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선 무렵에 있었던 논쟁이었나본데 처음 보았네요. 상당히 흥미로운 글입니다.
요즈음은 긴 글은 안 읽으려 하고 유익한 글은 지루해 하는 경향이 있지만 시간 내서 읽기를 바랍니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논쟁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1. 변호사를 겸임하는 온누리교회 이태희 교육목사가 박정희 전대통령의 다카키마사오라는 창씨개명을 옹호하는 글을 자기 페이스북에 올립니다.
2. 이에 대해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인 푸른뜻교회 김근주 목사가 곧바로 반박글을 올립니다.
3. 온누리교회의 이태희 목사가 사과글을 올립니다.
한번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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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년 12월 5일 이태희목사의 글
"다카키 마사오와 벨드사살"
1.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이다.
2. 어제 방송 토론에서 이정희는 박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를 '뼛 속까지 친일파' '뼛 속까지 매국자'로 싸잡아 매도하였다.
3.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무식한 소리'는 혼자 다하는 '반.전.있는 여자'!! 이것이 이정희의 치명적인(?)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
4. 충성혈서를 쓰고 만주군 장교 (일본군 장교가 아님)로 활동한 박정희가 뼛속까지 친일이라면, 일본이름을 갖고 일본 학교를 다니며 매일마다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쳐야만 했던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그럼 다 '뼛 속까지 친일파', '뼛 속까지 매국노'란 말인가?
5. 일제치하에서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도 일본 이름을 가졌다치자!
6. 그럼 오늘날 너나 할 것없이 '영어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뭔가? 영어 좀 배워보겠다고 천문학적인 액수를 미국에다 쏟아붓는 우리들은 뭔가? 미국에서 살아보겠다고 '시민권'까지 갈아치워 버리는 우리들은 뭔가?
7. 이것이 이정희가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는 이유인가?
8.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부르는 정통성(?) 있는 북한 정권이 '남측 정부'(?)를 해방시켜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가?
9. 대한민국에 '다카키 마사오'가 있었다면, 이스라엘에는 '벨드사살'이 있었다.
10. 바벨론 왕이 포로로 끌고간 이스라엘의 아들, '다니엘'(Daniel)의 바벨론식 이름이다.
11. 벨드사살은 다른 유대인 포로가 죽도록 노예 생활을 할 때, 바벨론 궁전에서 바벨론식 교육을 받으며 바벨론 왕의 최측근의 삶을 살았다.(물론 평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12. 어디 벨드사살 뿐인가? 느혜미야(Nehemiah)는 어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하고 있을 때, 느혜미야는 페르시아 수산 궁에서 최고위직을 지내고 있었다.
13. 모세(Moses)는 어떤가? 애굽에서 다들 뼈 빠지도록 노예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부모의 편법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된 인물 아닌가? 모세라는 이름 자체가 바로 왕의 딸이 지어준 이름 아닌가? 모세야말로 뼛 속까지 애굽인이었다. 그것도 왕족.
14. 일제 치하에서 일본 천황에게 아들로 입양된 조선인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모세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15. 요셉(Joseph)은 또 어떠한가? 다들 가뭄으로 굶어 죽어갈 때 애굽 바로 왕에게 발탁되어 애굽 총리가 된 인물 아닌가?
16. 한국 현대사에서 '다카키 마사오'를 지우고자 한다면, 위에 언급한 성경의 거물들의 이름 역시 성경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17. 그럴 자신이 없다면, 곰곰히 생각해 보라!
18. 모든 나라의 역사와 그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해 온 역사적 인물들의 삶은 항상 '영욕'(榮辱)을 같이 갖는 법이다.
19. 이정희로 대표되어지는 소위 '종북좌파' 세력들은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역사적 인물'의 욕(辱)은 현미경으로 분석하면서, 그들의 영(榮)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일종의 '역사적 사시'(斜視)를 앓고 있다.
