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1 이동백 도산서원 경자년 추향 참례기

[李東耉]

도산서원 경자년 추향 참례기

유생 이동백
2020.10.1.(庚子 8.15.)

〖일러두기 : 낫표(「」) 안의 내용은 홀기에 따른 참례관의 의례 행위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되, 현재형으로 처리한다.〗

경자년庚子年 도산서원 추향秋享에 참례하라는 기별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추향이 있기 하루 전에 입재入齋하였다. 이순耳順의 막바지, 늦은 나이일망정 퇴계退溪 선생의 후손으로서 선조의 추향에 참여하는 일인 데다가 처음 맞는 일이라 긴장되는 바도 컸다. 어쨌거나 입재하고 보니, 이태원, 이동신 별유사別有司들 외에 눈에 익은 얼굴들이 더러 보였다. 재유사인 이재갑, 금구석 제씨와 이원길 족숙이었다. 이재갑 재유사는 고등학교 동창으로서의 인연이 있고, 금구석 재유사, 이원길 족숙은 초등학교 동문으로서의 인연이 있다. 그들이 긴장하고 쭈뼛해 하는 마음을 한결 가볍게 풀어주었다. 한편 입재를 마치고,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추향의 절차를 쫓아가게 되었다.
경자년 도산서원 추계 향사는 매우 특별하게 치러졌다. 초헌관初獻官이 여성인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이배용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헌관으로 여성이 참례한 것은 한국 서원 역사 600여 년 이래 처음 있은 일이다.
서원의 사당에 여성 출입을 엄격히 통제해 왔는데, 이 통제의 벽을 도산서원이 허문 것이다. 도산서원 상덕사尙德祠에 여성 출입을 처음으로 허용한 것은 2002년 7월이었고, 헌관으로 향사에 참례한 것도 임진(2012)년의 춘향 때였다. 그것도 외국인 헌관이었다. 도산서원 창건 이래 외국인으로도 헌관 참례가 처음이지만, 여성이 헌관으로 참례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렇듯 여성이 초헌관으로 참례함으로써 올해 가을에 봉행奉行하는 향사는 많은 관심을 받은 행사가 되었다.
이번 추향에 참례한 것은 우선은 경자년 후반기 재유사 망기望記를 받은 까닭이서이겠지만, 이태원 별유사께서 추향의 의례를 기록하라는 청을 받은 것도 작용했다. 난생처음 참례하는 일이라 웬만한 눈썰미가 있더라도 제대로 기록한다는 것은 어려우리라던 차에 선배 재유사를 만났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 그들의 행동을 곁눈질하기로 하면서 낸 눈에 들어오는 것을 쓰리라고 마음먹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니, 내가 보는 것은 극히 한정되고 편협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 용어를 부려 쓰는 것도 한계가 있을 터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참례기는 추향 준비부터 좇아가며, 그 진행하는 과정을 추보식으로 쓰기로 했다. 어떤 소임을 맞고 참례하는 처지가 아니어서 제목도 참례기로 할까도 했다.
향사는 차제와 망기 작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과정은 참례하지 못했지만, 추계 향사의 절차를 기록으로 남기는 의미에서 기록하기로 했다.

∙차제差祭와 망기望記 작성
「차제는 제관을 임명하는 절차로 향사享祀의 첫 준비과정이다. 향사가 드는 달(음 2, 8월) 초하루에 도집례都執禮(원장)와 유사(재유사齋有司와 별유사)가 전교당에 모여서 헌관 3인(아헌관, 종헌관, 분헌관) 및 축관과 집례를 선정하여 이들에게 보낼 망기를 작성한다.
전교당 대청에 도집례가 앉고, 재유사 3인과 별유사 2인이 도열하고, 재유사 한 명이 도집례 앞으로 나아가서 큰절을 올린다. 이어 망기를 쓸 재유사가 도집례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한 후 망기를 쓴다. 먼저 ‘陶山書院秋享時獻官 望’이라고 쓰고, 관직과 성함, 연월일을 쓴다. 망기를 다 쓰면 유사가 망기를 펼쳐 들고 도집례께 검사를 받은 후 원인院印을 찍고 봉투에 넣어 근봉謹封한다. 원인은 먹을 써서 겸손의 의미로 마른모로 찍는다.
작성한 망기는 종으로 여섯 번 접고, 횡으로 세 번 접어 ‘망’자가 뒤집어 비치도록 하여 전면에 ‘陶山書院〇〇〇望記’라고 쓰고, 뒷면에는 ‘謹封’이라고 써서 발송한다.
한편 헌관, 축관, 집례 이외의 집사들에게는 回文을 작성하여 보낸다.」

