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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4권
18. 훈습
18.1. 개관
이 아래는 두 번째로 말에 의하여 거듭 밝히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이는 윗글에서 “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 일체법을 포괄하며 일체법을 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 말과 같다.
그러나 섭의攝義는 앞에서 이미 자세히 말하였고 생의生義는 아직 분명치 않으니, 이 때문에 이 아래에서 자세히 이 생의를 밝힐 것이다.
글 가운데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를 들어 전체적으로 표시한 것이요,
둘째는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하였고,
셋째는 훈습의 뜻을 전체적으로 밝혔으며,
넷째는 훈습의 상을 각각 나타냈고,
다섯째는 다함과 다하지 않음의 뜻을 밝혔다.
1) 네 가지 법의 훈습하는 뜻
[논]
다시 네 가지 법의 훈습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염법과 정법이 일어나 단절하지 않는 것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정법淨法이니 진여라 이름하며,
둘째는 일체의 염인染因이니 무명이라 이름하며,
셋째는 망심妄心이니 업식이라 이름하며,
넷째는 망경계妄境界니 이른바 육진六塵이다.
[소]
수를 들어 (전체적으로 표시하고,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하였으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 훈습의 뜻
[논]
훈습의 뜻이란 세간의 의복이 실제로는 향기가 없지만, 만약 사람이 향으로 훈습하면 그 때문에 곧 향기가 있는 것과 같이,
이 또한 이러하여 진여정법에는 실로 염染이 없지만 다만 무명으로 훈습하기 때문에 곧 염상染相이 있으며,
무명염법에는 실로 정업淨業이 없으나 다만 진여로 훈습하기 때문에 정용淨用이 있는 것이다.
[소]
세 번째 중에서 먼저는 실례이며, 나중은 적용이다.
적용에서 “진여정법”이라 한 것은 본각의 뜻이며,
“무명염법”이란 불각의 뜻이니,
진실로 하나의 식이 이 두 가지 뜻을 함유하여 번갈아 서로 훈습함에 의하여 두루 염정을 내는 것이며,
이 뜻은 바로 경본(『능가경』)에서 말한 부사의훈과 부사의변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문]
『섭대승론』에서는 네 가지 뜻을 갖추어야 바야흐로 훈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그러므로 상법常法은 훈습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여기서는 진여를 훈습한다고 하였는가?
[해]
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저 『섭대승론』은 우선 생각할 수 있는 훈습(可思議熏)에 의하므로 상법은 훈습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이고,
이 『기신론』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훈습(不可思議熏)을 밝혔기 때문에 무명이 진여를 훈습하며 진여가 무명을 훈습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나타내는 뜻이 같지 않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신론』의 글에서 생멸문 내의 성정본각性淨本覺을 진여라고 하였으니,
따라서 훈습의 뜻이 있는 것이며, 이는 진여문 중의 진여를 말한 것은 아니다.
진여문 중에서는 생의生義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아래는 네 번째 따로 밝힌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염染이고,
뒤는 정淨이다.
18.2. 염훈습
[논]
어떻게 훈습하여 염법을 일으켜 단절되지 않는가?
이른바 진여법에 의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 무명염법의 인因이 있기 때문에 곧 진여를 훈습하며,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
망심이 있어서 곧 무명을 훈습하여 진여법을 요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나 망경계를 나타낸다.
망경계의 염법의 연緣이 있기 때문에 곧 망심을 훈습하여 그로 하여금 염착念着케 하여 여러 가지 업을 지어서 일체의 신심身心 등의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다.
18.2.1. 망경계 훈습, 증장념훈습과 증장취훈습
이 망경계 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증장념훈습增長念熏習이며,
둘째는 증장취훈습增長取熏習이다.
18.2.2. 망심훈습, 업식근본훈습과 증장분별사식훈습
망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업식근본훈습業識根本熏習이니, 아라한과 벽지불과 일체 보살의 생멸고生滅苦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요,
둘째는 증장분별사식훈습增長分別事識熏習이니, 범부의 업계고業繫苦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2.3. 무명훈습, 근본훈습과 소기견애훈습
무명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근본훈습이니, 업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소기견애훈습所起見愛熏習이니, 분별사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이기 때문이다.
[소]
염染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묻고, 뒤에는 답했다.
답에 두 가지가 있으니,
간략히 밝히는 것과, 자세히 나타낸 것이다.
