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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7장
지혜에 대한 여러 교훈들
(찬송 36장)
2020-9-4, 금
맥락과 의미
1. 나이가 든 것의 영광(16:31-17:6)
2. 어리석음에 대한 여러 잠언들(7-28절)
특히 가정에서 지혜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아들(2,6,21,25절).
1. 나이가 들어가는 것의 영광(1-6절)
1절,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제육은 “분쟁의 제사고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전에 제사를 드리는 부유한 가정이 있습니다. 화목제물 제사 드리고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많이 먹습니다. 그러면서 집에서 서로 싸울 수 있습니다. 아니 싸우는 것을 제사의 축제처럼 싸울 수 있습니다. 가난하면서 화목한 것이 더 낫습니다.
2절,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가정에서 종이 주인의 아들보다 더 슬기로울 수 있습니다. 슬기로움은 구체적 일을 판단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왕이 다스릴 때 필요한 그런 지혜입니다 (열왕기상 2:3). 종은 법적으로 가정에서 어떤 권한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덕성과 지혜로 가정의 일에 지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거절하는 주인의 아들보다 더 큰 지도력을 얻습니다.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이것은 주인은 죽고 형제들이 재산을 상속했음을 말합니다. 종이지만 그 지혜 때문에 재산도 얼마 상속받습니다.
3 절,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삼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단련합니다. 무엇으로? 지혜의 말씀으로, 그리고 책망으로 하십니다. 많은 경우 죄에 대한 징벌로, 때로는 죄와 관계없이 고난으로 연단하십니다.
4 절,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사악한 말을 하는 사람의 말에 기울이는 그 사람 자신도 악합니다. 역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악한 말을 하는 혀에 귀를 기울입니다.
5 절,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를 심판하십니다. 가난한 자, 어려움을 당하는 자를 조롱하거나 그들의 어려움을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성도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로마서 12:15). 많은 경우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그래도 쉽지만 좋은 일 당한 사람을 축하하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힘듭니다. 그런 마음의 시기심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입니다.
6절,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역시 가정에 대해 말합니다. 16:31에서 의로운 삶을 살면서 나이가 든 사람은 명예롭다고 한 것과 연결됩니다.
자녀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취하게 하는 것도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도적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영적인 도덕적인 것이 없이 세상적으로 성취한 것은 오히려 재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자녀를 낳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영적 자녀를 많이 나아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교회를 축복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가정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교회에 경건한 성도들, 특히 청년들이 성숙하도록 도웁시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2. 어리석음에 대한 여러말들(7-28절)
1) 거짓과 뇌물로 나타나는 어리석음(7-9절)
7절, 지나친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미련한 자는 “바보”를 말합니다(이사야 32:6-7). 그냥 바보가 아니라 악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그런 바보를 말합니다. 하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우리들은 지나친 말을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더구나 거짓말은 옳지 않습니다.
8절,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잠언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구절이 이런 구절입니다. 뇌물을 주라고 권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악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잠언의 지혜는 말해줍니다. 뇌물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 하시는 일입니다(신명기 10:179). 그렇게 형통하는 것은 멸망을 자초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오히려 우리에게 갚을 수 없는 가난한 자들과 물질을 나누고 함께 친구가 되라고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누가복음 14:12-14).
9절,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허물은 여기서 반역한 죄 정도로 심한 것입니다. 그것을 용서하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 잘못을 드러내고 소문을 퍼뜨리는 자는 친한 친구들을 이간시킵니다. 그리스도께 용서받은 성도와 교회는 이 용서의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2) 어리석은 자와 그들에 대한 심판(10-15절)
10절,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불순종하는 미련한 자를 고치는 것이 이렇게 힘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고 순종합시다. 그러나 그런 미련한 자도 인내를 가지고 설득하는 것이 먼저 하나님을 믿은 자의 사명입니다. 부모와 직분자의 사명입니다.
11절,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받으리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자는 “반역”하는 자입니다. 반역은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여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신명기 21:8). 그런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심판하십니다. 힘쓰는 것은 앞에 나온 사랑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웃에게 유익을 주면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됩니다.
