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빚는 삶
-이기락 수필 「상실」의 경우-
수필은 독자층이 넓다. 남녀노소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장르란 뜻이다. 픽션을 배제한 사실적 제재로 꾸려지기에 세대 간의 격차를 초월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옛 것을 그리워하고 그것을 현대와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역사적 전통의식이 되살아난다는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이 수필문학이 갖는 현실적 효용성이다. 그래서 수필을 친화적 문학이라고도 한다.
음악도 복고풍으로 돌아간다는 분위기란다. 락이나 힙합을 젖히고 트로트를 애창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음이 그 반증이라고 했다. 음식 문화도 이에 뒤질세라 옛것을 찾는단다. 인스턴트, 패스푸드 등에 길들여졌던 입맛을 버리고, 김치는 물론 발효 음식인 장류를 즐기며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이고,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 마시고 즐기는 이가 늘어난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신세대들의 기성세대 따라잡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음식문화가 그렇고, 의복문화가 그렇고, 수면 문화까지 변하는 기미가 보인다면 이는 가히 혁명적 변화의 조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에 뿌리 깊이 박힌 토속적이고 정서적인 문화에 그들이 아직까지 감염되어 있기를 열망한다. 문학을 밥 짓듯이 먹고 살아야 하는 작가들의 열정이 식지 않는 한 백의민족만이 향유할 수 있는 전통의식은 전승되리라 확신한다.
‘보리 고개’의 의미를 터득한 기성세대들은 옛것에 대한 향수를 반추하기에 배고프지 않다. 그래서 벌꿀의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자란 신세대들이 맞을 황혼에 대하여 지레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신세대들이 요즘 세태에 비추어 볼 때 황혼 무렵엔 수억의 빚더미를 안고 산다는 신문 보도에 그래 미리 기우를 앞세우나보다.
수필에 등장하는 일등 순위는 언제나 고향에 대한 향수다. 수필작가를 일컬어 가히 향수병 환자라 한들 싫어 할 사람이 있겠는가.
현대문명의 편의성 때문인가.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산과 들과 냇물과 이웃의 정이 손을 뻗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가버렸다.
수필가 이기락은 누구보다 사라지는 우리 것에 대하여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이다. 결론하면 「상실」이란 수필이 그의 손에서 태어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얼마 전, 그곳 내가 살던 집으로 도로가 난다고 해서 가보았다. 시골길을 넓게 확장하는 도로공사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언짢았다. 문명이란 미명아래 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툇마루, 마당에 깔렸던 멍석,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던 소들의 잔영이 포크레인 바가지에 퍼 올려 져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상실>중에서
순박한 농심이 머물고 있는 시골에 난데없이 도로 공사를 하느라 집을 부수고 땅을 파는 자연훼손의 현장 모습을 직접 보는 듯 선하다.
천방지축 뛰어놀던 마을의 동산, 산자락을 감싸 안고 자작자작 흐르던 시냇물, 향긋한 풀 향기를 안고 불어오는 실바람, 우리 세대는 그런 자연의 품에 안기어 살았다. 비탈길을 오르노라면 어둠 속에서 불쑥 미륵불이 장승처럼 나타나고, 까만 치마를 입은 전봇대가 다섯 가닥 쇠줄을 잡고 키 자랑이라도 하듯 서 있었다. 어느 날 이것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회색빛 시멘트로 도배가 되었다. 살던 집이 헐리고 아스팔트가 깔리는 고향, 자신의 태를 묻었고, 잔뼈를 키운 고향마을 바라보는 수필가 이기락의 눈에는 글썽글썽 눈물마저 괴었으리라. 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툇마루, 마당에 깔렸던 멍석,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던 소들의 잔영이 포크레인 바가지에 퍼 올려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작가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광경이 아니던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고향을 보여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 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가족이 오순도순 살던 수 십 년의 추억이 한 순간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훗날 그 곳을 지나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나의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이라는 것을 짐작이나 할까 싶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뒷밭으로 갔다.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란 밭둑에 주저앉아 흩어져있는 추억들을 모아 간신히 더듬어 보았다.-<상실> 중에서
고향이란 단순히 태어나고 자란 곳만이 아니다. 그곳엔 조상의 숨결이 서려있고, 후손들이 이어받아야 할 전통이 있다. 또한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뿌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향마을엔 후한 인정이 있기에 웬만한 잘못은 죄가 되지 않는다. 정이 담긴 고향땅을 깡그리 잃어버린 이기락은 밤이면 서러움이 되살아나 잠을 못 이루었을 것이다.
-긴 여름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얼굴을 묻으면 엄마는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구슬땀을 흘리며 콩밭 매던 손을 그제야 멈추었었다. 바로 이 밭이었다. 골목에서 뛰놀던 아이는 자석처럼 이끌려 싸리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버지는 소꼴을 한짐 가득지고 들어서며 “소먹이 줬냐?”하신다. 외양간 소는 말이라도 알아들은 듯 빙빙 돌며 자신의 소똥 범벅인 꼬리로 온몸에 달려드는 하루살이, 모기를 쫓으며 큰 두 눈만 껌벅껌벅 거린다. 자식은 한 끼 굶길 수 있어도 소는 굶기지 않았다. 재산목록 1호였으니 합당한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상실> 중에서
우골탑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농촌에서 도회지로 자식들을 유학 보내려면 논 팔고 밭 팔다가 나중엔 소까지 팔아야 했다. 그 소를 먹고 자란 곳이 대학이다. 이것이 우리네 대학의 발전역사인 것이다. 그래서 대학을 빗댄 말로 우골탑이라 부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의 어느 질 낮은 대학에서는 큰 우상(牛像)을 정문에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학교의 심벌마크로 삼기도 했다. 땀과 피가 배인 농부들의 마음을 알기나 했을까.