간략히 밝히는 것에 “진여법에 의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라고 한 것은 능훈能熏과 소훈所熏의 체를 나타낸 것이다.
“무명(염법의 인)이 있기 때문에 곧 진여를 훈습하며”라는 것은 근본무명이 훈습한다는 뜻이다.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는 것은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업식심業識心이 있는 것이다.
이 망심으로 도리어 무명을 훈습하여 그 요달하지 못함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전식과 현식 등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나 망경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별기]
“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나”라는 것은 전상轉相이고, “망경계를 나타낸다”는 것은 현상現相이다.
[소]
이 경계로 도리어 현식을 훈습하기 때문에 “망심妄心을 훈습하여”라고 하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염착케 하여”라는 것은 제7식을 일으키는 것이고,
“여러 가지 업을 지어서”라는 것은 의식을 일으키는 것이고,
“일체의 (신심 등의)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다.”는 것은 업에 의하여 과보를 받는 것이다.
18.2.4. 각 훈습의 용법
1) 증장념, 증장취, 업식근본훈습
다음 자세히 말하는 중에는 앞의 세 가지 뜻을 자세히 설명하되 뒤에서부터 말하였으니, 먼저 경계를 밝혔다.
“증장념”이란 경계의 힘으로 사식事識(분별사식) 중의 법집분별념法執分別念을 증장하는 것이며,
“증장취”란 사취四取의 번뇌장煩惱障을 증장하는 것이다.
망심훈습에 “업식근본훈습”이란 이 업식으로 무명을 훈습하여 상相이 없는 것임을 잘 모르고 전상ㆍ현상을 일으켜 상속하는 것이니,
저 삼승인三乘人이 삼계를 벗어날 때 사식事識의 분단추고分段麤苦는 여의었으나 아직 변역變易의 아리야행고阿梨耶行苦를 받기 때문에 삼승의 “생멸고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다.
2) 증장분별사식훈습, 근본훈습, 소기견애훈습
통틀어 논하자면 이 고苦가 무한한 과거로부터 있는 것이지만, 다만 추麤ㆍ세細 두 가지의 훈습을 분간하기 위하여 이미 추고麤苦를 여읜 때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다.
“증장분별사식훈습”이란 범부의 자리에서의 분단고分段苦를 말한다.
무명훈습 중에 “근본훈습”이란 근본불각이며,
“소기견애훈습”이란 무명에서 일어난 의식의 견애見愛이니 곧 지말불각의 뜻이다.
[별기]
“증장분별사식훈습”이라고 한 것은 의식의 견애번뇌가 증장된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삼계三界의 업業에 매인 과보를 받기 때문에 “범부의 업계고”라 말하였다.
무명훈습 중에 “근본훈습”이라고 한 것은 근본무명이 진여를 훈습하여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업식이라 함을 이르는 것이며, 그러므로 “업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이라 말하였다.
“소기견애훈습”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무명에서 일어난 견애見愛가 그 의식을 훈습하여 추분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분별사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이라 말한 것이다.
18.3. 정훈습
[논]
어떻게 훈습하여 정법을 일으켜 단절시키지 않는가?
이른바 진여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진여가 무명을 훈습하는 것이며, 훈습하는 인연의 힘에 의하여 곧 망심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를 좋아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망심에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 좋아하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곧 진여를 훈습하여 스스로 자기의 본성을 믿어서 마음이 거짓되이 움직이는 것일 뿐 앞의 경계가 없음을 알아 멀리 여의는 법을 닦는다.
이리하여 앞의 경계가 없음을 여실히 알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편으로 수순행隨順行을 일으켜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잘못 생각하지도 아니하며, 이어서 오랫동안 훈습한 힘 때문에 무명이 곧 멸한다.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마음에 일어나는 것이 없고, 일어남이 없기 때문에 경계가 따라서 멸한다.
인과 연이 다 멸하기 때문에 심상心相이 다 없어지니, 이를 열반을 얻어 자연업自然業을 이룬다고 말한다.
[소]
두 번째는 정훈淨熏을 밝혔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묻고, 나중은 답하였다.
답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간략히 밝히고, 자세히 나타냈다.
간략히 밝히는 중 먼저 진여의 훈습을 밝혔고,
두 번째는 망심의 훈습을 밝혔다.