∙제수祭需 장보기
제수는 홀기에 적힌 물목에 근거하여 준비한다. 제수 장보기는 별유사와 재유사들이 시장에 나가 구입한다. 먼저 문어포와 전어 젓갈을 구입한다. 다음 곡물전을 들러 멥쌀과 차조를 꼼꼼히 살핀 후에 각각 두 되 구입한다. 그리고 대추 잣, 무, 미나리, 쇠고기, 육포 등을 구입한다. 또한 양초, 재주祭酒를 구입하고, 집사 분정과 축문 작성에 필요한 먹과 붓, 한지를 구입한다.」

∙참례관 입재參祭官入齋
망기를 받은 헌관 이하 참례관들은 도산서원에 입재했는데, 나의 향사 참례는 입재로부터 시작되었다. 10시쯤에 이르러 참례관들이 한존재로 들어가 헌관들에게 인사했다. 참례관들을 따라 한존재를 들어가니, 초헌관이 남쪽에 좌정하고 아헌관, 종헌관 분헌관이 그 좌우로 벌려 앉으셨다. 한존재에는 후손 이가원 박사가 짓고 쓴 열 폭 병풍과 후손 이정환 서각가가 음각陰刻한 ‘夜氣箴’이 비치되어 있었다. 병풍에는 ‘陶山嶷嶷 陶水洋洋’으로 시작하는 4언시 20구가 쓰였다.
한존재를 나온 재유사, 별유사, 축관, 집례는 도포 차림에 갓이나 유건을 쓰고 입재하여 헌관에게 인사하고 동서재에서 재계했다. 그 외 집사들은 서재에 머물렀다.
11시가 되자, 정재일 알묘가 시작되었다. 그 절차를 옆에서 지켜보노라니, 그 의례가 엄숙하고 경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진행 과정을 따라가 보자.

∙정재일整齋日 알묘謁廟
「정재일 알묘는 입재를 고하고, 향례享禮를 봉행奉行하러 왔음을 알리는 의식이다. 헌관獻官은 정교당 대청의 동쪽에서 서향으로, 동・서재에 입재한 유생들은 전교당 뜰에 동서로 마주하고 도열한 후 개좌하고 상읍례相揖禮를 행한다.
조사曹司를 추천하고 조사가 집례에게 알자謁者를 추천받은 후, 추천된 알자에게 그 소임을 알린다. 집례가 홀기笏記를 들고 상덕사의 삼문으로 들어가 재배하고 창홀唱笏 자리에 선다. 이때 유사도 집례를 뒤따라가서 재배한다. 또한 도사령이 사당 문을 연다.
(唱笏) 헌관들은 상덕사 삼문 앞뜰에,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분헌관分獻官 순으로 서고, (唱笏) 그 뒤에 축관 및 유생儒生들이 도열한다. 헌관 이하 유생들이 차례로 들어와서 사당 뜰에 선다. (唱笏) 집사 두 명이 사당 중문 앞, 좌우로 선다. (唱笏) 집례의 창홀에 따라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로 관세盥洗 자리로 나아간다. (唱笏) 초헌관初獻官은 손을 씻고 닦는다. (唱笏) 중문으로 들어가 신위전神位前에 선다. 꿇어앉는다. 이때 집사는 각자 향로와 향합을 향상享床 앞에 놓고 좌우에 꿇어앉는다.」

∙삼상향三上香
「초헌관이 향을 향로에 세 번 사른다. 초헌관이 향에 불을 붙여, 향로에 넣고 부복한다. 집사는 향로와 향합을 각각 원위전原位前 제상祭床에 진설한다. (唱笏) 이어 초헌관은 몸을 굽혔다가 일어난다. (唱笏) 초헌관은 사당 동문으로 나온 후 기둥을 돌아 나오면, 알자가 인도하여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唱笏) 헌관 이하 모든 유생은 재배한다. (唱笏) 알자는 초헌관과 헌관 및 제 집사를 안내하여 사당 밖으로 나간다. 집례도 재배하고 나간다.」
상덕사에서 전교당으로 돌아와 상읍례相揖禮하고 파좌를 고함으로써 정제일 알묘는 끝났다. 정제일 알묘가 끝나면서 곧장 팔월 보름의 향사 채비에 들어갔다. 유사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고직사가 분주하게 돌아갔다. 척기례, 생간례, 봉준례, 진설, 석미례가 저녁까지 이어졌다. 척기례와 봉준례는 고직사와 전사청에서 이루어졌다. 척기례는 고직사에서 유사들이 제기를 점검하는 의식인데, 우선 서원에서 쓰는 제기가 처음 보는 것들이어서 호기심을 일으켰다. 그 이름도 생소했다. 거기다가 제기를 대하는 유사들이 공손한 자세라든가, 행하는 의례가 경건해서 관심이 쏠렸다. 봉준례를 거행하는 유사들의 자세 역시 엄숙하고 경건했다. 봉준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끈 것은 특이하게 숫자를 세는 대목이었다. 이때 유사들은 제주를 한 잔씩 마실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봉준례가 끝나면 제수를 담는다. 제수 가운데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있고, 담는 것도 엄격한 격식에 따라 이루어졌다. 유교에서 예가 존중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도, 실제로 행하는 의례를 보노라니, 과연 유가儒家의 의례답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생간례는 제물을 검사하는 의식을 말한다. 진도문을 통해서 재물이 들어오는데, 일반 제물은 지게에 지고 들어와서 곧장 고직사로 옮겼다. 가마에 태워져 들어온 통돼지는 전교당 뜰에 동서로 벌려 선 참례관들 앞에 내려놓고 초헌관에게 점검을 받았다. 유사가 ‘충’하고 외치니, 초헌관이 ‘돌’하고 외치는 것이 진지했는데,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사이에 날이 어두워지고, 그런 후에 석미례가 이루어졌다. 석미례는 제사에 쓸 쌀과 좁쌀을 씻는 의식인데, 열정冽井 옆 수도에 나가 쌀과 좁쌀을 아홉 번 흔들어 씻었다. 쌀과 좁쌀을 씻는 이가 ‘하나이오.’ 하면 재유사들이 그를 따라 복창했다. 이를 아홉 번 씻는 동안 아홉 번을 되풀이했다. 불을 밝혀가며, 찌는 이 의식 역시 엄격한 방식에 따라 이루어졌다. 석미를 해서 고두밥을 쪄내면, 제수 준비가 마무리되고, 이어서 진설의 순서에 들어갔다.
제수를 장만해서 진설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분정례가 이루어졌다.

