐? 이런 소리밖에 더 하겠는가? 그런데 여기 보니까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전부 복음에 관한 문안이다. 이것은 특별한 사회다. 우리가 어디 가서 형제들에게 문안할 때 이렇게 문안하고 이렇게 문안 받아야 정상적인 것 아니겠는가. 다른 것은 세상에 다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말란 말이 아니라 관심은 갖지만 그래도 성경에 기록 되려면 이정도로 기록해야 되지 않겠는가? 시시한 소리를 쓸 수 없지 않겠는가.
요즘 우리 교회에서 수능을 본 학생들이 많다. 다 점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아직 점수가 발표되지 않는 모양이다. 점수를 많이 받은 사람도 있고 적게 받은 사람도 있고 또 이미 합격한 사람도 있는데 가능하면 모두 다 합격했으면 참 좋겠다. 공부를 좀 안 했던 사람도 합격했으면 좋겠다. 이미 안한 아이한테 왜 안 했냐고 하면 무엇 하겠는가! 우리가 대학을 하나 세우면 그런 아이들만 다 모아서 은혜대학이라고 하고 싶다. 우리 은혜가 돈을 많이 벌면 그런 학교를 세우고 싶은데 은혜는 돈을 벌긴 틀린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공부 하느라고 참 고생을 많이 한다. 우리 교회 도서관에가 보면 10시 11시 까지 공부를 하고 있다.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틀리고 맞고 이런 결과가 나온다. 그렇게 많이 책을 봤으면 다 100점을 맞아야 되는데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우리가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좋은 세상을 산 것 같다. 갈수록 어려워진다.
교회에 대한 문안 서로 주고받는 문안 가운데 그리스도가 오고가는 아름다운 문안 가운데 있다.
분열에 대한 경고
그러나 다른 것을 가져와서 분열시키는 자들에게서 떠나라
여기서 마지막에 분열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다른 것을 가져와서 분열시키는 자들에게서 떠나라.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다른 것을 가져와서 분열시키는 자들에게서 떠나라. 무엇인가 다른 것이 오니까 불열이 된다. 한 가지만 있으면 분열 될 일이 없다.
너희 교훈을 떠나서 거슬러서 분쟁을 일으키고 이렇게 우리말 성경에 번역을 해 놓았는데 이것을 또 다르게 번역하면 다른 것을 가져와서 분열시키는 것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들어오면 분열이 된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다른 것이 못 들어오게 하려고 앞에다 막아 놓은 교회도 있다고 한다. 무슨 무슨 교회는 오지마라 이렇게 막아 놓았다고 한다. 다른 것을 가져와서 분열시키는 자들에게서 떠나라.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을 받으면 안 된다. 생명 외에 다른 것 대부분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을 말 한다. 생명은 모든 사람이 다 통한다. 그런데 이론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이론이 있는 곳에는 분열이 생긴다.
로마서를 교리서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왜야하면 기독교 교리의 대부분이 이 속에 들어있다. 그러니까 기독교 하면 로마서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 정도로 교리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서를 쓴 목적은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 쓴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을 모르고 봐 버리면 그냥 교리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리를 가져오면 분열이 된다. 어떤 교리 어떤 사상 이런 것들을 가져오면 분열이 되게끔 되어 있다.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 섞이지 말라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 섞이지 말라 이런 말이 있다. 여시서 말하는 선한 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고, 악한 일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이것은 바로 교회와 관계된 말이다.
선한 일이란 연합 하는 일이 선한 일이고, 악한 일이란 분열시키는 것이 악한 일이다. 그래서 섞이지 말라는 말 나왔다. 악한 일에는 섞이지 말아라. 우리말 성경에 보면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말했다. 지혜롭다는 말하고 개혁 본에는 미련하다 라고 번역을 해 놓았는데 이것이 이상해서 찾아보니까 섞인다는 의미였다.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는 섞이지 말아라. 우리는 잘 못되는데 섞이면 안 된다. 혼합은 안 된다.
같이 인정은 하더라도 혼합은 안 된다. 섞이면 안 된다. 혼합하면 망하게 되거나 분열 되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교회의 발아래 굴복하게 하실 것이다. 라고 하였다(17~20).