이 중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 “이 망심에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 좋아하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자기의 본성을 믿어서”라고 한 것은 십신위十信位 중의 신信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 “마음이 거짓되이 움직이는 것일 뿐 앞의 경계가 없음을 알아 멀리 여의는 법을 닦는다.”라고 한 것은 삼현위三賢位 중의 수행을 나타낸 것이다.
“앞의 경계가 없음을 여실히 알기 때문에”라는 것은 초지의 견도見道에서 유식관이 이루어짐을 밝힌 것이다.
“여러 가지 방편으로……오랫동안 훈습한 힘 때문에”라는 것은 십지十地의 수도위修道位에서 만행萬行을 닦음을 나타낸 것이다.
“무명이 곧 멸한다.” 이하는 다섯 번째 과지果地에서 열반을 증득함을 나타냈다.
18.3.1. 망심훈습
[논]
망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분별사식훈습이니, 모든 범부와 이승인 등이 생사의 고통을 싫어함에 의하여 힘이 닿는 대로 점차 무상도無上道에 나아가기 때문이다.
둘째는 의훈습意熏習이니, 모든 보살이 마음을 용맹하게 발하여(發心勇猛) 속히 열반에 나아감을 말하기 때문이다.
[소]
두 번째 자세히 설명하는 중에서 먼저 망훈妄熏을 밝혔다.
1) 분별사식훈습
이 중에 “분별사식”이란 통틀어 말하면 칠식을 다 분별사식이라 하지만,
강한 쪽으로 말하면 다만 의식만을 취하는 것이니,
이는 분별의 작용이 강하여 모든 일을 통틀어 반연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기신론』)에서는 강한 쪽으로 말하였다.
이 식(의식)이 모든 경계가 오직 식뿐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밖에 실제로 경계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범부와 이승은 열반에 나아가고자 하지만 아직도 생사는 싫어할 것, 열반은 기뻐할 것이 있는 줄 계탁하며, 이는 또 분별사식의 집착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분별사식훈습이라 하는 것이다.
2) 의훈습
“의훈습意熏習”이란 또한 업식훈습이라고도 한다.
통틀어 말하자면 다섯 가지 식을 모두 의意라 이름하니,
그 뜻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근본 쪽으로 말한다면 다만 업식만을 취한다.
업식은 가장 미세하여 모든 식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이 중에서 업식을 의라 하며,
이러한 업식은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이 아직 나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보살은 마음이 거짓되이 움직일 뿐 따로 경계가 없음을 알며 일체법은 오직 식識의 헤아림인 줄 알아서, 앞의 경계가 밖에 있다는 집착을 버리고 업식의 뜻에 따르기 때문에 업식훈습이라 이름하며 또한 의훈습이라 이름한다.
이는 무명에서 일어난 업식이 바로 발심하여 모든 행을 닦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18.3.2. 진여훈습
[논]
진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자체상훈습自體相熏習이며,
둘째는 용훈습用熏習이다.
자체상훈습이란 무한한 과거로부터 무루법을 갖추고 부사의업不思議業을 갖추며 경계성境界性을 짓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뜻에 의하여 항상 훈습하여 그 훈습의 힘이 있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여 스스로 자기의 몸에 진여법이 있는 줄 믿어 발심하여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문]
만일 이러한 뜻과 같다면 모든 중생에게 모두 진여가 있어서 똑같이 훈습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믿음이 있기도 하고 믿음이 없기도 하여 한없는 전후의 차별이 있는가?
모두 동시에 스스로 진여법이 있음을 알아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 똑같이 열반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답]
진여는 본래 하나지만 한량없고 가없는 무명이 있어, 본래부터 자성이 차별되어 후박厚薄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항하恒河의 모래보다 많은 상번뇌上煩惱가 무명에 의하여 차별을 일으키며 아견애염번뇌我見愛染煩惱가 무명에 의하여 차별을 일으키니,
이와 같은 일체의 번뇌가 무명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어서 전후의 한량없는 차별이 있는 것이며, 오직 여래만이 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모든 불법에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는 것이니, 인연이 구족하여야 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나무 중의 화성火性이 불의 정인正因이지만, 만약 사람이 알지 못하여 방편을 빌리지 못하면 스스로 나무를 태울 수 없는 것과 같이, 중생도 그러하여 정인正因의 훈습하는 힘이 있으나,
만약 모든 부처ㆍ보살ㆍ선지식 등을 만나 그들로 연을 삼지 못한다면 스스로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외연의 힘이 있으나 안으로 인因의 정법淨法이 아직 훈습의 힘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면 또한 끝내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인연이 구족한 이라면 이른바 스스로 훈습하는 힘이 있고 또 모든 부처ㆍ보살 등의 자비와 원호願護함을 받기 때문에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열반이 있음을 믿어 선근善根을 닦아 익히며, 선근을 닦는 일이 성숙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와 보살이 보여 주고 가르쳐 주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함을 만나 차츰 일을 이루어 나아가 열반의 도에 향할 수 있는 것이다.
