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임(잠사85, 선구자편집간사)
어떤 사람들은 TV가 바보상자라고 비판하지만 나는 꼭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청률에 급급한 막장드라마나 허접한 예능 프로그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석같은 프로그램도 있고 딱히 여가를 즐길만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겐 꽤 괜찮은 오락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문화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일수록,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모든 지구인이 이웃사촌이라는 인터넷 세상과 단절된 세대에겐 더욱 그렇다.
난 가끔 TV를 본다.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있는 주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프로그램은 시간을 놓치면 다시보기를 해서라도 볼 때가 있다. 시청률이 높았던 ‘선덕여왕’은 드문드문, 드라마의 질에 비해 시청률이 나오지 않았지만 폐인을 만들 정도의 열렬 팬을 확보했던 ‘탐나는 도다’는 관심있게 보았다. ‘탐나는 도다’를 보다가 난생처음 배우들의 미니홈피도 뒤져보게 되었다. 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무섭도록 집중할 수 있는 배우라 연기가 뛰어났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말이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현실에선 정말 평범하지 않은 진리를 되새김질하면서.
이 드라마가 시청률에 밀려 조기종영하자 조기종영 반대를 위해 1인 시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참 보기 드문 일도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방송이 끝나던 날, 서울시내 어디쯤에서 배우들과 마지막 방송을 함께 시청하는 특이한 종영파티도 열렸다. 이쯤 되면 드라마에 대한 참 지극한 정성이요, 배우들에겐 최고의 찬사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관한 모임의 이름이 낯이 익었다. ‘소울드레서’라는 패션에 관심있는 카페 회원들이였다. 날 참 여러 가지로 놀라게 하는 분들이다.
얼마 전 신문에는 홍대 앞에서 삼국연합(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발)회원들을 위로하는 인디밴드 공연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 삼국연합의 총회원수는 65만명이라고 한다. 요즘 개념찬(?)여성들 사이에서 ‘삼국연합’을 모르면 거시기 하다는데... ‘니들이 고생이 많다’라는 공연제목에 어쩐지 마음이 찡하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자가 천하를 얻고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삼국연합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면 이들이 왜 고생이 많았는지, 왜 위로받아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작년 광우병을 시작으로 노전대통령 서거정국과 미디어법 정국을 거치면서 각종 캠페인과 재치있는 신문광고,기발한 퍼포먼스,바자회를 통해 재미있으면서도 호소력 있는 싸움을 줄기차게 해왔던 그들이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끝도 없는 싸움에서 지치고 심지어 불순세력이라는 매도까지, 정말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에겐 위로도 그들답게 개념차게(?)서로 주고 받으며 잔치로 만들어냈다. 참으로 이 개념찬 분들이 앞으로 어떤 에너지를 뿜어낼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하게 된다.
요즘 ‘루저’라는 말을 모르면 삐리리다. ‘미녀들의 수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여대생이 말한 외모에 대한 발언, 즉 키 작은 남자는 인생의 실패자란 뜻의 ‘루저’라는 표현은 하루아침에 인터넷을 온통 들쑤셔 놓았다. 이 여학생 한동안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개인적인 사생활까지 인터넷에 공개되는 마녀사냥식 비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더군다나 사랑하지 않아도 소위 ‘스펙’이 완벽하면 결혼할 수 있다는 발언은 ‘루저’에 묻혀버렸지만 참 씁쓸한 대목이다. 포장지만 그럴싸하면 한 인간이 가진 내면적인 가치는 뭐가 되도 좋다는 생각이 얼마나 슬프고 불행한 생각인지 살다보면 그 여대생도 깨닫는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가치를 ‘스펙’으로 저울질 하는 부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삼국연합의 개념찬 젊은 여성들도 65만이나 된다. 하도 궁금해서 카페에 가입해보려고 했는데 나이가 많아(?) 가입조차 되질 않았다. 딸아이 말처럼 ‘루저’파동 이후 인터넷에 올라온 비난 댓글과 반대의견이 절대다수인 만큼 아직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고 믿는다.
첫댓글 이번호 편집후기 읽으면서 계속 웃었어요. 재미도 있고.. ^^ 음.. 그런데 그 안에 내용도 있더라구요..
은경아, 니 내가 소울드레서 카페에 나이가 많아 들가보지도 못하고 짤렸다는 대목에서 웃었지, 그치?
그 놈의 나이때문에 가입이 안되다니...심각한 것이긴 한데...웃음이 나온다. 경임아..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