하나님께서 사단을 교회의 발아래 굴복하게 하실 것이다. 라고 하였다(17~20). 이 말이 왜 나왔겠는가? 너희가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 섞이지 말아라 한 다음에 하나님께 사탄을 교회의 발아 굴복케 하실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니까 교회는 어떤 교리나 어떤 지식이나 사상이나 이런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탄을 정복하는 것인데 사탄이 교회에 넣은 것은 교리나 이런 것들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탄을 교회 발아래 굴복케 할 것이다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생명 안에 있으면 이런 것들이 다 굴복하게 된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이라도 생명이 없으면 나올 것이 없고 나타낼 것이 없으니 결국은 굴복하게 된다.
‘사단의 목표는 어떤 이유로든지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방해하는 것으로서 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섞이면 안 되는 것이다.
사탄의 목표는 어떤 이유로든지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사탄의 목표는 동산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사람을 분열시키나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분열시키느냐고 사탄이 생각해 본 결과 전능자가 되면 분열될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줬다. 어떤 이유를 만드는지 모른다.
공산주의가 혁명을 일으킬 때도 마찬가지로 먼저는 어떤 이유를 넣어서 분열시킨다. 그래야 혁명이 가능하다. 혁명 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불공평하다는 이유)를 넣어주면,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분열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것을 틈타 혁명을 일으킨다. 우리가 자세히 뉴스를 들어보면 무슨 목표를 가지고 저 말을 하는 구나, 하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말이 맞다 안 맞다’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되고, 무슨 목표로 저 말을 하는지, 저것이 국론을 분열시키려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라를 위해서 하는 말인지, 이것을 구별해서 들어야 한다. 옳은 말을 하지 옳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옳은 말을 한다. 그러나 목표가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다. 무슨 목적으로 저 말을 하는 지가 중요하다. 사탄은 옳고 좋은 것을 많이 제시한다. 그런데 목표는 교회를 분열시키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방해하는 것이 악의 근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선한 일인데 그것은 교회를 연합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한 일이고 분열하게 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사탄의 본체가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것이 목표니까, 사탄이 하는 일을 악이라 한다면, 모든 악의 근원은 바로 거기서 나왔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악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악이라고 하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경찰서 이런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까 우리는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세상에서는 당연히 경찰에서 악하다하는 것이 악한 것이고, 선하다 하는 것이 선한 것이다. 세상은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고 있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악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 악의 근원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섞이면 안 된다.
분열은 혼합으로부터 시작하여 멸망으로 끝을 낸다. 혼합하면 분열 되고 분열 되면 멸망한다. 그래서 흰 소와 검은 소를 함께 겨리하여 밭을 갈지 말며, 흰 실과 검은 실을 섞어서 천을 만들지 말라 했던 것이다.
분열은 혼합으로부터 시작한다. 혼합이 없으면 분열이 안 생긴다. 처음엔 혼합이 생긴다. 혼합으로 섞여지면 그다음 분열이 생긴다. 분열되면 망한다. 그러니까 먼저는 혼합을 시키고, 그다음 분열을 시키고, 그런 다음 망하게 한다. 아주 간단하다.
