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을 보며 / 도성(道晟) 신용재
오래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그때부터 바둑이 나의 삶에 끼어들기 시작하여 점차 바둑 애호가가 되었다. 바둑은 태권도처럼 기본기를 익힌 후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응용하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어찌 보면 우리네 세상사의 모습과 흡사하다. 선택과 결정의 상황이 끝이 없는 것처럼 바둑의 수도 무궁무진하다. 바둑의 묘미를 알게 되면 그 마력에 빠지지 않을 자 뉘 있으랴. 바둑을 두는데 명심해야 할 열 가지 비결을 알려 주는 위기십결은 내 선택지의 지침이 되어줄 때가 많다. 이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신의 한 수로 세계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이창호 9단처럼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내면 이기지 못한다.)이다. 이런 바둑을 즐기면서 나는 가끔 인생의 손익 계산서를 생각해 본다. 바둑으로 인하여 나는 무엇을 얻고 잃었는가?
물론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시간의 제약으로 부득이 바둑을 잊고 지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직장 생활 중 회사 내 바둑대회가 있을 때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해외 출장과 같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빠짐없이 참가했다. 정년 퇴직을 하고 나서도 전 직장 동료들의 모임인 중우회 바둑 대회도 계속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아내의 묵인하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만의 망중한을 즐기는 남편의 취미를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곱지는 않을 터, 그래도 남편의 취미를 묵묵히 인정하는 아내의 넓은 도량은 나로 하여금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한다. 대회 참석 때마다 우승, 준우승 또는 참가 상이라도 받아오면 아내는 마치 자기가 수상한 것 같이 기뻐해 주니 고맙기도 하려니와 나 혼자 즐긴 미안함을 감싸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흐뭇했다. 2024년 봄 울산시장 배 바둑대회 단체전에서 승리했을 때도 나에게 주어진 메달과 우승 상금을 집에서 조용히 기도해 준 아내에게 선물을 하면서 조그마한 감사를 표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취미 행각을 명분 삼아 그동안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향후 아내에게 갚아야 할 보답의 빚만 계속 불어나고 있으니 한편으로 부담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와 바둑에 대한 사랑을 적절히 비례하여 사이좋게 나눌 수는 없을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가 없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바둑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서로 양립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나에게 주어진 영원한 가치판단의 과제다.
바둑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중국 기원설과 인도 기원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첫째는 기원전 2300년경 즉 약 4300년 전 고대 중국 요순시대 창시설이 있다. 요임금이 아들 단주를 교육하기 위해 바둑을 창안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다른 일화에 의하면 인도의 한 왕이 게임을 아주 좋아했는데 금방 싫증을 내곤 하였다. 어느 날 전국에 방을 붙여 싫증 나지 않는 게임을 창안해 내는 사람을 부마로 삼고 소원을 하나 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한 선인이 바둑을 창안하여 왕에게 받친 결과 왕이 아주 만족하게 되어 그를 공주의 부마로 삼고 소원을 들어주게 되었다고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왕이 소원을 묻자 바둑의 창안자는 바둑판 첫째 점에 보리 1알, 두 번째는 2알, 세 번째는 4알, 네 번째는 8알 이렇게 갑절로 계속하여 361번째 점까지 보리쌀을 달라고 했다. 왕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즉시 이를 수락하였는데 나중에 전 인도 재산의 반이나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상기 2가지 설 외에도 중국 기원설 보다 1천 년 전 은나라 멸망 후 단군의 윗대 치우 시대 현인 기자가 바둑과 함께 우리나라에 가져왔다는 설도 있으며 우리나라의 '삼국사기' 중국의 '사서' 등에 삼국시대에도 바둑을 많이 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백제의 의자왕은 일본에 자수정 바둑알 (붉은색과 청색)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바둑이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4개의 화점이 각 점 주변 90집 x 4= 360집과 가운데 천원 점 1집을 합쳐 총 361집을 두고 흑과 백이 서로 누가 집을 많이 점유하느냐의 게임이다. 확실한 승부를 내기 위해 맞수와 대국에서는 흑 번의 기사가 백 번의 기사에게 6호 반을 덤으로 주는 규정이 있다. 수필가 송영화 님의 수필집 ‘반집’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바둑 공부에 전념한 결과 반집 차로 우승해서 프로 기사가 되었다는 글이 실려있다. 매년 전국 대회에서 우승한 ‘1’명만 통과할 수 있는 프로 기사가 되는 관문인 최종 결승국에서 반집으로 이겼다는 글이 너무 감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승패를 떠나 반집의 승부를 내었다는 것은 서로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바둑을 명국이라 한다.
어느 날 과거 직장 상사이자 선배였던 분과 겨루었던 바둑대회의 한 대국이 잊히지 않는다. 바둑은 불계로 내가 이겨있는 상황에서 승패와 관계없는 한 집짜리 패가 걸렸다. 나는 거의 끝난 바둑이라 생각하고 무심코 패를 받았는데 이것이 자충수가 되어 대마를 둔 패가 되었다. 상대가 받아 줄 만한 마땅한 팻감이 없어 결국 선배의 대마는 살고 오히려 나의 대마가 죽어 역전패를 당하게 되었다. 위기십결의 신물경속(慎勿輕速: 바둑을 둘 때는 가볍게 막 두어서는 안 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돌을 놓아야 한다.)을 위배하여 두었으니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꼼수를 두었다고 상대를 힐난할지 몰라도 당시의 나로서는 이를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 선배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선배는 기회를 봐 내게 한 번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이를 기화로 앞으로 바 둑을 둘 때 아무리 유리한 국면이라 할지라도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바둑을 두면서 나는 가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바둑은 일상의 생활속에서 기획력과 협상력 및 사고의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살다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해주어 나를 일으켜 세워주기도 했다.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때 이런 것이 대변에 올 수 있겠다. 그러나 귀하고 귀한 삶의 시간들을 바둑에 많이 빼앗기느라 인생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본업의 많은 다른 것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바둑 때문에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등은 차변으로 와야 하는 것이다. 바둑을 두면서 내가 작성하려고 했던 정확한 손익 계산서는 서로 가치가 다른 것을 비교할 수 없기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이기려는 목적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바둑을 그르치기 쉽다.)의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면 바둑과 삶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바둑은 나에게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후세의 사람들이 옳은 삶을 산 선배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가르쳐 주고 있다. 오랫동안 갈고닦은 삶의 지식을 후세에 전수하고 봉사하며 산다면 세상은 더 즐겁고 아름다울 것이다.
오늘도 인생의 축소판인 바둑판을 보며 삶의 의미와 깊이를 생각하며 배우고 또 새로 깨우친다.