12절,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미련한 자는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분의 말씀을 거절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얼굴이 착해 보여도 마음 속에 맹수와 같은 잔인함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보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13절,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심판하십니다. 선한 일을 해 준 사람에게 악으로 갚는 것은 뭔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면, 우선 잘 될 것 같아도 그 가정에 더 큰 재앙이 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로마서 12:17-21). 악을 행한 자에게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한 자에게도 잘 해주고 평화를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그런 악한 자들에게 계속 희생되는 것도 지혜롭지 않습니다. 보복하지 않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지혜롭게 그들에게 잘 해 주어야 합니다.
14절,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 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마음에서 미움도 사랑도 시작됩니다. 매일 기도하며 우리 영혼을 점검하며 미움을 버립니다. 공동체에 작은 다툼이 일어날 때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15절,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3) 어리석은 자와 친구(16-20절)
16절,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 과외비를 많이 주고 실력을 키웁니다. 그러나 지혜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지혜는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심지어 돈으로 성령님의 은사를 사려고 시몬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한 것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느니라” (사도행전 8:20-23) 시몬은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뒤 시몬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17절,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위급하고 힘들 때도 여전히 사랑을 보이는 것이 참 친구입니다. 참된 형제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에서는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성도를 돕는 것이 참된 형제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런 사랑과 도움을 서로에게 실천하고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18절,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형제 자매의 어려움을 도울 때 지혜없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생각)이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가난하다는 데에 쓴 말이기도 합니다.
첫째, 자기 능력을 넘는 그런 약속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로 인한 책임을 지는 위치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보증을 서 줄 대상을 잘 보아야 합니다. 원래 게으른 사람의 보증을 서고 도우면 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으로 남의 것을 뺏으려는 사기성이 있는 사람에게 보증을 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낭비하는 일입니다.
물질적인 보증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인가 하는 일에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보증을 서도 될 만한 그런 사람을 친구로 사귀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생활의 열매가 나타난 사람만 교회의 형제 자매로 받아들입니다.
19절,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교만한 마음 때문에 싸움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결국 자기를 파멸시킵니다. 다툼의 원인은 자기 문을 높이는 교만에 있습니다. 또 죄과의 결과는 자기 스스로에게 파괴를 낳습니다. 여기서 죄과는 반역죄를 말합니다. 사람들과 분쟁하기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과 다툽니다.
우리는 이 9절과 반대되는 9절과 같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9절은 19절과 3개의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다른 행동을 하라고 권합니다. 허물=죄과, 구하는 = (다툼을) 좋아하는, 구하는=(죄과를) 좋아하는.
20절,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많은 사람이 복을 얻기 위해 마음을 굽히고 악한 일을 합니다. 악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얻는 것 대신에 재앙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4) 어리석음, 불의, 지혜로운 자는 말을 절제
이 부분에서 21, 25절은 가정에서 지혜의 교육과 관련해서 말합니다. 21-25절은 작은 단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절,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미련한 자는 자기가 재앙에 빠질 뿐 아니라 부모에게 고통을 줍니다.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두 번째의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뜻에 완고하게 저항하는 “바보”를 말합니다.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과 영혼의 즐거움은 보약과 같습니다. 삶을 활기 있게 합니다. 그러나 영혼이 고통스러우면, 병도 생기고 삶 전체가 어둡습니다. 이런 근심과 우울이 심하면 정신건강과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치료약은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3:7-8, 15:16). 지혜(15:24), 희망(13:12), 좋은 소식(12:24, 15:30) 등이 영혼을 즐겁게 합니다.
죄의 결과 중에 하나는 정신적인 우울합니다. 물론 여러분이 울울한 것이 항상 어떤 죄를 지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죄용서 받고, 성령님의 인도로 빛 가운데 걸어갑시다.