북한에서 교회를 말살시킬 때 그런 방식을 썼다. ‘조선기독교연맹’ 이렇게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회를 없앴는데 해도 해도 안 없어지니까 그 교회에 프락치를 넣어서 그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한다. 새벽기도 열심히 나가고 교회가 볼 때 ‘저사람 신앙이 참 좋다.’할 정도로 해서 장로를 줘서 중직이 되는데 그런 다음에 목사만 쫒아내면 교회가 없어진다. 이것이 성경에 근거하는 것인데 ‘목자를 치니 양떼가 흩어지리라’하는 말이다. 지금교회는 목자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목자만 치면 양떼는 저절로 없어진다. 이것을 이용해서 중국이나 북한에서 교회를 완전하게 말살시켰다. 처음에는 혼합시키고 그런 다음 분열시키고 이런 사람들이 중직이 되어서 교회에서 분열을 일으킨다. 그러면 으싸 으싸 해서 목사를 내 보낸다. 그러면 교회는 저절로 해산이 되고 만다. 그런 식으로 해서 하나도 남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흰 소와 검은 소를 결의해서 함께 밭을 갈지 않는다. 흰 실과 검은 실을 섞어서 천을 만들지 않는다.’는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있다. 섞으면 안 된다. 검은 것은 검어야 하고 흰 것은 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구별이 된다. 그런데 섞여 있으면 뭐가 뭔지를 모르다가 뒤로 가보면 분열이 된다.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게 된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사단을 교회의 발아래 굴복하게 하실 것이다. 그때까지 교회는 그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사단을 교회의 발아래 굴복하게 하실 것인데, 복음으로 굴복하게 하실 것이다. 복음은 무엇이었는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 생명으로 결국은 사탄을 이길 것이다. 우리는 사단을 이 생명으로 이겨야 한다. 이론으로 이기려고 하다가는 말려들어서 섞여버리고 만다. 이론은 어떤 것도 절대적인 이론이라는 것이 없다. 말발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것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러니까 결국 혼란이 일어나게 되고 분열되게 된다. 개신교회가 수없이 분열된 이유는 이론 때문이다.
그때까지 교회는 그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를, 순종하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찬양
하나님은 사단이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계셨다. 이 비밀은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로서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 나타난 것이며, 하나님의 명을 받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사도들의 전파로 모든 사람이 믿고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신비의 계시를 따라 이제 드러난 복음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 지혜에 대한 찬양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단이 모르는 비밀한 지혜를 가지고 계셨다. 이 비밀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라는 말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되느냐는 문제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다윗이 혈통으로 날 수가 없다. 다윗의 혈통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으로 나타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비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비밀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은 끝났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가 나왔다. 이것이 비밀이다. 어째서 그런 사람을 통해 교회가 나왔느냐? 어떻게 그런 사람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가 될 수 있느냐? 교회는 참 비밀이다.
중국 기독교가 옛날 당 태종 때 들어갔다. 경교라는 기독교가 되었는데 당 태종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니까 온 나라가 저절로 국교처럼 돼버렸다. 그러니 전하기가 얼마나 쉬웠겠는가. 지금도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독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부터 예수를 믿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당나라에 들어갔던 기독교는 얼마 못가서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당나라가 망하니까 같이 없어져버렸다. 참 비밀이다. 황제부터 믿어서 쫘~악 믿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없어져버린다. 그래도 한국에는 이렇든 저렇든지 간에 교회가 많이 있는 것은 양반들은 믿지 않으니까 서민층으로 들어갔다. 갓이 긴 사람들은 믿지 않고 갓이 짧은 사람들만 믿었다. 갓 길이로 신분을 나타내었다. 사대부 중에도 물론 한 두 사람은 믿는 사람은 있었지만 대부분 서민들이었다. 여기서는 흥황했다. 이것도 비밀이다.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다. 가난한 사람 속에 들어가서 깊이 박힌 것 같다. 일본은 상류층, 지식층으로 들어갔다. 일본 기독교는 숫자는 적지만 지식층으로 들어가서 질적으로 퀄리티가 높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신학자도 나왔다. 그런데 퍼지지를 않는다. 그것도 비밀이다. 지식층에 들어갔으니까 퍼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잘 퍼질 것 같고 잘 알아들을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다. 비밀이 있다.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 진짜로 그리스도가 전해진다면 황제가 믿을 수가 없다. 콘스탄틴 황제가 믿었다고는 하지만 황제가 진짜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어떻게 황제가 받아들이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왜곡시켜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도 왜곡시키고 말았다.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다.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 나타난바 됐다고 했다. 바울은 이것을 신기한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사도들의 전파로 모든 사람이 믿고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신비의 계시를 따라 이제 드러난 복음인 것이다. 이 복음은 그냥 표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신비한 계시 때문에 된 것이다. 교회가 드러난 것은 신비한 계시다.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형수가 교회라는 몸을 가지고 세상에 다시 등장할 줄 누가 알았는가.