20. '관점'(Viewpoint)이 '광경'(View)을 결정하는 법이다. '어떻게 보느냐'가 '무엇을 보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21. 어제 국민을 상대로 그토록 농도 짙은 '헛소리'를 하는 이정희를 보며, 그가 얼마나 '헛 것'을 보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22. 사람이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악령'에 사로잡히면 '헛 것'이 보이게 되는 법이다. '헛 것'이 보이면 '헛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23. '헛 것'을 보고 나오는 이정희의 '헛 소리'에 같이 춤을 추는 그리스도인이 행여라도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글을 올린다.
2. 2012년 12월 9일 '뉴스앤조이'에 올린 김근주 목사의 반박
"누가 다카키 마사오를 벨드사살이라 말하나"
온누리교회 목사님이면서 변호사라는 분이 박정희의 친일을 다니엘과 비교하는 글을 읽었다. 처음에는 분노가 솟았지만, 글을 적다 보니 분노는 가라앉는다. 안타까울 뿐. 그분의 글쓰기 방식을 따라 적어 보았다.
1.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이다.
2. 이태희라는 온누리교회 목사이면서 미국서 공부한 변호사라는 분이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과 연관하여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를 일러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무식한 소리'는 혼자 다하는 '반.전.있는 여자?!'라고 매도하였다.
3. 목사면서 변호사라는 양반이, 일반 방송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정희의 견해에 대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반박하면서 혼자 '똑똑한 척'은 다했다. 그런데 역사에 대한 이해는 둘째 치고, 구약성경을 사용하는 데 온통 황당하기 짝이 없게 사용했다. '무식한 티'를 혼자 다 낸 것이다.
4. 일제시대에 일본 이름을 갖고 일본 학교에 다니며 날마다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쳐야만 했던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일러 '뼛속까지 친일파'라고 말한 이는 아무도 없다. 오직 이 목사님의 상상일 뿐이다. 그 누구도 그러한 우리네 조상을 일러 친일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친일을 했으며, 우리도 그때 그곳에 있었더라면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그들의 죄를 우리의 죄로 알고 다만 그때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다음이지만, 그때의 친일을 고백하며 반성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이제라도 "틀린 것은 틀리다"고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고 고백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기에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를 고백한 한경직 목사님을 일러 "용기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의 친일을 누구나 했던 것이라며 정당화하는 무리, 해방 이후에 아무런 참회 없이 뻔뻔스럽게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들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고스란히 반복되고 말 것이니 말이다.
5. 구약성경을 보라.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에 등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현상의 하나가 바로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이 목사님이 예로 든 다니엘서 9장을 읽어 보라. 느헤미야서 1장, 그리고 9장도 읽어 보라. 그들은 지난 역사를 어떻게 반성하는가? 그들은 조상의 역사를 일러 온통 죄로 가득한 역사로 고백하고 있다. 과연 그랬겠는가? 다 죄지었을까? 이사야도 있고, 예레미야도 있고, 에스겔도 있고, 다윗도 있다. 그러나 전체 역사를 싸잡아 범죄 한 역사로 고백하는 것이다. 지난 역사를 없었던 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덮고 앞만 바라보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죄로 여기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고백하는 것이다. 열왕기서는 아예 우리가 왜 망했는가를 적나라하게 되돌아보는 책일 정도이다. 누가 나는 친일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것은 지난 과거는 제대로 돌아보자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처럼, 그저 덮으려고만 하지 말자는 것이다. "너희는 별 수 있느냐"라는 얼빠진 소리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6. 오늘날에 너나 할 것 없이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것과 다카키 마사오를 비교하는 이 목사님의 견해는 우습지도 않다. 미국서 공부하고 오신 이 목사님이 그렇다는 건지, 그리고 이 목사님이 속한 온누리교회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에 누가 그렇게 너나없이 영어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 당최 보지를 못해서 말이다. 영어 좀 배워 보겠다고 천문학적 액수를 미국에 쏟아붓는 이들도 도대체 누구인지 좀 알려 달라. 당신이 속한 온누리교회 이야기인가? 아니면 직장에 도무지 취직이 힘들어 그래도 영어 어학연수 6개월이라도 하고 오면 좀 나을까 하여, 젊은 날에 알바를 하며 겨우겨우 모은 돈을 가지고 그렇게 미국 어학연수 다녀오는 우리네 안타까운 청년들을 말하는 것인가? 이 목사님이 보기에, 그게 천황 폐하를 외치며 이름을 바꾸고 출세한 다카키 마사오에 견줄 일이라는 것인가? 대체 미국서 살아 보겠다고 '시민권'까지 갈아치우는 이들은 누구인가? 당신이 속한 온누리교회 이야기인가? 그곳 교인들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 시민권 얻자고 미국이나 괌에 가서 원정 출산하는 우리네 있는 사람들 이야기인가? 댁이 공격하는 그런 사람들은 이정희의 견해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니, 안심하시라. 흥분을 가라앉히시라.