23절,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뇌물을 받고 불공정하게 재판하면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에게는 이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줍니다. 약한 자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입니다. 가난한 자의 보호자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잘못을 행했으면 그냥 순순히 정당한 벌을 받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24절, 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명철하여 분별력 있는 자는 바로 자기 눈 앞에 다가와 있는 지혜를 받아들입니다. 부모가 가르치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을 달게 받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눈을 멀리만 두고 있습니다. 도대체 얻을 수도 없는 그런 공상속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 그 지혜를 무시합니다. 그렇게 해도 성공할 것이라고 멀리 보기만 합니다. 여기 있는 말씀의 지혜를 떠나 멀리 보이는 허황된 꿈을 향해 나간 사람은 거기서 슬퍼하며 울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하나 하나 순종합시다. 멀리 나타날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멀리 하늘에 계시지만 이 땅에 낮아져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와 복음 전하는 자를 통해 구원의 복음이 가까이 있습니다(로마서 10:6-15, 신명기 30:11-14). 바로 오늘 여기서 이 복음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시다. 제자로서 살아갑시다.
25절,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21절과 같습니다. 부모에게 근심과 고통을 주지 않으려면 좋은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약간의 안락을 줍니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가장 큰 근심은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낳은 부모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자녀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서 경건한 삶을 삽시다.
26-28절: 주로 언어생활에 대해 말합니다.
26절,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니라
왜 이런 불의한 일을 하겠습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입니다. 교만한 마음 때문에 이렇게 부당하게 행합니다. 혹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렇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27절,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27, 28절은 언어 생활에 대해 말합니다. 말을 절제하고(27절) 심지어 침묵하는 것(28절)이 지혜로울 상황이 많습니다. 그런 습관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앎을 아는 자”는 말을 아낍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합니다. 감정이 뜨겁게 되어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냉철하게 관찰하고 필요한 말을 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삶에서 열매를 맺는 지혜입니다. 비난을 받을 때도 그냥 반응하기 보다 가장 좋은 길을 찾습니다. 때로는 손해 볼 각오하고 조용히 있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우리에게 이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순한 양 처럼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이사야 53:7)
28절,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습니다. 그리고 경박해 보입니다. 어리석은 자도 조용히 하면 “아 이 사람 뭔가 있는가 보다.”하고 인정을 받습니다. 물론 어리석으면서도 지혜로운 체하라는 것이 이 말씀의 의도가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참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이 언어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칩니다.
말하는 것이 유익할 때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 유익할 때 침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유익과 나에게 주는 유익을 위해 말도 하고 침묵도 해야 합니다.
합니다. 그 성도의 지혜의 말씀을 듣고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유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주신 보석 같은 귀한 말씀 중에서 두 가지 말씀을 기억합시다.
1.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어 분쟁을 일으키지 맙시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덮어 주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듭시다. 영원한 저주 아래 있던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로마서 5:8). 이 사랑을 받은 우리도 자존심을 굽히며 서로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2. 말을 절제하고 필요하면 침묵하는 훈련을 합시다. 우리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1) 감정이 고조되어 흥분하며 말하지 맙시다. 차분한 마음으로 할말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가려서 말합니다. 흥분하여 말하면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차분히 말하면 분쟁이 있는 공동체를 차분하게 하고 평화를 회복하게 합니다.
2) 고린도 교회는 서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은사가 많다고 자랑했습니다. 예배 때에도 서로 지혜의 말씀을 나누겠다고 하면서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예언하는 자는… 만일 곁에 안자 있는 자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위로, 격려)를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4:29-31). 겸손이 침묵하면서 다른 사람이 예언의 말씀을 말할 기회를 줄 때 그 자신도 다른 성도도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 신약성경이 없을 때는 예언을 통해 교회에서 예배했습니다.이제는 신약성경이 성령님을 통해 완성되어 있습니다. 목사는 성경말씀 만을 전하고 자기의 생각은 잠잠히 덮어 두고 성령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성경 말씀을 듣고 서로에게 격려해 줄 때 자기만 말하지 말고 다른 성도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 성도의 지혜의 말씀을 듣고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유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