이 복음은 아들의 죽음으로 값을 치르고 인류를 구속하며 다시 살리심으로써 새 생명을 주어 새 인류를 일으켜 교회를 세우신 것으로서 사탄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안다고 해도 감당치 못하는 것이다.
이 복음은 아들의 죽음으로 값을 치르고 인류를 구속하며 다시 살리심으로써 새 생명을 주어 새 인류를 일으켜 교회를 세우신 것으로서 사탄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안다고 해도 자기로서는 감당치 못하는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이런 계획을 알았다고 해도 자기로서는 실현할 수가 없는 일이다. 자기가 죽어서 다시 살 수가 없다. 아무리 알아도 안 되는 비밀이다. 우리가 알아도 안 되는 것도 있다. 김연아가 하는 것을 보면 잘 한다. 이럴 때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해보면 안 된다. 태극권도 해보면 선생이 하는 것을 보면 잘 할 것 같지만 해보면 안 된다. 태극권이 만 번을 하지 않으면 몸에 익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체조는 배우면 금방 익혀지고 몇 년 하지 않다가도 다시 하면 되는데, 이 태극권은 한 동작을 만 번 이상을 해야 기억이 된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나도 한참동안 하다가 한참 동안 안 했더니 싸악 잊어버려 어제 하려고 하니까 도대체 시작을 못하겠다. 현식형제가 와서 시범을 보이니까 짐작이 되기는 되는데 해보려고 하니까 또 안 된다. 얼마를 연습을 해야 될련지 모르겠다. 이상하다. 비밀이 있다. 남이 해도 나는 못하는 것이 있다. 하여튼 그것은 오래하면 된다. 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은 사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복음으로 교회를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적이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승리는 명백한 것이다. 하나님의 무기는 아들로서는 죽고 아버지로서는 다시 살리신 비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복음으로 교회를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사방에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지만 이 복음은 비밀한 복음이기 때문에 이 복음이 있는 한은 승리할 것이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했던 교회들은 다 없어졌다. 유럽의 교회들은 텅텅 비어있다. 왜냐하면 문화적인 교회였다. 그 문화가 교회보다 낮을 때는 필요했었는데 세상 문화가 더 높아져버리니까 교회가 필요 없어져버린 것이다.
옛날 어릴 때만 보더라도 교회 문화가 세상 문화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선교사가 왔다. 미국식 어떤 것을 가지고 왔다. 생활방식도 그렇고 물품도 그렇고 모든 것이 선진국에서 어떤 것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후진국인 우리들로서는 그 자체만 보아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집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모든 것이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 그러니까 교회 가기가 쉬웠다. 교회에 가면 배울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많은 것이 있었다. 시골에 피아노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선교사들이 피아노를 가지고 와서 치지 악기 가지고 와서 불지 없는 것이 없다.
우리가 선진국 사람들을 보면 문화에 압도 된다. 그런데 점점 우리나라도 경제도 좋아지고 문화가 발전하니까 요즘은 교회에서 재미있는 것을 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TV에서 많이 보기 때문에 교회에서 탈랜트들이 와서 하겠는가? 못한다. 선생님들이 하는 것을 아이들이 보면 얼빵하게 보이고 엉성하게 보이기 때문에 오라고 해도 잘 안 온다. 돈 많은 교회에서는 선물을 잔뜩 준다. 여름 성경학교 같은 것을 하면 가방도 비싼 것을 주고 선물을 가득 안겨준다. 선물을 받으려고 오기는 오지만 아이들 집에 더 많다. 서초동에 있는 교회 같은 데는 여름 성경학교를 한 번 하면 그 예산이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부자동네니까 시시한 것을 주면 아이들이 가지고 가지도 않는다고 한다.
우리도 가창으로 이사 오기를 잘했다. 수성구에 있었더라면 돈도 없는데 애 먹을 뻔 했다. 지금 범어교회가 있는 자리를 우리가 처음 봤고 하려다가 안 했는데 그곳이 부촌이다. 이 부촌에 와서 우리 교회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자리는 아주 좋은 자리다. 좀 좁다는 핑계로 내가 안 했다. 그런데 속으로는 이 부촌에서 우리 교회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너무 부촌이다. 그쪽이 수성구에서도 제일 부촌이다.
