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 산다
신 승 엽
영월은 한자로 편안할 영(寧)자와 넘을 월(越)자를 쓴다. 편안히 지낼만한 곳이라니 과연 사람이 살만한 고장이다. 최근 이삼년 사이 영월, 특히 수주면에는 전국에서 팬션이나 주말주택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온다. 가히 강원도에서는 봉평에 이어 팬션의 수도라 할 만하다. 새로 지은 팬션이 백여 채가 넘는다.
요즈음도 사람들은 영월이 조선조 육대 왕이었던 단종이 청령포에 위리안치(圍籬安置)1)된 슬픈 역사의 땅이었고, 저 양백지간(兩百之間)2)에 김삿갓이 은거하였던 일을 떠 올리면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라거나 어두운 느낌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흔히 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영월은 사람이 정 붙이고 살만한 고장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마을 지명에, 무릉도원이 다 있는 지역은 없다. 그러나 영월에는 수주면에 무릉리와 도원리가 있다. 무릉도원은 다른 말로 이상향이다. 서양에서는 유토피아(UTOPIA)라고 한다. 우리나라 민중 속에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길지(吉地)에 대한 언급은 「정감록」에 나타나 있다. 정감록에는 오래 전부터 구전 되어 온 소위 ‘십승지지(十勝之地)’의 실제 지명이 정감록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얘기하는 십승지지는 사람이 몸을 보전 할 땅 즉 ‘보신지지(保身之地)’를 말한다. 정감록을 비롯한 몇 개의 도참서에 많이 등장하는 장소를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풍기, 가야, 공주, 풍천, 영월, 무주, 무풍, 부안, 운봉, 안동, 화산, 보은 등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영월은 무릉도원이며 전국에서도 살 만한 십승지지로 알려진 곳이었다.3) 광복후 우리나라의 부존자원이 아무것도 없어 살기 어려웠을 때 영월은 산하와 땅에 품고 있던 귀중한 자원으로 온 나라 사람들이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영월에 무진장 있는 석회석은 시멘트로 가공되어 각종 건설공사에 쓰였다. 집도 짓고 다리도 놓고 아파트며 공장이 모두 시멘트로 지어졌다. 겨울이면 석탄을 캐어 전국의 역두로 실어 보내면 연탄을 찍어 긴긴 엄동설한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상동에 있던 중석(텅스턴)을 캐내어 수출한 달러가 나라 전체 수출에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개발년대에 이 외화는 국가건설에 소중하게 쓰여 졌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영월에 큰 신세를 졌지만 그 빚을 제대로 갚지 않아 많이 섭섭한 것이 영월의 정서다. 그래도 영월 사람들은 다시 새로운 번영과 영광을 위하여 ‘명품창조 도시’ 건설의 비젼을 세우고 살기 좋은 고장 만들기에 함께 뜻을 모아나가고 있다.
영월의 지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형성되었다. 북면 문곡리에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4)가 있는 지층의 역사는 5억년이 더 되었다고 한다. 영월의 토질은 대부분 석회석으로 되어 있는데 이 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 좋은 콩이 생산 된다. 나는 강릉에 가면 초당두부집을 즐겨 찾는데 국내 주요 텔레비전은 물론 일본 NHK 텔레비젼에도 맛집으로 소개된 집이다. 이 집에 갔다가 우연히 벽에 광고를 보니 이 집의 두부콩은 사장님의 친정인 영월의 한반도지형이 있는 선암마을의 아무개 씨가 농사지은 콩을 쓴다고 자신 있게 자랑을 해 놓았다. 영월의 흰 메주콩 생산량은 전국 1위를 자랑한다. 거기에다가 영월 콩은 입자가 단단하여 다른 지역의 콩이 열 말을 넣어야 한 가마인데 아홉말 반만 넣어도 한가마가 된다고 한다. 영월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주천농협에서 운영하는 전두부(全豆腐)공장이 있다. 껍질도 모두 먹으니 건강식품이다.
또한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영월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농식품부가 인정하는 탑프루트다. 일교차가 심한 영월 포도는 당도가 높아 포도를 깨물면 설탕을 먹는 기분이다.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영월사과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E마트에 가면 영월사과를 살수 있는데 오 킬로그램 상자에 오천 원은 더 주어야 살수 있다. 영월의 지형은 동강과 서강이 만나서 남한강의 상류를 이루면서 청령포, 어라연, 한반도 지형 등 기묘하고 신비스러운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정선과 평창에서 오는 물이 모두 합수 되다 보니 수해를 몇 년 마다 입게 된다. 2004년에는 태풍 루사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고 2006년에도 동강이 범람할 위기에 처 했다가 간신히 동강대교를 50센치 남기고 큰 피해를 모면했다. 그 문제의 다리가 영월의 랜드마크로 올해 완공되어 이제는 영월의 새로운 자랑 거리가 되었다. 동강대교를 건너면서 영월군민의 노래를 불러본다. ‘새 희망 새 영월을 노래 부르며 영월에 산다.’
첫댓글 고맙습니다~9월이 오면 뵙게 되겠지요?!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건안하시고 9월행사에 오시면 반갑게 맞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전 영월군 부군수와 강원도 감사실 감사를 역임했던 우리 동인인 신승엽 수필가의 귀한 글 감사 합니다
감동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월이여 좋은 글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