1960 년대만 해도 기계화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소가 농사를 짓고, 농부 아니면 농사일이 불가능했다. 참으로 힘든 농사를 아버지 어머니가 지은 것이다. 그 고통은 보고 겪지 않고는 모른다. 소는 재산목록 제1호다. 소는 그 자체가 농사였다.
엘리어트는「전통론」에서, 그 세대 작가가 쓴 작품은 그 시대성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은 그 시대의 서정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내면에서 우러나온다는 말이라는 뜻이다.
-어릴 적 여름밤의 향수다. 엄마는 빨래를 서둘러 걷어 마루위에 밀어놓고 밀가루 한바가지 푹 푸다가는 조금 덜어낸다. 그 시절 저녁은 죽이나 국수를 많이 먹은 것으로 기억된다. 오늘은 두 가지 메뉴중 하나다. 감자를 넣고 끓인 수제비, 아님 누름 국수다. 반죽을 치대는 모양이 오늘은 누름 국수다. 이 때 난 마루 위에서 배를 쭉 깔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숙제를 했었다.-<상실>중에서
고단한 농사일을 마친 농부의 아내는 가족들의 끼니를 잇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 또다시 바쁘다. 이기락 작가가 1956년생이다. 출생 년도에 비쳐 볼 때 그가 자란 시대상을 미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요즘처럼 가전제품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여 칼국수를 만들어야 했다. 평자도 어린 날 어머니가 방망이로 밀어 만들어 주던 칼국수를 자주 먹었다. 그 맛은 지금도 입안에서 감돌고 있다.
칼국수를 만드는 어머니 곁에서 작가는 배를 깔고 누워 연필 끝에 침을 묻혀가며 숙제를 하곤 했단다. 한편의 회화를 보듯 그 때의 모습이 선명하게 전해온다.
-“뭐해. 더운데 물이라도 드리지.” 툇마루에서 누워계신 아버지의 목소리다. 간식은 옥수수나 감자였다. 펌프 물을 한참 퍼 올리고 받아온 물에 당원(감미료)을 녹여 마시던 시원하고 달작 지근한 그 물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상실>중에서
입에 넣을 것이 없어서 굶었다던 시절 이야기다. 오늘의 먹거리 풍경과 대비시켜 보자.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해도 표현이 모자란다. 당뇨병 생긴다고 단맛 나는 것 삼가고, 살찐다고 기름진 음식 안 먹고, 장수하려고 유기농 찾고, 이걸 두고 격세지감이라 하던가.
우린 예로부터 정을 매우 소중히 여기던 민족이다. 평자가 일본을 여행한 후 겪은 소회다. 우리나라는 식당 어디든 자판기에서 커피를 무료로 뽑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식당에선 그런 인심을 발견하지 못했다. 음식도 소꿉장난 하는 것처럼 앙증맞고 작은 그릇에 조금씩 내어주는 일본 음식문화와 달리 우리는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려야 손님에 대한 예의를 다 한 것으로 여겼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가까운 읍내에 할머니 국수집으로 갔다. 우리밀로 밀판에 밀어 애호박을 넣고 끓였는데도 예전 어머니의 손맛이 아니다. 그야말로 부족해도 엄청 부족한 맛이다.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마당에 깔린 멍석에서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국수를 먹고 옛 이야기를 듣던 그 추억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나의 고향은 문명의 발달에 밀려 이젠 가끔 가슴 속에 묻어둔 추억의 한 페이지를 들춰야만 기억될 향수병의 발생지로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상실>중에서
음식엔 민족의 혼과 정서가 배어 있다. 나라마다 음식이 다른 것은 나라마다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 정도를 엿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우리가 이미 잃었고, 지금도 잃어가는 것은 고향의 풍경만이 아니다. 조상의 삶의 모습과 그분들이 지녔던 마음까지 잃어가는 것이다.
추억은 노인의 벗이다. 추억은 노인의 간식이다. 추억은 노인에게 용기와 힘을 준다. 추억은 노인의 에너지인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추억을 무덤 속까지 안고 가려하는지 모르겠다.
수필은 ‘개성의 문학’이다. 작가 자신을 직접 드러냄으로써 독자와 마주하는 문학이기에 다른 장르보다 작가의 개성이 강하게 표출된다. 작가의 개성적인 면모가 솔직하게 표현되기에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 부르는 것이다.
수필은 ‘관조와 사색의 문학’이다. 인생에 깊은 통찰력과 사색의 깊이가 반영됨으로써 문학적인 면모가 나타나게 된다. 작가의 안목과 사색의 깊이가 수반되어야 가치 경험으로 승화되고, 수필의 차원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관찰과 사색이 개성에 의해 통합되어야 독자로 하여금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깨달음을 얻게 할 수 있다.
이기락의 수필엔 작가의 개성이 명료하고, 그리고 감성적 전달이 선명하여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수필가 이기락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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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하정문학회 회장
현, 독서신문, 충청 타임즈 고정필진, 청주 시 작은 도서관 관장, 청주 시 사회복지 협의회 <자서전 대필 봉사자> 강사.
저서: 『내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예술의 옷을 입다』,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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