∙척기례滌器禮
「재유사들이 고직사에 들어가서 읍을 하고, 제기의 숫자를 맞춰보고 척기가 되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척기 의식을 행한다. 제기는 보簠, 궤簋, 변籩, 두豆로 이루어져 있다. 척기례가 끝나면, 유사들은 제기 주변에 둘러서서 읍한다.」

∙분정례分定禮
「헌관을 비롯한 축관祝官과 유생들은 전교당典敎堂에 도열하고 참석자들은 상읍례하고 그 자리에 앉는다.」

∙집사 분정執事分定
「유사가 초헌관 앞으로 나아가서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 집사 소임을 초헌관에게 보여주고 검사를 받는다. 전교당 벽에 걸려 있는 분정판을 내려 미리 준비해둔 한지를 붙이고, 경자년 8월 15일 추계 향사 시 헌관, 집사를 기록한다. 향사 전날 오시에 열리는 집사 분정은 전교당에 모여 이미 천거된 네 명의 헌관, 축관 이외에 향사 시에 부문별로 소임을 맡을 사람을 뽑아서 할 일을 맡기는 의식이다. 이렇게 분정판에 헌관과 집사를 기록하면, 재유사가 분정판을 들어서 먼저 초헌관에게 검시를 받고, 이어 헌관 네 명을 비롯한 모든 집사들에게 보여주고 한존재閑存齋 벽에 걸어 둔다.」

집사 분정을 끝내고, 분정판에 소임을 맡은 헌관과 집사들의 명단을 이태원 별유사가 써서 한존재 벽에다 게시했다. 경자년 추향의 분정판에 이름이 오른 헌관과 집사들을 살펴보았다. 초헌관初獻官 이배용, 아헌관亞獻官 이동선, 종헌관終獻官 허권수, 분헌관分獻官 이정화, 축祝 이동구, 찬자贊者 홍영선, 알자謁者 신시섭, 찬인贊引 이원길, 이원용, 사준司尊 신진용, 최인순, 봉황奉香 이근영, 봉로奉罏 이재갑, 봉작奉爵 박미경, 전작奠爵 금구석 등이었다.
분정례가 끝나면서 이어진 순서는 축문 작성이었다. 축문 쓰기는 이동구 전 별유사가 맡았다. 헌관 앞에서 쓰는 축문이라 흔히 긴장해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고 했으나, 이동구 전 별유사는 단숨에 축문 쓰기를 마쳤다.

∙축문祝文 작성
「분정이 끝나면 축관祝官은 사당으로 들어가서 축판을 가지고, 전교당으로 오는데, 이때 도사령이 안내한다. 축관이 축판祝板을 들고 들어오면 대청에 있는 헌관을 비롯한 모든 집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읍을 하고 그 자리에 앉는다. 축판을 들고 온 축관은 정교당 대청에서 축식祝式에 의거하여 직접 축문을 쓴다. 축문은 주향主享과 종향從享 두 위를 합쳐 하나만 쓰는데, 이 축식은 월천月川 조목趙穆 선생이 지었다. 다만 ‘月川趙公從享’의 여섯 자는 월천 선생을 종향한 이후에 추가한 것이다. 축문이 완성되면, 축관이 축문을 들고 초헌관을 비롯한 헌관 앞으로 나아가서 보여드리고, 축문을 축판에 담는다. 축관이 축문을 들고 일어나면 모든 참례관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읍한다. 축관은 도사령 안내로 축판을 다시 사당으로 가져가서 봉치封置하고 돌아온다, 헌관을 비롯한 모든 집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파좌罷坐를 아뢰고 상읍례한다. 축문 작성이 끝나고 집사들이 다시 앉으면, 재유사 중 한 사람이 나와서 헌관에게 큰절을 올리고, 큰 목소리로 백록동규白鹿洞規와 퇴계 선생 향약鄕約을 성독聲讀한다. 성독이 끝나면 유사는 헌관에게 큰절을 한다.」