복음은 들어갈 때가 따로 있다. 사탄은 이것을 못한다.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는 이 사탄은 아무리 해도 이것이 안 된다. 이 복음으로 교회를 견고케 할 것이다.
적이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레이건 때, 후르시초프와 대담을 했는데 그때 레이건이 스타워즈 계획을 설명했다. 공중에서 전쟁을 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발표를 하니까 후르시초프가 뒷문으로 빠져 도망가 버렸다. 앞문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나간 사건이다. 왜냐하면 소련이 생각할 때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소련이 서서히 개방된 것이다. 미국의 위력에 굴복한 셈이다. 우리는 도저히 해도 안 되겠다. 인공위성 쏴놓고 우리가 앞섰다고 생각했더니 스타워즈라고 하니까 지상에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인공위성에서 조준해서 쏜다고 하니까 어떻게 대항을 하겠는가? 그래서 턴을 하게 되었다.
알지 못하는 무기가 있으면 지는 것이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때 다른 나라가 갖고 있지 않은 무기를 갖고 있었다. 로케트 같은 것이 다른 나라는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전쟁을 했던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이 가지고 게신 이 무기를 모를 뿐 아니라 안다고 해도 만들 수가 없다. 우리 교회는 이 복음 안에 교회가 있으면 사탄이 와서 어떻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해도 안 된다. 알 수가 없다. 만일 쁘락치가 들어온다고 하자. 다른 교회는 벌벌 떨고 있다. 신천지에서 쁘락치를 교회에 넣는다고 한다. 안에서 점령한다. 그래서 교회들이 비상이 걸렸다. 어떤 사람이 왔길래 우리 교회에 와서 한 번 해보라고 했다. 딸려 가는 사람을 가버리고 차라리 속 편하게 안 갈 사람만 모여서 하자고 했다. 아마 우리 교회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왜? 우리 교회는 신천지가 모르는 무기가 있다. 그리고 무기가 가르쳐준다고 하더라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승리하여 사탄을 발아래 굴복케 할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 속으로 신이 났다. 복음으로 승리하는구나! 이 복음이 비밀한 무기이구나! 명백하다. 상대방이 모르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명백하다.
하나님의 무기는 아들로서는 죽고, 아버지로서는 다시 살리신 이 비밀이다. 죽고 다시 산 비밀이니까 사탄이 들어오지 못하고 흉내 낼 수도 없다.
하나님은 홀로 지혜로우신 분이다. 선악과로 인하여 사단에게 팔려간 인간은 그 누구도, 어떤 무엇으로도 구속해낼 수가 없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바로에게 억류된 것을 구출해 낼 수 없었던 것과 같다. 그 어떤 힘으로도 이 일을 해결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어린양의 피로 그 백성을 구속하시고 성막을 건축하게 하고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하나님은 홀로 지혜로우신 분이다. 홀로 지혜롭다는 말은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비교할 수가 없는 그런 지혜를 가지고 있다. 선악과로 인하여 사단에게 팔려간 인간은 그 누구도, 어떤 무엇으로도 구속해낼 수가 없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바로에게 억류된 것을 구출해 낼 수 없었던 것과 꼭 같다. 애굽에 억류된 이스라엘을 무슨 수로 끄집어내겠는가?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 어떤 힘으로도 이 일을 해결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어린양의 피로 그 백성을 구속하시고 성막을 건축하게 하고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비밀이다.
