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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안식일 교회가 밝힌 이단시비 항변
1. 적절한 인정신문
재판과정의 첫 단계는 대상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이다. 만약 대상을 잘못된 이름으로 칭한다면 그것은 오판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름은 법적인 신원은 물론, 개인이나 단체의 성격과 인상을 전달하는 예민한 문화수단이기 때문에 부르거나 쓸때에 정확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말과 글로 본교회를 비평하는 분들이 거의 예외 없이 잘못된 이름으로 칭하여 안식교로 통용하고 있다. 본 교회의 공식명칭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Seventhday Adventist)이다. 이 명칭 속에는 개신교인 본교회가 일반 개신교회들과 대부분의 기본신조를 같이하고 있지만, 특징이면서 다른 점이기도한 성경 진리의 일부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제칠일 안식일 준수가 그것이다. 주일 중 첫째 날인 일요일 대신 신구약 성경에 명시된 일곱째날인 오늘날의 토요일을 십계명 중 넷째 계명에 언급된 진정한 안식일로 준수하고 있다. 그것을 유대교가 준수하던 율법주의적인 안식일로서가 아니라, 창조와 구속의 기념이요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오늘의 참 안식과(마 11:28) 장차 경험할 영원한 안식의 예표로 예수께서 그 주인(Lord)이라고 선언하신(막 2:28, 마 12:8) 성경상의 "주의 날"을 안식일로 준수하고 있다. 또한 재림교회란, 이 죄된 세상역사의 종결이요, 구원의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류의 유일한 소망으로 강조하며, 그 입박함을 선포하고 준비시키는 사명을 힘써 이행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신분은 세상역사의 마지막에 존재할 것으로 예언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자"(계 12:17)의 입장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메시지인 세천사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6~12)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게 한다. 미국등 외국에서는 후자에 관심을 두어 재림신자(Adventist), 혹은 재림(Adventist Church)로 약칭하고 한국에서는 잔자를 강조하여 안식일교인, 혹은 안식일교회로 통칭하고 있다. 유기화학에서는 안식향산(安息香酸)을 안식산으로 줄여서 부를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안식일교회를 안식교로 부를수가 없다.
2. 정통과 이단의 역사
최대의 오판
연전에 이스라엘 법원에는 특별한 관심을 끈 재판이 신청되었다. 내용인즉 1900여년 전에 십자가에 처형된 나사렛 예수의 사형판결은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의 오판에 의한 것이므로 현 이스라엘 법원이 이를 다시 재판하여 바로 잡음으로써 유대인의 얼룩진 명예를 회복하자는 예수 사형판결 재심청구소송이었다. 물론 적법성이 없어 기각되기는 했지만 이성과 양심을 일깨워준 사례였다. 맞는말이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께서 독선과 편견에 사로잡힌 종교지도자들의 거짓된 고소와 명예에 눈이 어두워 양심과 공의를 저버린 한 총독의 오판에 의해 돌아가신 것이다. 참으로 결과가 끔찍한 최대의 오판이었다.
최초의 이단소송
그런데 우리는 흡사한 소송사건을 사도행전에서 그것을 대하게 된다. 그리스도교의 처음순교자인 스데반이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거짓된 송사로 돌에 맞아 죽었으며(사도행전 7장), 곧이어 사도 바울이 같은 자리에 선다. 원고인 유대교 지도자들이 로마 총독에게 지기한 고소내용이 다음에 적혀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행 24:5~9). 기소된 죄목은 이단이었다. 이단이란 도대체 이말은 본래 선택이란 뜻을 가진 헬라어 ‘하이레이스(hairesis-영어의 heresy)’에서 비롯된 것인데, 전통적인 것을 벗어나 남과 다른 것을 택하여 믿고 가르치는 종파나 학파를 가리켰다. 이와 반대되는 정통-영어의 orthodoxy)은 옳고 바른 것을 뜻하는 헬라어 ‘오르도스(orthos)’에서 염원하여 본래의 학설이나 교의를 올바르게 계승한 주류를 가리켰다. 이러한 개념에 따라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고수해 온 인간적인 전통을 거부하고 그들과 다르게 믿고 가르치는 나사렛 예수와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나사렛 이단으로 정죄하고 당당히 고소한 것이다. 이렇게 막을 연 정통과 이단의 시비는 역사가 흐르면서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서 교회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들을 남겼다.