∙생간례牲看禮
「분정례 후에는 제물을 검사하는 생간 의식을 치른다, 전교당 계단 아래서 동서로 마주 보고 선 모든 집사가 개좌를 아뢰고 상읍례한다. 도사령이 빗자루를 들고 맨 앞에 서고 유사들이 그 뒤를 따라 진도문 밖 마당으로 나간다. 시생豕牲은 가마에 싣고 일반 제물은 지게에 지고 들어오는데 선두에 도사령이, 그 뒤를 따라 일반 제수祭需, 통돼지, 유사 순으로 진도문을 통해 전교당 뜰에 들어와서 집사들이 동서로 도열한 중앙에 시생豕牲 가마를 내려놓는다. 일반 제수는 전사청에 있는 상 위에 봉치封置하고, 다시 뜰로 나온다. 유사가 초헌관을 안내하여 사방으로 돌면서 제물을 검사한다.(유사-충充, 초헌관–돌腯! : 외침) 이렇게 검사가 끝나면 통돼지를 전사청典祀廳으로 옮긴다. 이어 파좌를 아뢰고 상읍례한다.」

∙봉준례奉遵禮
「생간례를 마치면, 재유사는 전사청으로 가서 읍을 하고, 제주를 검사하고 항아리에 제주를 봉封한다. 재유사들이 앉아 있고, 도사령이 제주를 항아리에 붙는다. 이때 도사령이 붓는 숫자를 선창하고 재유사들이 따라 하며, 원위原位에는 다섯 그릇(한 그릇을 한 말로 계산한다.)을, 종향위從享位에는 세 그릇을 제주 항아리에 담는다. 제주를 항아리에 다 담으면, 상하 표시를 한 한지로 뚜껑을 덮고 묶는다. 제주는 원위가 닷 말이고, 종향위가 서 말이다. 유사와 도사령이 읍을 하면, 봉준 의식이 끝난다. 이때 재유사가 제주의 맛을 본다.」

∙제수 담기
「무는 토막을 내어 두에 담은 다음, 칼로 좌우 세 번 상하 세 번 칼집을 내는데 원위에 진설한다. 미나리는 잎을 잘라내고 줄기를 잘라서 역시 두(豆)에 가득 담는데, 원위에 진설한다. 종향위에는 두(豆)의 반(半)은 무를 담고, 반(半)은 미나리를 담는다. 문어포와 육포도 변(籩)에 올린다. 젓갈과 육회는 두(豆)에 담는다. 대추와 잣도 변에 볼록하게 담는다. 」

∙진설陳設
「전사청에 석미하여 보관한 쌀과 좁쌀을 고직사로 옮겨 각각 가마솥에 넣어 찐다. 이렇게 찐 고두밥은 함지박에 담아 상덕사로 옮긴다. 고두밥은 주걱으로 퍼서 정성스럽게 보(簠)에 담는데, 하나는 원위에 다른 하나는 종향위에 올린다. 찐 조밥도 주걱으로 퍼서 궤(簋)에 담는다. 하나는 원위에, 다른 하나는 종향위에 올린다. 통돼지는 반으로 잘라서 머리 부분은 원위 제상에, 꼬리 부분은 종향위 제상에 올린다.
원위에는 촛대, 잔, 쌀밥, 조밥, 돼지, 육포, 낙지포, 대추, 잣, 무, 미나리, 젓갈을 진설하고, 종향위에는 촛대, 잔, 쌀밥, 조밥, 돼지, 육포, 잣, 무, 미나리, 젓갈을 진설한다.」

