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외국에서 온 사람은 때로 원주민들이 그에게 하는 지칭적 설명을 통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울 것이다.
그리고 이 설명들을 어떻게 해석할지 추측해야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추측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렇게 할할 수 잇을 것같다:
아우그스티누스는 인간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마치 아이가 외국에 와서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기술한다.
즉 아이에게는 이미 어떤 언어가 있지만 단지 그 외국의 언어만 아니라는 듯이,
다시 말해 아이는 이미 생각할 수 있지만 단지 아직 말을 할 수만 없는 듯이 기술한다.
그리고 여기서 "생각한다"는 말은 "혼잣말한다"와 같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33.
하지만 누군가 이렇게 반론을 제기했다면 어떨까?:
"지칭적 정의를 이해하려면 이미 하나의 언어게임을 완전히 익힌 상태여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설명하는 사람이 가리키는 것을 ㅡ 분명하게 ㅡ 알기만(또는 추측하기만) 하면 된다.
즉 가리키는 것이 가령 대상의 형태인지, 색깔인지, 또는 개수(個數)인지 등을 말이다." ㅡ
ㅡ 그런데 '형태를 가리킴', '색깔을 가리킴'은 무엇에 있는가? 한 장의 종이를 가리켜보라! ㅡ
그리고 이제 그 종이의 형태를 ㅡ 이제 그 종이의 색깔을 ㅡ
이제 그 종이의 개수를 가리켜보라!(이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ㅡ 자,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했는가? ㅡ
당신은 가리킬 때마다 다른 것들을 '의미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느냐고 내가 물으면,
당신은 색깔, 형태 등에 주의를 집중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런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누군가 꽃병을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하자:
"저 예쁜 파란색을 봐! ㅡ 형태는 신경 쓰지마," 또는 "저 예쁜 형태를 봐! ㅡ 색갈은 중요하지 않아."
그가 요청한 일을 할 때, 틀림없이 당신은 각각의 경우에서 다른 행동을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색깔에 주의를 돌릴 때 항상 똑같은 행동을 하는가?
서로 다른 여러 경우를 상상해보라!
몇 가지를 제사하면 다음과 같다.
"이 파란색은 저기 저 파란색과 똑같은가? 뭔가 차이가 보이는가?"
ㅡ 당신은 물감을 섞으면서 "이 파란 하늘색을 만들기 어렵군."이라고 말한다.
"날씨가 개고 있다, 벌써 파란 하늘이 보인다."
"이 두 파란색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주목하라."
"저기 파란 책이 보이지? 여기로 가져오렴,"
"이 파란 신호등은 . . . 을 의미한다."
"이 파란색은 이름이 뭐야? ㅡ '쪽빛'인가?"
우리가 때로 색깔에 주의를 기우릴 때는
손으로 가려 윤곽이 보이지 않게 하거나, 사물의 윤곽에 집중하지 않거나,
또는 대상을 응시하며 그 색깔을 전에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내려 한다.
우리가 형태에 주의를 기울일 때는 때로 형태를 본떠 그리기도 하고,
때로 색깔을 분명히 보지 않으려고 눈을 찡그리기도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런 일,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일들을 '이런저런 겻에 주의를 돌리는 동안에 한다.
그러나 누군가 형태나 색깔 등에 주의를 기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방법에 이런 것들만 있지는 않다.
이것은 마치 체스에서 한 수(手)를 두는 방법이
체스 말을 판 위의 이곳에서 저곳으로 밀어내는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ㅡ 또한 그 수(手)와 함께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에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체스 게임을 한다", "체스 문제를 해결한다"등으로 부르는 상황들에 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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