7. 이제 구약 이야기 좀 해 보자.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는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일찍이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권하였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시드기야 같은 패거리들은 끝까지 항전을 고집하였지만,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이었을 뿐이다. 이 점, 궁금하다면 언제건 성경 배우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로 찾아오시라. 중요한 것은,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상황 속에 있다는 점이다. 그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비교해 버리면, 그 시대를 살아간 예언자들의 선포는 무색무미하게 건조해진다. 바벨론 포로가 된 이스라엘의 상황과 일본의 식민지 된 조선의 상황은 판이하다. 다카키 마사오와 벨드사살을 비교하려면, 먼저 일본의 조선 침공이 하나님께서 조선의 죄를 책망하시고 심판하신 결과라는 것을 먼저 입증하라. 선후와 인과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채, 평면적인 비교를 해 버리면 성경을 그야말로 입맛대로 사용하게 되어 버린다.
8. 포로기 이스라엘의 이방 체류는 하나님의 심판임이 명확히 성경에서 증거 된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독립운동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고백하며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방 땅에 살면서 하나님만이 자신들을 살리시고 회복하실 분임을 고백한다. 페르시아 땅에서 페르시아 황제를 섬기지만, 그들이 참으로 섬기는 것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일 뿐이다. 그들은 제국주의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알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며, 이 땅 어디에 살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 것뿐이다. 그렇기에 때로 사자 굴도 던져지고, 풀무 불에도 던져진다. 다카키 마사오는? 이 목사님이 좋아하는, 다니엘에 견주어지고 있는 다카키 마사오는 언제 그러했던가? 아니, 무엇보다 다카키 마사오가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그래서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던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이 목사님은 여기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친일한 박정희와 다니엘이 비교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9. 모세까지 등장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간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애굽에 끌려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와 성격이 판이하다. 그러나 이 목사님께는 이런 점이 아무 상관없다. 무차별적으로, 외국에 살았고 외국 왕을 섬겼으니, 똑같은 경우로 비교한다.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비교해 버리면, 성경이 극심한 아전인수가 된다는 것을 이미 이 목사님도 알고 있겠지만, 흥분한 나머지 무심코 나와 버린 비교라 믿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애굽에 내려갔고, 그 땅에 400년을 살았다. 그러나 애굽의 토착적인 18, 19왕조가 등장하면서 막대한 건설공사를 단행하였고, 이로 인해 수많은 이방 민족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다. 언제나 제왕들은 건설공사를 크게 열면 위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굽의 바로도 그러하고, 솔로몬이 그러하며, 이스라엘의 여호야김도 그러하고(렘 22:13~15), 오늘날의 이명박 대통령도 그러하다. 이민족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그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한 지배층들은, 노예들의 많음이 두려워 어린아이를 다 죽이라는 천인공노할 명령을 내린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로 건짐 받은 모세가 공주의 아들로 자라난 것을 가리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친 다카키 마사오에 견주면, 정말 너무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모세는 애굽으로부터 동포를 구하고자 애굽의 영광을 떠나고, 광야로 간다. 다카키 마사오는? 이 목사님이 옹호하는 다카키 마사오는? 자신의 친일 시절을 돌아보며 광야로 가는가? 독립군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군대를 뛰쳐나오는가? 무엇보다 애굽의 바로를 찾아가서 '내 백성을 자유케 하라'고 외치는 모세의 모습은 다카키 마사오의 어디에서 찾아보아야 하는가? 일본과의 굴욕적인 수교 협상에서?