∙석미례淅米禮
「석미는 제사에 쓸 쌀과 좁쌀을 씻는 의식이다. 헌관 이하 집사들이 전교당 뜰에서 동서로 도열하여 개좌를 알리고 상읍례한 후, 도사령이 빗자루를 들고 앞서고 쌀과 좁쌀을 든 사람, 재유사 순으로 열정冽井으로 나가 쌀과 좁쌀는 자배기에 담을 채로 물로 흔들어서 아홉 번 씻는다. 이때 씻는 이들이 씻는 횟수를 선창하면, 재유사들이 따라서 후창한다.(‘하나요’-‘하나요’, ~ ‘아홉이요’-‘아홉이요’) 쌀과 좁쌀을 다 씻은 것을 받들고, 자배기를 든 사람, 유사 순으로 진도문으로 들어와서 뜰에 도열한 집사들 사이를 지나 전사청으로 가서 봉치한다. 제물이 지나갈 때 집사들은 읍한다. 유사들은 파좌 아뢰고 상읍례함으로써 의식이 마무리된다. 헌관과 축관, 집례는 처소에서 휴식하고, 나머지 집사들은 습례를 거행한다.」

∙습례習禮
「습례란 향사를 거행함에 필요한 절차 및 순서 등을 미리 익혀두는 것으로 실수를 방지하고 엄숙하고 경건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 실시한다. 습례는 향사 경험이 풍부한 별유사가 담당한다.
습례는 서원 내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문을 드나드는 방법 등과 같이 준수해야 할 규칙 등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향사 홀기 순서에 따라 예행 연습한다.
보통 오후 8시에 시작한 습례는 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습례가 끝나면 헌관 이하 모든 집사는 야화 시간을 갖는다. ‘밤참’인 셈이다.」

습례는 전교당과 상덕사를 오가며 꼼꼼하게 진행되었다. 홀기를 읽을 찬자, 헌관을 인도하는 알자, 제주를 담당하는 사준, 봉작, 전작, 그리고 향을 담당하는 봉향, 봉로 등 각 소임의 동선과 동작을 직접 시범을 보여 가며 이태원, 이동신 별유사가 습례를 이끌었다. 향사에 처음으로 참여한 집사는 상당히 긴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습례는 한 시간여 만에 잘 마쳤다. 장차 향사에 참여할 것을 짐작하며 눈여겨 지켜보았으나, 보고 나서 돌아서니 알송 달송했다.

∙의관 정제衣冠整齊
「재유사들은 향사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을 차려입은 후, 한존재로 가서 헌관들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상덕사로 가서 전날 밤에 진설해 놓은 제수를 확인하고 처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오전 10시쯤 도집례와 헌관들은 전교당 대청에서 청색 관복에 목화木靴를 신고, 손에 홀을 든 채 동쪽에서 서향을 하고 선다. 나머지 집사들은 도포를 입고 갓이나 유건을 쓰고 전교당 뜰에 동서로 마주 보고 서서 기다린다.」

시각이 10시를 알리면서 곧장 향사 봉행에 들어갔다. 향사가 시작되자, 최초의 여성 초헌관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람객이 발돋움하기도 하고, 목을 길게 빼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관람객들보다 성화를 부리고 나서는 이들은 언론사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카메라의 초점을 초헌관에게 맞춰놓고 셔터를 눌러대는 바람에 전교당 뜰이 셔터 소리로 낭자했다. 최초의 초헌관이 주는 의미는 이처럼 대단했다. 초헌관이 창홀에 따라 초헌례를 봉행하려고 상덕사로 들어가자, 사진 기자들의 움직임이 민첩하게 나왔다. 앞다퉈 상덕사로 들어가느라 부산을 떨었다. 나 역시 참례인에 섞여 상덕사로 안으로 들어갔다.

∙향사례享祀禮
헌관들과 집사들이 전교당 뜰에 동서로 도열하여 개좌를 아뢰고 상읍례한다. 이어 찬자가 한 발 앞으로 나가 읍하고, 홀기를 들고 상덕사 삼문 동문으로 들어가 마당에서 재배하고 창홀 자리에 선다. 이때 응창應唱 한 명도 집례자와 동행하여 재배한다. 또한 도사령도 삼문 서문을 통해 사당 서편 계단을 올라가서 사당 문을 연다.
(唱笏) 전교당 마당에 도열했던 집사들은 상덕사 삼문 뜰 앞으로 올라가 도열한다. (唱笏)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로 사당 삼문 동문으로 들어간 후, 상덕사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중문으로 들어가 원위와 종향위의 진설한 제물을 점시한다. 초헌관은 사당 동문으로 나와 기둥을 돌아 알자의 인도로 동쪽 계단을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가서 선다. (唱笏) 초헌관 점시가 끝나면 도사령이 원위와 종향위의 궤독櫃櫝 뚜껑을 연다. (唱笏) 집례 창홀에 따라 헌관들은 알자와 찬인贊引의 인도에 따라 상덕사 삼문 앞, 마당에 도열한다. (唱笏) 축관을 비롯한 제집사들은 상덕사 삼문 동문으로 들어가 절하는 자리에 선 다음, 재배한다. (唱笏) 축관을 비롯한 제집사들은 손을 씻고 닦은 후 각자가 맡은 자리에 가서 소임을 기다린다. (唱笏) 사당 문밖에 기다리고 있던 헌관들과 유생들 찬인의 인도로 삼문 동문으로 들어가 각자의 자리에 차례로 선다 (唱笏) 헌관들은 모두 재배한다. (唱笏)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로 관세 자리로 옮겨 손을 씻고 닦는다. (唱笏) 알자의 인도로 동쪽 계단을 올라 사당 중문으로 들어간다. (唱笏) 신위 앞에 꿇어앉는다. (唱笏) 집사가 향로를 올리면 초헌관은 향을 세 번 집어 분향焚香한다. 이어 집사가 뚜껑을 덮어 향로를 받들어 제상에 진설한다. (唱笏) 초헌관은 몸을 굽혔다가 일어난다. (唱笏) 초헌관은 동문으로 나와 알자의 인도로 기둥을 돌아 계단을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가 선다.」