[소]
“진여훈습”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를 들어 총괄적으로 나타냈으며,
둘째는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하였고,
셋째는 상相을 분별하였다.
상을 분별하는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각각 밝혔고, 둘째는 합해서 풀이하였다.
1) 자체상훈습
처음 각각 밝히는 중에서 먼저 “자체상훈습(自體熏習)”을 밝혔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곧바로 밝혔고, 둘째는 의심을 제거하였다.
처음 중에 “무루법을 갖추고 부사의업을 갖추며”라고 한 것은 본각불공本覺不空의 문에 있는 것이며,
“경계성을 짓는 것이다.”라는 것은 여실공문如實空門의 경계에서 말한 것이니,
이러한 본래 가지고 있는 경지境智의 힘에 의하여 암암리에 망심을 훈습하여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아하는 마음 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문”의 아래는 문답하여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니, 묻는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답”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의 후박厚薄에 의하여 열반에 들어감이 똑같지 않음을 밝혔고,
뒤에서는 연의 만남이 가지런하지 않음을 들어 그 같지 않음을 나타내었다.
처음 중에 “항하의 모래보다 많은 상번뇌”라고 한 것은 모든 법문法門을 잘 몰라서 사事에 대하여 앎이 없는 것이니,
이는 소지장所知障에 포섭되는 것이요,
“아견애염번뇌”란 번뇌장에 포섭되는 것이다.
답의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모든 부처” 이하는 연의 만남이 가지런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며,
주장ㆍ실례ㆍ적용이 있으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 용훈습(1), 차별연과 평등연
[논]
용훈습用熏習이란 곧 중생의 외연外緣의 힘이니, 이러한 외연에 한량없는 뜻이 있으나 간략히 말하자면 두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차별연差別緣이고,
둘째는 평등연平等緣이다.
⓵ 차멸연
차별연이란 이 사람이 모든 부처와 보살 등에 의하여 처음 발의發意하여 비로소 구도求道할 때로부터 부처가 되기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에서 혹은 부처를 보기도 하고 혹은 생각하기도 함에 있어,
어떤 경우는 권속ㆍ부모ㆍ친척이 되며,
어떤 경우는 심부름꾼(給使)이 되며,
어떤 경우는 지우知友가 되며,
어떤 경우는 원수가 된다.
또 어떤 경우는 사섭四攝을 일으키며,
내지 일체의 한량없는 행위를 짓는 연이 되는 것이니,
이는 대비大悲로 훈습하는 힘을 일으켜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증장케 하여 혹은 보거나 혹은 들어서 이익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근원과 원연]
이 연에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근연近緣이니 빨리 도탈을 얻기 때문이고,
둘째는 원연遠緣이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도탈을 얻기 때문이다.
[근원, 중생행연과 수도연]
이 근원의 두 연을 분별하면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증장행연增長行緣이고,
둘째는 수도연受道緣이다.
⓶ 평등연
평등연平等緣이란 일체의 모든 부처와 보살이 일체 중생을 도탈시키고자 하여 자연히 이들을 훈습하여 항상 버리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는 동체지력同體智力으로써 중생의 견문見聞에 따라 응하여 업용業用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른바 중생이 삼매三昧에 의하여야 평등하게 모든 부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용훈습(2)
[소]
“용훈습” 중에서 그 글에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총체적으로 표시한 것과, 이름을 열거한 것, 특징을 분별한 것이다.
⓵ 차별연과 평등연
두 번째 이름을 열거한 것 중에 “차별연”이란 저 범부와 이승의 분별사식훈습을 위하여 연을 짓는 것이니, 연을 짓는 자는 십신十信 이상에서 모든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을 짓게 되는 것이다.
“평등연”이란 모든 보살의 업식훈습을 위하여 연을 짓는 것이니, 연을 짓는 자는 초지 이상에서 모든 부처에 이르기까지 동체지력에 의하여서야 바야흐로 평등연을 짓기 때문이다.