정통과 이단 이야기
4~5세기를 어지럽게한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정통 논쟁이나 중세기와 종교개혁을 둘러싼 로마 카톨릭교회의 살벌했던 이단 박해의 역사를 모두 접어 두고서라도, 우리는 빗나간 역사의 전철을 거듭 밟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쉽사리 보게 된다. 다음의 일례를 통하여 역사에 비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일별해보자. 종교개혁과 함께 로마 카톨릭교회가 고수해온 전통은 성경과 맞먹는 권위를 가진다는 트렌트 종교회의(Council of Trent. 1545~1563)의 결정에 어긋나게 가르친 루터나 칼빈등 개혁자들은 즉시 저주받을 이단으로 정죄되고 생명까지 위협을 당하였다. 이러한 역경중에서도 중세교회에 의하여 유린된 진리의 회복을 위하여 이들이 치룬 희생과 교회사에 끼친 공헌은 이루 헤아릴수 가 없다. 개혁초기부터 이단으로 몰린 칼빈은 모국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피하여 제네바에 정착했다. 거기서 칼빈은 같은 프랑스인이며 로마 카톨릭 수도승으로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개혁신앙으로 전향한 의사 볼섹(Jerome bolsec)이 자신의 예정론을 반대한다는 이류로 그를 시정부의 재판에 회부하여 1551년 제네바로부터 영구히 추방하였으며, 볼섹은 결국 그의 옛 교회로 돌아가고 말았다. 또 다시 칼빈은 영아세례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삼위일체 신조에 대해 이설을 주장한 또 다른 의사 세르베드(Michael Servetus)를 재판에 회부한 후 1553년 불살라 죽였다. 또한 같은 때에 종교와 정치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고 영아세례를 반대하며 사람이 죽은후 부활 때까지는 잠자는 상태에 머문다고 가르치는 재세례파(Anabaptise
-s)를 겉도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가차없이 취급했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칼빈의 제네바 신정기간의 일부인 1542년부터 4년간 58명이 이단으로 정죄되어 처형되었으며 76명이 제네바로부터 추방되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교회사가인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는 이러한 과오가 칼빈 자신보다는 중세카톨릭교회의 그릇된 신정의 전통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칼빈의 신정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정통파동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는 개신교의 신천지 미국땅에서도 반복되었다. 로마교황이나 국왕이 교회의 머리가 된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 이단자로 정죄되어 살곳을 찾지 못한 회중파 청교도들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찾아 만난을 무릅쓰고 신대륙인 미국의 동부에 정착했다. 거기서 그들은 과거를 까맣게 잊은채, 오히려 정교일치, 신앙의 일치를 내세우면서 이에 반대하는 침례교도와 퀘이커교도들을 추방하거나 이단으로 정죄한후 목매달아 죽이는 끔찍한 일을 1662년 도리어 영국의 국왕(charles II)이 이를 법으로 금지하기까지 계속했다. 이러한 모순들에 대해 필립샤프는 이렇게 개탄했다. 개신교가 로마 카톨릭과 다른 것은 단지 이단의 정의이며 그 형벌이 훨씬 온건했다는 것 뿐이다. 오늘날도 그러한 본을 좇아 자기 중심적인 교리를 기준으로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는 개신교계는 과거의 역사에서 뼈저린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탁한 역사는 20세기에도 계속되었다. 19세기 후반부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 신학이 20세기와 함께 미국에 뿌리를 내리면서 1세기 동안 칼빈주의 보수신학의 보루였던 프리스턴 신학교가 여기에 휩쓸리고 만다. 이에 보수신학을 대표하는 메이친(J.G. Machen)은 자유주의 신학을 이교적이요, 로마 카톨릭교회보다 더 심각한 배도라고 선언하고 1929년 그리로 기울어진 프린스턴 신학교를 떠나 새로운 정통 보수신학의 요람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분립시키기에 이른다.