∙행 초헌례行初獻禮
「(唱笏)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로 사당 동쪽 계단을 올라가 동편 뜰에 있는 준소奠所로 나아간다. (唱笏) 초헌관은 원위전 앞으로 나아간다. (唱笏) 초헌관은 꿇어앉는다. (唱笏) 전작奠爵이 제상에서 작爵을 내려 초헌관에게 건네주면, 초헌관은 이 작을 받아 다시 봉작奉爵에게 작을 준다. 봉작은 이 잔을 받아 준소에 있는 사준司奠에게 주면 사준이 잔에 술을 따룬다. 이 작을 다시 봉작에게 넘기면, 봉작은 이 작을 초헌관에게 드린다. 초헌관은 받은 작은 전작에게 준다. 전작은 이 작을 받아 제상에 받들어 올린다. (唱笏) 초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唱笏) 뒤로 약간 물러나 꿇어앉는다. (唱笏) 축관은 중문으로 사당에 들어가 축문 보관함에서 축판을 꺼내어 나와 초헌관 곁에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이때 축문을 읽는 축관과 집례 및 사당내의 집사를 제외한 헌관과 모든 집사들은 부복한다. (唱笏) 축이 끝나면 축관은 일어나며 모든 집사도 일어난다, 초헌관도 몸을 굽혔다가 일어난다. (唱笏) 초헌관은 사당 동문으로 나와 알자의 인도로 기둥을 돌아 계단을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가 선다.」

초헌관 이배용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이 이사장이 사당 안으로 들어가 잔을 올리는 역사적인 순간이 눈앞에서 이뤄졌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모를 기운이 솟아오르고, 살갗으로는 소름이 돋았다. 이것은 도산서원, 아니 한국 서원 최초의 여성 초헌 광경을 봄으로써 역사의 한 증인이 됐다는 증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취재진들은 아예 선생의 위폐 옆에 붙어서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을 이루었다.
서원의 사당에 여성 출입을 엄격히 통제해 왔는데, 이 통제의 벽을 도산서원이 허문 것이다. 도산서원 상덕사에 여성 출입을 처음으로 허용한 것은 2002년 7월이었고, 헌관으로 향사에 참례한 것도 임진(2012)년의 춘향春享 때였다. 그것도 외국인 헌관이었다. 도산서원 유사 이래 외국인으로도 헌관 참례가 처음이지만, 여성이 헌관으로 참례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후에 초헌관으로 여성이 나선 것이다.
이날 이배용 초헌관과 함께 참례한 헌관에는 아헌관 이동선 전 서울여대 교수, 종헌관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 여성 분헌관 이정화 동양대 교수였다.

∙행 아헌례行亞獻禮
「(唱笏) 아헌관은 찬인의 인도로 관세 자리로 나아간다. (唱笏) 손을 씻고 닦는다. 찬인의 인도로 사당 동쪽 계단을 올라가 동편 뜰에 있는 준소樽所로 나아간다. (唱笏) 아헌관은 원위전에 나아간다. (唱笏) 아헌관은 꿇어앉는다. (唱笏) 전작이 제상에서 작을 내려 아헌관에게 드리면, 아헌관은 이 작을 받았다가 다시 봉작에게 작을 준다. 봉작은 이 작을 받아 준소에 있는 사준에게 주면 사준이 작에 술을 따룬다. 이 작을 다시 봉작에게 넘기면, 봉작은 이 작을 아헌관에게 준다. 아헌관은 이 작을 받들었다가 전작에게 준다. 전작은 이 작을 받들어 제상에 올린다. (唱笏) 아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唱笏) 아헌관은 사당 동문으로 나와 찬인의 인도로 기둥을 돌아 계단을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가 선다.」