⓶ 차별연
세 번째 특징을 분별하는 중에 먼저 차별연을 밝혔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합하여 밝히고, 펼쳐서 해석하였다.
펼쳐서 해석하는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근원近遠의 두 가지 연을 열었고, [증장행연과 수도역]
뒤에는 행해行解의 두 가지 연을 열었다.
“증장행연”이란 보시布施, 지계持戒 등의 모든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수도연”이란 문聞ㆍ사思ㆍ수修를 일으켜 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⓷ 평등연
평등연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연을 짓는 자를 밝혔고,
“이른바” 이하는 평등의 뜻을 풀이하였다.
“삼매에 의하여야 평등하게……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십해十解 이상의 모든 보살이 부처의 보신報身의 무량한 상호相好가 모두 한계가 없어서 분제상分齊相을 떠났음을 보기 때문에 평등하게 모든 부처를 본다고 한 것이다.
만약 산심散心)에서라면, 이와 같은 상호가 분제상을 떠나 있음을 볼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삼매에 의하여야’라고 말하였다.
이상으로 체ㆍ용의 훈습에 대한 각각의 설명을 마친다.
4) 체ㆍ용의 훈습 두 가지(1), 미상응과 이상응
[논]
이 체ㆍ용의 훈습을 분별함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미상응未相應이니, 범부와 이승과 초발의보살 등은 의와 의식의 훈습으로 신력信力에 의하기 때문에 수행을 잘하지만 아직 무분별심無分別心이 체와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아직 자재업自在業의 수행이 용과 상응하지 못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상응已相應이니, 법신보살이 무분별심을 얻어 모든 부처의 지용智用과 상응하여 오직 법력에 의하여 저절로 수행하게 되어 진여를 훈습하여 무명을 멸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5) 체ㆍ용의 훈습 두 가지(2), 분별사식훈습과 업식훈습
[소]
두 번째는 체ㆍ용을 합하여 해석하였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전체적으로 나타냈고, 각각 풀이하였다.
각각 풀이하는 중에 먼저 “미상응”을 밝히는 가운데,
“의와 의식의 훈습”이라고 한 것은,
범부와 이승을 의식훈습이라 하는 것이니, 곧 이는 분별사식훈습이고,
초발의보살 등 십해十解 이상을 의훈습이라 하는 것이니, 곧 이는 업식훈습의 뜻이며 전에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별기]
이 중에서 저 법신보살이 법신을 증득할 때 능견상을 여의는 것이기 때문에 지전地前(십지 이전)의 보살을 의훈습이라 한다고 말하였으니, 업식에 의하여 능견상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세속지로 보불報佛을 보는 뜻에 의한다면 금강심金剛心 이하에서 모두 견상見相이 있음을 통틀어 업식훈습이라 하는 것이니, 아래에서 말한 것과 같다.
[소]
“아직 무분별심이 체와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직 모든 부처의 법신의 체와 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아직 자재업(의 수행)이 용과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직 부처의 응신ㆍ화신의 이신의 용과 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응”을 밝히는 가운데 “법신보살”이란 십지 보살이요,
“무분별심을 얻어”라는 것은 체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의 지용智用과 상응하여”라는 것은 여량지가 있기 때문이요,
“저절로 수행하게 되어”라는 것은 팔지八地 이상에서는 공용이 없기 때문이다.
말에 의하여 거듭 나타냄에 다섯 가지 부분이 있는 중에서 이상으로 네 번째 두 가지 훈습을 각각 밝힘을 마친다.
18.4. 훈습이 다함과 다하지 않음의 뜻
[논]
또한 염법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훈습하여 단절되지 않다가 부처가 된 후에는 곧 단절함이 있으나, 정법훈습은 곧 단절함이 없어서 미래에까지 다하는 것이니,
이 뜻이 무엇인가?
진여법이 항상 훈습하기 때문에 망심이 곧 멸하고 법신이 밝게 나타나 용의 훈습을 일으키므로 단절함이 없는 것이다.
[소]
이 아래는 다섯 번째로 두 가지 훈습이 다함과 다하지 않음의 뜻을 밝혔다.
염법훈습은 진여(理)에 어긋나 일어나기 때문에 멸진함이 있으나,
정법의 훈습은 진여에 순응하여 일어나 진여와 상응하기 때문에 멸진함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시정의분 내에 바로 풀이한 중에 크게 두 부분이 있으니,
이상으로 첫 번째 법장문을 해석함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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