때를 맞춰 자유주의 신학에 휩쓸린 복장로교를 탈퇴한 상당수의 목사들이 정통장로교 창립에 나섰으나 10년을 못넘기고 또 다른 신학논쟁으로 분열되어 신앙신학교파와 성경장로교파로 갈라서고 말았다. 이보다 앞선 1919년 스위스의 한 작은 교회목사였던 칼 바르트(Kal barth)에 의하여 시작된 새로운 신학당시 편만하고 자유주의 신학을 압도하고 신정통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30여년 간이나 신학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신학의 약효가 채 입증되기도 전에 이를 과다하게 복용한 국내외 신학계는 증상조차 가리기 어려운 각종 신학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1967년 미국 연합장로교는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영향을 받아 1647년 이래 전통적인 장로교신앙고백이었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크게 상반되되는 수정신앙고백을 채택함으로서 일대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한국으로 옮겨진 정통파동
바다 건너 미국에서 소용돌이친 자체 교단내의 정통파동 그대로 바다 이 편의 한국교회에 파급되어 험난한 정통 파란이 재연되었다. 같은 교파이면서도 격렬한 정통 논쟁으로 신학적 공존이 더 이상 어렵게 되어 결국 한국기독교 장로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로 양분되고 미국의 경우처럼 각각 별도의 신학교를 설립하게 이른다. 그후로도 정통파동은 계속되어 통합, 합동주류, 합동 비주류, 고신, 고신법통, 호헌, 성경장로회, 한국 기독교 장로회 등으로 거듭 세분되어 이제는 정통의 계보마저 기리기 어려운 현실에서 장로교의 교파수만도 150여 교단에 이르고 있다. 이토록 지루하고 어두운 이야기는 동일한 신조를 표방하는 같은 교파안에서 겪고 있는 정통시비의 부분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섭섭하게도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적인 뚜렷한 기준도 없이 나름대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국내외의 인사들이 거의 모두 이상과 같이 자체 안의 정통파란을 겪고 있는 칼빈의 신앙을 표방하는 교회 지도자들인데 대해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한다. 교회사의 상식을 가진 우리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자기 중심적인 기준에 따라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고 비평하는 정통 시비에 지쳤고 식상해 있음을 차제에 알리고 싶다. 선교역사 1세기를 넘어선 한국교회도 이제는 사도행전의 베뢰아교회 신자들처럼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자가 많(행 17:11~12)아지는 성숙한 교회의 지면목을 드러내야 할 때이다.
3. 이단판별의 기준
「론과 관의 판별기준」
모든 판정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운동경기에는 경기규칙이 있고, 법정의 재판은 법률에 의하며, 선악 간의 심판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다고 성경은 언급한다(약 2:9~12). 그렇다면 정통과 이단을 판별하는데도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탁명환씨의 말대로 이단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정통적 진리의 기준이 세워져 있어야 하고 정통의 기준에서 위배되면 이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탁명환씨는 이 정통의 기준으로 성경관, 신론, 메시야론, 성령론, 속죄론, 재림론 등 열가지 항목을 나열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론’이라는 것이 누가 말하는 ‘론’이며 이 ‘관’이라는 것이 누가보는 ‘관’이냐는 것이다. 뒤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예를 들면 탁명환씨가 정통의 기준으로 제시한 재림론은 전혀 비성서적인 세대주의 재림론이다. 이것은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날 뿐만 아니라 루터, 칼빈, 웨슬리 등 어느 개혁자도 그렇게 가르친 바가 없어 결국 이단이 되는 것은 안식일교회 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의 창시자들이 모두 이단이 된 셈이다. 성경을 바로 아는 일이 이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보다 앞서지 않으면 자가당착으로 인한 논리적인 자괴에 이르게 된다. 탁명환씨는 사도신경, 니케아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을 열거한 뒤, 이단이란 공인된 신앙고백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집단을 의미한다고 했다. 박영관씨 역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도르트(Dort) 종교회의 결정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책 서두에서도 자신이 규정한 이단들을 열거한 뒤 그들의 역사와 원리 및 현황과 전망을 역사적 칼빈주의 입장에서 비판했다고 견제했다. 한 마디로 칼빈사상에 어긋나면 이단이 된다는 결론이다. 교황이나 그들의 종교회의 결정에 어긋나면 이단이 되는 중세적인 로마 카톨릭의 기준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기준이다. 1967년 미국 연합장로교회가 내용을 바꿈으로서 집안을 다스리는 일에도 권위를 상실한 3백여년전의 웨스트민스터 회의(Westminster assembly) 신조나, 처음부터 강압적이고 편파적이어서 그 당시 집안교회들도 대부분 따르지 않았던 도르트 종교회의(Synod of dort. 1618~1619) 결정을 지금의 집 밖의 교회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일은 상식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중세교회가 강요한 모든 전통을 배격하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이 신앙의 규범임을 부르짖으며 일어난 종교개혁자들의 개신교 정신에도 전적으로 배치된다. 비록 교파는 다를지라도 모든 교회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회전해야지 어떻게 칼빈을 중심으로 돌아가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마치 교황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중세교회가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천동설을 뒷받침했던 과오를 또다시 신학적으로 반복하는 칼빈주의 천동설이 아니겠는가? 박영관씨는 자신이 설정한 자기 중심적인 이러한 이단판별기준에 따라 안식일 교회를 「교회와 사회에서 노략질하는 이리」, 「하나님의 교회에 미지불된 잔고」, 「현대 바벨탑을 쌓는 집단」, 「제 2의 인본주의 그룹」, 「정통기독교가 아닌 이단」 등의 표현으로 혹평하고 있음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대단히 섭섭하게 생각한다. 이단종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르틴(Walter Martin)이 지적한 대로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면, 상기한 도로트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한 아르미니우스(Arminius)의 예시예정설을 전부 혹은 일부라도 믿고 있는 감리교, 루터교, 일부 침례교, 오순절교회도 모두 이단이 되고 만다.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마 15:6)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 주님의 경고를 우리 모두는 늘 기억해야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사 8:20)한다는 명백한 말씀을 함께 상기해야 한다. 정통이든 이단이든 성경만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임을 못박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참고로 루터와 칼빈을 저주받을 이단으로 정죄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이단 판정기준을 교리문답에서 인용한다.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아니한 판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공감하기 바란다.