∙행 종헌례 行終獻禮
「(唱笏) 종헌관과 분헌관은 찬인의 인도로 관세盥洗 자리로 나아간다. (관세) 손을 씻고 닦는다. (唱笏) 찬인의 인도로 사당 동쪽 계단을 올라가 동편에 있는 준소로 각각 나아간다. (唱笏) 종헌관은 원위전 앞으로 나아가고, 분헌관은 종향위전 앞으로 나아간다. (唱笏) 종헌관과 분헌관은 각각 꿇어앉는다. (唱笏) 전작이 제상에서 작을 내려 종헌관에게 드리면, 종헌관은 이 작을 받았다가 다시 봉작에게 작을 준다. 봉작은 이 작을 받아 준소에 있는 사준에게 주면 사준이 작에 술을 따룬다. 이 작을 다시 봉작에게 넘기면, 봉작은 이 작을 종헌관에게 준다. 종헌관은 이 작을 받들었다가 전작에게 준다. 전작은 이 작을 받들어 제상에 올린다. 분헌관도 종헌관도 같은 방법으로 헌작한다. (唱笏) 종헌관과 분헌관은 몸을 굽혀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唱笏) 종헌관과 분헌관은 각각 사당 동문으로 나와 찬인의 인도로 기둥을 돌아 계단을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가 선다.」

∙음복 수조飮福受胙
「(唱笏) 집사는 빈 술잔 제기, 젓가락을 차린 소반을 들고 준소로 나아가 놓고 꿇어앉는다. (唱笏) 사준이 소반 위의 술잔에 술을 따른다. 집사는 소반을 옮겨 음복 자리에 놓는다. (唱笏) 집사는 원위전 제상에 진설된 조육胙肉 한 조각을 잘라 제기에 담아, 소반에 올린다. (唱笏)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로 사당 동쪽 계단으로 올라와서 뜰을 지나 음복 자리에 나아간다. (唱笏) 초헌관은 북향으로 꿇어앉는다. (唱笏) 축관이 초헌관의 죄측에 꿇어앉는다. (唱笏) 축관이 술잔을 초헌관에게 올린다. (唱笏) 초헌관은 잔을 받아 마시고, (唱笏) 축관은 빈 잔을 받아 소반에 놓는다. (唱笏) 축관이 조육을 집어 초헌관에게 드리면, 초헌관은 받은 조육을 축관에게 돌려준다. (唱笏) 축관과 초헌관도 몸을 굽혔다가 일어난다. (唱笏) 알자의 인도로 초헌관은 사당 동문으로 나와 기둥을 돌아 계단을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가 선다. (唱笏) 헌관 이하 모든 참례원參祭員들은 재배한다. 축관은 제자리에 선다.」

∙철변두徹籩豆
「변두란 제기로 사용한 변두를 거둬들이는 절차이다. (唱笏) 축관이 변두를 약간 자리를 옮겨 놓는다. (唱笏) 집례의 唱笏에 따라 모든 참례원參祭員들이 재배한다.」

∙망예望瘞
「망예는 축문을 땅에 묻는 의식을 말한다. (唱笏)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로 망예의 자리로 나아간다. (唱笏) 초헌관은 북향하여 선다. (唱笏) 축관은 사당에서 축판을 들고 나와 서쪽 계단으로 내려와 초헌관 좌측에 서서 가져온 축문을 헌관에게 보여주고 다시 받아 축판에서 축문을 뜯어 접은 후, 망예 자리에 놓으면, 관세하던 물대야를 들고 와서 축문 위에 붓고 기왓장을 덮는다. (唱笏) 초헌관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축관은 축판을 본래의 자리에 봉치한다. (唱笏) 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로, 나머지 헌관들은 찬인의 인도로 차례로 사당 밖으로 나가고, 유생들도 차례로 사당 밖으로 나간다. (唱笏) 축관을 비롯한 제집사들은 차례로 절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재배하고 사당 밖으로 나간다. 마지막으로 집례가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 재배고, 사당 밖으로 나간다.」

퇴계 선생 위폐에 초헌, 아헌, 종헌을 마치고 나서 곧바로 종향된 월천 조목 선생의 위폐에 분헌관이 잔을 올리고 나서 음복수조가 이루어졌다. 초헌관이 찬자의 창홀에 따라 상덕사 서쪽 뜰에 나가 음복수조를 행한 후에 축을 땅에 묻는 의식인 망예를 치렀다. 일반 가정에서는 축을 불사르는데, 도산서원 향사에 쓴 축은 땅에 물을 부어 묻었다. 축이 묻힌 위에 기왓장을 덮었음으로써 망예는 마무리 되었다. 이 또한 처음 접하는 이채로운 모습이었다.