유월절을 보면 비밀이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죽음의 신이 지나갔다는 것은 비밀이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어떤 방식 어떤 구조에 의해서 어떤 메카니즘으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래서 사탄이 물러갔구나. 죽는 것을 보고 물러나지 않을 수가 있는가? 죽었으면 끝났다고 생각한다. 자기 세계에서는 죽고 다시 산다는 것이 없기 때문에 버리고 간 것이다. 왜 어린양을 잡아서 식구대로 나눠서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문을 닫고 방안에서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했는가? 이것이 비밀이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면 새 사람이 되는가? 비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왜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가? 비밀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사람을 내가 영접했는데 왜 내가 변하는가? 내가 왜 다른 사람이 되는가? 비밀이다. 이론적으로 다 알고 할 수는 없다. 옆 사람이 받아들이니까 나도 받아들이는 것이지 조금 멍청해도 된다. 아무리 지혜를 써봐도 안 된다. 이것은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그런 사람을 보고 나도 먹어야 된다. 언제 음식 영양가를 다 분석하고 먹겠는가? 영양학적 검사를 위해 집집마다 검사기를 갖다 놓고 검사하고 먹겠는가? 옆 사람이 먹으니까 우리가 먹는 것이다. 그렇게 먹는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고 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말을 잘해도 소용이 없다. 여러분도 나에게 기대하지 말고 그런 사람을 보고 먹으면 된다. 먹고도 안 죽었으면 나도 먹으면 안 죽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언제 검사하겠는가. 유월절에 그렇게 하라고 해서 문을 닫고 방안에서 먹은 사람들은 다 살아났다. 혹시 그 중에 그렇지 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다. 뭐가 되겠나 싶어서 문열어놓고 있다가 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바로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심이 어찌 그들만을 위한 것이겠는가? 예수를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예비가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 것이다. 아멘.
그렇다! 바로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심이 어찌 그들만을 위한 것이겠는가? 우리가 왜 그 사건을 우리 사건으로 볼 수 있는가? 이스라엘을 구속하는데 비밀이었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를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예비적인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 것이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으면 유월절은 영원히 비밀로 있는 것이다. 개봉될 수 없는 영화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개봉되었다. 우리 교회는 개봉박두다. 예수를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예비적인 조치였다. 이제 예수로 말미암아서 이것이 확정이 되었고 드러났으니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없었으면 하나님은 그냥 비밀이다. 천사가 하나님 아들이 될 것이고 영원히 비밀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비밀이 폭로되고 드러났다.
그랬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하고, 오늘 우리 교회로 말미암아 이것이 또 드러나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회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신 이 사건이 오늘 또 우리 사건이 된다. 우리 사건으로 드러낼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수건을 동이고 자세히 보면 뿌적뿌적 기어 나오는 사람도 있다. 자세히 보면 무덤에서 나오는 사람도 있다. 수의를 걸친 채로 나오는 사람도 있다. 뒤집어쓰고 나오는 사람도 있다. 자세히 보면 교회에서 이 사건을 계속 하고 있다. 빈 무덤이 생기고 무덤이 열리고 수의가 개켜져 있는 것이 다 보인다.
이것은 현장 사건이다. 옛날이야기 같으면 우리가 어떻게 믿겠는가? 그냥 신화에 불과할 것이다. 다시 재현되지 않는 것은 다시 재현될 수 없는 것은 신화에 속한다. 그런데 지금 계속 연속되고 있으니까 신화가 아니다. 수건을 동이고 나오는 사람들, 발이 꺾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 걸어 나오는 사람, 신기하다. 발이 꺾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죽지 않으니까 발을 꺾어서 죽이는데, 예수님께 와보니까 이미 죽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발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발을 꺾지 않았으니 동여매어놓았어도 뿌적뿌적 걸어 나온 것이다.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우리 교회 안에서 보면 너무너무 재미있다. 성경 안에서만 보면 동화 같으니까 너무 어이없으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실이다. 무덤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고 아멘하고 박수친다. 공연히 다른 얘기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여기서는 다른 얘기 아무리 해보았자 박수 치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이론적으로 쁘락치가 들어와도 소용이 없다. 자기가 수건을 동여매고 나오거나 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길이 없다.
세세 무궁토록 있기를 원한다. 이제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한다.
[ 기 도 ]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에게 신비한 비밀을 열어주시고 주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날마다 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밖에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인데 썩어질 것밖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썩지 아니할 것을 보게 해주시고, 쇠하지 아니할 것을 보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날마다 행하시는 것을 보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눈이 있을 때 우리 마음이 있을 때 우리 생각이 있을 때 주님을 더 깊이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고, 주께서 날마다 행하시는 것을 날마다 더 보게 되기를 원하고, 주님의 움직이심과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주께서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하고,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