茂朱金氏(무주김씨)
▣ 由 來
역사
《무오보(戊午譜)》세록에 따르면, 시조 김성(金晟)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43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등과하여 국자감 제주(祭主)를 역임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뒤 무주백(茂朱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무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고려 우왕 3년에 벼슬이 보문각 대제각에 이르고 무주백에 봉해졌다고 하여 이 주장 역시 함께 기록한다고 세록에 적혀 있다.
始祖(시조)金晟(김성)은 新羅(신라)金閼智(김알지)의 43世孫(세손)으로 高麗(고려)恭愍王(공민왕)때 文科(문과)에 壯元(장원)으로 及第(급제)하고, 朝鮮(조선)이 開國(개국)한 後(후)大提學(正2品)에 올라 茂朱伯(무주백)에 封(봉)해졌다 그리하여 後孫(후손)들이 貫鄕(관향)을 茂朱(무주)로 하였다.
2세 김생려(生麗)는 부제학(副提學)에 올랐으며, 3세 김규(葵)는 세종조에 예조판서를 거쳐 홍문관 대제학(大提學)으로 대광원윤(大匡元允=크게 바르고 올바름의 으뜸)이란 칭송이 높았다. 6세 김선지(善之)는 집현전 교리로 18학사와 함께 종사하며 문종으로부터 어린 단종의 뒷일을 부탁받은 고명대신(顧命大臣)이다. 후일 사육신(死六臣) 등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병자사건에 연루되어 김감(堪), 김선지(善之), 김한지(漢之), 김유인(有仁)이 참형을 당하는 멸문의 화를 입었다. 이로 인하여 가족들은 고향인 수원 북쪽 청룡산(靑龍山) 아래 벽계동(碧溪洞)에서 화를 피하여 충청도 내포지역(보령,홍성,예산,아산,당진,서산,태안 등)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12세 김석여(錫汝)는 충청지방의 저명한 성리학자로 존경 받았고, 14세 김광찬(光纘)은 효행으로 정조로부터 효자집안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 받았으며, 19세 김사구(思九)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애국지사로 이름을 날리는 등 대대로 충절과 의리, 효행을 실천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가문의 전통과 명예를 이어왔다.
始 祖(시 조) : 金晟(김성)
▣ 人物
始祖(시조)金晟(김성)의 두 아들中(중)長男(장남) 金生麗(김생려)는 太宗(태종)때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한 後(후) 刑曺參議(형조참의)를 거쳐 副提學(부제학)(正3品)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金葵(김규)는 世宗(세종)때 登科(등과)하여 大提學(대제학)에 이르렀다. 한편 金得與(김득여)의 맏아들 金善之(김선지)는 文科(문과)에 올라 벼슬이 集賢殿校理(집현전교리)에 이르러 18學士(학사)와 함께 從事(종사)하다가 文宗(문종)으로부터 어린 端宗(단종)의 뒷일을 附託(부탁)받고, 後日(후일) 端宗(단종)의 復位(복위)를 圖謀(도모)하다가 丙子事件(병자사건)에 連累(연루)되어 아우 金漢之(김한지), 아들 金有仁(김유인)과 함께 禍(화)를 입었다. 그밖에 吏曺左郞(이조좌랑) 金起宗(김기종)과 忠淸道水軍節度使(충청도수군절도사)金淑(김숙)이 有名(유명)했고, 金就望(김취망)은 工曺參議(공조참의)를 歷任(역임)하여 戶曺參判(호조참판)을 지낸 金瑗(김원)과 함께 家門(가문)을 빛냈다.
현대에 들어와 무주김씨 예산 출신인 김이구 김성구 두 형제가 현대문학의 양대산맥에서 각각 활동해 주목을 받아 왔다. 소설가 겸 아동문학평론가 金二求(김이구,1958-2017)는 민족작가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국문과와 서강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문학의 시대` 4집을 통해 소설가로,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학평론가로 각각 등단했다. 아동·청소년문학과 국어교육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부회장을 지냈고 아동문학전문지 `창비어린이` 편집위원으로 일했다.1984년 창작과비평사에 편집사원으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상무이사를 역임했고 최근까지 창비교육 상임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로 문학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평론집 [어린이문학을 보는 시각], [우리 소설의 세상 읽기],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와 동화집 [궁금해서 못 참아] 등의 저서를 남겼다. 소설집으로 [사랑으로 만든 집], [첫날밤의 고백] 등이 있다. 2015년 이재철 아동문학평론상, 2007년 `올해의 출판인` 등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창비사에서 33년을 봉직한 작가로 그가 마지막 하늘공원으로 떠나던 날에는 애도의 발길이 1천명이 넘었다.