∙철상撤床
「도사령은 주독을 닫고 멥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술잔의 술도 주전자에 비운다. 원위부터 종향위 순으로 철상한다.」

∙향사례享祀禮
「헌관 이하 모든 집사는 전교당 대청에 타원형으로 도열하여 파자를 아뢰고 상읍례한다. 파자를 아뢴 후, 그 자리에 모두 앉는다. 이어 별유사가 오늘 행사에 결례가 없었는지, 집례, 축관에게 물으면, 간단한 집례의 소감을 밝힌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과 분헌관께 강평을 여쭙고, 그에 각각 강평한다.」

∙독약讀約
「향사례가 끝나고 재유사 가운데 한 명이 나와 헌관에게 큰절을 올리고 백록동규, 퇴계선생 향약과 남전 여씨 향약을 성독한다. 독약이 끝나면 헌관에게 유사는 큰절한다.」

∙음복飮福
「독약이 끝나면 개좌를 아뢰고 모두 일어나 상읍례를 행하고, 그 자리에 앉아 음복례를 행한다.
음복상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분헌관, 축관, 집례 등의 순서로 모든 집사에게 나온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분헌관, 축관, 집례는 독상을 받고, 집사들에게는 겸상을 받는다. 상에는 술잔, 쌀, 기장, 돼지고기, 잣, 대추 등이 차려져 있다. 음복상이 모두 돌아가면, 헌관 순배가 이루어진다. 먼저 초헌관 술잔에 술을 따루고, 헌관, 종헌관, 분헌관, 축관, 집례 등의 순서로 술을 따룬다. 도사령이 초헌관의 순배를 아뢰면, 모두 읍례한 후에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고, 안주를 집는다. 다음으로 아헌관 술잔에 술을 먼저 따르고, 초헌관, 종헌관 분헌관, 축관, 집례 순으로 술을 모두 따른다. 도사령이 아헌관의 순배를 아뢰면, 모두 읍례한 후에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고, 안주는 집는다. 이어 종헌관도 같은 방법으로 순배한다. 이렇게 음복 순서가 끝나면 남은 제수를 따로 싸서 도포 주머니에 넣는다.
상읍례하고 나면, 향사례가 모두 끝난다.」

축문을 땅에 묻고 철상하자, 상덕사 안의 봉행 의례는 끝이 났다. 헌관 이하 집사들은 廟庭을 나와 전교당으로 옮겨 파좌를 아뢴 후에 헌관의 강평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헌관들은 덕담으로 강평을 끝냈다. 이 강평에서 이배용 초헌관은 “초헌관으로 참여하게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향사 준비를 위해 애쓰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여성에게 닫혀 있던 서원의 문이 열린 것처럼 앞으로도 남녀가 상생하며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강평이 있은 후에 이재갑 재유사가 나와 헌관에게 큰절을 올리고 백록동규, 퇴계선생 향약과 남전 여씨 향약을 성독했다. 성독을 끝낸 이 재유사는 다시 헌관에게 큰절했다. 이 재유사의 성독이 낭낭하고 분명해서 매우 인상적인데, 그에 더하여 헌관에게 두 번이나 큰절로 예를 표하는 모습에서 서원의 예의범절의 준엄함을 다시 깨우칠 수 있었다.
음복으로 올해 추계 향사는 마무리되었다. 제사상에 올렸던 제수들을 나누는 자리였다. 나도 말석에 앉아 음복상을 받았다. 음복하는 가운데 특이하게 인상적인 것은 헌관의 순배였다. 음복으로 나누는 술을 초헌관을 시작으로 3순배가 돌아갔다.
음복하고 남은 것은 종이에다 싸서 집으로 가져가라고 일러줬다. 음복의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에 이태원 별유사가 참례한 이들 모두에게 흰 봉투를 돌렸다. 나도 시도에 이름을 올린 덕에 봉투를 받아 뚜껑을 열어 보니, 천 원짜리 지폐가 무려 열 장이나 들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나 마음에 끼쳐 든 기쁨은 돈의 양과는 관계없이 컸다. 천 원짜리 지폐를 봉투에 넣어 돌린 까닭은 그 돈에 도산서원과 계상정거도, 퇴계의 영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기쁜 마음에 보름 후에 시작할 재유사의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리라 다짐하면서 진도문을 나섰다. 찬광운영대天光雲影臺에 이르러, 발길을 잠시 멈추고 앞을 내다보았다. 물이 호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겨울 날씨에 호수의 껍질이 바짝 긴장한 듯 팽팽했다. 다짐하고 나오던 마음도 팽팽한 호면湖面처럼 긴장했다. 한 무리의 뜨거운 바람이 휙 불고 갔다. 긴장한 마음을 뜨거운 기운으로 풀라는 뜻일 게다. 긴장과 풀림이 교차하는 가운데 차에 올라 엑셀러레이터를 다부지게 밟았다. 그 바람에 차는 도산서원 정류장 오르막길을 가볍게 잡아채어 올랐다.
이순의 막바지에 향사에 참여한 의미를, 그것도 선조이신 퇴계 선생의 향사에 참여한 의미를 생각하며, 퇴계로를 달렸다. 가슴으로 스며든 그 의미는 상당히 크고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