카톨릭 교회의 이단 판정기준 (교리문답에서)
"이단이란 무엇인가?"
이단이란 카톨릭교회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가르치는 특정한 진리를 분명히 알면서도 고집을 가지고 이에 반대하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을 것과 믿지 않을 것을 자신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신 그리스도인으로 영세받은 신자이다.
정통 신앙고백
이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그리스도교의 공식적인 이단소송의 첫번째 피고인 이단의 괴수로 기소된 사도 바울의 정통신앙고백을 들어보자.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가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3)
정통신앙의 기수인 사도바울의 이러한 신앙고백을 자신의 편지서들에 나타난 신조를 배경으로 종합해 본다.
①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 믿음의 조상들에게 계시된 신격의 삼위이신 참하나님을 믿는다
(구속사적인 신관)
②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 곧 모든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그것을
신앙의 완전한 규범으로 삼는다 (성서주의적 신앙)
③ 성경의 목적이요 중심이신 구주에 관한 약속이 나사렛 예수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로 성취됨으로서
가능하게 된 구원과 부활을 궁극적인 소망으로 믿는다. 그런데 장차 있을 이 육신의 부활은 의인이
참여하는 생명의 부활과 악인이 참여하는 심판의 부활이 따로 있어 각각 행한 대로 갚아질 것을
믿는다 (성서적 종말신앙)
④ 이토록 확고한 믿음과 분명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에 합당한 생애를 살고자 하나님과 사람앞에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도덕적 실천신앙)
참으로 일목요연한 정통 신앙고백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육신으로 오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을 적(敵)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규정했다(요일 4:1~3). 또한 참 신앙의 합당한 열매인 올바른 행실을 산출하지 못하는 부도덕한 신앙,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구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신앙을 모두 같은 범주에 넣었다(마 7:15~23, 갈 1:7~9, 살후 2:3~4).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미시간주 이웃 도시인 그랜드래피즈에 소재한 칼빈신학교 교수였던 훼케마씨는 그의 저서에서 칼빈주의 기준에 따라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후에 다음과 같은 어리둥절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우리는 재림신자 안식일교인들이 성경의 무오성과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을 확실히 인정하는것에 대해 감사한다. 우리는 그들이 창조와 섭리에 관한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그리고 거듭나야 할 절대적인 필요와 성령에 의한 성화, 그리스도께서 문자적으로 재림하심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한다" 훼케마씨 자신도 인정한 안식일교회의 이러한 신앙이야말로, 앞에서 인용된 사도바울의 정통 신앙고백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훼케마씨의 이단율 배반적인 태도에 대해 종파연구의 권위자로 그리스도교 연구소장이었던 마르틴씨는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비기독교적인 이단종파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인 내게 있어서 훼케마박사 자신도 재림교회 안식일교회가 그것들을 수고하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는 위에 열거된 것과 같은 성경적으로 앞뒤가 맞는 그러한 교리들을 엄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동시에 비기독교적인 종파가 될 수 있는가하는 사실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불행하게도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어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된 책들이 거의 극단적인 칼빈주의자인 훼케마씨의 저서에 영향을 받은 것들인데 박영관씨의 저서도 훼케마씨의 것을 대본으로 삼았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훼케마씨는 같은 칼빈신학교의 대표적인 신학자였던 벌코프(Louis Berkhof)와도 여러 상층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등 극단적인 칼빈주의 기수임을 부연해 둔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독자들은 전개되는 비평과 변증을 편견없이 지켜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양심과 이성의 지시를 따라 성경에 입각하여 판단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