김성구 시인은 1994년 크리스찬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고, 1998년 7회 용아문학상 전국백일장에 입상하고, 2001년에 월간아동문학을 통해 아동문학가로, 월간 소년문학을 통해 청소년소설부문에 당선하여 청소년 작가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인이며, 한국아동문학회를 중심으로 아동문학가로, 희여재시문학회 동인으로, 해외문학의 연계를 통해 국제교류를 이뤄가는 국제문학문인협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시집 [에덴의 향기], [소리없이 부는 바람], [겨울이 오기 전에], [님 닮은 꼴],[꽃잎 편지], [내 고향] 등이 있으며, 동화집으로는 [바람과 구름과 별꽃 아이들]이 있고, 교육자료집으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시청각 약화설교], [다문화사회 리더십] 등이 있으며, [ 홍성문학관 레지던스, 당진문학관 상주작가 등으로 지역문학을 위해 힘써 왔고, 수상으로는 대한민국아동문학대상 본상, 크리스찬문학대상 본상, 한국을 빛낸 사람들 출판분야 수상, 서울시의회 의장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수상을 하였으며, 논문으로는 [한국인의 다문화자아정체감과 수용성이 다문화사회통합정책 정향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철학박사연구논문이 있다.
무주김씨 현대사의 족적을 남기고 있는 김이구(1958-2017) 김성구(1960- ) 두 형제가 문인으로 현대문학의 양대 산맥에서 주를 이루고 있다.
▣ 科擧及第者(朝鮮時代)
金瑋(김위) (1634 甲戌生) : 司馬試 顯宗7年(1666) 式年試 三等
金思容(김사용) (1865 乙丑生) : 司馬試 高宗31年(1894) 式年試 三等
金秉民(김병민) (1830 庚寅生) : 司馬試 高宗1年(1864) 增廣試 三等
金陽來(김양래) (1695 乙亥生) : 司馬試 景宗3年(1723) 式年試 二等
金錫來(김석래) (1689 己巳生) : 司馬試 景宗3年(1723) 增廣試 三等
等 모두 5名의 科擧 及第者가 있다.
(司馬試 5名)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茂朱金氏(무주김씨)는 1985年에는 摠 397家口 1,691名, 2000年에는 摠 707家口 2,255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 參考事項
- 朝鮮朝(조선조)에 文科(문과)牧使(목사)를 지낸金鼎九(김정구)를 始祖(시조)로 하는務州金氏(무주김씨)가 있는데 金閼智(김알지)의 後孫(후손)으로 傳(전)한다.
본관[편집]
무주(茂朱)는 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삼한시대에 주계(朱溪)는 마한에 속했고, 무풍(茂豊)은 변진의 감문국(甘文國)에 속하였다. 백제의 근초고왕이 마한을 평정하면서 주계를 정복하고 적천현(赤川縣)이라 칭했으며, 조분왕은 감문국을 토벌하고 무풍을 무산현(茂山縣)으로 개칭하였다. 신라의 영토가 된 뒤 한촌(寒村)으로 전락하여, 757년(경덕왕 16) 주계를 단천현(丹川縣)으로 개칭해 전주 진례현(進禮縣)의 속현으로 삼았고, 무산현을 무풍현으로 개칭해 상주 개령군(開寧郡)에 속하게 하였다. 940년(태조 23) 단천을 주계로 개칭했고, 995년(성종 14) 주계와 무풍을 남원부 진례현의 속현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5도제가 실시되면서 주계와 무풍을 전라도에 예속시켰다. 1391년(공양왕 3) 주계가 무풍을 병합하였다. 조선 개국 후 1414년(태종 14) 주계와 무풍을 통합해 무주현으로 개칭하였다.
인물[편집]
김생려(金生麗) :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참의, 판결사,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김규(金葵) : 세종 때 등과한 후 승정원 좌부승지와 예조참의를 거쳐 대제학에 이르렸다.
김선지(金善之) :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에 이르러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아우 김한지(漢之) 및 아들 김유인(有仁)과 함께 화(禍)를 입어 그 충절로 동학사 숙모전(조선시대의 단종과 그 신하의 충혼)에 제향되었다.
분파[편집]
사정공파
도계공파
창암공파
참봉공파
사곡공파
통덕공파
교리공파
과거 급제자[편집]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없고, 무과 급제자 3명을 배출하였다.[1]
무과
김구(金龜) 김숙(金淑)
생원시
김병민(金秉民) 김양래(金陽來)
진사시
김사용(金思容) 김석래(金錫來) 김위(金瑋)
집성촌[편집]
충청남도 아산시 일원
충청남도 보령시 일원
충청남도 서산시 일원
충청남도 홍성군 일원
각주[편집]
1.↑ 무주 김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분류: 김씨
무주 김씨
전라북도 소재 성씨
무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