10. 그 누구도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를 지우지 않는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를 거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이 목사님이 말했듯이, 영욕을 함께 보자는 것이다. 박통 시절 내내 온통 영광으로 덧칠을 해 왔으니, 이제라도 '욕'을 제대로 반성하자는 것이다.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은 틀리다"고 하자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다 친일했다는 것을,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앞으로는 더 나은 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그 사과하는 것을 그리도 미적거린다. 우리는 그것이 두렵다. 그렇게 과거를 애써 부정하고 미화시키며, 정당화시키려는 그녀가 두렵다. 혹시라도 그런 그녀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11. '영욕'을 말하지만, 이 목사님의 글에서 박정희에 대한 '욕' 부분을 다루는 부분은 전혀 볼 수 없다. 그땐 다 그랬다는 말뿐. 박정희의 '영'에 대해 전혀 다르게 보는 이들이 많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진지하게 관람할 것을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신 이 목사님에게 진심으로 권한다.
12. '종북 좌파'라는 말 함부로 쓰지 말라. 그런 말 쓰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보수 꼴통'처럼 보이니 말이다.
13. 'viewpoint'를 말하기에 이 목사님은 아직 이르다. 당신은 우리 역사를 잘 모르는 것 같다(이 부분은 내 착각일 수 있겠다). 거기에 구약성경을 다루는 방식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당신 말대로, 올바른 관점을 가지지 못하다 보니, 성경도 황당하게 풀이하게 되고, 역사 이해는 더더구나 몰상식해져 버린다. 당신 논리로 가면, 그래서 다카키 마사오가 벨드사살이라면, 독립운동은 헛짓이다. 삼일운동도 헛짓이다. 벨드사살은 독립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설마 이것을 당신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당신 논리로 가자면, 우리 조상이 했어야 하는 일은 일제시대에 충성스럽게 내선일체를 위해, 황국 신민으로서 봉사를 다 하는 것이다. 느헤미야가 그러했듯이, 신채호도, 김좌진도, 유관순도, 김구도 일본 천황 만세를 외치며 열심 봉사했어야 한다. 사실 그런 논리였기에, 전두환 시절에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우리네 교회는 전두환 위해 축복 기도하며 교세를 확장시켰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등장한 성경 구절들의 악용은 새삼 거론할 가치도 없다.
14. 사람이 '좁은 시야'에 사로잡히면 보이는 것이 아예 없게 된다. '좁게' 보고 '헛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그러니 부디 말조심하시라.
15. 이정희를 반대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얼마든지 반대하시라. 다만 성경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지는 말아 달라. 혹시라도 믿지 않는 이들이 보고, 기독교는 다 이 모양인가, 성경은 다 이렇게 황당한가 여길까 봐, 너무 두렵다.
3. 이태희 목사의 사과글
지난주에 저는 제 페이스북에 '다카키 마사오와 벨드사살'이란 글을 통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다카키 마사오' 발언에 대한 비판의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저의 글을 통해 뜻하지 않게 상처 입으신 분들께 먼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오늘 <뉴스앤조이>에 올리신 김근주 목사님의 글을 읽고, 저의 글이 얼마나 미숙하고 경솔한 글이었는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경솔하게 이해하여 많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누를 끼치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한 교회에 소속된 목사라는 공적인 신분을 망각하고 저의 개인적인 관점을 그것도 성경의 인물들을 인용하여 경솔하게 설명한 것은 참으로 미숙한 일이었습니다.
경솔한 저의 글로 본의 아니게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죄송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안한 연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태희 드림
첫댓글 성경 제대로 모르면 이런일이 생기는군요. 속시원한 반론입니다.아울러 우리 역사도 제대로 알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